청명한 하늘 아래

아름답게 지나간 목련과 매화들이 

벛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가지에 달린 벛꽃은 꽃망울을 깨고

여러 개의 팔들을 활짝 열어

순수한 태양을 마음껏 바라본다

분홍빛의 팔들이 가지에 매달린 채로

자연의 기운을 받으며

영광을 기쁘게 바라본다


그러나 분홍빛 팔들을 바라보는

복면을 낀 어느 난쟁이는 

울지 못하여 더욱 슬픈 눈으로

벛꽃을 바라본다

나도 저런 벛꽃이 되고 싶었지만

목련과 매화가 되지도

개나리나 풀꽃이 되지도 못하고

초록빛 눈으로 그들을 동경하기만 하다

초록빛 난쟁이 말고

분홍빛 봄꽃이 되어

인사를 나누고 스몰토크를 하다

기쁨을 주체 못한 채로 

편안히 잠에 들고 싶었다만

지금의 나는 

초록빛 눈을 

그들을 향해 바라보기만 하다

외로움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가라앉기만 할 뿐


하지만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했던가

만약 내가 초록색 허물을 벗어서

늦게라도 봄꽃을 피워낸다면

이미 강렬해진 여름꽃들이나

석양을 바라보는 가을꽃들 사이에서

나만 은은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분홍빛 육신을 도도히 드러내고

이미 뒷방으로 들어가는 꽃들과 달리

좀 더 오래동안 젊음을 누릴 수 있겠지


만약 신께서 인간에게 

50번의 봄을 주셨다고 했을 때

내가 마침내 외로움과 열등감의 늪에서 빠져나와

결핍을 채우기 위한 포효를 할 때가

나의 결핍만큼 사랑하기 위한 때가

언제 올 지 모르겠다만

모든 인간의 조물주께서

개개인을 사랑하신다면

내가 꽃을 피우려 할 때

반드시 나를 도우리라

그러니 조물주께서 난쟁이를 돕길 빌며

벛꽃들은 난쟁이를 기다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