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의 가을날. 영등포 도로 한복판.

월드컵 붉은 옷의 함성 서서히 식어가는

어느 쌀쌀한 허공을 향해 열기는 달아오르고 있다.

악에 받친 군인들이 욕지거리 내뱉으며 쇠파이프 내리쳐도

앳된 나이의 전경은 묵묵히 분노를 받아칠 뿐.

돌을 던져도, 화염병을 던져도 헬멧의 창살에 가로 막혀 어느 것도 들리지 않는다.

물 벼락이 고약한 냄새나는 LPG 가스통의 화염을 향해 내 쏟을 적

군바리 모두 악에 받쳐 김정일의 목을 따겠다며 목이 쉬어져라 군가를 외쳤다.

도로 가로막은 닭장차는 저들이 들어갈 종착지였다.

똑같이 끌려 나와 푼돈 쥐어진 채로 집 지키는 개 마냥

몸 마음 망가져 가는 건 섬뜩하리라 할만치 닮았다.

그럼에도 갈길 잃은 증오는 여기 모두 앞으로 무시돼버린

어떤 헐렁하기 짝이 없는 긍지 마냥 길거리에 핏자국 쏟아내며

도심의 잿빛 콘크리트 사이로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