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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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고 흘러 12월 11일이 되었다. 지원은 준용에게 일렀다.


“혼자 있다고 라면만 먹지 말고, 집 밖에 나가도 되는데 아파트 안에만 있어야 한다?”


“알아요. 안다고요!”


지원은 그런 준용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시선을 맞췄다.


“조금만 기다려 줘. 네 형이라는 작자를 만날 날이 머지 않았으니까.”


준용은 그런 지원의 시선을 피했다.


“잘 다녀오세요…”


평양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은 지원은 바이오 땅콩을 씹어먹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평양 갔을 때가 생각나네.”


조 씨가 말했다.


“그때는 넷이었지. 지금은 다섯이고.”


레나는 자기 어깨에 기댄 채 잠든 알리사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땅콩 하나를 집으며 물었다.


“그래서 조 씨, 평양에 어느 기업이 그 거미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거야?”


조 씨는 가방에서 홀로그램 재생기를 꺼내 화면을 틀었다. 홀로그램은 평양의 한 공장을 가리켰다.


“랭천사이다. 통일 전부터 북한 지역에 유명한 사이다 공장이지. 소유한 기업은 고려랭천음료. 공장 옆이 본사야. SHR-2077은 정확히 말하면 본사 옆의 창고에 있어.”


인호가 물었다.


“거긴 또 어떻게 들어가죠? 지난번처럼 경비원으로 위장해야 하나?”


“아니, 이걸 쓸거야.”


조 씨가 꺼낸 것은 현금이었다.


“그곳 창고는 별거 없어. 그냥 대충 물건 쌓아 놓는 곳이야. 우린 이 돈을 경비원한테 주고 물건 좀 사가겠습니다~ 하면 되는 거지.”


“다른 의뢰는?”


“평양에 도착하면 연락하라더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이, 기차는 평양역에 도착했다. 역에 내린 직후, 조 씨는 곧장 중계인 박찬호에게 연락했다. 특유의 박자감 있는 목소리가 주변에 울렸다.


“도착했어?”


“그래, 어떤 의뢰인지 설명해 줘.”


“사실 거창하게 말은 했지만 별거 아닌 의뢰야. 얼마 전에 서울 구경하러 온 아줌마가 편의점에서 직원한테 갑질을 했는데, 뭔 짓을 했는지 직원이 자살했어. 이제 갓 어른이 된 꽃다운 청년이었지. 일반적인 싸움이었다면 적당히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하필 이 아줌마는 고려풍산 간부란 말이지.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처벌도 못해. 그래서 부모가 물어물어 나한테까지 와서 그 여자를 끝장내 달라고 했어. 참고로 그 여자는 고려풍산에서 잠시 ‘휴가’를 줘서 집에 있지. 위치는 첨부했어. 아, 시체까지 처분해주면 고마울거야.”


인호가 말했다.


“위장용 신분증 2개 만들어주는 것 치곤 원하는 게 많네요.”


지원이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면서 말했다.


“그래도 해야지 뭘 어쩌겠어? 그 ‘스파이더’부터 갈거지?”


“그래, 일단 그것부터 해결하자.”


지하철을 타고 대동강을 넘어 도착한 랭천음료는 서울이나 수원의 건물과 다를 바 없었다. 척 봐도 높으신 분이 탄 것 같은 비행정이 50여 층에 달하는 건물 꼭대기에서 어디론가 날아가고, 출입구에서 일직선으로 난 도로 양 옆에는 각종 상가가 들어서 있었으며 때마침 점심시간이 끝나가기에 많은 양복쟁이들이 손에 합성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황급히 문 너머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원이 말했다.


“저 쓴 물이 뭐가 좋다고 마셔대는지.”


조 씨가 말했다.


“각자 다 사정이 있는 법이겠지. 그리고 우린 정문으로 안 들어가니까 이쪽으로 와.”


지원 일행은 조 씨를 따라 조금 더 걸어서 뒷문에 도착했다. 높은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오던 정문과 달리 낮고 넓은 금속 건물이 보이는 뒷문은 방금 전 랭천사이다 상표를 붙인 컨테이너 트럭이 지나간 다음에는 굳게 닫혀 있었다. 철문 옆 경비실에는 모자를 쓴 경비원이 당장이라도 자버릴 듯 의자에 편히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그 뒤로 직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래서, 어떻게 들어갈거야?”


조 씨는 현금 가방을 들고 지원에게 손짓했다.


“레나, 인호, 알리사. 너흰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러더니 경비실 창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경비원이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창문을 열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일 하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제 매부가 여기서 근무하는데, 뭘 좀 두고 왔다지 뭡니까? 그래서 잠시만 갔다 주러 들어가도 될까요?”


경비원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보안 문제 때문에 이리로 부르시는 게 나을 건데요.”


“그러고 싶은데 그 친구가 점심도 못 먹을 만큼 바쁘지 뭡니까? 조금만 봐주세요.”


조 씨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지원은 내심 감탄했다.


‘대단한 실력인데? 말로 먹고 사는 데에 이유가 있는 건가?’


경비원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 매부인지 뭔지 하는 사람, 이름이랑 부서, 직급 말하세요.”


지원은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몹시 당황했다.


‘아니…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뭐 저리 철저해?’


조 씨가 말이 없자, 경비원은 다시 물었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하시죠. 저도 바쁜 사람입니다.”


조 씨가 여전히 말이 없자 경비원의 얼굴이 의심으로 가득찼다. 지원은 경비원의 한쪽 손이 테이블 아래로 향하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허벅지의 홀스터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조 씨는 경비원의 다른 손을 콱 붙잡았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매부랑 별로 친한 편이 아니다 보니까 동생한테 물어보려 했는데 전화를 안 받네요. 그냥 들여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지원은 조 씨가 경비원의 손에 10여 만원을 쥐어주는 것을 보았다. 경비원은 그것을 스르륵 숨기더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이번 만입니다. 그 물건이 뭔지는 몰라도 빨리 주고 돌아오세요.”


옆의 작은 출입구가 열리자, 조 씨는 곧바로 지원에게 손짓했다. 지원이 물었다.


“셋은 안 따라오는 거야?”


“앞에서 대기하라고 미리 언질을 줬어. 창고는 이쪽이야, 따라와.”


공장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지원은 어느새 콘크리트로 지은 창고 앞에 도착했다. 단순히 정면을 보고 있을 뿐임에도 그 너비는 학교 운동장에 비견될 정도였다. 곧바로 팔과 목에 전투용 사이버웨어를 달고 있는 경비원들이 둘을 막아섰다. 


“외부인인 것 같은데,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조 씨가 말했다.


“얼마 전에 조선인민파 한테서 물건 털었지? 그 중 하나가 필요해서 말이야. 물론, 돈은 충분히 있어.”


조 씨는 가방 안에 가득 담긴 현금을 보였다.


“팔거야, 말거야?”


경비원들은 서로 바라보더니 그 중 키 큰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손짓했다.


“따라와.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자 지원은 깜짝 놀랐다. 축구장 크기 정도로 보이는 창고 안에 수많은 물건들이 빼곡히, 눈대중으로도 5미터 가까이 되는 천장까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경비원이 말했다.


“그 빨갱이들한테 뺏은 건 이쪽에 있어. 뭘 원하는 건데?”


조 씨는 손가락으로 검은 강화플라스틱 가방을 가리켰다.


“이거.”


경비원은 손가락을 따라 그 가방을 보더니 코웃음쳤다.


“그거? 너 이게 무슨 물건인지 아는구나? 이건 못 줘. 이걸 적당한 기업에 팔면 평생 먹고 살 돈이 나오는데, 그런 황금 덩어리를 어디서 왔는지 모를 것들한테 덥석 넘겨준다고? 차라리 다른 걸 골라. 이건 안 돼.”


조 씨가 말했다.


“천만원. 네가 나한테 팔면 받을 수 있는 돈이야. 반대로 기업들에게 팔면 수억은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그 사기꾼 새끼들이 정말 돈을 줄 것 같아?”


“무슨 소리야?”


“기업은 세상 모든 욕심쟁이들의 융합체나 마찬가지야. 단 한 푼도 지출하지 않고 이득을 얻는 데에 혈안인 놈들이지. 특히 기업 대 기업도 아니고 일개 개인을 상대로 거래?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 네가 기업이랑 거래를 하려 한다면 다음 미래가 훤히 보여. 기업이 수억을 주겠다고 꼬드겨서 너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겠지. 그 순간 넌 어디선가 날아온 총에 맞아 죽고, 기업은 공짜로 저 로봇을 가져가는 결말. 난 그 결말을 맞이한 사람들을 많이 알지.”


점점 경비원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하, 하지만… 거래에는 신용이 중요하다고…”


“신용은 돈 빌릴 때나 쓰는 말이고. 너무 세상을 아름답게 여기는데, 기업한테 너나 우리는 벌레에 불과해. 벌레와 약속을 하고 그러진 않잖아. 안 그래?”


“씨발… 알았어. 가져가.”


조 씨는 돈가방을 경비원에게 넘기더니 로봇이 든 가방을 들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상자를 열자 빔 프로젝트로 보았던 그 로봇이 8개의 다리를 접은 채 얌전히 들어 있었다.


“가자. 빨리 철수하자고.”


둘은 후다닥 정문 밖으로 나왔다. 인호가 물었다.


“이 상자 안에 있는 거죠?”


“그래, 마음 같아선 바로 암살 의뢰까지 달성하고 집에 가고 싶지만… 가지고 오는 동안 문자가 왔어. 무려 호텔까지 잡아 놓고 말이야.”


알리사가 물었다.


“누가 그렇게까지 우리를 붙잡은거죠?”


조 씨의 표정이 굳어지자, 알리사를 제외한 모두가 그 대상을 직감한 듯 잔뜩 긴장했다.


“붉은 마녀, 마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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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바꿨습니다. 뭐, 그렇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