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집에서 벤데타 코르사를 찾아낸 앤네는 감회 어린 눈으로 13번가를 둘러보았다.

 거기 있는 상점과 가로등과 풍경들을 다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모퉁이 상점은 새총을 쏘기 좋은 곳이었다. 상점 주인 크녀유 씨가 오만하고 고집불통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 이유도 적잖은 지분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크녀유 씨가 새카만 네리오나이트 램프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숨은 명인이라는 사실이 컸다.

 바로 이곳. 그림자 구름 도시에서.

 네리오나이트 램프는 빛이 비치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반사광을 내뿜는 특성이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실에서 네리오나이트 램프를 켜면, 촛불처럼 그저 방을 채울 뿐인 밋밋하고 따분한 광채가 아니라 수많은 사각형이 감람색 층위를 이루며 퍼져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해 질 무렵에 해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한 줄로 서서 차례대로 잠겨가는 광경과 비슷하다.

 자부심 넘치는 크녀유 씨는 이를 두고 '빛의 성가대가 노래한다' 고 표현했다. 모퉁이 상점에서 제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장사 멘트이기도 했다.

 앤네는 크녀유 씨가 호객꾼 노릇을 하면서 이 멘트를 할 때마다 손에 들고 있던 네리오나이트 램프에 진흙을 쏴서 맞혔다.


"앤네. 또 네녀석이냐! 이번에야말로 잡아서 이빨을 몽땅 뽑아주겠다!"


 길길이 날뛰는 크녀유 씨를 피해 모퉁이를 얼른 돌아 골목으로 들어가면, 회색 벽돌이 정어리 떼처럼 들쑥날쑥하게 배치된 좁은 길이 나타났다.

 길은 40m까지는 부드럽게 휘어지는 외길이다가 뾰족하게 꺾이는 세 갈래 길로 나뉘었다.

 앤네는 항상 오른쪽 갈림길로 도망쳤다.

 그 길은 넓은 원형 광장으로 이어졌다.

 중앙의 분수대에서 튀기는 물방울 개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 그곳에서는 대초원을 제집처럼 누비고 다니는 유목민이 와도 인파에 섞인 작은 말썽꾸러기 꼬맹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이번에도 실패하셨네요! 크녀유 아저씨!"


 크녀유 씨가 씩씩대며 돌아가면, 앤네는 낡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중절모를 쓴 신사. 새침한 표정으로 입술을 내민 부인. 양산을 대신 들어주며 주인의 걸음 속도에 맞추는 하인. 길거리 연주자. 신문팔이 소년·소녀. 마차.

 제각기 다른 복장과 표정을 하고 있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멋진 장신구를 하고 다녔고, 장신구는 항상 감람색의 날카로운 빛을 번쩍였다!


"어휴, 눈부셔."


 네리오나이트!

 그림자 구름 도시의 특산 광물!

 도시가 1캐럿에 9,000,000 유로나 받고 팔아먹는 돈줄!

 시장의 놀라운 복지 정책 덕에 그림자 구름 도시의 시민이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사치품!


"저기 봐요. 저 꼬마는 거지인가 보네요. 네리오나이트가 없다니."

"신경 꺼요!"


 하지만 앤네에게는 없었다.

 그리고.

 그 덕에 앤네는 홀로 살아남았다.

 네리오나이트는 치명적인 분자 구조를 갖고 있었다.

 섬유 광물은 자연적으로 서서히 쪼개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광물 먼지를 분비한다. 만약 먼지 근처에서 호흡을 하면, 소화되지 않는 물질이 폐와 세포에 쌓이게 된다. 그로 인하여 세포의 대사 과정이 교란되고, 세포는 더욱 빠르고 가차 없이 분열한다.

 종국에는 악성 돌연변이. 암을 초래한다.

 네리오나이트가 초래한 암은 '가스암' 이었다.

 앤네를 제외한 시민들은 한날한시에 온몸이 붕괴하여 사람 형상의 응집체가 되어 죽었다. 응집체는 그림자처럼 검고 구름처럼 남실거렸다.

 도시의 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자 구름으로 채워졌다. 

 13번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녀유 씨는 호객을 벌이던 모습. 그 팔을 쳐들고 한쪽 무릎을 굽힌 이상한 자세 그대로 그림자 구름으로 전락했다.


"벤데투 코르사. 벤데투 코르사. 광산이여. 내가 간다. 네 아가리를 영원히 닫아버리러."


 앤네는 아직 목숨이 붙어있을 동안에 네리오나이트 광산을 폐쇄하기로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