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중교통 중 지하철보다 버스를 선호한다. 지하철이 대부분의 경우 버스보다 목적지까지 더 빨리 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나는 때때로 시간에 쫓기는 하루가 아니면 일부러 버스에서 시간을 늘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수능이 끝나고, 아직 입시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던 어느 겨울. 나는 친구의 음악 작업실에 방문하기 위해 운중동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퀘퀘한 히터 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판교IC 옆 화랑공원을 지나, 평소에 내가 자주 다니던 동네의 모습이 아닌, 다소 생경하고 처음의 설렘이 가득한 미지의 공간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건물들의 모습을 가슴 속으로 헤어보았다.  


 누구는 12년이라 말하고, 누구는 3년이라 말하고, 누구는 또 1년이라 말하는. 그때 당시 19년의 내 인생에서 적어도 대부분이라 말할 수 있는 기간 동안 몰두해왔던 것들을 끝낸 나는 방황을 하고 있었다.  


 수능이 끝나 즐거운 건지, 섭섭한 건지 모를 감정의 방황.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었던 무지의 방황. 

 이제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주체의 방황. 


 내가 모르는 낯선 곳으로 향하는 버스의 발길이, 꼭 내가 겪고 있는 방황의 방향과 썩 같아 보였다.  


 그제서야 나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핸드폰을 켜지도 않고, 귀에는 에어팟을 꽂아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핸드폰을 켜 시간을 보니, 도착 예정 시간으로부터 7분 정도 일렀다. 


 잠금을 풀고, 어플을 열어 음악을 틀었다.  백아의 <첫사랑>이었다.  


 덜컥거리는 창문에 이마를 갖다 대어보았다. 창문은 버스 안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차가웠다. 또 덜덜거리며 흔들렸다.  나는 또 무심코 내가 멀미를 자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속이 메슥거리며 머리 한 구석이 찌릿찌릿 아파오는 것만 같았다. 


 창문에서 이마를 떼고, 다시 창문 밖 풍경에 몰두했다. 어느새 탁 트였던 공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드높은 빌딩이 눈 앞을 가로막았다.  


 버스가 좌회전을 했다. 나는 가사에 귀를 기울였다. 


사선을 트는 저 빛은 날 향해 불을 피우고 

재가 되지 않으려 난 돌아서지만 

빈 갈피에 차오른 우리라는 색은 완벽할 필요 없이 아름다운 영화였어. 

우리가 머문 밤 사이 피어버린 심장 소리에 밤 하늘에 별을 이어 널 그리는 걸. 

이 시간의 난 너와의 시간을 물들이고,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지나봐.  


 다시 또 생각해보니, 한참 수능을 준비할 때 자주 듣곤 했었던 노래였다. 


 독서실을 같이 다녔던 나의 가족같은 친구들과 학교가 끝나고 난 후 함께 자주 가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커피를 하나씩 사들고 소화 좀 시키자며 해가 진 탄천로를 거닐던 그때의 나도, 이 노래를 듣고 있었다.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고, 1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짧은지.  


 시간의 상대성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던 그 지난하고 아득했던 시간이, 다시금 돌이켜보면 청춘이었다.  


 푸를 청에 봄 춘을 쓰는 그 시절의 봄은, 비록 그 이름만큼 푸르지는 않았다.  


 내 청춘의 색은 여름 장마철 하늘의 색채처럼 모노톤의 그림자였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탄천변의 하늘처럼 검고, 푸르지만, 붉었다.  


 그렇게 나는 치열했던 나의 청춘에 색을 채워 올렸고, 이제 돌아와보니 그것은 완벽하진 않아도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아직도 나는 밤 사이에 가끔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또 한 번 그려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청춘을 물들이며, 나는 그 시간을 무척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그 시절의 나를 다시 한 번 지워내고 있었다.




 같이 들으면 좋을걸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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