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활기차게 지저귀었고 바람은 창문을 상냥히 두들겼다. 그래서일까, 그날따라 일찍 눈을 뜬 레이첼은 태양이 고개를 내민 것을 확인하자 서둘러 겉옷을 걸쳐 입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바닥이 쿵쿵 울리는 소리와 계단이 삐걱대는 소리는 축 처져 있던 집을 활기로 가득 채웠다.


 쏜살같이 달려가 후문을 연 레이첼의 눈에 환한 색의 꽃으로 장식된 넓은 마당이 담겼다. 그녀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싱그러운 내음을 가득 품은 풀 위로 자그마한 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시원한 부드러움의 안에 숨겨진 상냥한 투박함이 그녀에게 특별한 하루의 시작을 안겨주었다.


 레이첼은 뒷마당을 활보하며 꺾을 꽃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모두 충분히 아름다운 꽃 들이었으나 그녀는 그중에서도 최고로 빛나는 꽃들을 꺾기를 바랐다. 어떤 꽃은 줄기가 너무 짧아서 안됐으며 또 어떤 꽃은 색깔이 너무 어두워서 안됐다. 그렇게 나름 깐깐한 기준을 갖고 있던 그녀였음에도 만족스러운 꽃들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뒷마당에 피었던 꽃들 중 최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 자신만의 매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 꽃 들이었기에 레이첼은 기뻐하며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레이첼은 주방에서 한창 요리를 하고 있던 엄마 뒤 식탁에 앉아 꺾어온 꽃들을 하나하나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풍겨오는 고소한 팬케이크 향기와 함께 그녀는 고사리 같은 손을 조물조물 움직이며 꽃들을 하나 둘 엮어나갔다. 꽃들이 서로 손을 맞잡게 될수록 그녀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서서히 반지의 모습을 찾아갈 때 쯤, 집 안에 날카로운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톱을 잘근 씹으며 팬케이크를 굽던 레이첼의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들고 있던 뒤집개를 내려놓았다. 총총걸음으로 뛰다 싶히 현관에 도착한 그녀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킨 뒤 문을 열었다. 그곳엔 군복을 입은 성인 남성 2명이 서있었고 그녀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흘렀다. 전부 타버린 팬케이크의 냄새가 꽃향기를 덮었다.


 그날 이후로 레이첼은 뒷마당에 나가지 않았다. 7살의 어린 나이였기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녀의 아빠가 원래 돌아오기로 한 날 그녀의 집을 방문한 건 낯선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녀의 엄마 역시 어딘가 이상했다. 여전히 레이첼의 앞에서 미소를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풍기는 어색함과 푸른 눈동자 속 담겨있는 공허함은 레이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고요한 일주일이 흘렀고 레이첼의 엄마는 잠에서 깬 레이첼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레이첼, 오늘은 아빠랑 작별 인사를 하러 갈 거야.”


 엄마가 하는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레이첼은 일단 그녀를 따라 집을 나섰다. 꽃을 꺾기 위해 뒷마당의 풀을 밟던 그날과 날씨는 똑같았으나 기분과 분위기는 너무나도 달랐다. 다 시들어버린 꽃팔찌를 왼손에 꼭 쥐고 차에 올라탄 레이첼은 30분 정도를 달려 도시의 외곽, 나무가 울창한 곳에 내렸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는데 모두 맞추기라도 한 듯 검은색의 단정한 옷을 입고 있었다. 젊은 남성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중간중간 엄마의 친구분들도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조금 더 걸어간 곳에는 수십 개의 돌 들이 반듯한 네모 모양으로 조각되어 꽃으로 꾸며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하나의 돌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돌에는 레이첼의 아빠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그제야 레이첼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애써 부정하던 잔인한 현실은 그녀의 짐작보다 훨씬 견디기 버거웠다. 레이첼은 비석에 한걸음 다가갔다. 눈물을 닦으며 그녀는 꼭 쥐고 있던, 숨이 다 죽어버린 꽃을 비석의 위에 올려두었다.


 소녀의 아름답던 꽃은 엮여져 시들어 버렸으나 그 순간 비로소 다시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