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이 고된 것은 단순히 그 자체로서 힘든 일이어서인 것도 있지만, 눈 앞의 고생을 상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부정한 골짜기와 뽀족하게 솟아있는 푸른색 산맥, 그리고 널찍히 펼쳐진 강을 건너서 가는 곳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이들이 꿈도 꾸지 못할 길이었다. 제국의 수도 리베이아가 바로 그런 장소였다.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는 최고의 도시로서 당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늘 교류가 활발했고 학문이 융성했다. 그 학문의 중심지인 도서관, 바로 지식의 나무를 찾아 유셸 티나는 길을 떠난 것이다. 

책 속에서 그려져 있는 삽화로만 볼 수 있었던 건물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가슴 깊이 설레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미간을 찡그리게 하는 변수가 있었다.. 가령 말하자면, 지식이었다. 

지식의 나무는 모든 발견과 연구를 안으로 끌어들였지만, 그 안에서 다시 내놓는 법은 없었다.

절대적인 수집권과 차별적인 열람권의 두 대조적인 특성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루비스타인. 제국의 핵심적인 요소이자 제국 그 자체라고 일컬어지는 왕가의 영예로운 성씨. 오직 그들만이 무한한 지식에 접근할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오래된 세월 중에서 예외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목숨을 걸고 위험한 도박을 해야만 했다.

적어도 이 정도가 그녀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거리에 떠돌아다니는 뜬소문에 불과했기 때문에 신빙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가령 예를 들자면 지식의 나무의 열람권을 요구하며 도박에 목숨을 내던진 한 남자의 운명이라던가. 기구하게도 그는 세상에서 말 그대로 증발해 버려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다고 한다. 애초부터 지어낸 말이었는지, 아니면 당사자와 관련된 인물들이 전부 자취를 감추어서 그 진위를 알 수 없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얄팍한 속임수-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도서관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자들의 비위를 상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들만의 독점적인 특권을 내려놓는 것은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순순히 내어줄 것 같지가 않다고 유셸 티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망토에 감싸져 등 뒤에 메어져 있는 검을 손을 뒤로 뻗어 감촉을 느꼈다. 물론 검집에 싸여 있었지만, 그래도 왜인지 모르게 안심하게 해 주는 능력이 있었다. 무기라는 것의 순기능일지도 모른다. 덜컹. 수레가 포장되지 않은 자갈길을 미끄러져 가려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라고 한탄한다. 그 내장을 흔드는 소리와 진동이 잠을 설치게 하는 건 장거리 여행에선 이제는 기본값으로 인정되었다. 사람의 적응력이란 참 무섭다.

울퉁불퉁한 지면의 감촉이 그대로 전달되어 오는 나무판자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다가 깨고, 또 잠들고, 또 다시 눈을 뜨는 지루한 과정의 연속의 반복이었다.

그 끝날 줄 모를 것 같았던 연속의 끝은 3일째였다. 

이쯤되면 차라리 걸어가는 게 정신적인 피로가 덜 쌓이겠다는 생각까지 도달했을 무렵에, 수래는 자기도 지친 듯 끼이익대며 천천히 느려져갔다. 

종착점에 온 것에 빨간색 긴머리를 한 사람의 다리가 저절로 바닥에서 튀어 나가 몸을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마치 서로 다른 두뇌의 명령을 받는 것처럼 이리 저리 휘청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눈 앞의 그 모습을 똑똑히, 두 눈을 활용해 머릿속의 기억에 새겨넣었다.

찬란한 비수가 무수히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태양의 불빛을 이끌어 낸 하얀 성벽은 마치 내려다보듯이 자신의 아이들을 비추었다. 먼지 하나 뚫고 지나갈 흠도 없는 방파제의 기세는 뚜렷했다. 수 많은 삶의 터전이 외부로부터 숨겨진 채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살아가는 광경을 머릿속 도화지에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중심에 숨겨진 진실, 모든 사실의 시작이자 정착점, 그리고 장송곡들의 진원지.

원하던 것이 바로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