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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방 속에서 키스는 물건들을 꺼냈다. 냄비, 프라이팬 (나도 가지고 있지만), 도마, 접시 그 외에 포크와 나이프 등….

"이 정도면 어때? 요리 할 만 하지?"
"그러게."

다행히 필요한 재료들은 가방 속에 있었지만, 프라이팬 하나와 식칼 종류 그리고 요리책 외에 다른 요리용 도구들이 없어서 난감해하던 상황이었다.

"내 가방은 이런 것들조차 넣는 것이 힘든데. 용케도 들고 왔네, 키스?"
"이 천재 미소녀 연금술사의 가방이 워낙에 커야 한단 말이지. 던전을 돌아다니려면 이런 필수라고.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해 먹을 수 있게."

저 가방은 도라에몽의 사차원 주머니라도 되는 건가. 아까 테이블도 꺼내고 온갖 요리 도구를 꺼내고.

키스가 가져온 프라이팬을 들어보았다. 쇠로 만들어진 손잡이를 쥐면서. 한국에서 쓰던 프라이팬하고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외모였지만 좀 더 무거운 느낌이었다. 냄비였을 경우는 딱 봐도 모닥불 위에 잘 매달리라고 말하듯 걸이용 쇠가 있었다.

요리 도구들을 훑어본 뒤 나는 내가 가진 레시피들을 바라보았다.

일단 재료가 이러했다. 비엔나소시지, 떡볶이용 떡, 라면 봉지 몇 개 정도? 이걸로 가지고 몇 가지 간단한 요리는 해 먹을 수 있긴 하겠는데…."이 포장지 참 신기하네?"

그 와중에 키스는 소시지나 떡들이 담긴 포장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오-하면서.

"한국에서는 이렇게 음식들을 이런 포장지에 넣는 거야? 포장지 재료도 뭔가 처음 보는 재료들이야."
"오케아나라는 국가에는 플라스틱이 없나보구나?"
"플라스틱?"

정말로 없다고 간접적으로 알려주듯 고개를 갸웃하는 키스였다. 하긴 여기가 만약 진짜 중세 시대 판타지 세계라면 플라스틱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시대이기도 하구나.

"내가 살던 고향에서 플라스틱이라는 성분의 화학 물질로 이렇게 음식들을 감싸고 그래."

찌익-하는 봉지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안에 있던 소시지를 접시에 놓았다.

"그러면 이렇게 음식들이 공기에 닿지 않아서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거든."
"보존 전용 마도구와 비슷한 건가."

키스는 가방 속에서 핑크 상자를 꺼내었다. 어떻게든 귀여워 보이게 하려는 듯 붉은 리본도 달아놓았네.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상자처럼 보이지만…"

딸각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박스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쿠키들이 담겨 있었다. 하나 집어 먹고 싶을 정도의 쿠키들이.

"이렇게 맛있는 쿠키들을 오랜 시간 동안 담아 놓는 게 가능하지. 나처럼 귀여운 소녀들에게는 예쁜 쿠키가 필수거든-"

양손 검지로 볼을 누르면서 해맑게 말하는 키스였다. 맞장구를 쳐주듯 블레이즈도 캬악-하고 울음소리를 냈고. 쟤는 자기 외모에 엄청난 자신감을 느끼고 있네. 아까부터 스스로가 미소녀라고 칭하고.

뭐 예쁜 건 사실이긴 하다. 그녀의 모습을 평생 내 눈에 담고 싶을 정도로.

"무슨 요리를 해줄 거야? 맛있는 거 해줄 거지?"
"키스는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정말로 간절히 먹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것은 많지만…."

키스는 분홍빛이 감도는 입술을 자기 검지로 대었다. 뭐를 먹어야 잘 먹었다고는 소리를 들을까-라는 말을 하면서.

"성운이 네가 자신 있는 요리를 해봐 그럼."
"내가 잘하는 거?"
"나 같은 귀여운 미소녀에게 대접하는 첫 요리잖아. 그런 기념으로 네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는 요리를 해줘 봐."
"그걸로 괜찮겠어? 원한다면 제일 먹고 싶은 것을-"
"저 지금 손님입니다, 주방장 오빠?"

입술을 대었던 그녀의 검지를, 1자 모양으로 맞추면서 나를 가리켰다.

"식당에서는 손님이 왕. 손님이 주문한 밥을 대접하는 것이 요리사의 의무 아닌가요?"
"주문받았습니다. 손님."

싱긋 웃는 미소, 하지만 뭔가 엄중한 분위기의 키스였다. 여기서 한마디 더 했다가는 안 된다고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누가 외쳤는지 몰라도 잔말 말고 만들어-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 같기도 하고.

"생각나는 요리가 하나 있는데…"
"문제라도 있어?"
"마침 재료들이 있어서, 내가 어릴 적부터 자주 먹던 꼬치구이를 해줄 수 있는데."

이 정도 재료라면 확실히 내가 생각 해놓은 요리를 하고도 남았다. 키스에게도 언급했던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요리를.

그래도….

"이거 가지고는 뭔가 입이 심심할 거 같아서 말이야. 여기에 뭘 더 할 수 있을까? 야채라던가 버섯이라던가…."
"버섯이라면 저기 가까이 있잖아."

키스하고 블레이즈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내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 조금전 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덤벼들었던 버섯들이 눈에 보여서. 

"먹어도 되는 건가 그전에? 아까 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죽이려 들고, 두 발로 걸어 다니던 저 찜찜한 것들을?"
"몇 모험가들은 버섯 몬스터들을 잡아 직접 구워 먹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거든. 식량 떨어지면 몬스터라도 사냥해서 배를 채운다나?"

뒤적-뒤적 하더니 키스는 책 한 권을 꺼내었다. 초보자를 위한 던전 가이드용 책이라고 적힌.

"여기 책에 의하면, 불에 확실히 구워서 익혀 먹으면은 의외로 맛있다고 해. 안에 독성이 있으니 확실히 익어 먹어야 한다고 하고."
"뭐 버섯이란 것은 애초부터 확실히 익혀 먹어야 하긴 하지만."

사실이다.

제아무리 식용 버섯이라도 안에 독성분이 남아있을지 모르니 확실히 익혀 먹어야 한다. 괜히 식용이라고 날것으로 먹었다가는 하루 종일 설사에 시달릴지도 모르니까. (최악이라면 병원 가야 할지도?)

"일단 이걸로 요리 재료 삼아보자."

웃샤- 하면서, 키스는 갈색 버섯갓을 가진 버섯의 한쪽 다리를 들었다. 마치 어린아이 크기만 한 버섯을 바라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것이 갑자기 감춰진 입을 열어서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게 아닌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면서.

"설마 독버섯은 아니겠지 키스? 독이면 엄청 곤란해 진다고?"
"버섯 계열 몬스터 들 중 독 있는 버섯하고 없는 버섯도 있는데, 이 갈색 버섯 갓을 가진 개체는 독이 없는 거라서 먹어도 괜찮을 거야. 아마도."
"아마도?"
"그래도 걱정하지 마. 미리 검증은 다 끝내놓았으니까."

키스는 자신이 든 마법 책을 펼치더니 그 위에 푸른색 빛으로 버섯 몬스터의 그림이 그려졌다. 마치 3D 그래픽처럼 그려진 몬스터의 그림이.

"이 미소녀 연금술사는 얼굴만 예쁠 뿐 아니라 마법 아카데미에서 엘리트 학생이었다고. 무엇보다 이 마도서에도 독이 없는 개체라고 했으니 안심하고 드세요-"
"그래그래…."

저렇게까지 나오니 믿어볼 수밖에 없겠네. 설마 죽기야 하겠어?

바닥에 놓은 버섯을 몇 초 동안 바라본 뒤 한 손에 수건을 감싼 뒤 식칼로 찔러보았다. 내가 요리를 하면서 많은 종류의 야채나 고기 등을 잘라 왔다고 자부하지만. 이건 처음이었다. 이세계물에서 나올만한 몬스터를 잘라보는 것은. 근데....

푸욱-

깊숙이 들어간 식칼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한, 이질적인 감각이 손으로 전달되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식칼이 밀리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잘리지 않으려고 세포가 마지막 힘을 짜서 저항하려는?

"이거 써봐."

익익-하고 눌러도 잘리지 않자 키스는 단검 하나를 건네주었다. 가죽 칼집에 담긴 단검을 꺼내자 스릉-하고 들려오는 소리는, 식칼의 날카로움하고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단검을 한번 찔러보니...

푸욱-

"오?"

단검은 그대로 버섯의 몸을 찔러갔다. 검 손잡이를 아래로 당기니, 투둑-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먹음직스럽게, 마치 반으로 갈라진 새송이버섯처럼.

"이 칼, 말 잘 듣네? 내가 쓰던 식칼하고 비교가 안 돼.'
"내가 몬스터들 부위 해제할 때 쓰던 단검이야."
"부위 해제?"
"아까 전 네가 봤던 뿔 토끼의 뿔이라던가, 몬스터의 눈알이나 발톱 등을 말하는 거야. 그것들을 모으는 데는, 이 단검만큼 좋은 게 없지."

그 말에 나는 손에 든 단검과 저 핑크 머리카락 연금술사 소녀를 바라보았다. 쟤 말대로라면 저 귀여운 얼굴로 몬스터들의 부위를 이 단검으로 잘라 왔다는 건가...
우와아-레어 템이다-라면서 눈알 빼고, 가죽 벗기고 뼈까지 챙기고...피 묻은 장갑을 낀 체.

고개가 저어졌다. 생각하지 말자 그냥. (그 와중에 키스는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오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참 동안 자른 버섯을, 먹기 좋게 조각으로 나누었다. 도마 위에 떡볶이 떡 크기 마냥 잘린 버섯들은 어느새 접시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그 와중에 잘랐던 버섯은 아직 잘라야 할 것이 많았고...

"이 버섯 어떻게 할까? 이대로 두면 아깝기도 하고."
"내 버려두자. 가져갈 수 있는 것만 가져가고."
"네 가방 속에 넣을 수 있지 않아? 아까 테이블까지 꺼냈었는데."
"그랬다가는 내 예쁜 가방이 썩은 냄새로 가득 찰 수도 있거든요?"

키스는 양손으로 내 볼을 당기기 시작했다. 아플 듯, 안 아플듯하게.

"내 가방은 뭐든 넣을 수 있긴 하지만, 보존 마법이 걸리지 않아서 몬스터 시체를 장기간 넣는 것은 바보짓이야. 사람들로부터 헤이-이상한 냄새 들고 다니는 핑크 미소녀 연금술사양-이라는 소리 들으면 좋겠어? 응? 좋겠냐고?"
"므안허-므안허-"

사과를 하니까 그대로 양손을 놔주는 키스였다. 그 뒤 곧바로 윙크하면서 혀를 쏙 내밀고.

"알았지? 외모 관리 및 청결함은 미소녀의 기본자세야. 그 점을 잊지 마세요 성운 학생."
"항상 기억해 놓겠습니다, 키스 교수님."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말하자 푸훗-하고 웃는 키스였다. 얘 정말 단순하네. 사과하니 곧바로 풀어져 버리고. 그래서 뭔가 귀여운 느낌도 들고.

냄비에 떡을 넣은 뒤 물통에 있던 물을 부었다. 원래 요리할 때 필요한 물은 수돗물로 받긴 하는데, 여기는 던전.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나 이래도 되려나. 이런 곳에는 식수 한 방울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인데 이렇게 요리하는 데 쓰다니.

뭐 걱정은 나중에, 지금은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
"무슨 문제라도 있어?"

인제야 알아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없었다. 요리할 때 반드시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

"불이 없어..."
"불?"
"불이 있어야 요리하든 물을 끓이든 하잖아. 부르스타도 없는데..."
"방금 불이라고 했나요. 성운 학생?"

따악!

피식-하는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튕기더니, 검지와 엄지 사이에 작은 불꽃이 생겨났다. 무슨 라이터도 아니고 손가락 튕기니 불이 켜져.

"불이라면 내가 얼마든지 붙일 수 있는 데에-성운이도 아까 내가 불 쓰는 것을 여러 번 봤잖아."
"그러네 키스. 잠시 나도 깜빡했어."

얼떨떨하게 웃는 거로 답해주었다. 쟤 아까 전부터 불 마법을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자주 보였었다. 버섯들과 싸울 때도 불마법만 사용하였고. 불 속성 체질인가?

"불을 붙일만한 거 없어? 장작용 나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여기에는 그런 게 없을 테-"
"캬아악-"

이때 무릅위에서 졸던 블레이즈는, 키스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던졌다. 탁! 탁! 하는 하나씩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나오는 소리로 인해 설마 했는데...

"장작이면 걱정하지 마. 내 가방 속에 가아아아득히이이 넣었으니까-"

혀를 쏙 내밀며 윙크를 한 채 한 손에 장작을 들어 보이는 키스였다. 여전히 장작을 꺼내는 블레이즈의 모습에, 내 마음속에 있던 호기심이 서서히 커져만 갔다. 얼마나 크냐고? 지금 당장 물어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 할 정도로.

"질문. 장작들 가방 안에 얼마나 넣었어? 10개? 20개?"
"한 겨우내 쓸 수 있을 만큼?"
"........에?"

그녀의 말에 머릿속에 무언가가 그려졌다. 나무장작이라는 불리는 아이템 옆에, 작게나마 999 라는 숫자가 적혀진 그림을 말이다. 손가락으로 건드리니 "장작용으로 쓰기 좋다" 라는 설명이 나오는것은 덤.

"이 가방 안에는, 이 공간 마법이 걸려 있어서 많은 물건을 집어 넣을수 있어. 특히 같은 종류의 물건이라면 여러개를 집어 넣을수 있어. 지금처럼 장작을 하나가 아닌 여러 개를 집어넣을 수 있듯이."
"그렇다는 것은 무한으로 집어넣을 수 있어? 네 얘기 들어보니까, 무한의 공간을 가진 가방으로 들리네."
"그건 또 아니야. 이것도 역시 가방이라, 여러 잡동사니들을 넣다 보면 넣을 공간이 사라져."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을 설명해주는 키스였다. 그것도 자세하게, 윙크와 함께 혀까지 내밀면서.

우리가 얘기하는 와중, 블레이즈가 차곡차곡 정성스럽게 장작과 냄비 걸이용 Y자형 받침대를 놓았다. 키스는 자신의 손위에 있던 불덩이를 장작 위에 던지니, 마치 기름을 만난 듯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들은 곧바로 불타올랐다.

"마법이란 것은 참 편하네. 이렇게 불까지 쉽게 사용할수 있고."
"우후후-천재 미소녀 연금술사는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는 법이지요."

냄비의 물이 어느 정도 끓어오르자, 떡을 빼낸 뒤 비엔나소시지를 넣었다. 넣기 전에 칼자국을 내는 것을 잊지 않고. 그래야지 안에까지 확실히 익으니까.

버섯 까지 데쳐 낸 뒤, 나무 꼬치로 재료들을 하나씩 꽂기 시작했다. 네 가지 종류로.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소시지와 떡(일명 소떡), 소시지와 버섯, 떡과 버섯 그리고 세 가지 종류를 다 꽂은 꼬치.

치이이익-

"아- 냄새 좋다."

튀겨지는 소리와 함께, 풍겨 나오는 조리의 냄새는 옆에 있던 키스에게서 감탄사가 나오게 했다. 블레이즈 역시 캭 하는 울음소리를 냈고.

"얼른 해줘 성운아. 손님 배고파서 쓰러지겠다."
"캬악-"
"조금만 기다려봐 두 사람."

겉부분이 연한 갈색으로 어느 정도 튀겨지고 반대로 뒤집어 주었다. 튀기는 소리가 상당히 듣기 좋았다. 냄새도 좋은데, 귀로도 충분히 군침이 돌게 하여 주었다. 

"이왕 하는거 맛있게 먹어야지. 힘들게 던전을 돌았는데."


☆ ☆ ☆ ☆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손님-"

오오-그리고 캬악-하는 감탄사가 키스하고 블레이즈에게서 나왔다. 주메뉴인 소떡 꼬치를 시작해서, 버섯과 소시지 꼬치, 떡과 버섯 꼬치, 그리고 세 가지 재료가 꽂힌 꼬치들이 그릇에 담겨 있었다. 먹기 좋게 노랗게 겉면이 그을려 졌고.

"지금 먹어봐도 되 성운아? 맛있어 보인다?"
"물론. 우리 모두 먹으라고 만든 건데."

세 가지 꼬치를 검지로 하나씩 가리키는 키스였다. 어느 것을 먼저 먹을까요-라면서. 그리고 이들 중, 소시지와 떡이 꽂힌 꼬치를 들어 보였다.

"이거 먼저 먹어볼래. 소세지하고 하얀색이 꽂힌 거."
"가장 기본 중 기본인 소떡을 골랐네? 길거리에서 파는 흔한 음식 중 하나를."
"이 하얀색이 좀 특이하게 생겨서. 한번 맛보고 싶었거든."

말이 끝남과 동시에 꼬치에 꽂힌 소시지와 떡을 입에 넣는 키스였다. 그을린 겉면의 바삭거리는 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한참 동안 먹던 키스는 양 눈이 크게 떠져 갔다. 반짝이는 눈동자와 함께.

"맛있다, 이거!"

키스는 한 손으로 꼬치를 들어 보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튀긴 겉면의 바삭함 덕분에 식감이 살아나는 기분이야. 특히 이 하얀 거 정말 특이한 맛이야. 소시지도 맛있지만, 겉의 바삭함 속에 쫓듯 한 맛 덕분에 뭔가 중독되는 느낌이야."
"그게 바로 떡이라고 하는 거야 키스."

나 또한 하나 먹으니, 꼬치에서 느껴오는 식감은 식욕을 더욱더 자극했다. 이대로 무한대로 먹을 수 있다면 좋을 터라는 심정이 들 정도로.

"혹시 오케아나에 쌀이란 것이 있어?"
"쌀이라면 있어. 그 입에 넣으면 단맛이 느껴지는 곡물 말하는 거지?"
"맞았어. 그 쌀들을 가루로 빻아서 만들어낸 게 바로 떡이야. 한국인을 포함해서 동양 사람들이 특히 많이 먹는 음식 중 하나고."
"동양에서는 쌀이 주식이라고는 듣긴 했어. 여기 오케아나에서는 상당히 귀한 재료 중 하나이지만."

말을 이어가면서 키스는 꼬치 하나를 블레이즈에게 건네주었다. 마치 물 만난 고기 마냥 받자마자 허겁지겁 먹는 블레이즈였다.

"여기 오케아나는 쌀을 키우기에는 적합한 지역이 많지 않아서, 키울 수 있어도 상당히 제한적이거든. 그래서 먹어도 특별한 날이나 혹은 귀족 같은 상류층 사람들의 식단에 올라가는 재료 중 하나야."
"그렇다는 것은."

나 역시 떡과 버섯 꼬치를 들어 바라보았다.

"나 지금 귀족들의 식사를 내놓은 거야? 네 말대로 이게 비싼 재료로 만든 거라면."
"그렇게 볼 수 있겠지?"

얘기 하는 와중에도 먹기 바쁜 키스였다. 꼬치 하나를 끝내면, 또다른 꼬치를 먹는것을 보면. 배고팠나보다. 하긴 아까 그 난리를 피웠으니 안 배고프면 이상한 거겠지. 한번 꼬치에 꽂힌 버섯을 입에 물어보았다. 표면이 바삭하게 익혀진 표면에는 고소한 버섯즙이 내 혀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맛있네, 이 버섯?"

한 번 더 맛을 보기 위해, 버섯 씹어 먹어 보았다. 쫄깃한 버섯의 식감은 더욱더 입맛을 돋우게 만들어주었다.

"버섯의 식감이 부드러우면서도, 씹을 때마다 쫄깃함이 입안을 맴돌고 있어."
"어디, 어디."

키스는 한 손에 아직 먹다 남은 소떡 꼬치를 쥔 체, 남은 손으로 떡과 버섯 꼬치를 쥔 뒤 입에 넣어보았다. 한참 동안 씹은 뒤 음-하는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들려왔다.

"진짜네? 속이 잘 익어져서 그런지 참 부드러운 맛이 느껴져. 시장에서 파는 버섯들보다 맛있다는 느낌도 들고."

지금 식감의 소감을 말하자면, 새송이버섯 씹는 맛이었다. 기름에 살짝 구운 새송이버섯의 맛이 딱 맞으려 했는데.. 소금까지 약간 뿌리면 맛도 업그레이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네. 그래도."
"뭐가 성운아?"

확실히 맛은 있었다. 지금 이렇게 먹는 것도 굉장히 맛이 있었다. 계속 무한대로 먹었으면 하는 소감이 들 정도로.

하지만….

"재료만 있었다면 양념 소스를 만들 수 있었는데 정도? 마음 같으면은 양념 소스를 만들어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는데, 필요한 재료가 없어서 못만드는게 아쉬웠거든."
"에이-충분히 맛이 있는데 나는. 이정도면 충분해."

버섯과 떡을 동시에 입에 넣은 뒤 씹는 키스였다. 한번에 많은것을 씹어서 그런지 한쪽 볼이 볼록 나왔고. 

"오히려 이런 던전에서 이렇게라도 만들어 먹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
"생각해 봐. 여기 던전에 식당이라도 있어? 하다못해 음식 재료들을 파는 가게라던가. 그런 것조차 조차 없는데도 이렇게 맛있는 꼬치 요리 해준 것만으로도 엄청 감사해하고 있는데."

키스의 말이 끝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도 정신 없는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서 신경 쓰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이 놓여지니 주변이 눈에 보였다.

태양 빛 한 줄기조차 없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벽돌로 만들어진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을 받쳐주는 아치 형 벽과 벽 중간마다 새겨진 사자 얼굴의 조각들…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느긋하게 꼬치 구워 먹는 사람은 우리들밖에 없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그런 의미로 오늘의 저녁은 일종의 기념 식사로 기억하자."

가방 속에 손을 넣은 키스는, 푸른색 과일 두 개를 꺼내었다.

"Liquida Effusio."

따악!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과일이 쪼그라들면서 안에 있던 과즙이 허공 위로 한 방울씩 뭉치기 씩 뭉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커지자 바닥에 놓인 두 개의 머그잔 위에 따른 뒤, 한잔을 나한테 건네주었다.

"성운이 네가 던전에서 만들어낸 그리고 나 미소녀 천재 연금술사 키스 플레어필드에게 대접하는 최초의 식사잖아. 위대한 시작의 첫걸음이라고?"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키스."

허공을 잔을 든 키스를 따라 하듯, 나 역시 그녀가 준 머그잔을 허공에 들었다.

"기념적인 저녁을 위하여."
"위하여."

따앙-




Epilogue


저녁을 먹은 뒤 우리 두 사람은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하였다. 키스도 마력이 거의 바닥이라고도 하고, 무엇보다 나 역시 피로한 상태라서 더 이상 나아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으으윽-

"이게 네가 말한 몬스터 대비용 마법진이야?"
"자기 전에는 이게 필수지."

키스는 바닥에 마법진을 분필로 그리고 있었다. 앞쪽, 뒤쪽, 몬스터들이 기습하기 좋은 곳에. 다 그린 뒤 키스는, 분필을 다시 주머니 속에 넣은 뒤, 한 손에 책을 들었다.

"던전안에서 노숙 하는것이 일상인 모험가들이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이 이렇게 몬스터대비하는 거야. 남들은 서로 돌아 가면서 보초를 서거나, 여신님에게 기도해서 일대에 축복을 내리지만 나 같은 경우는…."

손가락의 궤적을 따라 허공에 그려진 푸른색의, 바닥과 똑같은 모양의 마법진이 그려졌다.

"이렇게 마법을 써서 놈들을 못 오게 하지."

두 개의 마법진을 그린 뒤, 따악! 하고 손가락을 튕기니, 허공에 떠 있던 마법진이 사라지더니 곧이어서 바닥에 있던 마법진이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완성-"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 같은데?"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마법진 안에 환각 계열 주문을 넣어놔서, 몬스터들 눈에는 벽가로막은 거로 보이게 될 보이게 될...

하아-하는 한숨 소리와 함께, 벽에 기대는 키스였다. 주르륵 미끄러진 듯 주저앉으면서.

"너무 무리 한거 아니야 키스? 많이 지쳐보인다."
"괜찮아요 괜찮아. 저는 팔팔한 미소녀라고요."

괜찮기는. 피로한 행색이 다 보이는 구만.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에는 눈이 반쯤 감겨진 상태고.

"아카데미에서의 고생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하아-푸우배들에게서 선배님 멋있어요-라고 매일 들었던 나인데."
"캬악."

내 어깨위에 앉아 있던 블레이즈가 키스의 어깨위로 갈아 탔다. 자신의 볼을 비비는 블레이즈가 기특하다는 듯 키스는 한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저 녀석도 참 자기 주인이 걱정 되나 보네. 뭐 당연한게 아닐까 하지만.

"사실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 따로 하나 있어. 나처럼 예쁜 미소녀가 성운이 네 곁에 졸린것보다 더 중대한 것을 말이야."
"중대한 문제라면?"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말이야."

키스의 대답에 반응하듯, 그녀에게 고개를 돌려보았다. 여전히 졸린 눈으로 가득찬 키스를.

"아까는 우리 단 둘 그리고 블레이즈랑 같이 어떻게든 해보았지만, 성운아 아까 전 버섯과 싸울 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았어?"

키스는 한 손으로 불을 피운 뒤 말을 이어갔다.

"버섯 세 마리가 나한테 기습했을 때 한 마리만 태웠잖아. 왜 그다음 공격을 나가지 못했다고 생각해? 나 같은 미소녀로서 버섯쯤은 아무것도 아닐 텐데."

그녀의 말대로 버섯 세 마리가 빛을 뚫고 달려왔을 때, 키스는 한 마리만 불태웠지만 나머지 두 마리가 달려오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내가 활을 쏴서 시간을 번 덕분에 위기 모면 했지만, 그때 미약한 의문점이 있었다.

키스 실력이라면 버섯 정도는 문제가 아닐 텐데, 왜 못 막았을까? 천천히 생각하다가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내가 고향에 있을 때 게임이나 만화로 많이 봐온 장면들이.

"혹시 캐스팅  때문이야? 마법 주문을 외우느라 나머지 두 마리를 대처하지 못했고."
"맞았어. 잘 맞췄네요? 아이 착하네 우리 성운이 학생."

내 머릿속의, 아니 그전에 대부분 사람들의 마법사라는 이미지는 이러할것이다. 체력과 방어는 약하지만, 최전선에서 동료들이 탱킹 및 딜링을 하는 사이, 뒤에서 마법으로 극딜을 넣어주는것. 그야말로 파티의 포병이라 할 수 있는 클래스라 할수 있지만, 역으로 캐스팅 하는 동안은 그야말로 무방비가 되어 버린다. 몬스터들에게 습격 당하면은 끝장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캐스팅 하는 사이, 몬스터들의 공격을 방패로 막아주고 접근전을 해줄 사람을 발견한다면 참 모든게 쉬워 질텐데."
"내가 해줄까? 지금이라도 검술 연습 하면 흉내내기 정도는 할수 있는데."
"으응-성운이 너는 그냥 계속 활 잡아. 아까 전 보니까, 활 잡은 지 얼마 안됬는데 금방 익숙해졌잖아"
"그건 네가 준 포션 덕분에-"

하암-하는 귀여운 숨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동시에 어깨에 무언가가 기대어지는것이 느껴졌는데, 언제 였는지 키스의 머리가 내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키스?"
"잠시 눈좀 붙일래."

스르륵 눈을 붙이는 키스였다. 투명할 정도로 하얀 피부의 무릅을 양 팔로 모은 체, 그녀의 얼굴이 내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있어도 되지?"
"응. 원한다면 키스."
"그럼 나 잘게..."

쿠울-하고 몇초만에 잠에 빠져버리는 키스였다. 어깨 위에 있던 블레이즈도, 키스가 조용히 자게 내버려 두려는듯, 내 어깨위로 올라 탔고.

"캬악."
"알아 블레이즈. 조용히 있어야지."

생각해보니 이런건 난생 처음이네.
소녀가 내 어깨위에서 자는것을. 그것도 핑크 머리카락의 미소녀가. 한국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누군가가 내 어깨위에서 자는것을. 심지어 한시내랑도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이런 저런 생각이 오고가다, 나 역시 피로로 인해 눈이 스르륵 감겨져 갔다. 내 어깨위에 있던 블레이즈가 하늘을 날아오르더니, 배낭위에서 이불을 우리 두사람에게 덮여 주었다.

"캬악-"

마치 자라는 듯, 작은 손으로 내 눈을 감겨주었다. 그 덕에 나는 완전히 잠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Episode. 2 던전에서 핑크 머리 미소녀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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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에피소드 2편을 끝내고 3편 넘어갑니다.

3편 1화는 이번주 토요일 정도쯤에 올릴 예쩡입니다.

부족한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p.s 덧글 및 피드백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