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를 지우고
새 존재를 탄생시키고 싶다
어떻게 새 존재를 만들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말이 나온다면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을
내 근육 속에 새겨 넣어 나를 단련해야 한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을 새긴 육신을 가진
새로운 나로 태어난다 해도
저 꽃봉오리들이 나를 좋아해줄까
이미 저 꽃봉오리들이 기억하는 나는 이미
페르소나 논 그라타라 여전히 심연 속에 묻혀 있을 거 같은데
어떻게 세탁을 해야 꽃봉오리들이 날 좋아해줄까
고통을 새긴 육체를 넘어
나의 이름을 버리고
나의 번호도 버리고
나의 말투를 버리면
비로소 저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꽃봉오리들과 고복격양을 즐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심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티무르의 숭배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육신은 난쟁이고 주변은 나를 향해 칼을 겨누고
그러면서 정신은 고고하니
비소를 마신 것처럼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