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아!"

따악! 하는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바라보는 분홍색 머리카락 소녀의 눈은 반 감긴 체 노려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옆에는 빨간 비늘의 아기 드래곤은, 팔짱 낀 체 공중에 떠 있었다.

"너 여자애 보고 멍때린 거지? 그렇지?"
"아니 그게…."
"맞네요! 맞네요! 말 끊긴 것을 보면 맞네요!"
"캬악! 캬악!"

양손의 검지를, 물레방아처럼 도는 키스였다. 소악마와 같은 표정을 지은 체. 블레이즈 역시 주인 따라 하듯 양 검지로 나를 가리켰다. 저 꼬마 용은 자기 주인 따라 하는 게 취미인가.

"얼굴이나 씻고 가자 그냥."

한숨 푹 쉰 뒤 분수대로 다가갔다. 여기서 변명이라도 하면, 분명히 키스에게 약점 잡힐 게 분명하다. 딱 표정만 봐도, 놀리는 표정이더구먼.

"아까 제대로 세수 못 했는데 잘됐네. 좀 찜찜했는-"
"캬악!"

이때 블레이즈가 내 뒷덜미를 잡고 뒤로 끌어들였다. 왜 그래? 라면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이 꼬마 용의 힘이 내가 빠져나가려는 힘보다 더 셌다. 강아지 크기만 한게  왜 이리 힘이 세?

"뜬금없이 왜 그래? 갑자기 그렇게 끌어들이면..."
"블레이즈에게 고마워해. 지금 성운이를 구해준 거야."
"뭐?"

그녀의 하얀 어깨를 감싼 붉은색 망토에 앉은 블레이즈를 쓰다듬는 키스였다. 잘했어-잘했어-라고 말하면서.

"지금 블레이즈의 반응을 본건데, 저 분숫대 십중팔구로 몬스터일 확률이 높아."
"함정이라고?"

키스하고 분숫대를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봐도 평벙함 분숫대였다. 입에서 물을 내 뿜는 대리석으로 만든 사자의 옆에,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단발 머리의 아름다운 소녀의 석상이 앉아있는. 보는 사람 유혹하려는 듯, 미소를 지은 체 요염한 포즈로.

"여기서 성운이 네가 홀릴 정도로, 예쁜 여자애가 앉아 있지? 지나가던 남자를 유혹할 만한 자세와 미소로. 네가 다가가고 싶을 정도로."
"씻으러 다가간 거라니까."
"하! 지! 만! 성운이 정말로 네가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갔다면?"

뭔가 내 말을 잘라버린 듯하네. 여전히 소악마 미소를 지으면서. 케헤헤-할거 같은.

말을 끝내자, 키스는 자신의 책을 열었다 탁!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힘껏 닫았다.

"이렇게 먹혀버릴 수도 있었다, 이 말씀이지."

먹혀. 이 단어는 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어 주었다. 차가운 기운까지 느끼면서. 등 뒤에 있는 분수대가 나를 노려보는 듯했다. 찌르는 듯하면서도, 피를 차갑게 해주는 거 같은?

"오래전, 아카데미 서재에서 읽어본 적이 있어. 이런 식으로 목이 마르거나, 너처럼 예쁜 여자애 석상에게 홀려서 다가간 모험가들을 먹어서, 자기 신체의 일부를 만드는 몬스터가 있다는 것을. 만약 내 예감이 맞는다면."

팔짱을 낀 채 분수대를 바라보는는 키스였다. 흐음-하는 작은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뭔가 관찰하는 거 같기도 하고.

"저 석상은, 아니 저 여자애는 목을 축이려다 그만 몬스터에게 먹혀, 그 일부가 된 모험가 중 한 명일 거야."

키스와 석상을 여러 번 번갈아 가 보았다. 석상은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마치 지금의 자신이 행복하다는 듯 미소를 지은 체. 요염한 포즈와 함께.

키스의 말대로라면 저 석상은 설마….

"죽은 거야? 그대로 잡아먹힌 뒤?"
"정확히는 갇혔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야. 사람의 신체라는 것은 영혼을 가두기 위한 일종의 달걀과 비슷한 거야. 그 달걀이 석화 상태로 변해버리면? 그 혼은 그대로 갇혀 버리는 거지."

키스는 안경을 쓴 뒤, 책을 넘기면서 말을 이어갔다.

"저렇게 섬세한 석상으로 있을 수 있던 것도, 몬스터가 잡아먹은 소녀의 혼을 본떠서 그대로 만들었기 때문이야. 여태까지 다른 석상이 없고 그대로 있는 것도, 혼자서 외로이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거고."

천천히 고개를, 석상 쪽으로 돌렸다. 돌이라 아무 말도 못 하는 석상-정확히는 소녀를. 상상을 해보았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 소녀는 지금쯤-

살려줘-누구 없어? 나를 풀어줘-

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돌이라서 목소리도, 입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아무도 오지 않는 복도를 바라보면서
.
눈가로 흐르는 분수대의 물이, 눈물로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소녀는 정말로 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구출되지 못한 체, 이대로 영원히 석상으로 있어야 할 현실로 인해.

한 손으로 가슴을 꼭 쥐었다. 바늘처럼 아파지는 가슴을. 어떻게든 구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이 오가면서.

"살릴 수 없을까?"

간신히 내뱉은 말에, 여전히 안경을 쓴 체 분수대를 바라보던 키스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네 말대로라면, 쟤는 단순히 석상이 된게 아니라 몬스터의 일부가 된거잖아. 구출 할수 없을까 그래도?"
"성운 학생, 내가 어제 뭐라고 했죠?"

안경을 벗은 키스였다. 관찰하느라 무표정이었던 그녀의 입에, 미소가 그려졌다. 나에게서 마음에 드는 말을 들었다는 듯.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너에게 해준 말 기억나? 네가 여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라고 말한 뒤."
"뭐라고 했더라..."

던전에 처음으로 눈 뜬 뒤 뿔 토끼 무리에게 쫓긴 일, 구사일생으로 키스에게서 구출된 뒤 언어 포션 마신 일 등, 서로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한거 등, 어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았다.

"연금술사는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 늘 진리를 탐구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법."
"그것이 연금술사의 길이다."

잘 기억해 냈어요-라면서 박수 치는 키스였다. 짝! 짝! 짝! 하면서.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 키스였다. 그 안에서, 허브, 꽃 그리고 작은 버섯 등을 꺼내다가, 찾았다고 말하면서 화분을 꺼내었다. 노란 꽃이 자란 화분을.

"하나 준비해 놓길 잘했네. 꼭 하나라도 챙겨두는데."
"꽃 키우고 있었어? 화분 까지 준비 해 놓았네."
"보통 꽃이 아니야 이래뵈도."

화분을 바닥에다 놓은 뒤, 가방 속에서 테이블을 꺼내었다. 

"연금술사를 비롯해서, 모든 마법사들에게서 사랑 받는 재료라고 해야할까? 히힛."

...확실히 들었다. 웃는 소리를. 잠시였지만 그녀의 표정이 변한듯 했다. 귀까지 입술이 닿을것만 같은 미소로.

착각 이었겠지? 제발 그랬으면.

아까 꺼낸 재료들과, 약연을 테이블의 나무판자 위에다 올려놓았다. 재검토를 위해서인지 안경을 쓴 체, 책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으로 재료들을 하나씩 세어가고 있었다. 이런 일에는 꼼꼼한 편이네. 아까의 활기찬 이미지와는 다르게 연구에 집중하는 연금술사다웠고.

“성운아 이거 껴. 블레이즈 너도.”
"캬악-

키스는  나하고 블레이즈에게, 귀마개를 건네주었다.

“귀마개는 왜?”
“1단계를 먼저 시작해야 하니까.”

자신도 귀마개를 낀 뒤, 화분을 들어서 줄기의 시작 부분을 움켜잡았다. 당장이라도 빼낼 기세로.

“이거 안 끼면 평생 청각 마비 혹은 정신이 확 나가 버릴걸?”
“맨드레이크라도 꺼내려는 거야? 꺼내면 그 소리 지르는 사람 얼굴 한 뿌리 말이야.”
“오-어떻게 알았어?”

키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웃는 표정으로. 웃고는 있는데 뭔가 보면 살벌하면서도 사악함이 묻어난 듯한 그런?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잠깐. 저 표정 아까 그 표정이잖아? 잠시 한 순간만 지은 그 표정.

“잠을 자던 혼을 깨우는 데, 이거만큼 좋은 게 없지.”

쑥-하고 키스가 꽃 줄기를 잡아당기자.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영혼을 울릴 거 같은 고함이 주변을 울렸다. 분명히 귀마개로 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막을 뚫어 귀 안에서 피가 흐를 거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귓속에서 액체 비슷한 것이 나오는 느낌이 들어서 설마 정말로 귀가 터진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키스-!”
“하하하하핫! 그래도 소리 한번 짜릿하지 않아!?”

쟤는 뭐가 그리 기분 좋은 거야. 평소에 연금술 하면서 만드레이크 비명 소리에 익숙해지기라도 한 건가? 연금술사도 함부로 할 직업이 아니겠네. 매일 이렇게 시끄러운 비명을 들어가며 약을 만들어야 할 테니...

극한직업이다. 방송에 나와도 될 정도로.

몇 분이 흐른 뒤에야 키에에에...하는 작은 신음이 들려오면서, 나하고 키스는 귀를 가리고 있던 귀마개를 내려놓았다.

"헤...헤헤...정말 짜릿하지 않았어?"
"귀에서 피가 나오는 줄 알았다 키스."
"캬악."
"뭘 그정도로 가지고 그래. 지금 꺼낸것은 덜 위험한거라고."

비단 나뿐만 아니라 키스도 블레이즈도 영향을 받았나보다. 차이점이라면 블레이즈는 괴롭다는 표정이었고 키스는 뭔가 롤러 코스터 탄 뒤의 해맑게 웃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라는거 정도? 얘 설마 이런 고통을 즐기는건가?

"아카데미 그리고 마법 상점에서 살수 있는 것들은, 협회에서의 연구로 인해 품종 개량해서 그나마 안전하게 뽑을수 있는것들이야. 귀마개만 제대로 끼면 청각마비 될일이 없다 이 말씀."
"그런것 치고는 너무나도 시끄러웠는데? 귀에 피가 나오는거 같았다고."
"걱정마. 나도 처음에는 너와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야생에서 자란것들은 이보다 더하다고. 사람은 한번에 사망하고, 거대 몬스터들은 기절하게 만들 정도라고."

키스는 한손에 맨드레이크를 든 체, 오른 손을 입에다 댔다.

“아-아아-거기 단발머리 소녀 내 말 들려?”

대답을 안하는 석상이었다. 입이 있지만, 돌이라서 말할수 없는건가? 성대에서 나오려고 하는 말을 바깥에 뱉지 못하고.

“내 말 들리면 지금부터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일단 그대로 예쁜 포즈로 가만히 있어 줘. 괴로운 건 알지만 조금만 참아. 알았지?”
“뭐 하는 거야? 우리 얘기 들려?”
“석상 안에 갇힌 소녀의 혼에 말을 건 거야. 원래 같으면 무의식적인 상태라서 말을 걸어도 못 듣지만, 지금 막 맨드레이크가 소리 질러준 덕분에 혼이 잠에서 깨어난 상태거든."

키스는 만드레이크를 허리춤에 차던 단검으로 껍질을 깎기 시작했다. 얼굴에 입까지  달린 것을 사과 깎듯 깎는 모습을 보니, 뭔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키스는 흐흠-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깎고 있었고. 쟤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뭐 하긴, 요리를 전공으로 하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웃기긴 하다. 나도 요리하면서 생선 머리 자르기나, 내장 제거 등을 해왔는데. 보통 사람들이 하면 징그럽다고 할 작업들을.

껍질 벗겨진 맨드레이크의 속이 드러났다. 녹색의 라임 같은 과육이. 키스는 자신이 끼던 핑거리스 장갑을 벗더니 손가락을 전부 감싼 하얀 장갑을 낀 뒤 그대로 양손으로 잡아 쥐어짜기 시작했다. 투둑투둑-하는 오렌지 과육 터지는 소리와 함께, 쥐어짠 녹색의 즙이 나무 그릇에 담아지면서 하얀 장갑도 녹색으로 물들여져 갔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냄새가. 이거…. 어디서 맡아본 냄새 같은데? 마치 한약방에서 맡아봤을 것만 같은?

'인삼인가?'

확실했다. 인삼 냄새였다. 인삼 특유의 쓴 냄새였다.

키스는 그 와중에 보라색 꽃을 약연을 갈기 시작했다. 드르륵-드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갈고 갈면서. 가루가 된 꽃을 즙 위에다 뿌린 뒤 수저로 저으니, 녹색이었던 즙이 보라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Anima Captis."

키스의 손에서 푸른 빛이 나와, 약물 속으로 들어갔다. 옆에 있던 빈 포션 병에 따른 뒤, 몇 번 흔든 뒤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완성."

마력을 받아들인 보라색 포션에서 광채를 내 뿜었다. 포션과 비슷한 포도색의 빛을.

"이것이 키스표 영혼 포박 포션. 내 얼굴처럼 예쁜 이 포션만 있으면, 어떤 물질화에 걸린 혼이라도 확잡아낼 수  있지."
"어떤 물질화라고 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석화만 있는 게 아니야?"
"석화가 귀여울 정도야. 그것도 상당히. 지나가던 강아지를 보듯."

펼쳐진 책 위에 손을 휘저으니, 푸른색의 사람 신체의 모습을 한 그림이 떠올랐다. 키스가 검지를 휘저으니, 한쪽 팔이 부서지는 것이 보였었다. 마치 유리가 깨져서 산산조각 난 거 처럼.

"지금 보이는 거처럼 유리화가 되어서 몸이 산산조각 난다거나, 금속화로 인해 온몸이 금속으로 변하거나, 심지어 모래화가 되어서 모래로 변하는 물질화도 존재해."
"당하면 엄청 기분 나쁘겠다. 지금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데?"
"그래서 모험가들이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물질화야. 풀려도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래."

탁-하고 책을 닫은 뒤, 키스는 안경을 벗으면서 얘기를 이어갔다.

"단순히 석화나 혹은 식물화가 된 거면, 나 같은 예쁜 연금술사가 치료해 줄 수 있지만, 몸이 산산조각 나거나 혹은 작은 알갱이들로 변했다면…. 엄…."
"몸이 부서지지 않는 한, 그대로 푸는 것이 가능하지만, 유리화나 모래화는 몸이 조각으로 나뉘어진 격이니까..."
"일일이  모아서 맞춰야 한다는 거지. 마치 퍼즐 조각 맞추듯."

에휴-하는 한숨을 내뱉는 것을 보니까,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닌 거 같네. 하긴 얘 연금술사다 보니, 물질화를 매우 가까운 곳에서 여러 번 봤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사람으로 돌려놓기 위해 온갖 고생 해야 했을 테고.

"이젠 약도 만들었으니, 구해줄 수 있는 거야?"
"그전에 하나 더 필요해. 아주 큰 거."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 키스였다. 여기 어딘가에 넣었는데에 라고 말하면서 뒤지던 그녀는….

"찾았다."

한 손에 포션을 꺼내었다. 체력 포션 그리고 마력 포션 같은 단순한 빨간색, 파란색 약이 아니었다. 무지개색이었다. 프리즘을 보듯, 조금만이라도 빛에 대면 여러 색깔의 무지개를 띄우는 포션이었다.

"이것도 네가 만든 거야? 참 예쁘게 생겼다."
"틀려. 이건 졸업 선물로 받은 거야."

찰랑-하면서 포션 병 안의 무지개 색 약물에, 미약한 파도를 일으켜 보이는 키스였다.

"담당 교수님이 직접 제조 해서 나한테 주신 포션이야. 효과는 어떤 병이든 한 번에 낫게 해주고, 어떠한 물질화를 당해도 다시 사람 몸으로 되돌려준다나?"
"석화 해제 포션은 너도 만들 수 있지 않아? 지금 막 그 영혼 포박 포션을 만들듯."
"그렇긴 한데, 쟤였을 경우는 함정으로 위장한 몬스터에게 먹힌 뒤, 그 몬스터의 일부가 된 사례라 평범한 해제 약으로는 절대 못 해."

그래서 키스의 분위기가 달랐던 것인가. 약 제조할 때의 키스 분위기는 많이 달라 보였다. 아까 같았으면 해맑게 웃으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강아지 같았다면, 제조했을 때는 한 치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연구에 집중하는 과학자?

하긴 얘 연금술사였지.

“성운아, 그거 준비해 줘.”
“그거라면?”
“매운 거. 네가 보여 준 거.”

타바스코소스 말하는 건가? 가방 속에서 하얀색 종이에, 초록색 글씨로 TABASCO라 적힌 빨간색 액체가 들린, 소스 병을 꺼내었다.

“얼마나 매워? 입에 불붙을 만큼?”
“그보다 더? 한 방울이라도 배가 쓰리게 만들 정도로.”
“지금부터 그거 손에 쥐고 있어. 보험용으로 써야 하니까.”

보험? 이게? 아까 매운 거 싫다면서 치우라고 한 건 언제고.

“풀려난 대로 쟤를 우리 쪽으로 끌고 올 건데, 만약 저 함정이 우리 먹으려 하면 무조건 발밑으로 던져. 알았지?”

이 타바스코소스가 무슨 마왕을 물리치기 위한 성검이라도 되는 건가? 준비하라고 하는 것을 보면. 키스의 한 손에 두 개의 포션이 들려 있었다. 하나는 보라색의 영혼 포박 포션 그리고 또 하나는 졸업 선물로 받았다던 무지갯빛 포션.

“다 좋은데 어떻게 쏟아부으려고? 가까이 가면 먹힌다며.”
"이렇게. Liquida Effusio."

보라색의 약물이 한 방울씩 두둥실 떠 올라, 소녀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제일 먼저 석상 안에 갇힌 영혼을 포박시키기. 무작정 풀어 버리면 함정의 일부가 되어 버린 혼을 그대로 빼내지 못해, 석화가 풀려나도 속이 텅 빈 육체만 풀려날 수도 있으니까.”

따악-하고 손가락을 튕기니, 펑- 하는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약물이 소녀의 머리 위에 젖혀지자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석상에 밝은 빛을 내뿜었고, 성공했다는 듯 키스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영혼 포박 완료. 빛이 밝은 것을 보면 제대로 성공이야. 하이라이트로…”

졸업 선물 포션의 무지개색 약물 또한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책을 든 채 검지로 조심스레 조종하고 있던 키스는, 포션의 액체가 소녀의 머리 위에 올라가자, 손가락을 튕겼다.

포션의 액체에 젖혀진 소녀의 석상은 처음에는 아무 반응이 없어서 실패했나 했지만…

쩌적-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오른쪽 눈 부분이 투둑투둑-하면서 부서지면서 갈색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돌 속에 갇힌 눈동자가 몇 번 깜빡인 뒤, 뭔가 알았다는 듯 크게 눈이 떠지면서 팔을 비롯해 얼굴과 전신이 알에서 깨려는 병아리처럼 자신을 감싼 돌을 깨부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분숫대 밖으로, 소녀가 굴러 떨어졌다. 갈색 단발 머리의 소녀가. 키스는 담요로 소녀의 몸을 덮은 뒤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허억-허억-허억-"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그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갇혔다는듯, 전신의 근육도 많이 위축 되어진 상태였다. 마치 다친 팔의 깁스를 푸니, 팔의 근육이 많이 쪼그라진거 처럼. 얼굴도 많이 야위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던거 처럼.

“…누…”

아직 많이 혼란 스러운 듯, 이리저리 쳐다보던 그녀는 간신히 한마디 꺼내었다. 뜨거운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긴 숨을 내뱉으면서.

"누....구...?"
"안심해. 나쁜 사람 아니야 우리는."

갈색 단발 머릿속에 숨겨진, 머리색과 비슷한 눈동자가 우리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있는 것조차 힘든지, 양다리를 떨고 있었다. 톡-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만 같은.

"일단 숨을 크게 들이쉬고-천천히 내 뱉-"
"저기 키스, 바닥이 끈적거리는데?"
"…에?"

뭔가 끈적거리는 것이 내 신발 발바닥 부분에 붙어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닌, 여러 개로 투명한 실이 바닥하고 이어져 있었다. 특유의 악취 또한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이거 설마…."
"빠져나가!"

키스는 다급하게 소리를 외치면서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빨갛게 변해가고 있었고 서서히 바닥이 위로 올라가 닫혀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에서 날고 있던 블레이즈가 캬악! 하면서 들어오려고 하자, 키스가 오지마! 소리쳤다.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뒤로 넘겨질 것이라고.

"성운아! 매운 거! 매운 거!"

매운 거라는 말에, 나는 손에 든 타바스코소스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쨍강! 하는 소리와 함께 나온 붉은 색 액체에서, 특유의 저릿하면서도 신맛과 매운 냄새를 뿜고 있었다. 주변의 악취를 지울 정도로.

서서히 닫히고 있던 바닥 역시 아래로 내려갔다.

"지금이야! 뛰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 두 사람은 소녀를 양쪽에서 꼭 잡은 채 뛰쳐 나왔다. 블레이즈를 따라, 왔던길로 돌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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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참 허탈하면서도 안타까운 뉴스를 접해가지고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모바일 겜 관련으로요. (해당 내용은 주소로 들어가면 자세히 알수 잇습니다.)

그래도 성실한 연재 약속 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