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다 자신을 물고기라고 말하던 사람의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 들어서자 남자의 눈에는 물고기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고, 그가 물고기의 맞은편에 앉자 물고기는 미리 준비한 것처럼 입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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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는 용에게 원한이 깊어 요물이 됩니다. 그리고 한낱 물고기는 이무기의 죽음 따위 모릅니다.

선생, 이무기의 죽음에 앞서 묻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면 그 개천에 살던 이무기들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개천의 이무기들은 앞서 용이 된 이무기가 죽기 전까지는 이무기로 살아가게 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선생, 당신이 오기 전, 용이 제게 찾아왔습니다. 똑같이 이무기의 죽음을 묻더군요.

범인인 저는 그런 걸 모릅니다. 그저 그런 물고기에게 물어도 물고기가 용의 뜻을 알겠습니까. 하며 답하니 말 없이 돌아가더군요.

실제로 저는 모릅니다. 그 아이가 어떻게 죽었고, 무슨 이유로 죽었는지 모릅니다.
선생, 선생이라고 다르게 답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보니 선생, 선생도 이무기 같더군요.
두 마리의 용을 찾는 모습이 마치 원한을 지닌 이무기 같습니다. 물론 비꼬는 게 아닙니다. 그저그런 물고기가 어떻게 이무기의 생각을 안답니까.

선생, 솔직히 대답하면 저는 이무기의 죽음에 대해 아는 범인입니다. 하지만 비범인과 다른 어리숙한 범인이죠.

저는 용에게는 일부러 모른다고 했습니다.
역시나 용은 제 뜻을 모르더군요. 아, 생각해보니 용이 이무기를 찾을때 어찌 말했는지 아십니까.

한낱 미숙한 뱀의 죽음에 대해 물으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재밌지 않습니까. 용이 된 이무기는 정작 자신이 이무기로 살아온 것을 잊어버리고 용의 입장으로 묻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용이 된 이무기도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용이라는 건 제 뜻을 찾아 하늘로 치솟으며 자랐지만, 용의 삶을 모르던 이들마저 올라 불편한 삶을 살다 객사하는 게 대다수니까요.

저희는 그런 객사한 사체를 조금씩 먹으며 자랍니다. 선생, 어쩌면 선생도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선생, 당신이 쫓는 용이란 누굽니까. 이무기를 죽이고 용이 되어 사라진 자입니까. 아니면, 뜻을 좇아 용이 된 이무기입니까.

압니다. 선생, 당신이 용을 쏜 이유도 압니다. 죽어가는 용을 무시하며 지나간 이유도 이해합니다. 선생은 지금 이무기니까요.

그래서 이무기의 삶은 어떻습니까. 즐겁나요?

제가 물고기라고 불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강은 하늘보다 소문이 빠르게 흐르고, 소문은 물고기들에게 좋은 먹이입니다.

선생,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용이 되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제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아, 뭐냐고 묻진 말아주세요. 그저 그런 방식이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이니까요.

선생은 그저... 제가 하는 말에 따르면 되는 겁니다. 거절하기 힘든 기회 아닙니까.
물론 거절한다면, 저는 선생이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다른 이무기들에게 넘길 생각입니다.

네, 선생. 선생이야말로 거절할 수 없는 선택일 겁니다. 이무기들 사이에서도 파벌이 있지않습니까. 저는 한낱 물고기이므로 살아남기 위해선 한 쪽에 붙어야 합니다.

저는 선생의 편이 될 자신이 있습니다. 그야 선생은 용을 죽여본 이무기 아닙니까. 걱정 말고 제 손만 잡으면 그만입니다.

저는 선생을 등용문 삼을 것이고, 선생은 개천에서 용이 되어 떠나면 상호이득 관계 아니겠습니까. 선생, 잘 생각해보세요.

지금 얘기하지 않는다면... 선생이랑 이별이겠군요. 저는 어차피 등용문 삼을 이무기들이 많아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 그만입니다.

선생,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그저 선생은 제 손을 잡으면 그만입니다. 물고기와 한패가 된다는 치욕도 잠시... 선생은 용이 되어 떠날 수 있습니다.

하늘을 보십시오. 선생, 하늘은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선생도 한번쯤은 용이 되어 날아가고픈 마음이 있지않았습니까.

이 구정물 같은 곳에서 언제까지 살아갈 겁니까. 선생, 한 번 밖에 없는 기회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선생의 선택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오늘부로 선생은 이무기들의 사냥감이 되겠군요.

어쩌면 이 곳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사냥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인사입니다. 선생, 추후에 하늘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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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간격의 파열음이 난 후, 한 남자가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왔다. 몸에 묻은 피를 빗물로 씻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집 안에는 총에 맞은 시체 위로 '등용문'이라는 책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책 표지에는 주인이 적지 않은 듯한 필기체로 문장이 적혀있었다.

[용은 용대로 살길 원하네. 나는 내 친구를 죽인 비겁한 사람이라 용이 되진 않을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