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갑지 않다는 야릇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빗방울이 옷에 퉁기는 날씨였다. 그날 나는 요코하마에 있었다. 마음 맞는 친구 셋과 함께였지. 여름이 문간까지 다가온 계절이었기에 춥지는 않게 선선했지만, 그 땅은 바닷가에 있었기에 얇은 옷을 한 장은 더 입어야 했다.

 

 우리는 그저 바닷가를 뱅뱅 돌며, 우리가 만든 노래를 부르고, 우리가 만든 몸짓을 사진으로 찍었더랬다. 유명인의 이름을 가사에 넣어 부르고, 눈을 부릅뜨고, 모자를 거꾸로 쓰는 식으로. 쇼핑에 털어 넣을 돈도, 유적지에 들를 만한 교양도 없었던 우리에게 할 수 있었던 건 그것뿐이었지.

 

 하지만, 우리가 목적 없이 그저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의 탓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굳이 탓을 해보자면, 그 땅의 탓이다. 요코하마는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로 시작되는 그 노래처럼, 싸그락거리는 깨진 수정같은 곳이어야 했다. 날카롭고 반짝이지만, 흘린 피가 끈적하고 볼만한 혼잡함-디스코가 가득한 곳. 하지만 우리의 요코하마는 디스코보다는 백색 소음이 어울리는 곳이었지. 그야, 하늘도, 바다도, 공원도, 벽돌집도, 배도, 유원지도 모두 완벽한 채로 낡았는걸. 그 관광지에 관광객이란 애초에 필요 없었던 거다.

 

 밤. 그때까지도 우리는 바다와 도시 사이, 행인들에게 허락된 몇 미터의 녹지만을 걷고 또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들끼리의 이야깃거리도 그때는 다 끝나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없었고, 나와 남들뿐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 땅의 말끔함 속에 파들어보고자 생각했다.

 

 땅이 있고 바다가 있고 땅이 있었다. 이쪽 땅과 바다는 어둡다 쓸쓸하다. 파도가 부딪혀 깔끔함을 토핑한다. 저쪽의 땅이라고 마냥 밝은 것은 아니다. 세맨칠한 흰 건물들은 지금 검고, 다만 줄눈처럼 박힌 불빛이 빛을 더할 뿐이다.

 

 하늘, 하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하늘엔 달도 별도 없이 구름뿐이다. 적어도 이쪽은 그렇다. 저쪽엔 구름이 살짝 비켜났다. 하늘이 있다. 그렇다고 달이 있다거나 별이 있다거나 빛이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암갈색이다. 태양색을 손톱 끝 만큼 털어 넣은

 

 구름은 그 색, 그림의 색을 모두 섞은 색. 물통의 물을 버릴 때나 볼 수 있는 그런 색이다. 구름색의 물감을 엎어버린 하늘에 하늘의 색을 칠해 둔 모양새다.

 

 바람은 시원하게, 그러나 춥지는 않게. 바다향을 코에 살짝 걸치는 정도로 지나간다. 말소리는 들리나 의미 따윈 없다. 따라서 고요하다.

 

 그리고 위닝 티켓이 죽었다.

 

 그 땅의 수위가 발목까지 차오를 때쯤. 나의 가련한 정신이 집중을 부순다. 내 눈은 어느새 한국의 포털사이트와 한국의 언어를 읽고 있었다. 별일은 아니었다. 이름만 아는 경주마 한 마리가 죽었을 뿐이다. 일생에 한 번 우승한 G1이 더비인, 소위 ‘더비 원툴’로 불리는 말. 하지만, 그 누구보다 더비를 가장 뜨겁게 우승한 말. 그 녀석이 죽었단다. 다른 비통스러운 이유도 아닌 그저 늙어서. 그건,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요코하마를 떠났다. 아니, 쫓겨났다는 표현이 더 올바르겠다. 우리는 그 땅의 무엇과도 관계를 맺지 못했으니까. 그 땅이 나의 땅보다 너무나도 멀었고, 또 위닝 티켓이 죽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쫓겨난 것이다. 저녁, 차이나타운에서 먹었던 중국 음식은 퍽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