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아이는 인형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내던져진 종이비행기를 치우고 잡초들을 솎아냈다. 인형의 옹이 같은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리로 들어가도록 해.”

 

 인형에게서 세상을 구한다는 자부심에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아이의 마음속 박수와 격려를 받고 목적지에 걸어갔다.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팔은 흙을 잘 긁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 한 몸을 누일 공간이 만들어졌고, 인형은 그리로 뛰어들었다. 그곳은 곧 녀석이 무덤이자 요람일지어다.

 

 처음에는 잠잠한 듯싶었다가 땅이 요동쳤다. 녀석의 다리가 뒤집혀서 위로 올라왔다. 소년의, 아니 인류의 희망이 발끝에 솟아 있었다. 아이는 인형이 말이 없으니까 마치 죽은 것처럼 느껴졌다. 좀 전까지는 분명 살아 있었는데, 아니 근데 네 녀석은 도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고...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퍼뜩 스칠 무렵 꼬일 대로 꼬여버린 마음을 이해 못 할 무심한 바람이 새싹을 훑으며 스쳐 갔다.

 

 새싹이 상기했다. 너밖에 방법이 없구나,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사람이 나무가 되어버렸고, 웬 인형이 자길 나무로 키워 달라길래 사태와 녀석 사이의 인과 관계를 의심하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상관없었다. 아이는 단지 세계수를 바라며 질문을 던졌다.

 

 “괜찮은 거야? 거긴 따뜻해?”

 

 “아니 시원해.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해.”

 

 “일단 알겠어. 뭐 더 필요한 건 없어?”

 

 “물... 물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이는 인형 쪽으로 바로 섰다. 다리를 살짝 벌리고 바지춤을 올려 잡았다. 곧 땅이 따뜻해졌다. 편안하게 흘러가는 물소리에 잠시 세상을 잊었다. 여름 바람이 손등과 환부로 몰려 들었다. 가랑이를 간지럽히는 바람을 막고 싶었지만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늘따라 물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더 길게 느껴졌던 시간은 언젠가 가버릴 이 여름처럼 곧 끝을 고했다. 마지막 한 방울에 땅이 울리는 소리마저 잦아들고 고요만이 마당을 채웠다.

 

 “물이 따뜻한 건 좋은데 맛이 이상해, 좀 써.”

 

 “생체 거름이거든.”

 

 “오, 그런 것도 아는 거야? 하지만 앞으로는 그냥 물을 주면 좋겠어.”

 

 인형 주제에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녀석이 상전이란 걸 떠올리니 감히 대꾸할 수 없었다. 좀 전에 쏟아 내버린 슬픔이 작열하는 태양에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가슴이 콱 막혔다. 발을 둥둥 굴렀다. 씨익씨익 거리다 문득 먼발치에서 이런 자신을 바라보면 얼마나 우스울지 하고 느꼈다.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라 생각하니 그런 일을 하면 함께 웃어주던 엄마가 떠올랐다. 부엌으로 달음박질쳤다. 하지만 나무였다.

 

 울고 싶었지만 울기가 싫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울고 싶었지만 날 돌아봐 줄 부모님이 없었기에 울기가 싫었다. 콧잔등이 시큰하고 눈이 부어 왔지만 참아야 했다. 그러는 사이 해가 졌다. 어두워진 세상을 향하여 몸을 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