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올렸던 동화 퇴고 버전입니다


    “정말 안 받아줄 거예요?”

    “말했잖아, 직원은 안 뽑는다고.”

    카이모는 시현을 향해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쪽 다리의 무게중심을 나뭇가지에 둔 그의 몸은 자꾸만 흔들려서, 시현은 손으로 만든 확성기를 풀었다. 당장은 더 방해하면 안 됐다. 상가 건물 밖에서 카이모는 사무소의 ‘소’자 시트지를 꼼꼼히 펴 바르고 있었다. 해피해피 꿈 대부 중개 사무소. 두어 번 입으로 말해보면 왕창 짠 소스가 뭉친 건더기를 씹는 느낌이 들 것 같다고, 시현은 중얼거렸다. 

    “저렇게 이름 짓는 센스가 구리니 이런 일이나 하고 있지.”

    “뭐라고?”

    “아이, 아무것도 아녜요.”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이모는 작업을 마쳤다. 나무 위에서 발레를 하는 듯한 자세를 오랫동안 고정한 그의 몸엔 구슬땀이 흘렀다. 꿈 대부업자를 손가락질하는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사다리를 빌려주지 않았다. 막 사무소를 옮기는 작업이 시작된 터라 할 일은 여전히 산더미였다. 시현은 냉큼 준비한 식혜와 수건을 건넸다. 카이모는 얼음째로 식혜를 입에 모두 털어 넣고 사무소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카이모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어린 시현의 솜씨가 예상보다 야무졌다. 선반 위, 꿈 물고기들이 담긴 인공 어항은 뚜껑 색깔을 다르게 하고 라벨을 붙여 구분해두었다. 서류 작업을 할 컴퓨터와 각종 전자 기기의 전선을 조금도 엉키지 않고 연결했다. 몇 번이고 자기를 고용해달라며 예전 사무소를 찾아오던 시현이 눈썰미를 발휘한 덕분이었다. 카이모는 손 닿는 곳에 깔끔하게 정리된 자신의 물건을 보면서 마침내 항복했다. 그는 시현의 쓸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한 가지 있어.”

    신나서 기뻐하는 시현에게, 카이모가 말했다.

    “꿈 대부업은 꿈을 빌려주는 대가로 거의 돈을 받지 않아. 그래서 시현이 너에게 월급을 줄 만큼 사정이 충분치 않단다.”

    “괜찮아요, 돈을 받으려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면?”

    “제 친구의 금붕어한테 줄 꿈을 빌려주세요.”

 

    “걔는 도대체 왜 이야기 부서에 취업하겠다는 거야.”

    시현은 저 무섭게 생긴 카이모를 또다시 찾아갈 마음을 먹은 자신이 신기했다. 시현은 거절을 두려워해서, 처음 카이모에게 거절당한 날엔 혼자 방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렇지만 예곤이를 떠올릴 때마다 용기가 솟았다. 다행히 좋은 기회 덕분에 이제 시현은 해피해피 꿈 대부업 사무소의 임시 직원이 되었다. 시현은 카이모를 설득해 예곤의 금붕어에게 먹일 꿈 물고기를 받아낼 생각이었다. 같은 종류의 꿈을 먹으면 꿈 금붕어가 커지는 건 당연한 상식이었으니까. 다만 카이모는 대부업이라는 이름답게 빌렸을 때의 대가가 분명히 있다고 경고했다. 시현은 예곤이 금붕어를 키워내지 못하는 일에 비하면 그게 무엇이든 괜찮을 것 같았다.

    다행히 다음날 학교에서 먹은 점심이 너무 맛있어서 시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에서야 예곤에게 말할 마음이 생겼다. 다만 시현의 마음보단 예곤의 마음이 더 중요했다. 수요일에 한바탕 꿈 금붕어에 관한 말싸움을 한 이후로 냉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야 정시현, 너 왜 말을 그렇게 하는데?”

    “예곤 너야말로 바보야? 이야기 부서라니, 사람들 아무도 그런 거 관심 없어해. 친구가 한참 전에 한물간 곳에 취업하고 싶다는데 말려야지, 그럼.”

    31차 꿈 정하기 보충 수업에서였다. 반의 아이들은 이미 목걸이 어항 속의 꿈 금붕어를 저마다의 크기와 색깔로 키워낸 지 오래였다. 밝은 표정으로 복도를 지나가는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목걸이 어항을 달고 있었다. 꿈 금붕어를 손가락 두 마디 이상 키워낸 사람은 듣지 않아도 되는 수업이었다. 웬만한 아이들은 늦어도 15차에선 반을 박차고 나갈 수 있었다. 반에 남아 보충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은 시현과 예곤 둘뿐이었다. 시현은 예곤 옆에서 괜히 그의 옆구리를 찔러댔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 다 너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교육 부서에 가려는 시현의 빨강 금붕어는 아슬아슬하게 합격점 바로 밑이었다. 반면에 투명한 목걸이 속 예곤의 보랏빛 금붕어는 병뚜껑보다 작았다. 목걸이 안에서 헤엄치는 모습도 꼭 병에 걸린 듯이 비실비실했다.

    “남들이 별로라고 해서 나까지 그렇게 생각해야 해?”

    예곤의 검은 눈이 시현을 향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전망이 없는 직업이라고 해도 국가에선 최대한 지원해줬다. 단, 얼마나 당당하게 그 꿈을 밀어붙이냐에 따라 달렸다. 시현은 곧장 반격했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당장 여길 나가면 되잖아. 하나만 보여주면 되는걸. 내가 기르는 꿈 금붕어가 이만큼 자랐어요, 라고.”

    예곤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코를 훌쩍이기까지 했다. 시현은 내가 너무 심했나, 하고 움찔했다. 사실 예곤이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 번에 걸친 심사에서, 그의 꿈 금붕어는 모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불안함으로 똘똘 뭉쳐버린 예곤의 마음은 금붕어가 잘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금붕어가 잘 자라나지 못한 게 그 이유였다. 교감 선생님은 손깍지를 끼고 그런 꿈 물고기는 바다로 나가면 금방 잡아먹혀 버릴 거라고 했다. 적당히 겁을 주려는 시도였겠지만 예곤은 충격을 받았는지 많이 힘들어했다.

    “그렇지만 불안한 걸 어떡해. 이야기 부서에 가려면 공부도 더 잘해야 하고, 갈 사람은 나밖에 없고, 글쓰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그래서 내가 예곤이 너를 위해 선물을 가져올 생각이야.”

    예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현을 바라봤다. 시현의 영문 모를 말에 놀란 얼굴이었다. 시현은 쑥스러움을 참고 주먹으로 예곤의 팔을 툭 쳤다. 그러곤 달아나며 소리쳤다.

    “기대해! 너한테 꼭 필요한 선물로 준비할게.”

    다시 돌아와, 임시 직원이 된 시현은 기대 속에서 웃었다. 이제 이틀이 지나면 카이모와 함께 빌린 꿈 찾기에 따라 나갈 예정이었다. 작업을 마친 대가로 예곤의 꿈과 같은 작가의 꿈을 얻어서 금붕어에게 먹이면 됐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곤이를, 그의 꿈 금붕어를 구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그런 거에요. 제 친구를 위해 꿈을 빌리려고요.”

    “작가가 되겠다는 꿈 물고기는 이제 재고가 없을걸.”

    카이모는 스푼을 내려놓고 핫초코를 내밀었다. 그는 놀라서 팔짝 뛰려는 시현을 진정시켰다. 키가 커서 한참을 올려다보느라 시현은 목이 아팠지만 참았다. 핫초코는 뜨거웠지만 맛있었다. 시현은 핫초코를 마시며 고개를 쭉 돌렸다. 그러고 보니 시현이 라벨을 붙여 꿈 물고기를 정리할 때도 작가 라벨을 붙인 적은 없었다. 연둣빛이나 흰색 금붕어가 제일 많았고 작가의 꿈을 나타내는 보랏빛은 사방을 둘러봐도 없었다. 음료가 다 식어 쉽게 넘길 수 있을 때 즈음엔 카이모가 커다란 자루를 들고 나타났다. 꿈을 빌린 사람들에게서 이자를 받아올 준비물이었다.

    카이모는 조용히 시현에게 설명했다. 대부업으로 빌려주는 꿈 물고기는 그 효과가 너무 강력해서, 그걸 먹이면 무조건 꿈 금붕어의 크기를 키울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꿈을 이뤘다. 그러면 꿈 물고기를 키울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물고기를 대신 그 사람에게 준다. 우리가 받아올 금붕어들은 그렇게 물려받은, 건네받은, 버려진 꿈들이다. 바로 그런 꿈들을 이자로 모은다. 대부업자는 아무에게나 꿈을 빌려주지 않는다, 고.

    “그 광경을 보면 아마 꿈을 빌리고 싶다는 마음은 싹 사라질 거란다.”

    “그건 상관없어요. 혹시 우리가 수금하러 가는 사람들 중에 작가가 있나요?”

    “가서 직접 확인해보렴.”

    그만둔다고 말해야 하려나. 입을 비죽이는 시현은 다 마신 핫초코를 싱크대에 두기 위해 벌떡 일어섰다. 그때였다. 식기를 놔두는 자리 옆에 꽤 오래된 머그컵이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무심코 들여다본 시현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먼지가 떠다니는 수돗물 속에 제법 굵직한 보랏빛 금붕어가 힘없이 살아 움직였다. 이건 누구 거지? 꿈 금붕어는 목걸이 밖으로 나오더라도 원래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치기 때문에, 금붕어를 보관하기 위해선 뚜껑을 꼭 닫아놓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 금붕어는 아니었다. 예곤의 꿈 금붕어보다 크기는 컸지만 훨씬 더 생기가 없었다. 컵을 손톱으로 두드려도 반응이 약했다. 밖에서 카이모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현은 서둘러 그를 향해 달렸다. 문득 카이모가 어쩌다 대부업자가 됐는지 궁금해졌다.

    화창한 날이었다. 둘은 함께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시현은 드라마 속 사채업자처럼 무섭게 생긴 검은 봉고차를 타지 않나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한참이 지나 도착하니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무지무지 높은 건물이 나왔다. 시현은 어디선가 본 것 같아 곰곰이 고민하다가, 손뼉을 짝 쳤다. 텔레비전에도 나와 유명해진 연예인이 지내는 엔터텐인먼트 회사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볼까 봐 신난 시현과 달리 카이모는 말이 없었다. 둘은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러 걸었다.

    “어, 여기는 새로운 손님이에요? 얼마나 큰 걸 주시려고 이렇게 어린 애를 받아요?”

    “임시 직원이야.”

    오는 길에 몇 번이고 놀라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시현은 그녀를 보자마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최근에 가장 인기가 뜨거운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다. 그녀는 어린 시현을 보며 눈을 찡그렸다. 시현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녀는 미리 준비한 통을 꺼냈다. 새끼손가락만 한 금붕어들 수십 마리가 플라스틱 통에서 활기차게 파닥거렸다. 통의 뚜겅을 열자마자, 카이모는 날렵한 솜씨로 금붕어를 모두 자루에 담았다.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최근에 엔터에서 최종 심사가 있어서 그런가, 꽤 많이 얻어왔어요.”

    “정말 그러네. 자루 안쪽 면을 계속 찌르는 게 아주 힘이 넘치나 봐.”

    그때 시현이 끼어들었다.

    “저…혹시, 이렇게 꿈 물고기를 건네면 그 사람은 다시는 꿈을 꾸지 못하는 건가요?”

    아이돌 그녀는 텔레비전에서 비췄던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건 아니야. 그 사람의 꿈 목걸이만 멀쩡히 있다면 금붕어는 또 생겨나니까. 가끔 자기 꿈에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자고 일어나면 금붕어 색깔이 달라져 있는 경우도 봤어. 재미있지 않니?”

    시현은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어서 이곳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더욱 예곤이 걱정됐다. 슬슬 일어나려는 순간, 그녀는 이번에 고개를 돌려 카이모를 향해 물었다.

    “여전히 글 쓰세요? 전 카이모 씨 글을 정말 좋아했는데.”

    카이모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젠 더 안 쓰지. 보다시피.”

    둘은 회사를 빠져나왔다. 시현이 그녀의 말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이모는 할 일이 많다며 시현을 데리고 다음 행선지로 출발했다.

 

    학교와 사무소를 오가는 한 달 동안, 그들은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서 꿈 금붕어를 수금했다. 해외로 진출한 축구선수도, 유명한 정치인도, 방송과 요리를 겸하여 셀럽이 된 연예인도 있었다. 모두 큰 어려움 없이 꿈 금붕어들을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간혹 꿈을 빌리고도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선 돈을 받아냈다. 동시에 시현은 갈수록 의구심이 커졌다. 꽤 많은 사람이 금붕어를 내놓으며 카이모가 여전히 글을 쓰는지를 물어보곤 했다. 꿈을 갚을 수 있든 없든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마다 카이모는 아니라고 답했다.

    “아저씨 예전에 글 썼어요?”

    “썼지.”

    “그런데 왜 다들 저렇게 물어봐요? 물고기를 빌린 사람은 아저씨 이야기를 한 번씩은 꼭 읽어본 것처럼.”

    “예전엔 꿈을 빌려주는 대가가 그거였거든. 내가 열심히 쓴 글을 읽고 소감을 말해주기. 비록 이야기 부서에 들어가는 데엔 실패했지만 읽어주는 사람의 반응만으로 행복했으니까.”

    거기까지 말하고 카이모는 입을 다물었다. 시현의 금붕어처럼 붉은 색깔이 하늘에 깔린 시각이었다. 녹초가 된 시현과 카이모 모두 사무소 의자에 기댄 채로 누워있었다. 사무소의 절반을 채우는 커다란 수조엔 어느새 수백 마리가 넘는 금붕어들이 헤엄치며 돌아다녔다. 신선한 경험으로 가득 찬 한 달이었다. 시현은 그렇게 다양한 형태와 색깔의 금붕어들을 처음 보았다. 온갖 색으로 가득 찬 수조는 하나의 미술 작품 같았다. 다만 그곳에 보랏빛 금붕어는 여전히 없었다. 여전히, 사무소에 있는 단 하나 작가의 꿈은 오직 싱크대 옆 머그컵에 담겨있었다.


    “그래서, 첫 월급은 뭐로 받을지 생각해뒀니? 내일이면 일한 대가를 받아가는 날이야.”

    시현은 솔직히, 아무것도 받아가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힘들어하는 예곤의 금붕어만 눈에 들어왔다. 그것만이 중요했다. 하지만 일을 하러 다닐수록 다른 사람의 꿈 물고기를 먹이는 일이 어딘가 꺼림칙해졌다. 아무래도 맨 처음에 가졌던 발상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시현이 말이 없자, 카이모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좋은 생각이 시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시현은 어둠 속에 잠긴 수조와 그 안의 꿈 물고기들을 보여달라고 했다. 물고기를 불안하게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오래는 안 됐다. 하지만 그 어두운 사무소 안에서 자신들만의 색을 내뿜는 물고기가 움직이는 광경을 본다면, 정말 황홀할 것 같았다. 일한 대가로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시현은 몇 차례에 걸쳐 카이모를 설득했다.

    “그래, 그것도 좋겠다.”

    카이모도 결국 동의했다. 그는 사무소의 커튼을 치고 불을 모두 껐다. 마지막으로 스탠드 등도 껐을 무렵, 환한 꿈의 세계가 펼쳐졌다. 조화롭게 섞이고 흩어졌다가 다시 춤을 추는 금붕어들이 모두 살아있는 생명이란 게 시현에게 확실하게 와닿았다. 시현은 이쪽부터 저쪽까지 손바닥으로 유리를 쓸었다. 카이모는 시현의 뒤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시현은 무언갈 카이모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오늘이 아니면 더 기회는 없을 터였다. 무얼 물어볼까? 왜 꿈 대부업자가 되었나? 내 친구 예곤에게 해줄 충고는 없을까? 그렇게 꿈 물고기를 모아 어디에 쓰는 걸까? 그러나 어떤 말도 시현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때 카이모가 다가왔다. 마치 시현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그는 말을 꺼냈다.

    “언제 꿈 금붕어들이 달아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밤이 되어도 여기서 지내야만 했어. 지금 시현이 네가 바라보는 광경을 매일 밤 봤다는 뜻이야.”

    “느낌이 어땠어요?”

    시현이 카이모의 눈을 들여다봤을 때, 저 멀리서 머그컵이 들썩거리는 소리가 난 것 같았다. 무시하고 카이모의 대답을 기다렸다.

    “정말 묘하지. 내가 이야기를 써서 금붕어들에게 들려주면, 저들은 내게 그들이 가졌던 꿈을 들려주었거든. 희망을 품고, 열심히 노력하고, 좌절하고, 난 이것밖에 안 되나, 중얼거리기도 하고, 결국엔 실패로 돌아오는 수십 수백 개의 이야기를. 뻐끔거리는 물거품 속에 그런 말이 담겨있었어. 그걸 듣다가, 몇 날 며칠이고 듣다가, 나는 이야기 쓰기를 그만뒀어.”

    카이모는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냈다. 깨진 유리 조각 파편에 묶인 줄이 있는 목걸이였다.

    “목걸이만 있으면 꿈 금붕어가 생길 수 있지. 나는 목걸이의 물을 버리고 목걸이를 깼어. 시현이 네가 보았듯 보랏빛 금붕어는 달아나서 이제 내게 돌아오지 않아.”

    시현은 멍해졌다. 고개를 돌려 수조를 보니 정말 끝없는 꿈들의 행렬이 무언갈 외쳐대고 있는 것 같았다. 슬픔이 있었다. 카이모는 자기의 것이었던 꿈이 담긴 머그컵을 들고 왔다. 물이 담긴 컵을 그의 머리를 향해 부어도 물만 떨어질 뿐 금붕어는 떨어지지 않았다. 카이모가 흠뻑 젖은 머리와 함께 웃었지만 시현은 웃지 못했다. 그는 곧 다시 물을 담아 컵을 내밀었다. 시현은 어리둥절했다.

    “받아. 가서 네 친구한테 이걸 줘. 처음에 바란 게 바로 이거였잖아, 그렇지?”

    “이걸 어떻게 받아요.”

    “받지 않으면, 예곤이란 친구는 나처럼 될지도 몰라. 이야기 부서에 실패하고 나서 꿈 대부업자가 될지도 몰라.”

    시현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머리가 아팠다. 어쩔 수 없이 컵을 받아들어야만 하는 자신의 손이 미웠다. 카이모에게서 컵을 받고, 시현은 사무소를 뛰쳐나왔다. 해피해피 꿈 대부업 중개 사무소. 창문을 향해 꾸벅 인사한 후 시현은 조금 더 속도를 냈다. 어두웠던 사무소와는 다르게 하늘엔 아직 따뜻한 붉은색이 어려 있었다. 조금 눈이 부셔와 시현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뛰었다. 시현 자신의 목걸이에 담긴 금붕어도 평소보다 더 바쁘게 빙글빙글 돌았다.

 

    “이거 받아.”

    “뭐야, 이거?”

    “그냥 구해왔어. 받아.”

    32차 보충 수업을 코앞에 둔 날이었다. 예곤과 시현의 마지막 심사가 코앞이었다. 시현은 다짜고짜 예곤에게 물이 담긴 봉지를 내밀었다. 은은한 보랏빛을 띤 물고기가 예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예곤은 자신의 목걸이와 카이모의 꿈 금붕어를 번갈아 보다가, 설명을 요구했다. 시현은 조심스레 입을 열어 그간 있었던 일을 말했다. 예곤은 눈꺼풀이 없는 사람처럼 그대로 시현의 말을 들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시현이 항상 몰래 바라보곤 했던 그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의 사연이 예곤의 마음에 스며든 것 같았다.

    예곤은 목걸이의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카이모의 금붕어를 집어넣었다. 좁은 목걸이 어항 안의 두 마리는 서로를 확인하듯 꼬리를 흔들며 물속을 헤엄쳤다. 시현은 초조한 눈으로 목걸이를 바라봤다. 곧 예곤의 금붕어가 입을 벌려 빨아들인다면, 카이모의 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였으니까. 그때였다. 양쪽 어느 금붕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서로의 피부를 맞대어 나란히 헤엄치기도 하고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두 마리의 금붕어는 만난 적 없는 형제를 만난 것처럼 신나게 헤엄쳤다. 병약하던 두 물고기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모습이었다. 어쩐지 예곤의 목걸이 또한 조금 더 커진 느낌이었다. 예곤과 시현은 서로를 바라보며 안도하듯 웃었다. 마치 두 마리의 금붕어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