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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의 일과는 식사를 만들고 공방으로 가져가 남자와 함께 끼니를 떼우고, 돌아와 조금 더 청소를 하고. 다시 도시락을 만들어 공방으로 가져가는 식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이내 자신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밤은 길고 때때로 악몽이 찾아왔지만 밤중에 눈을 떴을 때 두드리는 망치소리를 들으면 다시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계속)


 여름이 끊어질 것처럼 이어졌다. 그동안 여자의 몸은 조금씩 생기를 되찾았고, 창관에 몸을 뒀던 초기 사교계에까지 화제가 되었던 외모도 돌아오는 것 같았다.


 여자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남자가 망치질을 멈추고 여자가 잠든 얼굴을 지켜보는 일도 늘어났다. 잠든 여자의 투명한 목에 화로의 붉은 불빛에 비쳤다. 재와 꽃. 땀과 쇠냄새로 가득 찬 공간인데도 여자는 늘 신기할 정도로 쉽게 잠에 들었다. 그러나 악몽 만큼은 매일 밤 계속해서 꾸는 것 같았다. 남자는 여자의 표정을 보면서 알았다. 엿볼 수 없는 기억. 용서해줘. 여자는 눈을 감은 채 헐떡이고 흐느끼면서 중얼거렸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눈물이 선을 남기며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악령들이 꿈속에서 둘러싸고 있는데도 그녀는 팔을 휘두르지 않았다.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움직일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이윽고 하얀 손가락을 죽은 것처럼 펼쳐 놓은채 서서히 깨어날 뿐이었다.


 여자가 반쯤 뜨면 지켜보던 남자는 그제야 다시 천천히 망치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너무 시끄럽지는 않게. 그러면 젖어있는 갈색 눈동자가 의지할 곳을 찾는 아이처럼 자신을 응시하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밤중에 작업을 하는 일이 자꾸만 늘어나는 이유였다.



 *


 다음으로 여자에게 선명한 순간은 여름의 끝을 알리는 장마가 한창인 어느 날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기간엔 공방의 일거리가 줄어, 남자는 타오르던 화로불을 일찍 꺼트렸다. 여자는 감겨가는 눈으로 남자가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 그래?


 일어나.


 왜?


 당분간 공방을 비워둘 거야. 집으로 가자.


 ……나는 여기에서 자겠어.


 같이 가는 게 맞아. 남자가 말했다. 불이 꺼지면 공방에 몰래 숨어들어오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들켜서 소문이라도 돌면 위험해.


 여자는 몸을 반 쯤 일으키고 남자를 바라봤다. 그녀는 그의 표정을 가만히 지켜봤다.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 남자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하지만 조용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함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자가 한밤중에 밖으로 나오는 건 공방에 도착하고서 처음이었다. 저택에 머물더라도 잠은 늘 안에서 청했으니까.


 그의 뒤를 쫓으면서 마냥 불안해지는 건 아니었다. 잃을 게 더 뭐가 있다고. 그러나 남자는 횃불도 들고 있지 않았다. 흐린 하늘엔 잠시 비가 그쳤을 뿐이었고 별도 없이 달무리가 구름 사이에 연하게 졌을 뿐이었다.


 결국 뒤쳐져가던 여자가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


 앞서 가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와, 뒤쳐지던 여자의 손을 쥐었다.


 미안하군.


 …별로.


 남자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은 숲 사이에 난 샛길이었다. 그림자처럼 갈라진 젖은 잎사귀들이 서로 부딪히며 조금씩 물방울을 떨어트렸다. 마주 쥔 손바닥이 유령처럼 차가웠다.


 걸음을 늦춘 남자는 내딛으면서 여자에게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마을에 전해져 오는 오랜 전설에 대한 이야기. 이 숲은 오래전부터 자주 '검은 숲'이라고 불렸는데 한밤중에는 자주 사악한 악령들이 떠도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마을 아이들이 그런 얘를 듣고 자랐고 실제로 들은 아이들도 있었다.

 악령이 나타나서 아이를 잡아간다고 하더군. 어릴 적 농담과는 연이 없는 스승 역시 남자에게 말했다. 그러니 남자도 아이들은 밤에는 숲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금만 자라면 아이들도 모두 진실을 알게 된다. 막 학교에 들어갈 무렵의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8월 마지막 날 숲 속에 모여 부모님들과 다 함께 유령이 우는 소리를 냈다. 이전의 모든 마을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외지 사람들을 겁먹게 하는 방책이자, 마을의 일원이 되었다는 의식었다. 호기심 많은 몰래 마을을 빠져나온 어린 아이들이 숲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의식.


 ……어째서 그런 얘기를 해주는 거야?


 듣고 있던 여자는 남자의 손을 쥔 채 말했다.


 요지는, 유령 같은 건 없다는 거다. …미안하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해서.


 ……바보.


 여자는 손을 고쳐쥐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나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지는 알고 있었다. 이 남자는 알고 있는 것이다. 매일 밤 자신이 악몽을 꾼다는 것.


 


 그러나 유령은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그녀를 찾아왔다. 비가 내리는 밤, 알 수 없는 전장. 빠져나올 수 없는 영원한 악몽 속에서 여자는 소리내어 말했다. 미안해. 살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꿈속에서 자신이 가족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허무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성인의 허리께보다도 작은 여자아이가 달려가 사람들을 찢어 죽이고 다녔다. 인간의 목숨은 얼마나 허무한가. 수십, 수백의 죽은 목숨도 안개만큼 가볍다. 쉽게 찢어지는 근육. 어린 소녀가 창백한 갈비뼈가 드러날 때까지 살을 헤집어 갈랐다. 이름없는 유령병. 모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입이 없었다. 그저 어둡게 번쩍이는 시선으로 지켜보는 여자의 두 눈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어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괜찮아.


 깨어나자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두운 방, 바깥은 어둠 속에서 폭우가 내리지고 있었다. 여자는 잠시동안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었지만, 방금전까지 자신이 누군가를 심하게 외쳐불렀다는 걸 알았다. 남자의 이름이었다. 제대로 얘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목이 부어있었다.


 미안해.


 남자가 조금씩 가라앉는 여자의 눈동자를 살폈다. 엉망으로 땀에 젖어 있었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미안해. 오늘 몸이 안 좋다는 걸 몰랐어. 이럴 거면 조금 더 늦게 데려오는 건데.


 ……어째서? 나를, 이곳에 데려온 거야.


 며칠 전부터 밤에 공방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어.


 ……


 미안해. 


 남자의 낮은 목소리를 듣고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다. 역시,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던 거였다. 여자가 창백한 뺨으로 웃었다.


 어째서 당신이 사과를 하는 거야.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당신이 나를 책임지는 사람이야?


 남자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여자를 보며 말없이 그녀의 뺨에 엉겨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이마 위에 손을 올렸다. 이마는 걱정보다 차가웠지만 몸에는 열이 있었다.


 물 가져올게.


 가지 마. 남자가 일어서려고 하자 여자가 팔을 붙잡았다. 이대로 있어.


 괜찮아. 금방올게.


 남자가 일어나서 방을 나갔다. 여자는 그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온몸을 떨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자신이 이제 얼마나 저 남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의탁하고 있는지를 알았다. 저 사람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기나긴 악몽으로부터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던 것 전부가 남자가 가져와 준 불과 밤 덕분이었다. 쏟아지는 빗소리. 그 짧은 몇 분동안 여자는 하염없이 두려웠다. 그대로 돌아오지 않을까봐. 이대로 밤이 영원히 계속 될까봐.


 돌아온 남자에게 물컵을 받아들고서 여자는 마시지도 않은 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안아줘.


 ……마셔. 당신 지금 약해져서 그래.


 빨리……. 부탁이야.


 남자가 침대에 걸터앉아 자신을 엉거주춤 끌어안아주자 그제야 물을 삼켰다. 몸으로 느껴지는 체온이 적잖이 위로가 되었지만 목이 무척 아팠다.

 그러다가 조금 눈물이 나왔다. 마음이 전부 벗겨져버린 것 같아서였다.


 당신, 나를 더럽다고 생각하지.


 ……아니.


 여자는 남자의 말투를 따라하고서 조금 쉰 목소리로 소리내며 웃었다.


 아니, 나는 더러워.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야. 당신 같은 남자는….


 …나같은 남자가 어떤 남자라는 거지.


 여자는 어둠 속에서 가까운 남자의 얼굴을 지켜보더니, 작게 웃으며 말했다.


 ……바보라고 생각해. 바보 같은 성불구자라고.


 그 순간, 남자는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렇게 말하면서 여자는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의 팔 위에 손을 얹었데 무척이나 떨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생각했다. 수많은 죽음과 늙은 남자들이 이미 이런 식으로 자신의 몸을 안았다고. 몸을 눕히고 사람들이 밤새도록 찔러댔다. 그러나 아, 영혼만은 타락하지 않았었다면. 하지만 여자는 악몽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서 그 쾌락도 받아들였다. 어떤 창녀들보다도 더욱 더 창녀같은 마음으로 밤새 남자를 원했다. 지쳐서 쓰러져 잠드는 아침에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


 ……당신은 당신이 천국에 갈 수 없을거라고 말했지. 당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사실 나는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악귀야. 살은 이미 썩어버렸고 찢어진 영혼은 누더기처럼 겨우 기워놓았지. 나는 창녀야. 누구보다 더러운 죽음의 창녀인데도 죽음을 받아들이지만은 못했던 거야.


 ……죽지 못한 게 잘못인 인간은 없어.


 있어. 여자는 말했다. 당신은 나에 대해서 모르니까 하는 소리야.

 그러나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의 팔을 잡았다.


 시간이 흘렀다. 침묵도 어둠도 조금 더 익숙해 졌다.


 나는 창녀가 되는 여자의 삶을 몰라.


 잠시 후에 남자가 말했다.


 어릴 때 장인에게 주워져 길러졌고 배고파본적도 없어. 그러나 당신의 몸과 영혼이 아름답다는 건 알아.


 ……웃기지마.


 진심이야.

 그리고 잠시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내 어머니는 창녀야. 나를 낳고 죽었지.


 ……겨우 그런 것 때문에 내가 괜찮다는 거야?


 남자는 한숨처럼 내쉬고서 말했다.


 모르겠군. …그러니 나는 당신 말대로 바보일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당신을 처음 본 그 순간에 알았지.


 ……뭘.


 당신이 내게 무슨 짓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내 영혼은 결국 당신에게 종속될 거라는 걸. 나는, 당신에게 한 눈에 반한 거야.


 남자는 한숨처럼 말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려와 얼마나 깊은 밤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밤이었다.

 여자는 그 속에서 오랫동안 남자에게 안긴 채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여자가 말했다. 그럼 내 몸에 입 맞춰줘. 어느 곳도 빈 구석 없이.


 ……


 남자는 잠시 여자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손등과 이마와 눈가에 입을 맞췄다. 여자는 침대에 앉은 채 그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어둠 속에서도 남자의 검은 눈동자는 잘 보였다. 거기에 불꽃이 번지는 걸 보고서 조금은 안도가 되었다. 그에게도 자신이 매력적이라는 걸.

 그런데도 남자는 달려들지는 않았다.

 잠시 지켜보던 여자는 그게 '신사적인' 태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오랜만에 겪어서 떠올리지도 못한 방식이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마침내 남자가 여자의 몸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할 때, 여자가 갑자기 그의 몸을 밀면서 이불을 들고 멀어졌다.


 ……왜?


 자,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줘.


 이런 상황까지 와서, 몸에 땀냄새가 날까봐 무척이나 두려웠던 것이다. 여자는 스스로에게 놀라면서 서둘러 욕실로 달려갔다.



(/계속)




 뭔가... 이야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채롭게 떠올라서 늦어졌습니다.

 생각보다 악역에게도 이야기가 있는 것 같고. 솔직히 사실 처음에는 일주일 후다닥 쓰고 해치울(?)려고 생각했는데 완성하려면 제법 품을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마무리는 지을거라 생각하지만, 계속 기다리신다면 느긋하게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