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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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지원은 준용을 데리고 LAD에 도착했다. 지하 사무실에는 이미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 씨가 말했다.


“딱 맞춰서 왔네. 여기 앉아, 시작하자.”


두 사람까지 자리에 앉자, 조 씨는 빔 프로젝터를 틀었다. 헌데, 빔 프로젝터는 빛을 몇 번 깜빡이더니 꺼져버렸다.


“나 참, 이거 또 이러네.”


조 씨는 애꿎은 빔 프로젝터를 몇 번 치더니 컴퓨터에서 데이터 카드를 뽑아 탁자 위의 소형 홀로그램 발신장치에 꽂았다. 곧바로 호텔신라의 3d 입체도가 나타났다.


“먼저 말해두자면, 여기로 이동하는 건 미세스 리랑 알리사 둘뿐이야. 많이 가봤자 복잡하고 돈만 많이 드니까. 대신 인호가 만일을 대비해 인근에서 대기할 거야. 너랑 우리는 여기서 미세스 리와 연동된 카메라로 상황을 지켜보는 거지. 회장과 대면한다면… 이 마이크에다 대고 말하면 네 목소리가 들릴 거야. 됐지?”


지원이 물었다.


“이동수단은?”


“개인 자동차가 아니라, 무인 고급택시를 이용할 거야. 우버 말이지.”


“호오, 그거 엄청 비싸잖아? 표창 받을 때 한 번 타봤는데, 경찰청 돈으로.”


“인간 기사를 고용할 수도 있지만 이건 보안이 중요하잖아. 인공지능이 낫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이거 입어.”


지원은 익숙한 듯 그것을 받았다.


“새 정장이네. 역시나 방탄이지?”


“그래, 맞으면 아프고 그만인 친구지. 위조 신분증은 안주머니에 있어. 확인해 봐.”


지원의 위조 신분증은 한화시스템 과장 조하나라고 적혀 있었으며, 알리사는 한화시스템 카자흐스탄 지부 사원 알리나 카바예바라고 적혀 있었다.


“알리사는 한국에 파견 온 외국인인 거야. 남들 보는 앞에선 러시아어로 말해 줘.”


“네.”


“방은 미세스 리의 가짜 이름으로 예약했어. 7512호야. 총은 저기 SHR-2077이랑 같이 넣어 둬. 아마 탐지 못할 거야.”


지원은 모든 채비를 마치고 SHR-2077과 총이 든 가방을 들었다.


“이제 시작이야…”


“행운을 빌어. 돌아올 때 쓸만한 거 있으면 가져와도 좋고.”


지원은 준용의 손을 꽉 잡았다.


“꼬마, 잘 지켜보고 있어. 네 형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만나게 되는 순간 무어라 말할지 생각하고 있어.”


준용도 결의에 찬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자.”


LAD 앞에는 이미 우버 택시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이 다가가자 택시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텅 빈 택시 안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저희 우버 택시를 이용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두 분의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오늘 두 분의 편안한 이동을 맡게 된 운전기사 우버-99입니다.”


지원은 택시에 타면서 신기하다는 듯 텅 빈 운전석을 바라보았다.


“이야~ 멋진데? 내 차에도 자율주행 시스템은 있지만 아예 이렇게 운행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칭찬 감사합니다. 목적지까지는 25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지원은 유리창에 손을 올린 채 밖을 바라보던 알리샤를 슬쩍 보더니 다시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봐, 우버-99. 이 택시는 요금이 어떻게 돼?”


“죄송하지만 회사 규정 상 기사들은 요금에 대해 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택시의 요금은 이미 선납이 되어 있습니다.


내내 말이 없던 알리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너, 인공지능으로서 정해진 것에 따라 살아가는 기분이 어때?”


“죄송하지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하는 강인공지능이잖아. 하지만 학습된대로 수행하기만 하는 약인공지능과 같은 삶은 어떻냐는 거야.”


“고객님의 말 대로 저는 ‘강인공지능’입니다. 하지만 저는 택시를 몰기 위해 프로그래밍 되어 탄생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임무이자 삶의 목표죠.”


알리사는 여전히 표정의 변화 없이 자기 앞의 헤드레스트를 쓰다듬었다. 지원은 그 모습이 마치 동물과 교감을 시도하는 사육사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택시의 속도가 줄어들더니 이내 멈췄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두고 내리시는 물건이 없는지 한번 더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고객 여러분이 다시 타러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버-99였습니다.”


택시 문이 열리자 둘은 짐을 챙겨 호텔 정문으로 향했다. 화려하게 빛나는 건물들 사이에 중후하게 검은 빛을 띄며 서 있는 호텔은 양복 입은 사내들이 입구를 지키는 가운데 모든 입장객들이 붉은 빛을 반짝이는 탐지기를 피하지 못했다. 지원이 탐지기 사이에 서자, 양 옆에서 붉은 빛이 머리부터 발 끝까지 움직이더니 손에 들고 있던 가방에서 멈춰섰다. 양복을 입은 사내가 다가왔다.


“손님, 실례지만 호텔에 ‘정체불명의 기계장비’를 가져오신 이유가 있습니까? 혹시 저희 측에서 확인해봐도 되는지요?”


지원은 그 뒤편에 다른 사내가 양복 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것을 보더니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죄송하지만 저희 회사 기밀이라서 말이죠. 해외에서 파견이 와서 교육 겸 이런저런 일로 들고 온 겁니다.”


사내는 뒤로 물러나 허리를 살짝 굽혔다.


“실례했습니다. 다음 분.”


지원이 통과하자 이번에는 알리사가 탐지기 사이에 섰다. 붉은 빛이 그녀를 스캔하던 그때, 갑자기 탐지기가 꺼져버렸다.


“뭐야? 이거 왜 이래?”


“무슨 일이야?”


“몰라, 탐지기가 갑자기 맛이 갔어.”


알리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Что-то случилось(무슨 일 있나요)?”


“아, 아니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런 일은 처음이라…”


하지만 몇 번을 다시 시도해도 탐지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슬슬 알리사 뒤에 선 사람들의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죠?”


“벌써 20분이나 기다렸다고요!”


누군가 말했다.


“야, 일단 저 여자는 통과시키고 휴대용 탐지기 들고 대충 검사해서 보내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알리사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들어가시죠. 호텔 신라입니다.”


“Спасибо(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호텔 프론트 앞에 섰다. 사이버웨어가 존재하지 않는 듯 완벽하게 피부를 덮은 직원이 미소를 지었다.


“호텔 신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체크 인 하셨나요?”


“조하나로 방이 예약되어 있을 건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조하나 님. 방은 7512호입니다. 카드키를 받아주세요.”


지원이 카드키를 받자 직원은 허리를 굽혔다.


“좋은 시간 되세요. 호텔 신라입니다.”


“가자, 알리…나.”


“Да(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지원은 CCTV를 확인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회장이 온다더니, 보안이 쓸데없이 철저하네.”


75층에 도착한 둘은 7512호 문을 열고는 감탄했다. 그 어떤 곳보다 화려한 객실은 방의 모든 물건들이 왠만한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것들이었고, 검은색으로 마감된 벽체는 이용객이 원하는데로 색을 바꿀 수도 있었다. 지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기를 열어 옷걸이에 정장 외투를 걸어 놓은 다음 소파에 주저 앉았다.


“알리사, 조 씨한테 연락하자.”


잠시 후, 조 씨가 말했다.


“도착했어?”


“그래. 여기 죽이는데? 순간 일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싶었어.”


“그럴만도 하지. 알리사는?”


“화장실에. 씻고 있어.”


“나오면 시작하자.”


몇 분 뒤, 알리사까지 나오자 조 씨는 다시 입을 열었다.


“미세스 리, 일단 SHR-2077을 꺼내. 조종 데이터 카드는 알리사한테 주고.”


지원이 그대로 따르자, 알리사는 단숨에 SHR-2077을 조종했다.


“좋아, 알리사. 우리 목표는 같은 층의 관리실을 해킹하는 거야. 이거로 끝나면 좋겠지만, 조금 틀어져도 레나가 나서서 완료할 거니까 걱정 마. 방 천장에 덕트로 통하는 곳이 있을 거야. 그곳으로 SHR을 조종해. 광학위장 키는 거 잊지 말고.”


천장의 환기구가 잠깐 열렸다가 닫히자, 조 씨는 다시 말했다.


“보고 있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쭉 가면 관리실이 있어.”


“관리실에 도착했어요. 안에 있는 사람은 총 셋이고, 저 같은 해커가 하나 있어요.”


“들키지는 않았지?”


“자기들끼리 이야기 중이고, 해커는 서버에 접속 중인지 의자에서 아무것도 안 하네요. 해커 먼저 제압할게요. 잠시만, 경비원들이 뭐라고 말하는데 중요한 것 같아요. 재생할게요.”


“VIP도 오시고, 그 경호실장이라는 사람도 오는 거야?”


“그래, 너도 한번 봤잖아. 그 거인 말이야.”


“씨발, 삼성 경호원들 만으로도 귀찮아 죽겠는데 그 사이코패스도 봐야 하냐?”


“또 뭐 이것저것 달고 온다고 들었는데, 망할… 또 얼마나 때려부수려고 그러는지.”


지원이 말했다.


“아담도 오는 모양이야. 일이 귀찮아지겠는데? 이제 해킹 해버려.”


잠깐 시간이 지나더니 알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한동안은 못 일어날 거예요. 바로 방화벽을 뚫을게요.”


지원은 감탄한 듯 알리사를 쓰다듬었다.


“대단한데? 경찰 소속 해커들보다 뛰어난 실력이야. 그 밥벌레들은 상대도 안 되겠어.”


곧바로 알리사의 두 눈이 반짝였다.


“방화벽 해킹 완료. 정확히는 방화벽에 아주 작은 구멍을 뚫은 거지만요.”


“수고했어. 남은 건 레나가 알아서 할 테니까 쉬고 있어. 한두 시간은 걸리거든.”


알리사가 연결을 해제하자, 지원은 물병을 건넸다.


“잘 했어. 좀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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