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https://arca.live/b/writingnovel/105822103
고요하다.
산들바람에 나뭇잎과 자갈이 뒤엉켜 구르는 것도, 햇빛에 비춰 밝게 빛나는 나뭇잎을 갉아먹는 송충이도.
세상이 흐르듯 나무도 세월을 타고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다.
나무 앞에 도착한 소년은 어떠한 지점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다.
자세히 보니 옹이다.
옹이는 소년이 손으로 살짝만 뻗어도 되는 곳에 나있지만 커다란 나무 위를 목이 빠져라 쳐다보면 더 많은 옹이를 볼 수 있다.
어떤 거는 유달리 크고 어떤 거는 기묘하게 생겨 기억하고 싶지 않으며 어떠한 거는 아예 옹이구멍이 옴팡지게 파여있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옹이를 구경하던 소년은 가여이 여겨 두 팔을 벌려 나무를 덥석 하고 안는다.
나무를 안고 귀를 댄 소년은 주의를 기울여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언젠가 인형이 나를 발로 뻥 차며 말한 그 목소리를 닮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언젠가 아직 모두가 나무가 되기 전, 앳된 모습의 내 목소리와도 닮았다.
안고 있는 나무에서 다시 귀를 뗀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본다.
커다란 나무 위의 태양은 높이 달린 잎사귀에 가려 드문드문 보인다. 이렇게 크게 될 거라곤 어릴 때 오줌을 싸며 생체 거름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던 시절엔 상상도 못하였다.
인형의 말만 믿고 작은 나무를 키우기 위해 고생하던 그 때가 떠오른다.
엄마가 김장할 때 쓰시던 고무대야에 물을 한가득 넣고 부으려 했지만 너무나도 크고 무거워 결국 넘어져 울면서도 양동이에 나눠 담고 낑낑대며 수돗물을 퍼주었다. 나중에는 창고에 있는 호스를 연결하여 좀 더 편하게 물을 주었다.
동네 할아버지가 하시는 꽃집으로도 가 모종삽으로 비료도 조금씩 퍼갔다.
할아버지께는 나중에 다시 사정을 말하고 용서를 구할 생각이라 비료를 가져갈 때 마다 옆의 메모지에다 삐뚤빼뚤하던 글씨로 미안하다는 말과 함게 가져간 비료와 양을 적었다. 나중에는 수레에 비료를 담아 옮기기도 하였다.
어느 순간 인형이 말이 없어지길래 예전에 학교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식물에 칭찬을 하면 좀 더 잘 자란다고 하셔서 어떻게든 억지로 지어내며 칭찬도 해주었다.
나중에는 거부감이 덜해져서 칭찬 뿐 아니라 작은 담소도 나누게 된다. 모두가 나무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더이상 말도 안해주는 커다란 나무가 되어버린 인형이지만 계속해서 조금이라도 말을 걸어주었다.
그렇게 묘목은 마을을 뒤덮을만한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세상은 고요하고 나만이 소리를 내고 있어."
물론 세상은 대답이 없다. 나무 또한 대답이 없다.
"내가 소리를 내고 있는대도 이렇게나 반응이 없다는 건 뭘까? 내 소리가 닿지 않는 걸까?"
물론 세상의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나무의 대답 또한 들리지 않는다.
"더 크게 얘기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더 강하게? 더 날카롭게?"
물론 세상의 대답은 들을 수 없다. 나무의 대답 또한 들을 수 없다.
"...아냐."
나무에서 손을 뗀 소년은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를 주워 옹이에 대고 슥슥 긋기 시작한다.
"모두가 나를 보고, 모두가 나를 듣고 있었어. 나무가 되어,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리면서 말이야."
거침없는 그 손길은, 마지막 획을 그은 뒤 나무 아래 쌓던 돌탑 위에 사뿐히 조약돌을 내려 놓는다.
"내가 말하려 하지 않은 거야. 내가 듣지 않으려 한 거고, 내가 그들에게 가지 않으려 한 거지. 마치 방학이 끝나는 날 숙제를 못끝내서 학교 가기 싫은 어린 아이처럼 말이야."
세상에 바람이 포근히 분다.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들이 마치 쓰다듬듯이 흔들린다.
"넌 강하고 큰 나무가 되면 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고 했지.... 어때? 여기저기 좀 흉한 옹이도 있지만... 괜찮은 거 같아?"
세상에 햇빛이 따스히 내리쬔다.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 사이로 자그마한 빛이 다가온다.
"너는 좀 더 강해지고 커질 수 있을까? 아직은 의문투성이지만... 내가 열심히 가꿔줄게. 모두를 나무에서, 다시 원래대로 볼 수 있게 말이야.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줘."
그리고 청년은 돌아선다.
소년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를 뒤로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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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꿈을 펼쳐라 그것이 바로 문학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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