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자살을 결심한 계기는 사소했다. 한 달 전부터 애지중지 키우던 금잔화가 죽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금잔화가 자신보다 굳세게 살아간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들어 버린 식물을 목격했을 때, 소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 집을 나섰다.


 주홍색으로 빛나는 산 정상. 소녀가 뺨에 붙인 거즈로 여름 바람이 뜨겁게 불어온다. 정상 가장자리를 빙 두르듯 나무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다. 목적은 당연하게도 추락을 방지하기 위함이지만, 울타리는 소녀의 허리조차 닿지 않았다. 또래와 비교해 성장이 더딘 소녀가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울타리를 붙잡은 손만이 소녀의 유일한 버팀목. 눈을 감고, 몸에서 힘을 빼면 그걸로 끝. 마지막으로 소녀가 고개를 떨군다. 절벽 밑에는 어둠만이 짙게 깔려 있었다. 노을이 밝게 비추어주는 정상과 절벽 아래 어둠은 마치 다른 세상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저 아래엔 지옥이 있는 걸까?


 이젠 별 의미도 없는 질문이 소녀의 마음속에서 고독하게 울린다.


 소녀가 눈을 감는다. 소녀가 심호흡한다.


 셋에 뛰어내리는 거야.


 하나, 둘….


 “자살이냐?”


 누군지 모를 목소리에 소녀는 미끄러질 뻔했지만, 손은 계속 울타리를 잡고 있었다. 이대로 떨어지면 그만인 것을. 어째서 손을 놓지 못한 걸까. 자기혐오에 빠졌지만, 소녀는 울타리를 잡고 웅크려 앉았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소녀 자신도.


 돌연 나타난 남성도.


 “뭐 이런 데서 죽으려고 그러냐?”


 딸꾹질하며 다가온 남성이 소녀 옆 울타리에 팔꿈치를 올려놓는다. 남성의 초점 풀린 눈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새빨간 노을을 보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소녀는 눈만 깜빡였다. 눈앞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보통 막으려고 하지 않나? 적어도 소녀의 상식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이 남성은 자살을 막기는커녕, 분명히 말했다. “자살이냐?”라고. 산 정상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라는 건, 소녀라도 단언할 수 있다.


 그는 정상이 아니다. 빠르게 판단한 소녀의 눈동자가 일그러진다.


 “이름은?”


 “개, 개, 개인, 저, 정보, 입니다.”


 말하는 소녀의 얼굴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빨갛게 변했다. 이래서 말하기 싫은 건데. 어릴 때부터 이랬다. 언어 장애의 일종이라고 하는데, 입을 열 때마다 말을 더듬어서 늘 괴롭힘당하기 일쑤였다.


 소녀는 슬쩍 남성을 흘겨봤다. 분명 그도 말을 더듬는 나를 보고 신기해하거나 이상한 눈으로 보겠지. 늘 그랬으니까.


 “자살하려는 놈이 개인정보를 따져?”


 소녀의 예상과는 달리, 남성은 폭소를 터뜨렸다. 비웃음이라거나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억지웃음이 아니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녀의 말더듬증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웃음이었다.


 “나이랑 어느 학교인지도 안 알려주겠네?”


 소녀는 이번엔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나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대화를 좋아했다.


 남성은 곤란하다는 듯 앓는 소리를 내더니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남자, 술, 담배. 소녀가 싫어하는 삼 요소가 전부 모였다.


 소녀의 안색이 창백해지자, 남성은 한숨을 토하곤 꺼낸 라이터와 담배를 어둠 속으로 던져 버렸다. 어둠이 라이터와 담배를 집어삼켰지만, 소리는 없었다.


 “됐지?”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소녀는 고민하며 제대로 남성의 모습을 보려고 했다.


 헐렁한 회색 나시티와 검은 반바지. 갈색 머리는 정돈하지 않은 건지 이곳저곳 삐죽 튀어나왔고 수염도 깎지 않았다. 여기에 빈 술병이 세 개나 들어있는 검은 봉지를 추가하니, 그야말로 완벽한 ‘백수’ 패션이었다.


 남성은 어째서 여기에 있는가.


 또 무슨 이유로 소녀를 막아섰는가. 애초에 막아선 게 맞기는 한 건가. 여러 궁금증이 머릿속에서 뛰어노는 와중, 남성이 손가락으로 소녀를 가리켰다.


 “그건 또 뭐냐?”


 소녀의 오른쪽 뺨에 붙은 거즈를 가리킨 것이다. 소녀는 재빠르게 거즈를 한쪽 손으로 가렸지만, 이미 들킨 걸 숨길 수도 없는 노릇.


 걱정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남성은 소녀의 거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말 좀 똑바로 해 보라고 장애년아!’


 흐릿하게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환상이 남성과 겹친다.


 “아.”


 그 외마디만을 남긴 채, 소녀의 몸이 뒤로 쓰러진다.


 죽는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문장에, 소녀는 신기하게도 편안함을 느꼈다.


 아프진 않을까?


 그런 불안이 엄습했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아프더라도 상관없어. 내가 원하는 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니까.


 소원이 이루어지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고 그건 소녀도 마찬가지다. 늘 꿈꿔왔던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지옥은 어떤 곳일까? 역시 끔찍하고 고통만 존재하는 세상일까? 그래도 뭐.


 ‘이곳보단 낫겠지.’


 죽기 전에 흔히 본다는 주마등조차, 소녀에겐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소녀가 걸어온 궤적들은 주마등으로 흘러나올 가치조차 없다는 뜻이겠지.


 즉, 무의미. 참으로 허무한 인생이었다. 남는 것도 없고 남긴 것도 없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식물조차 무언가를 남기는데, 나는 대체 뭘까.


 죽는 것도 참 오래 걸리는 거구나.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세상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인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소녀는 착각하고 있었다. 죽을 때가 되어 세상이 느려진 게 아니었다. 소녀가 공중에서 멈춘 것이었다.


 후드득. 자갈들이 얼굴을 쓸고 내려가자, 소녀는 눈을 떴다. 소녀의 몸은 공중에서 좌우로 흔들리고 있을 뿐, 그 이상 추락하지 않았다. 축에 매달린 무거운 추처럼 왕복 이동만 반복하던 소녀가 오른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고개를 든다.


 남성이 곧 부러질 것만 같은 울타리에 의지한 채 소녀를 붙잡고 있었다.


 왜 나를 구한 걸까. 의문을 가지는 것도 잠시. 남성은 소녀를 끌어올렸다. 지상과 작별한 시간은 수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몇 년 만에 땅을 밟은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빠져 풀썩 주저앉은 소녀 옆에서 남성도 똑같은 자세로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왜, 왜, 저, 저를….”


 구하신 건가요. 소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성이 주도권을 가로챘다.


 “몰라.”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낸 남성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일어났다. 바지에 묻은 흙을 털고 소녀에게 손을 뻗는다.


 대체 이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일까. 처음엔 자살을 방관하기만 하는 사람인가 싶더니, 갑자기 구해주고. 그러다가 손을 뻗어주기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해 주는 사람을, 소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의심한다. 저 손에도 흑심이 가득 담겨있을 거라고.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조차 의심을 품는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며, 소녀는 스스로 일어났다. 갈 곳을 잃은 손을 멋쩍게 회수한 남성이 휴대전화를 꺼내고 혀를 찬다.


 “벌써 7시야?”


 말투와 다르게 기분 좋아 보이는 남성과 반대로, 소녀의 안색은 실시간으로 나빠졌다. 이미 소녀의 뇌리에선 미래가 보였다. 허락 없이 집을 나선 것, 통금 시간을 어긴 것. 아버지와의 약속 두 개를 동시에 어긴 이상, 집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아니. 애초에, ‘집’이란 게 실제로 있었나?


 소녀가 지식으로 알고 있는 ‘집’이란, 안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소녀에게 집은 없다. 처음부터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장소를 원한다. 하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건물에도, 학교에도, 병원에도. 이 마을 어디에도, 소녀의 존재를 허락하는 장소가 없다. 치맛자락을 꽉 붙잡고 고개 숙인 소녀의 뺨을 타고 액체가 흐른다. 지면을 적시는 눈물을 깨닫고 남성이 제안한다.


 “우리 집 올래?”


 고개를 든 소녀의 눈가엔 눈물이 어려있었다. 여름의 노을빛이 반사되어 그것이 반짝였다. 보석 같다고 생각하면서, 남성은 코웃음 쳤다.


 그의 제안에서, 웃음에서, 소녀는 광명을 찾았다. 소녀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 더러운 마을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산의 정상까지 오는 길도 사실은 숨겨져 있었다. 인생의 쓴맛을 느끼지 못한 말괄량이 시절, 새장 같은 마을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여기저기 수색하다가 찾은 비밀 장소 중 하나다.


 소녀는 이 마을이 싫었다. 오직 역사와 권력만을 중요시하는 꽉꽉 막힌 마을 따위, 진작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건 그럴 용기가 없었고, 애초부터 이 마을은 나가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마을을 나가기 위해선 흔히 말하는 ‘촌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당연하게도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렵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이상, 이 마을에 뼈를 묻어야 한다. 탈출은 용서하지 않는다. 근처에 있는 기차도, 버스도, 자동차도. 전부 촌장의 편이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 사람을 따라가면, 모든 것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소녀는 자신의 직감을 의심하지 않으며 손을 뻗었다. 소녀가 손을 뻗자, 기대도 안 했는지 남성은 눈을 크게 떴다.


 “진짜로?”


 소녀가 뻗은 가녀린 팔. 가릴 생각도 없어 보이는 손목의 무수한 흉터는 못 본 척하기로 하고, 남성은 소녀의 손을 잡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운 손이었지만, 오히려 좋다.


 “이름은?”


 이제부터 동거할 사람이니만큼, 이름을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남성이 물었다.


 “개, 개인-.”


 “개인정보? 그럼 내가 먼저 말하면 되지? ‘강대찬.’”


 상대방이 먼저 이름을 댄 이상, 이제 개인정보 운운도 쓸모가 없어졌다. 소녀는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시선을 돌린 채 입을 열었다.


 “오, 온, 온아, 람, 입니다.”


 드디어 이름을 말해준 그녀에게, 대찬은 술에 취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같이 도망갈까.”


 대찬은 술병으로 가득한 봉지를 챙기며 정상에서 내려갔고, 그 뒤를 아람이 조심스레 따라간다.


 2024년 7월 7일. 시골의 ‘평화 마을’에서 소녀 한 명이 실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