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세상 어디든 이어져 있어.


내가 독일로 유학갈 때 '언니'가 해준 말이었다.


빙의한 지 하루만에 독일로 날아가게 되어서 정말 당황했었는데.

다행히 원래 몸의 기억이 남아있어서 망정이지.


-외로울 땐 하늘을 올려다보렴.

그 너머에 나나 다른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공항에서 언니가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었다.

언니와 계속 같이 살았다면 당연하겠지만 몸에 적응하는 데에 한참 고생을 했을 테니.



독일로 유학온 지도 몇 년이 지났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도 생겼고 좋은 선생님들도 만나서 향수에 젖지는 않았다.


장래에 유럽에서 비올리스트의 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언니가, 내 바로 옆에서 웃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지금, 언니는 뭘 하고 있을까."


방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독일이 지금 밤이니까, 한국은 아침이겠지.


그때,


전화가 왔다.

언니에게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구텐 탁. 언니야."


스마트폰 화면에 언니의 얼굴이 보인다.


영상 통화를 건 모양이다.


"여기는 지금 밤이니까,  Guten Abend야, 언니."

"아…… 그랬지. 착각했네. 유진아. 잘 지냈니?"

"응, 덕분에."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까 여러모로 걱정되네. 밥은 잘 먹고 있어? 귀찮다고 대충 떼우면 안 돼."

"괜찮아. 옛날에는 언니가 밥을 차려줬었지만 이젠 스스로 잘 챙겨 먹고 있어."


언니는 작년에 결혼했다.

아마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고 있겠지.


"잔소리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미안. 나도 어쩔 수 없나 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은 나와 언니 뿐이라 더 마음이 쓰이는 거겠지.

"언니는? 밥은 잘 먹고? 형부는 잘 지내시고? 아, 슬슬 학원제 할 시기였나?"

"맞아. 기억하고 있었구나.'


언니는 음악 교사다.

언니가 일하는 소피아 여학교는 예체능으로 유명한 명문 여학교다.

학생들의 감성을 키우기 위해 일반적인 수업에 더해 음악, 무용 등의 전문 수업도 한다.


"……저기, 유진아. 실은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어.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들어줄 수 있어?"


일상적인 대화를 끝내고 슬슬 끊으려나 하는 타이밍에 언니가 말하기 힘들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언니가 임신했나 보다.


"뭔데 그래? 서운한데 언니. 내가 언니 부탁을 거절할 리 없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얼마든지 들어 줄게."


"……고마워.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내 대신에 잠깐 임시 교사로 일 좀 해줄 수 있을까?"


올 게 왔군.


"음, 알겠어. 언니 대신에 잠깐 아이들이 연주하는 걸 지도해주면 되는 거지? 학원제에서 연주회를 할 테니까."


게임 스토리대로 될 줄은 몰랐지만 이럴 줄 알고 다른 악기도 틈틈히 공부했으니 기본적인 지도는 해줄 수 있다.

준비해두길 잘했네. 


"……맞아. 사실 내가 임신해서 출산휴가를 냈거든. 이제 안정기라 너한테 부탁 좀 할게. 들어줘서 고마워."

"정말이야? 언니, 축하해! 결혼한지 아직 1년도 안 됐잖아? 빠르네~."

"……어릴 때는 착한 아이였는데." 


손윗사람한테 이런 생각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참 변함없이 귀엽다니까.


"……뭐 아무튼 고마워. 그럼 들어주는 걸로 알고 있을게. 수업은 다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면 될 거야. 지낼 곳도 있고, 준비는 내가 다 해놓을 테니 편하게 몸만 오면 돼. 너도 너대로 바쁠 테니까 천천히 정리하고 와."

"알았어, 언니. 출국하기 전에 전화할게."

"그래. 그럼 그때 보자."


원래는 선생님도 여자만 할 수 있는 학교라 여장물이라는 걸 알려 주는 대화가 오가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빙의할때부터 여자여서 그냥 지나갔다.

여장을 안 해도 되어서 다행인가.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휴학계나 제출해두고 잠이나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