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조명, 투명한 유리벽, 벽 너머에서 들리는 연구원들의 소리와 기계음.


이 실험실에 온 지 한 달 정도 지난 것 같은데도, 오메가는 이 삭막한 실험실의 모습에 정감이 가질 않았다.


"그 중에서 제일 싫은 건, 이 상자지."


오메가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앞에 놓인 상자를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상자 위에는 파란 버튼과 빨간 버튼 두 개가 달려 있었는데, 하나는 상자가 열리며 음식이 나오고, 다른 버튼은 머리에 달려 있는 장치를 작동시켜 전기 자극을 주었다.


두 차례 이 실험을 했었던 오메가는 첫번째에는 파란 버튼을, 두번째에는 빨간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두 실험 다 각각 다른 버튼을 눌렀음에도 오메가는 온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전기를 맛보아야만 했다.


"그럼 둘 다 꽝인 거 아니야? 대체 뭘 눌러야 되는 건데?"


오메가가 두 개의 버튼을 보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오메가를 밀쳤다.


툭-


"우왓?!"


실수가 아닌 제대로 힘을 실어 밀어버린 탓에 오메가는 중심을 잃고 상자 위로 엎어져버렸고, 파란 버튼이 오메가의 몸에 의해 눌려버렸다.


파지직-


"으그으으으으으윽-!!!"


머리에서 발 끝까지 퍼지는 전기 자극에 오메가는 신음을 흘리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오메가를 밀친 장본인인 알파는 그런 오메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왜 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거야? 내가 지나갈 수 가 없었잖아."


손에 들린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 한 입 베어물은 알파는 오메가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천천히 음식을 씹기 시작했다.


"아~ 역시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니까?"


"헤헤, 리더 덕분에 우리도 이렇게 실험을 성공하고 말이야."


알파의 뒤를 따라 온 베타와 감마는 품 안에 음식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알파는 먹고 있던 음식을 알파의 머리를 향해 던지며 말했다.


"그러니까, 처음 왔을 때 나한테 잘 했으면 이런 일은 없잖아. 안 그래?"


"맞아맞아. 멍청한 녀석."


"멍청한 녀석, 멍청한 녀석!"


"멍청하니까 저 간단한 실험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거지. 이제 가자, 다른 실험도 어서 헤치우고 쉬게."


마지막까지 오메가를 비웃으며 알파 패거리가 멀어지자 오메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쳇, 자기들도 똑같은 실험체면서."


오메가는 알파가 향한 방향으로 눈을 흘기면서도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집어들었다.


실험실에서의 실험은 모두 각기 다른 실험들이지만, 실험 결과로 인한 보상은 모두 음식이었다.


연구원들이 음식을 넣어주는 시간은 오직 점심 뿐이었고, 배고픈 실험체들이 먹을 것을 구하려면 연구원들이 준비해 둔 실험을 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실험을 못하면 쫄쫄 굶어야 된다니, 서럽다 서러워."


오메가는 음식을 으적으적 씹어 삼키고는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하아- 젠장맞을 곳."


저 빌어먹을 상자도, 유리벽이라 숨을 장소도 없는 이 실험실도, 실험실 밖에서 자신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있는 연구원들도, 너무나도 싫었다.


실험실을 빠져나갈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실험실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천장의 거대한 구멍은 연구원들을 제외하면 함부로 열 수 없었고, 실험실 안에는 유리벽을 부술 만한 물건은 없었다.


결정적으로, 이 실험실 안에서 대놓고 나가고 싶다고 얘기하는 실험체는 오직 오메가 뿐이었다.


다른 실험체들은 실험체들의 우두머리인 알파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힘겹게 실험에 참여하고 있었다.


"에휴, 적어도 딱 한 명이라도 나랑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면 좋을텐데."


매번 자신 혼자서 실험실에서 나가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자니, 이제는 실험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오메가는 다시 상자 앞에 섰다.


"그래. 내가 적응해야지."


시간이 지나면 나도 다른 실험체들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실험에 참여할 수 있을 거야.


오메가는 버튼을 신중히 살펴보고는 파란 버튼을 조심스래 눌러보았다.


파지직-


또다시 온 몸을 관통하는 전류에 오메가는 생각했다.


'그래도 이 상자는 절대 적응 못할 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실험이 종료되고, 실험체들의 머리에서 실험장치를 빼낸 연구원들은 조명을 끄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거대한 기계들에게서 나오는 빨간 불빛만이 켜진 실험실에서, 알파는 자연스럽게 실험체들을 통솔하여 실험실 중앙으로 모였다.


"자자, 빨리 모여. 피곤하니까."


실험실 가운데로 옹기종기 모인 실험체들은 알파를 중심으로 바닥에 누웠다.


"아아~ 결국 오늘은 그 실험에 통과 못했어."


"그래? 그 실험 끝나고 주는 치즈가 진짜 맛있는 건데."


실험체들은 오늘 했던 실험에 대해 얘기하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험에 지친 오메가는 대화소리에 눈쌀을 찌푸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지치지도 않나. 어떻게 실험이 끝나고도 실험 얘기를 할 수가 있지?'


같은 실험체이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실험체들을 보며 오메가는 귀를 막은 채 등을 돌렸다.


"하아- 여기서 나갈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는데."


다른 실험체들이 듣지 못하게 조용히 중얼거리며 오메가는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모두가 잠에 빠진 시간, 한참 잠에 빠져있던 오메가는 묘하게 귀를 간질이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


드르르륵-


살아생전 처음 들어보는 희안한 소리에 오메가는 반쯤 감긴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체 무슨 소리야, 이건."


눈을 비비며 주변을 살펴보니 다른 실험체들도 신경 거슬리는 소리에 하나둘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건 어떤 녀석 코골이야? 오메가냐?"


알파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묻자 오메가도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뭔 헛소리야, 나 일어나 있거든?"


"뭐야. 그럼, 대체 이건 무슨 소린데?"


알파가 주변의 실험체들을 둘러보며 물어보자, 알파의 의문에 답을 알려주기 싫다는 듯 갑자기 기묘한 소리가 멈추었다.


갑작스러운 정적에 실험체들 모두 긴장한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실험실 저 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파! 모두들!"


실험실 저 편에서 알파의 앞까지 한달음에 달려 온 델타는 자신이 달려 온 실험실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크, 크, 크, 큰일이야!! 실험실에 구멍이, 커다란 구멍이 뚫렸어!!"


"구멍?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실험실 유리벽이 얼마나 단단한데."


"아, 진짜라니까!! 내가 이상한 소리 때문에 가보니까, 누가 커다란 구멍을 뚫고 있었다고!"


델타의 말에 오메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커다란 구멍?"


구멍이라는 단어에 오메가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알파는 델타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일단 델타가 말한 곳으로 가보자. 모두 움직여!"


델타를 따라 이동한 실험체들은 진짜로 자신들이 지나갈 수 있을 만한 구멍이 뚫려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뭐야, 진짜 구멍이 뚫려 있잖아?"


실험체들은 구멍으로 가까이 다가가 어두운 실험실 밖을 기웃거리며 살폈다.


알파는 델타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걸 누가 와서 뚫었다고?"


"응. 이상한 쇳덩이로 순식간에 뚫고는 가버렸어."


"대체 누구지? 그 사람은 왜 저런 구멍을 뚫어놓은 걸까?"


알파는 구멍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 편, 구멍 너머로 어두컴컴한 실험실 밖을 내다보던 오메가는 심장의 고동이 점점 커져가는 걸 느꼈다.


'나갈 수 있어. 이제 여길 나갈 수 있다고!'


드디어 이 실험실에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오메가는 기쁜 마음으로 알파에게 다가갔다.


"알파, 어서 모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뭐?"


"저렇게 구멍도 뚫렸잖아! 네가 우리 중에 리더니까 얼른 모두한테 밖으로 나가자고……."


"잠깐."


알파는 손을 들어 잔뜩 들떠있는 오메가를 제지하였다.


"지금 여기서 나가자고 하는 거야? 어째서?"


"뭘 어째서야. 이 실험실을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겼잖아!"


오메가는 구멍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오메가는 알파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어째서 우리가 이 실험실을 나가야 되는 건데."


"그야…… 그야, 당연하잖아!"


지금이 다른 실험체들의 용기를 북돋아 줄 때라고 판단한 오메가는 실험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매일같이 전기 자극 실험이며 이상한 실험들만 잔뜩하고, 먹을 것도 제대로 안 주고, 머리에는 무겁기만 한 장치도 붙이고!!"


너희도 나랑 같은 생각이잖아.


매번 이런 실험만 시키는 거, 진짜 싫잖아.


그렇지?


오메가는 동의를 구하기 위해 실험체들을 쳐다보았지만, 오메가를 보는 실험체들의 시선은 알파와 똑같았다.


"저 밖으로 나가면 그런 삶도 끝이잖아! 자유, 자유라고!! 매일같이 실험을 할 필요도 없고,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그런 자유!!"


생각과는 다른 실험체들의 반응에 오메가는 더욱 힘주어 말했지만, 실험체들의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당혹스러워 하는 오메가에게 알파는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실험실 밖으로 나간다고 쳐. 그럼 그 다음은? 나가면 뭐 어쩔건데?"


한심한 녀석, 알파는 오메가의 가슴팍을 손으로 쿡쿡 찌르며 말했다.


"밖에 나가면 네가 말한대로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잘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있어?"


오메가는 알파의 손을 붙잡으며 반박했다.


"확신 할 순 없어. 하지만, 저 밖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다고! 실험이 아니면 아무 것도 못하는 이 실험실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뭐든 할 수 있다고? 실험실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네가 실험도 제대로 못하는 멍청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정도로 멍청할 줄은 몰랐다."


알파는 오메가의 손을 뿌리치고는 실험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실험실 안은, 실험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먹을 건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실험에만 제대로 참여하면 내가 쉬고 싶을 때 쉬고,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어. 안 그래?"


"맞아."


"그럼그럼. 실험실이 얼마나 편한 장소인데."


알파의 말에 실험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 밖은 어때? 밖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먹을 걸 구하는 방법이나 우리가 쉴 수 있을 만한 장소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몰라. 그런 곳으로, 넌 우리한테 나가자고 얘기하는 거야?"


다른 실험체들을 등 뒤에 둔 채, 알파가 성이 난 목소리로 말하며 다가오자 오메가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다들 실험하면서 불평하고 힘들어했었는데.


그런데, 왜 다들 실험실 안에 있고 싶어 하는 거야?


오메가가 구멍 앞까지 다다르자 알파는 오메가의 가슴팍을 툭 치며 말했다.


"혹시라도 우리 중 누구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네가 책임 질 수 있어? 책임질 수 있냐고."


오메가에게 으름장을 놓던 알파는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알았어. 실험실에 저런 구멍이 뚫린 건, 일종의 실험인 거야."


"실험? 지금 이게 실험이라는 거야?"


한 실험체의 질문에 알파는 오메가에게서 등을 돌리며 실험체들에게 말했다.


"그래, 실험. 저렇게 구멍을 뚫어 놓고 우리의 행동을 관찰하는 거지."


"어째서 이런 실험을 하는 건데?"


"음. 처음 겪어보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오오~ 역시 실험이었던 거야?"


실험체들은 알파의 말에 오메가가 말할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럼 우린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 걸까?"


"실험인 걸 안 이상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겠지. 우린 저 멍청이랑은 다르니까, 당황하지 말고 평소처럼 행동하면 될거야."


"그럼 저 구멍은 어떡할까?"


"구멍? 그냥 내버려 둬. 실험실에서 나가고 싶다는 멍청한 녀석이라면 굳이 같이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안 그래?"


"맞아. 어차피 도움도 안 될 녀석인데, 킥킥-!"


"자자- 이제 실험 시작할 시간이니까 어서 빨리 돌아가자."


오메가를 쳐다보며 비웃음을 머금은 알파는 실험체들을 이끌고 실험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얘, 얘들아 그러지 말고 일단 내 말 좀 들어 봐! 얘들아!"


오메가는 다급히 실험체들을 불러보았지만, 오메가를 돌아보는 실험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커다란 구멍 앞에 혼자 남겨진 오메가는 어두컴컴한 실험실 밖을 내다보았다.


알파의 말대로 무엇이 있을지, 어떤 일이 있을 지 알 수 없는 어둠을 보고 있자니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후우- 그래도, 여기보다는 나을 거야."


거칠게 뛰는 가슴을 조금씩 진정시키며 오메가는 구멍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부디, 실험실 밖은 전기 자극 같은 건 없기를 바라면서.





"에휴- 결국은 이렇게 되버렸구나."


한 달 전 까지는 연구소의 연구원이었지만, 이제는 무직이 되어버린 세드릭은 자신의 짐을 챙기기 위해 망해버린 연구소를 다시 찾았다.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탓에 먼지가 가득 쌓인 연구소 안으로 들어 온 세드릭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먼지를 손으로 저어내며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아직 전기는 나가지 않은 건지 붉은 빛을 깜빡거리는 기계들을 보며 세드릭은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눌렀다.


어두컴컴한 연구실에 불이 들어오자 세드릭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으엑! 뭐야 저건!!"


투명한 유리상자로 다가간 세드릭은 유리상자 내부를 보며 질색을 하였다.


"어휴- 여기 올 사람이 없어서 나가라고 구멍까지 뚫어놨는데, 결국 자기들끼리 잡아먹어 버렸구나."


유리상자에 쓰러져 미동도 않는 생쥐들을 보며 혀를 차던 세드릭은 자신의 짐을 찾기 위해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