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2월 11일 16:09 GMT, 모스크바 메샨스키


 그들은 저녁에 도시 북쪽 프로스펙트 미라 거리에 있는 모스크바 군구의 클럽에서 만났다. 그 건물은 제정 러시아 때 만들어진 건물답게 아름답고 화려했다. 소비에트 군대의 장군들은 때때로 모스크바에서 만남을 갖는데 그 경우 대개 의례적인 만찬이 뒤따르기 마련이었다. 소비에트 지상군 총사령관 이바노프스키는 현관에서 장군들을 맞이하고 다 모이자 그들을 아래 층에 있는 사우나탕으로 안내했다. 참석자는 모두 야전군 총사령관, 소비에트 공군 사령관, 그리고 소비에트 함대 사령관들로서 그들이 차려입은 정복에는 작은 별들과 금실 장식이 번쩍였다. 10분 후에 그들은 완전히 벗은 몸으로 수건 2장과 자작나무 가지를 든 평범한 아저씨들과 다름없이 되었다. 차이라면 소비에트 연방 사람들의 수척하고 야윈 몸보다는 조금 더 단단하게 보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가까운 사이였다. 군 내에 파벌이 많다고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같은 군인끼리이며 러시아 사우나의 푸근함에 녹아들어 그들은 그간 나누지 못했던 잡담을 교환했다. 이미 손자를 본 몇 사람은 손자들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본인들은 라이벌일지라도 이렇게 최고위의 장군들은 동료의 식구들을 돌봐 주는 것이 관례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의 아들이 어느 군단에 있고 어떤 보직으로 승진하고 싶어 한다는 등의 정보를 잠시 물었다. 그런 다음에 이윽고 증기의 세기에 대해 러시아인들이 흔히 주고받는 이야기로 주제를 이끌어갔다.


 이바노프스키는 실내 중앙에 있는 뜨거워진 돌덩이에 냉수를 연발 끼얹었다. 습기로 도청 장치가 부식되지는 않더라도 증기의 소리는 도청을 방해하기에 충분하다고 그는 믿었다. 그때까지 소비에트 육군 총사령관은 오랜 친구 참모총장에게 들은 이후 아무에게도 이 이야기를 내비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결정을 충격적으로 알려주고 솔직한 반응을 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발표할 일이 있습니다.“

수런거림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그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할까.


"여러분, 금년 6월 11일, 오늘부터 딱 4개월 후에 우리들은 NATO를 공격합니다. 이제부터 4개월이 지나면 소비에트 연방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군사작전을 시작합니다. NATO를 궤멸시키는 것입니다.”


 적막 속에서 증기가 뿜어내는 소리만 맴돌고 있었다. 총사령관의 얼굴이 보이는 곳에 있는 사람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진담입니까?“


 적막을 깨고 보로네슈 전선군 총사령관 빅토르 니콜라예비치 바투틴이 물었다. 최근 10년 남짓 이바노프스키는 이 젊은 장교를 신중히 끌어올려 주었다. 바투틴은 대조국전쟁 때 중부전선에서 파울루스의 제6군을 파멸로 몰아넣었고, 쿠르스크에서 만슈타인의 맹공을 받아냈던 장군의 외동아들이었다. 이바노프스키의 깊은 신임을 얻어 53세에 상장 계급장을 단 그는 다른 이들로부터 아버지에 빗대 ‘이바노프스키의 낙하산’으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총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오. 유고마셉스코예 유전의 재앙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겠지만 그 전략적,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오.“

그가 정치국이 결정한 내용의 개요를 절도있게 설명하는 데 4분 걸렸다.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나쁜 상태입니까?“


"그렇소. 하지만 석유의 보급은 충분하오. 일반적인 작전이라면 11개월 분은 있어야겠지만 단기간에 훈련을 강화하고 바로 전투에 들어가는 것을 전제로 6개월 분은 비축돼 있소."

그 보상으로 8개월 보름 정도 지나면 국가의 경제가 파탄난다는 사실을 그는 말하지 않았다.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했다.


"모두 동의합니다. 그러나...... 4개월! 4개월은 너무 깁니다. 4개월 안에 적에게 간파당할지도 모릅니다. 4개월 동안 기습의 요소가 상실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4개월 뒤는 안 됩니다. 가능한 한 빨리, 아무도 사전에 깨닫지 못하게 기습해야 합니다."


"이바노프스키 원수께서 말씀했듯이, 우리들에게는 정치면과 외교면의 모략활동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한 장군이 지적했다.


"KGB의 동지와 우리 유능한 정치 지도자들이 기적을 이루리라는 사실을 저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NATO군에게 매년 지금쯤은 보급정비와 사무처리의 시기입니다. 장교들은 휴가를 틈타 본국에 돌아가 있고, 사관과 병사들은 병영에 들어앉아 동계 일과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이 행동해야 할 시기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우리의 가장 큰 지원군은 겨울입니다. 지금 NATO의 준비상태는 최악입니다. 목적 없이 떠도는 양이 있다면, 아무런 두려움 없이 곰은 사냥을 시작해야 합니다."


실내에 앉아있는 모든 이의 눈길이 바투틴에게 쏠렸다.

"...나는 동독에 주둔하는, 병력과 장비가 충분한 기갑 사단으로 앞으로 72시간 안에 서독을 공격해야 할 것을 주장합니다.”


"실패할 수 있는 요소가 너무나 많소!”


 서부전선군 총사령관이 너무도 급히 일어섰기 때문에 타월이 허리에서 떨어지려고 했다. 그는 왼손으로 그것을 붙들고 오른손 주먹을 새파랗게 어린 장군 쪽으로 흔들었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가는 교통통제는 어떻게 하겠소? 최신 전투 장비를 다루는 훈련은 어떻게 할 작정인가? 전투항공대의 조종사를 신속하고도 강력한 적 전투기에 대한 작전에 적응하도록 하려면? 여기에, 바로 여기에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있소! 우리 군의 조종사에게는 적어도 1개월의 집중적 훈련이 필요하오. 전차대원도, 포병도, 소총수도 다 마찬가지요."


'네가 네 일을 제대로 했더라면 지금쯤 병사들은 다 준비가 되어 있을 거야, 이 무능한 새끼야!' 

바투틴은 입 안으로만 내뱉었다.


 서부전선군 총사령관은 64세. 그 나이에도 여자 다루는 솜씨를 자랑으로 여기며,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 바투틴은 그런 얘기를 여러 차례 들었으며 바로 이 욕실에서도 동료들의 야릇한 눈치를 곁들인 귀띔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부전선군 총사령관은 정치적으로 신뢰받고 있었다. 이것이 소련이다. 우리들에게는 싸우는 병사가 필요한데 조국을 방위하는 수단으로써 얻는 것이 무엇인가? 정치적 신뢰라니! 


이바노프스키 원수가 정리했다.

"동지의 말에도 일리는 있어, 빅토르 니콜라예비치. 그러나 우리들은 조국의 안전을 걸어도 되는가?”


"우리들은 모든 지도와 순서를 이미 몇 년 전부터 조사해 왔습니다. 부대와 전차 집결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사용해야 할 간선도로, 고속도로 교차로, NATO군이 사용할 도로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군의 동원계획도 NATO군의 동원계획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즉각 공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작전계획으로도 전략적 성공을 거둘 수 있지요. 붉은군대 휘하에는 우수한 장교들이 사단, 연대, 대대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신뢰해 주십시오.”


"아니, 우리는 기습공격을 할 수 있어. 서방측이 사태를 깨닫는 것은 3일 전이나 기껏해야 4일 전일 거요. 그때에도 그들은 우리들에 대한 정신적인 대비를 제대로 못할 거요. 그때에는 우리 포탄이 풀다에서 하노버로 향하는 도상에 쏟아지고 있을 것이고 다음 전차가 진격하는 거요.”

이바노프스키 원수가 바투틴의 말을 일축했다. 그것으로 논쟁은 끝났다.


 몸에 솟아오른 땀을 차가운 물로 씻어내리기 위해 장군들은 이바노프스키의 뒤를 따라 하나둘 욕실을 나섰다. 10분 후, 그들은 상쾌한 기분으로 제복을 입고 2층 연회장으로 다시 모였다. 대부분 KGB의 이중 스파이인 웨이터들이 조심스런 태도와 조용한 대화 가운데서 무엇이든지 엿들으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장군들은 ‘모스크바 기술대학’으로 불리는 KGB의 레포르토보 수용소가 여기서 불과 5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기습에 실패하면 대규모 소모전은 어쩔 수 없겠습니다. 1914년부터 18년에 걸친 전쟁의 복사판이 되겠군요.“


"우리들은 이기는 거야.“

지상군 총사령관이 바투틴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


"이기겠지요."

바투틴도 동의했다.


"고르시코프 제독."

이바노프스키는 그보다 여덟 살이나 많은 소비에트 해군 총사령관을 불렀다.


"북대서양의 전역에 대해 제독의 의견을 들려 주시오.“


"우리들의 임무에 대해 말입니까?"

고르시코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들이 서유럽에서 실패한다면,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 소비에트 함대의 동지들이 유럽을 미국으로부터 고립시켜 줄 필요가 생길 게 아니오.“


"저에게 스페츠나츠 1개 사단을 주십시오. 그 목적을 이루겠습니다."


이바노프스키가 눈을 꿈벅였다.

"NATO 해군을 압도하기 위해 최정예 공수부대를 1개 사단밖에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계획을 개략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제독님."


"우리들은 모두 알고 있듯이, NATO 해군, 특히 미국 해군은 우리 조국에 직접적 위협이 됩니다. 해군만의 항공기와 항공모함을 가지고도 폴랴르니를 공격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미국 해군이 북극을 휘젓고 다니는 것은 결코 경시할 수 없습니다. 동지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두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소.“


"그것이 어쨌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동지가 최고 사령부를 설득하여 '끄라스나야 슬라바' 작전을 해볼 만한 병력과 장비를 내준다면 우리들이 전투의 주도권을 쥐고 이쪽 생각대로 북대서양에서 작전의 성질을 결정할 수 있소."

제독은 움켜쥔 주먹을 들어올리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면 우리들은 첫째로,"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조국에 대한 미국 해군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고 둘째로,"

두번째를 세웠다.


"북대서양 바다 밑 우리 잠수함의 상당수를 이용할 수 있으며, 그들을 소극적인 방어로 돌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셋째로,"

마지막을 세웠다.


"우리 해군의 항공병력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작전에 의해서 순식간에 우리 함대는 방어병기가 아니라 공격병기가 되는 것입니다.“


고르시코프는 5분간에 걸쳐 설명한 다음 이렇게 결론지었다.

"운이 좋다면, 우리들은 단번에 NATO 해군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고 전후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을 겁니다.“


끄라스나야 슬라바! ‘붉은 영광’은 과연 대담하고 단순한 작전이었다. 소련 해군의 어머니,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 고르시코프는 바투틴의 눈에 떠오른 존경의 빛을 깨달았다.


"제독 말대로 될 것 같군.“

이바노프스키가 말했다.



[극지의 폭풍]

1부

1화 도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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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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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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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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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사냥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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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화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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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급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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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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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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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나이트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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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붉은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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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라인의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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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사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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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사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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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1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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