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태어나기에 앞서 대기 중인 영체(靈體)인가?

쓸데없는 가정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그만큼 감정을 누그려트릴 수 있기에 좀 더 확장을 해본다

종이에다가 몇가지 의문을 끄적여본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 갑자기 이 세계에 오게 된 과정조차

기억나는게 없고, 또한 현실의 기억도 또렷하지 않는 것과 내 생각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이의 가정은 아무 목적도, 이유도 없는 배경 속 그에 따른 수많은 의문이 그만큼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에서

교류가 불가능한 초이계라는 가정을 대입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렇담 즉슨 나에게 말을 걸어준 친구는 그 때 죽고 난 뒤의..

안돼, 생각하지 말자. 괜히 더 갈망만 높아질 게 뻔했다. 다른 생각으로 넘어간다


이곳이 현실에 존재하는 법칙에 위반되며 철학의 개념이 중시된 가상의 영혼거처라면

여기는 개개인마다 분리된 다른 차원의 공간인건가? 4차원? 5차원?.. 어쩌면 단순히 차원이라 명하기 불가능한..

..........


이상하다. 이게 사실이면 난 적어도 한 명은 더 만나야 했었는데 수십 년 동안 몇 억명이 죽었을지도 모를 세상에서

어떻게 난 다른 존재를 보지 못한채 쭉 이곳에 있는 것이지?..


문득 이의 의문은 내가 여기 있는 이유를 추측해봤자 제 스스로의 의문에 얽매여 질거란 사실을 깨닫게 했다

역시 이 울타리를 어떻게든 없애봐야만 하는 걸까.. 그러면 저 끝에 있을지 모를, 나와 같이 기다리는 자를 만날 수 있듯이


다만, 그것이 가정에 위한 흥분이 미처 현실을 망각하게 한 헛소리라는 것은, 말단의 끝이란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다시피 세워진 울타리라는 것을 깨닫고 그걸 직접 직면한 뒤였다

..........,"


간단히 생각하자. 어찌 생각하면 억지겠지만 내 성별도 그렇고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현재와

지금까지도 현실에 있는 기억이 맴도는 수준이 아닌 거의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실은

정말 여기가 가상현실 안이라 할지라도 ..그건 말이 안되는 일이다. 누구나 그렇다고 믿고 싶진 않을것이고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기는 보통같으면 말도 안되는,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이 상황을 집약해보니

내 정신만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이 아닌 사후세계일 가능성의 농후함을 단언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희망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믿고자 하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내 스스로 희망고문의 덫에 빠졌다 할지라도 이곳이 사후세계이고 언젠가 환생을 할 것이라는 운명을

다른 생조차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결론이 나오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로 이 곳의 폐쇄성은 처참했으니

그 어떠한 생도 스스로를 영적 공간이란게 존재할 수 밖에 없다며 정신을 퇴보시킬 것을 다각적 시각의 윗선에 머무른 나의 입장에서

사후 또는 생후 이전의 공간이 존재되어야 싶은 믿음이란 승화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면 그 이유는 당연하겠지만

희망을 누리고 싶을테니 말이다



,

그러다 마치 처음 여기 온 것처럼, 생명이 자신을 생각해주길 바란 듯이

나의 자화자찬한 논리는 눈 앞 생명체를 혐오가 아닌 호기심으로 변심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곧 관심으로 변해버린다

다시 한번 인내할 명분이 생겼다




체감상 46년


내 앞 한 줄로 서있는 생명들. 그 중 한마리에게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그 생은 눈이 있든 없든간에 육감으로 그 위치를 찾아갔다. 꾸겨서 얼룩지게 만들면서도 이의 상황과 대비되는 나의 감정

생명체가 아무리 역겹더라도 관심은 종을 떠나 먹이의 개념과 동반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알 수 있었다

결핍, 혐오, 소름, 그보다 앞선 공포가 나의 관심을 억눌렀지만, 이성에 의지해보니 어느 순간 익숙해지기만 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것을

이는 남을 위하게 되는 과정과 내재된 공포를 불리우는 양날의 검과 같은 격이지만 지금은 후자를 신경쓸게 아니다

왜냐면 저 생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었으니깐


나는 지금도 냄새를 맡을 수 없는게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냄새마저 더하면 난 받아줄 수 없었을테니



눈을 감는다. 이번에는 평소 느낄 법한 감정과 달리 각각 체액을 품으며 질퍽거리는 몸의 소리의 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중 네발 달린 생은 헥헥거리며 재롱을 떠는 듯 한다. 나는 솔직히 주인이 될 자격은 없었는데.. 

과거의 난 그냥 맘에 안 들어서 욕했는데 오히려 분노보단 기쁨을 주려고 하다니. 저 생이 주는 반응은 나에겐 너무 과분했다

"나의 정신 안 또 다른 자아가 있었을 때는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발랄한 청음은 나의 무의미했던 시간을 아주 약간이나마 정화시켜 주었다

예전엔 분명, 간절히 원한건 나와 비슷한 얘깃상대 였건만 이 느낌은, 저 생의 원천이 지금껏 누적된 이 사회적 응어리를 녹여주는 착각은

나의 생이 처음으로 정상적으로 보이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내가 미친게 아니다


생이란 존재가 먼저 나의 외로움을, 소리에서 느껴지는 이 온기로 날 위해주고 싶은 감정을

그 생명들이 스스로 증명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 역시 그 동안 경험해 본적 없는 새로운 정신적 영역을 증명하는거니 역시 이조차도 익숙해지지 않다 생각해도 익숙해 진 것이다

결국엔 이렇게 익숙해질 거였으면 왜 나는 그렇게 싫어했었는지 또 다시 실소가 터진다

왜인지 내 의지대로 나온 반응은 아닌 것 같지만 생을 성향을 관찰하기 위해 넘어간다





"이제 너희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얘들아"


나의 말에 반응하는 것인가. 그제서야 나에게 자신이 원했던 답례를 해주는 듯

눈과 입이 내가 현실에 살았을 때 어렴풋이 기억하는 그 위치대로 형상이 비뀌어간다

완벽한 인간의 형상은 본띠지 않았어도 만족했다












일순간, 갑자기 그 얼굴들은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괴기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온 구멍마다 피를 품으며 흰자밖에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일제히 들릴 수 없는 톤으로 읊어댄다

그 무리가 뱉는 괴음의 레파토리를 이해해버렸을 땐 나의 이성은 마비되었다


그것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사랑해"










영원히 끝나질 않을 혀놀림을 멈추기 위해

난 그 생명체들의 이빨을 모조리 깨부쉈다






체감상 49년 째



몇 년째인가 다시 시작된 그림에 매진해 창조하기를 기도한게 모두 헛된 희망일거란 불길한 감이 도사리고 있을 때

허망한 기분은 일탈을 수반하여 그 때마다 나의 분노는 폭력을 유발했다


창조물들은 내 모든걸 받아준 듯 피멍이 선명하게 돋아나 있었다

내가 만든 생을 갖다 몇 시간이고 발길질 하고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생은 그 때마다 반응인지 고통인지 끼익끼익 거리며 움츠려든다

입가에 검은 점액이 묻어버렸다


"쳇 더러워

정말 하나하나같이 다 더러운 것 투성이야

좆같은 새끼들"



방금 너무 세게 찻는지 하나가 터져버렸다

안에는 연가시같은 지렁이들이 꿈틀꿈틀 기어나왔다

금방이라면 토악질을 했겠지만 저 형상에 익숙해진 것 자체로도 난 이미 무덤덤했기에 이번에도 익숙하다


나를 향해 바라본다

짜증난다. 눈깔을 다 뽑아버리고 싶다

외로움을 대가로 만든 생명일텐데 왜 이리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걸까?


죽어가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_12


"..........


......




이참에 다시 시작하자 얘들아"







"........."




"그지?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난 너희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


니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그럴바엔 차라리 내가 직접 내 손으로 죽이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


대답을 해봐 씨발년들아"



생명체들은 벌벌 떨기만 할 뿐

아물어버린 주둥아리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쇠파이프를 만들었다



"...그래,

모두 다 사이좋게 형체도 못 알아 볼 정도로 찢어발기란거지?


알았어. 잊어줄게


근데 나도 그 때의 답례로 너희도 도저히

날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롭혀줘야겠어"



한 마리씩 순서대로 곤죽을 만들었다

까만색 몸체는 빨갛게 달아오르고 그게 아픈 듯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소리를 내지른다

온 바닥이 피로 적셔지고 까만색과 순한 적색이 서로 응집되간다


나의 선택이 후회되지 않은 것임을 보여주는

지옥의 나래



 "씨발, 끝까지 맘에 안 드는구나

다 끝내자. 이제 지겹다"



이어지는 폭력은 유일하게 남아있던 생명체의 이빨마저 박살내었다






마치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나의 기억은 깨져버린 유리파편과 같이 일시에 버려졌다

나의 이 감정을 처음부터 시작된 그 태초앞에 회귀하듯. 친구도, 내 자아도 다 거짓으로 만들기 시작하였고

내 눈앞에 있는 모든걸 다 없애다보면 날 만족시켜 줄 무언가가 나올 것만 같았다


온 바닥마다 생명체가 내뿜은 고유의 피로 일그러진다

언젠간 이 짓을 반복하면 언젠가는 내가 원했던 생명체가 나를 반겨줄 것이다

가끔식 맘에 안드는 생명체가 나온다 해도 죽이다보면 아름다운 생명만이 가득할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만든 생명체의 뒤섞인 혈흔에 웃는 나


시간은 무한한 가능성이니

분명 내가 바라는 세상은 탄생 될 것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피조물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