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거 받게. 조사는 이 문건을 바탕으로 하면 될거야."
 팀장님이 오래 된 문서를 건네며 말씀하셨다.
 "이게 뭡니까?"
 "이번에 안보사 압수수색에서 찾아낸거야. 뭐, 사실 지금 전범 수사도 죄다 이런 문건들로 하는거니깐.."
 안보사 압수수색이라면 한동안 이 나라를 뒤집어 놓은 큰 사건이였다.
 이영정 정부가 출범한 직후, 대통령의 첫 지시는 안보사 압수수색이였다.
 당시 안보사가 학살과 관련된 내용이 담긴 문서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던 상황이였다.
 압수수색이 시작되자, 전쟁범죄와 관련된 문건들이 안보사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의혹으로만 여겨지던 전쟁범죄가 마침내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였다.
 안보사 압수수색은 정치권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전직 육군참모총장 등 한때는 전쟁 영웅으로 불렸던 군 장교들이 속속 붙잡히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이 문건에 전직 대통령까지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까지 나와 전직 대통령의 구속까지 검토되고 있는, 아직까지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건이였다.
 문건을 대충 훑어보자 빈약했지만 충분히 유죄 입증은 가능할 정도의 증거물이였다.
 "어차피 증거도 있고, 자백 안한다고 해서 못 잡아넣는 것도 아니고.. 부담 가지지 말고 조사해.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까 연락이 왔던데.. 한강철, 어떻게 된거야?"
 팀장님이 한강철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한강철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팀장님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셨다.
 "그래, 화가 날 법도 한데.. 우리가 그래도 엄연히 공무원이잖냐? 좀 조심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들 하고."

 "..정하섭, 내가 맡을게."
 조사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한강철이 말했다.
 "어..?"
 자연유치원에서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한강철이 갑작스레 말을 걸어오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의자 취조는 내가 맡을게."
 "야, 아무리 그래도 너 방금.."
 "아까는 미안해. 좀 어떻게 되었나봐. 내가 취조 맡을게."
 그는 무언가를 부탁하는 성격이 아니였다. 누군가의 지시나 명령, 부탁에는 충실히 따르던 그가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였다.
 나는 어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문건을 넘겨주었다.
 한강철은 굳은 표정으로 나를 앞질러 조사실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그의 태도나 모습이 평소와는 미묘히 달랐다.

 나는 한강철이 앉아 있는 조사실 옆 방의 창문을 통해 그를 바라보았다.
 한강철의 표정은 예전부터 읽기 어려웠다. 그랬기에 더더욱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조사실의 문이 열리고 여경이 이수연을 데리고 왔다. 그녀는 아직도 유치원 앞치마를 두른 채 있었다.
 여경이 그녀를 조사실 의자에 앉히곤 밖으로 나갔고, 나는 숨 죽이며 한강철을 바라봤다.
 한강철이 처음으로 꺼낸 말은 뜻밖의 말이였다.
 "이수연 씨, 제가 기억이 나십니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한강철이 다그치듯 말했다.
 "기억이 나십니까?"
 한강철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던 그녀가 고개를 가로지었다.
 "아뇨.. 잘 모르겠는데요.."
 "한강철, 너 지금 뭘 물으려는거야?"
 내가 마이크에 입을 대고 물었으나, 한강철은 무시한 채 말을 이어갔다.
 "..그 날의 이야기를 꺼내게 만드시는군요."
 깊은 한숨을 내쉰 그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