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미국인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 노선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건 기자 양반도 인정할거요. 뭐 양키들 입장도 이해가 가는게, 박 대통령 그 양반의 자주국방이란게 결국은 미국의 통제 없는 핵무기 개발 아니었습니까? 미사일도 결국 그 핵무기를 위한 준비 작업이었구요.


  하지만 기자 아가씨도 아시다시피 핵 개발은 실패로 돌아갔어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보안 문제 때문에.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양반은 아니었어.  옳다 그르다 지금도 말이 많은 양반이지마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깡따구 하나는 대단한 양반이었잖아요? 그래서 카터도 골치 썩혔고. 그렇게 쉬운 사람이었으면 오일육 혁명 같은 거 생각도 못했겠지.


  핵개발과 별도로 박 대통령이 신경 썼던 부분이 BC병기였다고 들었어요. 그래. 화학 무기 생물학 무기. 허언은 아닌 듯 한 게 칠십 팔년인가 그때 비밀리에 헬기 타고 우리 부대에 예고도 없이 방문해서 브리핑한다고 진땀 뺀 적 있었거든. 그때 우리가 화학병과도 아닌데 그쪽 질문을 막 해서 가슴 졸였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다루는 무기 체계가 연관성이 강하다보니 화학병과쪽 교범을 몇 번 본 게 있어서 그럭저럭 둘러대긴 했는데, 아무튼.


  이 백곰 미사일이란 게 기자 양반 보기엔 한심해 보일지도 몰라.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 했어요. 미제 나이키 대공 미사일이랑 꼭 닮은 게 짝퉁 아니야 싶기도 하구. 그 국과연 분들이 나중에 책 쓴 거 봐도 그거 기술이 많이 들어갔다고 하잖아요. 사정거리가 백팔십키로는 된다니  어네스트 존 보다야 낫다 싶었지만 그런 걸 어거지로 평양까지 닿게 하겠다고 최전선 근처에다 배치를 해 놓으니 조금 궁상맞다 싶기도 했고. 근데 바로 얼마 안돼서 생각이 확 바뀌더라니까.


  사린가스. 그래요. 나중에 후세인이랑 일본에 사이비 종교 단체 애들이 쓴 그거. 다른게 더 유명하다고? 뭐 그렇다 칩시다. 아무튼, 비록 탄두는 군단 화학대 애들이 직접 관리하긴 했지만  소름이 쭉 돋는 게. 사실 전쟁 나면 쓸 거라고 겨자 가스 포탄 사린 가스 포탄 종종 보긴 했어요. 근데 우리가 쏘려고 한 데가 북괴군 집결 지점이지 명색이 수 백만 시민이 모여 산다는 대도시에 화학탄을 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아무리 빨갱이 새끼들이래두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닌가. 육사 때 독일 육사에 교환 생도로 갔다가 나찌 강제수용소랑 1차 대전 전사적지 답사 다녔을때도 생각났고.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독가스 맞는 독일 병사 이야기도 생각나고… 미군 애들이 전술 핵 갖다 놓고 있던 거 뻔히 알면서도 갑자기 새삼 싸한거 있죠. 그 때 깨달았습니다.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거요.



* * *



  박 대통령 서거 한 게 시월 이십육일, 그러니까 십 일월 거의 다 돼서 였는데, 전두환이 금마가 십이월 둘째 주에 쿠데타를 딱 터트린 걸 보면 이 자식 과감성 하난 진짜 대단해요. 그 짧은 시간에 내가 대통령 해야 쓰것다, 딱딱 전략을 잡고 행동 개시 한 걸 보면 박 대통령이 괜히 밥풀떼기 대위 나부랭이 시절부터 지 새끼라고 키우면서 보안사에 앉힌 게 아니었구나 싶어. 잘 했다는건 아닌데, 대단한 건 대단하다 이거지.


  그 때 우리 부대도 가관이었어요. 어휴. 아니 쿠데타 때도 그랬지만 박정희 죽었을 때 가관이었다 이 말이오. 갑자기 2급 비상 때리고 출타자 복귀시키고 난리가 난 거야. 거기다 3군 사령관 이건영 중장이 여단장한테 정규전에 대비하라는 코멘트까지 딱 붙이니까 부대가 뒤집어졌지. 그냥 짐 꾸리느라 뒤집어졌다는게 아니오. 여단장 이상 윗대가리들은 말 할 것도 없고 나 같은 대대장은 물론 말단 이등병들의 마음 속까지 전부 뒤집어졌어. 야 이거 큰일이 나기는 났구나.


  월남엘 다녀오거나 도끼 만행 사건때 데프콘 쓰리를 경험했거나, 둘 다 겪어본 각 중대 인사계들이나 중대장들이 일선 장병들 다독여주고 했지만  그런 사람들도 속 마음은 별반 다를 거 없었습니다. 누군들 그랬을거에요. 오 톤 트럭에 화학대 애들이랑 함께 실려온 빌어먹을 화학탄두를 보면 말입니다. 


  오자마자 조상님 묏자리 모시듯이 화학탄 보관한데를 지키고 앉았는데, 우리도 그거 찜찜하긴 마찬가지였어요. 일반탄두건 화학탄두건 모의탄두이야 훈련하면서 초시계 갖다 놓고 빨리 결합하기 내기 걸고 종종 만져 봤지만, 저건 진짜 독가스였잖아요. 북괴 새끼들이 먼저 이쪽에다가 갈겨서 포탄이 저기다 맞으면 우리 모두 몰살 아닌가, 싶어서 다들 총보다 방독면을 먼저 챙겼어. 그래두 신경 작용제니까 방호복 덧 입을거 없이 제깍 방독면만 써도 목숨은 건지니까 말이죠.


   근데 그것도 삼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한달째 되니까 좀 무뎌집니다. 대통령이 저격당했으니 북괴를 일단 경계하긴 하는, 쳐내려 올거면 한참 법석 떨 때 그때 내려 왔을테고, 쟤들도 당장은 내려올 맘 없구나 싶기도 하고… 화학탄두도 나중에 다시 걷어서 제자리 돌려놓고 그러더군요.



* * *



  어느새부턴가, 전우신문 1면 상단에 실히던 ‘박 대통령의 어록’ 란이 사라졌더라구요. 이젠 다들 적응을 한거죠. 박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이제 박 대통령은 죽었고 일상은 계속된다는걸 실감할 때 쯤이었습니다.


  그날이 수요일이었어요. 전군이 비상 걸린 상태였구요. 육이오때 장병들 휴가보내고 뭐 그런 난장판이 아니라 준비가 잘 되어 있었죠. 박 대통령 암살에 대한 합수부 수사 결과가 나와서 이게 북괴가 쳐 내려올 생각으로 저지른 일은 아니구나 했지마는, 그래도 다들 시국이 혼란스럽고  우리가 잘 해야 한다는 점은 다들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부대 사기도 좋았구요.


  퇴근하고 관사에 들어간것도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그렇게 오랜만에 온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테레비 틀어놓구서 저녁밥 먹고 있는데 부대에서 당직사령으로 근무서던 1중대장에게 전화가 왔습디다. “대대장님. 영내에서 비상 대기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는데 참 울화통이 터져요. 얼마만에 제시간에 집에 가서 밥먹는건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간상 별 차이도 안 나는거 그냥 밥을 다 먹고 부대 복귀 할 걸 그랬어요. 전쟁 끝날때까지 마누라가 차려 놓고 온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저녁 밥상이 그렇게 그리울 수 없더라구. 그래도 난 재수가 좋았지. 전쟁 끝나고 났을때 나도 무사했고 가족들도 다들 무사했으니까. 아무튼 그땐 또 무슨 일이 터졌나보다 싶어서 바로 숟가락 내려놓고 집을 나섰어요.


  부대에 와 보니까 하는 소리가 가관이야. 부대 장악 똑바로 하고 어디 이동하게 되면 반드시 위에다 보고하고 이동 하래. 아니 그거 군인의 기본 아니겠어요? 장악은 또 뭐야. 애들이 내 말 안 듣고 어디 짐 싸서 가기라도 한다는 건지. 뭐 당연한 걸 가지고 퇴근했던 사람들 다 불러 모으니 나 말고도 대대의 모든 간부들이 다들 황당해했어요. 그때는 그런 황당한 일이 3군지역 전체에서 벌어지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거든. 그땐 내가 참 순진했어. 나이 사십도 넘게 먹어가지구 말이야.


  나중에 돼서야 전두환이랑 그 패거리가 다같이 작당하고 판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러니까 전군이 비상 시국에 똘똘 뭉쳐서 북괴를 막아야 할 판에 그딴 불장난을 저지르고 있었던거야.


 기자양반은 잘 모를텐데, 그때 한국은 항상 데프콘 포 상태를 기본으로 유지중이던 나라였어요. 평시가 평시가 아니라 일종의 준전시 상태였던거죠.


  부대의 배치라는것도 그냥 행정적 편의를 위해 배치해 둔 것이 아니라 전시 직전 계획에 의거해서 작전의 일환으로 병력을 어찌어찌 움직여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미국과 함께 협의해서 배치해 둔 거 거든. 근데 이 미친놈들이 북괴군의 장거리포 사정권 안에서 군 작전 계획의 근간을 모두 파헤치면서 말 그대로 깽판을 치고 있었던거요. 


  그건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아 뭐 좋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아무튼 처음엔 그냥 부대 장악만 하라는 명령만 받았는데 13일 0121시를 기해서 갑자기 한미연합사령관 위컴 장군 명의로 데프콘 쓰리가 걸렸습니다. 그러고 조금 있다가 여단장 호출받고 모여서 브리핑을 받는데 숨이 탁 막히는거 있죠.


  “지금 큰일이 났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합수부에서 김재규 수사를 위한답시고 자기네 인맥을 동원해서 참모총장님을 납치하고 육본과 국방부를 점령하고 난리를 쳤는데, 이 틈을 타서 북괴가 쳐 내려온 모양이다. 이 미친놈들이 9사단 사단 예비대를 한 시간 전에 미군 측이랑 협의도 없이 중앙청으로 보냈는데, 북괴군 주공이 9사단쪽을 밀어버려서 전선에 구멍이 뚫려버렸고 기계화부대와 특작부대가 서울로 바로 쳐 내려오고 있다. 도로상에 있던 9사단 29연대랑 30연대 1대대는 연락 두절 상태다. 서부 전선의 총체적 붕괴가 목전에 있다.”


  박 대통령이 죽자 마자 김일성이가 ‘지금이 기회다’ 싶어서 소련이랑 중공에도 사후 재가만 받을 요량으로 즉각 전쟁 준비에 들어갔단 걸 그때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웃기는 일이지? 그 많은 정보기관이랑 미국의 첨단 첩보 위성은 뭐하고 있었냐고 한동안 얘기가 많았는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모를 수밖에 없었어요. 


  미국의 첨단 첩보 장비래봤자 북괴란 나라는 어차피 매일매일이 전쟁 준비 상태니 의미가 없구, 결국 이북 정보 문제 전문가들이 쟤들이 딴 맘먹고있는지 그 미묘한 징후를 캐치해야 하는 건데, 중정은 십이륙 이후로 보안사에서 정보 독점 한답시고 매일 정보 보고까지 받으면서 꽉 틀어 쥐고 통제에 들어갔으니 있으니 뭐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고, 보안사는 북괴 감시하라고 준 국민의 혈세로 쿠데타 준비하느라 정신 없으니 대북 정보에 큰 공백이 뚫려 있었던 거요.


  김일성이 북괴놈들이 보안사에서 12일에 반란 일으킨다는 정보까지 접하고 그거에 맞춰서 남침날짜 잡았을줄 누가 알았겠어요. 정말 아무도 몰랐어요. 대한민국 국군 역사에 다시 없을 치욕이고 수치죠. 진짜 한때 군인이었던 몸으로 이 일은 어디가서 말하기도 챙피하구 그래. 그래도 어쩌겠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똑똑히 기억하고 반성해야지.



* * *



  13일 새벽의 서울은 진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애들은 간만 보고 앉았다가 북괴 놈들 쳐 내려온다니까 그제서야 장태완 수경사령관이랑 같이 뭘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전선에 구멍 뚫린 판이니 철책에 붙어있던 미군 2사단도 당장 발등에 불 떨어진 판이고, 어느새 고속 침투로 서울까지 쳐 내려온 북괴 경보병대랑 저격여단 아새끼들은 주요 관공서랑 방송국은 기본이고 미 8군사령부랑 주한 미대사관에서 깽판을 놓는데 그 와중에 반란군에 붙은 똥별 놈들은 당장 항복하고 북괴군을 막아도 시원찮을 판국에 사태 파악도 못하고 지네 편 아니면 다 총 쏘고 자빠졌지…


  아무리 휴전선에서 지척이래도 하루만에 서울에 북괴군이 쳐내려오는게 말이 되냐 싶을거에요. 근데 기자 아가씨가 한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어요. 


  북괴군 전술 중에 ‘배합전’이라는 것이 있어요. 김일성이가 자기가 빨치산으로 일본군이랑 싸운 시절 경험을 접목한 주체적 전법이라고 떠들던건데, 정규군의 공격에 앞서 대규모의 특작부대를 전선 후방에 침투 시켜서 크게는 청와대, 육본, 국방부 같은 전략목표부터 작게는 전방 사단의 주요 전술 목표까지 동시 다발적으로 타격해서 정규군 침공 부대의 충격력을 극대화 시키는겁니다.


  물론 우리 국군도 바보는 아니었소. 아까 말했죠? 한국군의 병력 배치는 다 군사작전의 일환이라고. 수도권에 유독 공수여단이 많이 주둔한 이유중 하나가 그거였어요. 이 북괴군 특수부대에 맞서 대침투작전을 벌이기 위함이기도 했는데, 알다시피 1, 3, 5공수는 반란군에 붙어버렸고 마지막 남은 9공수는 반란군 진압한다고 서울로 들어오랬다 말랬다 반복하다가 느닷없이 북괴군이 나타니까 그제서야 허겁지겁 전투 배치 들어가고 있었지. 북괴군만 살판 난 겁니다.


  근데 아까 말했죠? 전술 목표까지 타격 대상에 들어간다고. 하물며 우리 같은 전략 무기 운용 부대는 오죽 했겠습니까?


  화학대 애들이 다시 그놈의 징글 맞은 사린가스 탄두를 오톤트럭에 한가득 적재해서 왔는데, 짐 제대로 부려 놓기도 전에 갑자기 엠육공이랑 엠쥐오공 ‘뚜두둥’ 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제가 그때가 여단장 CP에서 막 돌아온 상태였는데 이게 뭐냐고 그러니까 주둔지 방어 작전 지원 나온 인접 사단 보병 애들이 여기로 침투하던 북괴 저격여단 애들을 먼저 보고 냅다 갈긴 거였어요. 그때 화학대 애들이 그러더라고. 화학탄두 장착한 상태로 방열 시키고 발사 명령 기다리라는 명령이 떨어졌답디다.


  평소에나 훈련때는 오만 잡상이 다 들던 물건인데, 막상 눈 앞에 총알이 날아들 판이 되니까 그런 잡념이 싹 걷히더군요. 1분 1초라도 빨리 백곰미사일에 조립해서 던져주는 좌표에다 바로 날려버리고 싶었어요. 저놈의 사린가스 탄두가 북괴군 총알에 맞아 여기서 터지는 것 보단 백만배는 낫다 싶었거든요.


  좀 진정되고 부대 상황 확인도 할 겸 둘러보면서 봤는데 이 보병 애들이 월남서 씨레이션 짬밥 먹은애들이 좀 많았는지 솜씨가 정말 훌륭했어요. 기관총이랑 유탄으로 크레모아 있는데로다가 토끼몰이를 제대로 한게 육편이 사방팔방에 널부러져 있더라구. 그때 권총 하나를 주웠는데 소음기 달린 총을 처음 봤어요. 


  월남 짬밥 먹은 듯 한 보병 인사계가 다른 애들 몇 이랑 같이 포로를 끌고 가서 심문을 하고 나오는데, 하는 말들이 심상치가 않아요. “대대장님. 각오 단단히 하셔얄것 같습니다. 얘내들 우리 대대 좌표를 적 포병에다 쏴줬는데 포병이 응답이 없는 것이 대포병 맞고 뒈진 거 같아서 인접 경보중대랑 공군이랑 이쪽으로 내려올 기계화사단에 알려줬답니다.”


  이미 미사일은 방열 중이라 한 시간은 더 여기 붙박혀 있어야 될 상황이었습니다. 전차부대는 9사단쪽 구멍 틀어 막는것도 손이 모자라는 판이었으니 기대를 하는 게 바보짓이고, 좀 있다가 미그기 몇 대가 이쪽으로 날아오는데 그게 내가 전쟁 중에 경험한 처음이자 마지막 북괴 공군 공습이었어요.


  미사일 방열작업을 굴 속에서 진행중이라 망정이지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굴 속에 숨어있으면서도 저놈의 미그기 폭탄이 굴 입구를 맞춰서 옴짝달싹 못하고 여기 갇히게 되는건 아닌가. 두렵기도 했는데, 다행히 아군기 몇 대가 날아와서 요격을 하더군. 북괴 비행기 조종사 둘이 낙하산 타고 탈출을 하긴 했는데, 찾아보라고 시켰지만 결국 찾진 못했어. 아직도 그게 조금 아쉬워요. 굴 입구 앞에 떨어진 폭탄 두발이 불발탄인게 천운이라 여기서 운을 끌어다 쓴 거 같아.


  그러고 얼마 안돼서 여단 본부에서 전령이 오더라고. 조금 전부터 북괴군의 전파 방해가 심해지고 유선도 차단하는 판이라 연락 수단이 인편밖에 안 남았다는거야. 사태가 심각하긴 하구나싶었는데, 아무튼 전령이 가져온 소식은 그래도 나쁜 소식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


  전혀 기대도 안 했는데 북괴 경보중대건으로 공수부대 지역대 하나를 이쪽으로 보낸다는 이야기였어. 지원이 온다니까 다행이긴 한데 그게 또 공수단이라니까 또 거시기해. 그래서 전령 아한테 수통 하나 쥐어주면서 “금마들 거 반란군 아니냐”하고 한마디 하니까 그건 걱정 말라는거야. 그래서 처음엔 9공수도 사람 모자랄탄데 어떻게 여기까지 사람을 보내나 싶었어. 여차저차 반란을 진압한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공수부대라길래 헬기 타고 오려나 싶었는데 노란 수경사 방패 마크 붙인 경장갑차 십여대에 분승해서 왔어요. 헬기는 아직 날이 어두워서 쓸 수가 없고, 차량도 부족해서 수경사에서 차량 지원을 받아 왔다나. 근데 이놈 아들 가슴에 붙은 흉장을 보아하니 흑룡이 그려진 게 반란군이라고 들었던 5공수야. 


  깜짝 놀래서 지역대장 소령 붙잡고 무슨 꿍꿍이냐고 따지듯 물었더니, 자기들도 억울하다는 둥 막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서울로 이동하라는 지시만 들어서 서울에 무장 공비라도 침투했나 싶었는데 효창 운동장 도착해서 죽치고 있는데 수경사령관 장태완 장군 그 사람이 9공수 참모장이랑 같이 운전병이랑 당번병만 데리고 쳐들어가서 장기오 장군 그 사람하고 담판을 짓고 나오더니 이제부터 수경사령관 지휘를 받는다는거야.


  나중에야 알았지. 2기갑여단이고 9사단이고 반란군 새끼들 전부 서울로 내려오다가 다 북괴군에게 습격당해서 개판났고 멀쩡한 건 도착한건 서울에 1공수 3공수 5공수랑 30경비단 뿐인데 33경비단이 거기 상황실장이 머리 잘 써서 수경사 지휘계통에 복귀했고, 전면전 상황이라 수기사 26사단이 문제가 아니라 전 병력이 정상 지휘계통으로 모이니까 반란군은 사실상 끝장 난 판이었어요. 하긴 D+6일에 한강 이북 그대로 먹혀버린 판에 반란군이 서울 쳐 먹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장태완 사령관 그 사람이 장기오 장군한테 그 점을 딱 지적하면서 직사포를 쏘고 마지막에 도망갈 여지를 하나 남겨 준거지. “당신 지금이라도 지휘계통에 복귀하면 정상참작 해 주고 간밤에 있던 일은 불문에 부치겠다.” 물론 반란 진압 성공하자 마자 쇠고랑 차고 헌병대에 개처럼 끌려가긴 했다만, 장기오 장군 그 사람 입장에선 솔깃 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무튼 장태완 그 사람도 정말 대단해.



* * *



  백곰 유도탄의 방열에는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데프콘 쓰리 떨어지는 데는 도끼 만행 사건 이후로 삼 년이 걸렸지만 쓰리에서 투로 완으로 올라가는 건 순식간이었어요. 


  0121시에 데프콘 쓰리 떨어지고 화학대에서 출발 시킨 화학탄두를 삼십여 분 있다가 우리가 수령할 때엔 데프콘 2 떨어 진 직후였고, 밖에서 저격여단 특작조 조져버리고, 괴뢰 공군 공습 당하고 5공수에서 지원 병력 받고 하는 사이 어느덧 미사일 발사 준비는 끝나 있었어요. 


  데프콘 쓰리에서 투 까지가 아무리 순식간이래두 어디까지나 포에서 쓰리로 에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순식간 이라는 거지, 이미 한 시간 반은 훌쩍 지나 있었거든요.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마친 상태였고. 문제는 애간장 타게 발사 명령이 안 떨어져. 답답해 미치는 거야. 그냥 나가서 갈겨버리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야.


  시간이 그 후로도 한참을 지나갔어요. 그런데 전면전 터진 마당에 위에서도 말이 없고 포성은 점점 다가와. 우리 부대 위치야 워낙에 비밀이어서 놈들이 전쟁 전에 좌표를 못 따둔 거 같고, 방금 저격여단 애들이 좌표 따 놓고도 여기로 아직 까지 포탄이 안 떨어지는 걸 보면 아직 우리 부대가 유도탄 부대라는 사실을 아직 눈치를 못 챈 것 같았어요. 


  천운이었지. 하지만 난 정말 온 몸의 피가 마르는 것 같았어. 나중에라도 느낌 좋은 정보장교놈이 여기다 하고 찍어서 우리의 정체가 들통난다면? 굴 속에 있다고 좋아할 거 하나 없는 게, 굴 입구 무너지면 그대로 생매장이에요. 그것도 발사 준비 다 마쳐 놓고 명령만 기다리다 허무하게 골로 가는거죠.


  그러고 있을 때가 03시 30분 무렵인데, 유선망이 복구가 돼서 여단에서 전화가 왔어요. 근데 전화 내용이 가슴이 철렁 하는 거야. 여단장이 직접 육성 명령을 하는데 그 내용이 이랬어. 아직도 똑똑히 기억나. “대대장 잘 들어, 지금 북괴군 전차 1개 중대가 그 쪽으로 가고 있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발사 명령 떨어 질 때까지 막아야 돼!”


  서부전선이 붕괴된다는 소리가 그제서야 실감이 갔어요. 얼마나 개판이 났으면 D+4시간 만에 여기로 북괴군이 오는 거야. 여단장은 죽어도 유도탄은 쏘고 죽으라는데 여기서 우릴 지키고 있는 애들은 보병 1개 중대에 5공수애들 사십여 남짓이야. 내가 아무리 포병 장교라지만 공수부대 애들이 뒷통수 칠때나 무서운거지 정규전 상황에서는 땅개랑 다를 게 전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씨팔 아까 말 나왔던 경보중대 정도면 충분히 할 만 한데 이게 뭔 개같은 경우인지.


  나중에 다큐멘터리 보고 알았어요. KBS에서 십년 전쯤에 1차 한국전 2차 한국전 전부 디큐멘터리 만들어가지고 방송한 거 있었잖아요. 한때나마 군인의 몸이었고, 내가 싸운 전쟁이었으니 봐야겠다 싶어서 비디오 녹화하면서 보는데 거기서 당시 북괴군 특작부대 정보장교였던 놈의 인터뷰 하는데 우리 부대 얘기를 하더라구.


  ‘저격여단 작전조 하나한테 긴급 무전 연락이 왔는데, 무전으로 좌표를 받으면서 보고 받은 작전지역 정황이 수상했다. < 남조선 포병대의 예비 진지래서 와 봤는데 이상한 갱도 입구 같은 게 몇 개 보이긴 한데 포나 포 진지는 하나도 안 보인다. 그런데 수비 병력이 있어서 적의 맹공을 받고 퇴각 중이다. >


  마지막 교신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아무것도 없는 예비 진지에 수비병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게 수상했다. 전면전 마당에 고작 작전조 하나를 잡기 위해 함정을 팠다고 보기도 이상했고, 무언가 중요한 것을 지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격여단 동무들이 연락한 인접 경보중대는 전시작계에 따라 다른 데서 작전을 하고 있었지만,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고를 하고 다른 일을 보고 있었는데 땅크중대 하나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다큐멘터리 보고 후회했어요. KBS 방송국 사람들이 찾아온 걸 내가 방송국 신문사에 학을 떼서 얼굴도 안보고 문전박대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그 다큐때문에 왔었나봐. 나와 내 전우들의 입장을 변호할 가장 좋은 기회였는데 내가 그걸 놓쳐버렸어요. 내가 기자 아가씨 취재 요청을 승낙한 게 한국 언론이 아닌 뉴스위크였던 게 제일 컸지만 그 이유도 있어요.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그렇게 전차 날벼락을 맞게 되어서 진지 외곽에서 방어 진지를 꾸린 보병이랑 갱도 안에서 대기중이던 공수 애들에게 그 소식을 알려 줬어요. 죽더라도 알고는 죽어야 할 거 아뇨. 나도 불출된 .45구경 권총 실탄 종이곽을 까서 탄창에 쑤셔 넣고 있는데 공수부대 하사관들 몇 명이 물어봅니다. 아까 공습 당할 때 혹시 불발탄 같은 거 있지 않았냐고.


  두 발 있긴 했는데 치우라고만 지시했지 어디다 치웠는지는 몰라서 보병 애들한테 물어보라고 하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웅성대면서 몇 명 나가더라구요.


  그러고 한 이삼십 분 지나서 보병 애들에게 무전이 왔습니다. 청음조 애들이 예상 진입로 방향에서 전차 기동음을 청취했다는 거요. 올게 왔구나 싶어서 상황이라도 살펴 볼 요량으로 당번병이랑 무전병만 데리고 터널 밖으로 나오는데 그 묵직한 기동음이 여기까지 들립니다. 침을 꼴깍 삼키는데 갑자기 별안간 전차 방향에서 폭발이 크게 벌어졌어요. 침 삼키려는 순간에 너무 놀래서 딸꾹질이 다 나서 수통 하나를 그 자리에서 비워야 했어요.


  그 직후에 이야기를 들었어요. 공수부대에 폭발물 전문 대원들 몇 명이 아무도 무서워서 가까이 안 가려고 하는 그 불발탄들을 보고 얼싸 좋다 달려들더니 그 자리에서 이리저리 고치고 격발기를 붙여서 월남에 베트콩들마냥 부비츄랩을 만들어서 예상 진입로에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C4폭탄 블럭 몇 개랑 같이 임시로 지뢰지대를 구축했다는겁니다.


  그거 보고하러 나한테 달려왔다가 나랑 같은 자리에서 부비츄랩 터지는 걸 먼저 본 공수부대 소령 녀석이 “역시 항공폭탄이 터트리는 맛이 좋아. 쌈빡하네.”하면서 정말 즐거운 표정으로 싱글대는데 정말 그 말 그대로였어요. 


  횡대로 밀고 들어오던 전차 예닐곱대가 유폭을 일으키면서 활활 타오르는 와중에 그 불빛을 보고 보병들이 신이 나서 66미리 로우랑 3.5인치 로켓포를 맞추고, 북괴 전차대는 그거에 또 얻어맞고 터지면서 쩔쩔매고 있는데,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창피하게도 어떻게 작전 지휘를 해야겠다 하는 지휘관으로서의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저게 만약 터널 입구에서 터졌다면, 그대로 꼼짝없이 굴에 갇혀서 생매장을 당했겠구나.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그 와중에 굴에서 CP의 행정병 하나가 급히 뛰어나와 여단 본부에서 찾는다고 나를 붙잡았습니다. 일단 방어 자체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아 지휘를 공수부대 지역대장에게 맞기고 CP로 복귀했는데, 그쪽은 상황이 너무 안 좋았어요.


  가뜩이나 음질이 개판인데 거기다 총소리가 섞여서 더 알아듣기 힘든 전화내용을 어찌어찌 이해해보니 당장 유도탄 차량 끌고 퇴각해서 어디어디 좌표 불러주고 해당 지점에서 재편성을 하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알았다고 하려는데 갑자기 그 전차들의 잔해들이 생각났어요. 들어오고 나갈 길은 거기밖에 없는데, 거기를 전차 잔해들이 꽉 틀어 막은 거죠. 큰일이 난겁니다.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그럴 수 밖에 없던 거에요.


  다큐멘터리에서 그 이북 출신 특작 정보장교였다는 사람이 통탄에 잠겨서 아무리 지들 보기에 빨갱이래두 그렇지 그런데다가 그렇게 화학탄을 쏠 수 있는거냐고 말하던 게 아직도 생각납니다. 하지만 전 그 점에선 죄송스런 맘은 있지만 설령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주저 없이 쏠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좌표를 지정한 것은 제가 아니라 윗선의 지시였고, 유도탄은 정확하게 명중했습니다. 어디다 쐈는지가지고 저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왜 명령도 없이 미사일을 쐈냐는 질문을 받았죠.



* * *



  여단 본부의 퇴각 명령을 듣고 저는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래저래해서 지금 기동로가 막혀있다. 견인 차량으로 치워버리든 불도저로 밀어버리든 지원이 필요하다. 아니면 몸만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제대로 대답도 못 듣고 폭탄 터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화가 뚝 끊겨 버렸어요. 


  짧은 시간에 제 대대원들이 처한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습니다. 상부에서는 자력으로 퇴각을 명령했고 여단은 우리를 지원해 줄 처지가 못 된다. 하릴없이 다른 곳에 연락을 시도하고 기동로상의 차량 잔해를 치울때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다. 북괴군 전차중대가 격파되고 잠잠한 지금이 유일한 탈출의 기회이다. 지금 머뭇거리다간 모두가 인민재판 총살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도탄을 그냥 버리고 갈 수는 없다.


  바로 대대 전 장교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 했습니다. 예. 저는 유도탄을 끌고 퇴각할 수 없다면 차라리 유도탄을 쏴버리고 관련 장비들을 전부 파기한 후에 도보로 퇴각하자고 했습니다.  이 좌표는 평시 작계수립 단계에서부터 위에서 상황 판단을 내려 지정해 준 좌표인 만큼 완전 붕괴 상황에 직면한 서부전선의 전황에도 다소 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저의 판단이었습니다. 


  명령을 하진 않았어요. 어디까지나 이것은 제 독단적인 판단이었고, 더 좋은 의견 있으면 제시해보라고 했습니다. 두 가지 의견이 더 나왔습니다. 아예 미사일을 쏘지 말고 차량 지원을 받아 잔해들을 치울 때까지 현 진지를 사수하자는 이상론, 그리고 유도탄을 쏘지 말고 같이 파기한 뒤에 인력만 철수하자는 의견 이렇게 두 가지였고, 저희는 수첩을 한 장씩 찢어 즉석에서 세 안을 비밀 투표에 붙였습니다. 결과는 뭐 잘 아실테고.


  투표 결과가 나오고 봉인돼있던 지정 타격지점 좌표를 확인했습니다. 근데 설마설마 했는데 거기 맞았어요. 예. 평양이요. 


  나중에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목표를 확인해보고 투표를 해야했다’고 제게 말한 부하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전 대답했죠. ‘절차상 발사를 결정하기도 전에 봉인되어 있는 전시 타격목표 좌표를 확인할 수는 없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기자양반한테 처음 말하는 건데, 그 이유때문만은 아니었어.


  내심 걱정했습니다. 만약 좌표가 평양이라면, 아니면 양민들이 많이 사는 어딘가라면, 과연 부하들이 내 제안을 받아 들여줄 지 말입니다. 이건 상부에서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결정한 전략목표였을거에요. 민간인이 많이 있어도 타격이 불가피한 그런 장소라서 말이지요.


  좌표를 확인하고 나서, 독가스 공격을 받을 죄없는 사람들은 생각 안 해 봤냐고? 일단 표현을 정확히 정리합시다. 죄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북의 평양은 체제 충성도별로 수 십 등급으로 나뉘어진 계급의 최상위들이 모여 사는 도시이고, 평양 시민이라는 점 그 자체만으로 그들은 북괴의 전쟁수행에 굉장히 협조적인 전쟁 참여 당사자입니다.


  궤변이라구요? 기자 아가씨. 당신의 조국 미합중국은 적국 군수공업능력 마비와 적국민 전쟁수행 의지 분쇄를 위해 아낌없이 독일과 일본의 민간인들 머리 위에 폭탄을 쏟아 부었어요. 이것도 본질적으론 그와 다를 바 없는 전략적 임무 수행이었다 이거요. 


  화학탄이라 더 잔인하다고? 고폭탄이나 네이팜탄은 덜 잔인하게 죽으니 괜찮은거여? 거기 있는 놈들이 그 순간에 민간인이긴 했을까? 제복 입고 총기 불출받고, 군 체계에 있지 않았겠어? 그럼 그거 양민이 아니라 적군 아닌가?



* * *



  … 그래, 알아요. 당신은 기자지. 독자들중에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을 사람들이 있었을테고, 당신은 그런 자들의 입장까지 대변해줘야 할 이유가 있겠지. 직업적이란거 이해 합니다. 이해 못했으면 벌써 인터뷰 파탄 났을거요.


  그러니 당신은 끝까지 당신의 직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인터뷰 대상자의 이야기를 무시하거나 편견으로 대하지 말란 이야기요. 그때는 전쟁중이었고, 그 무렵 세계는 양측 모두 화학탄은 기본이고 핵무기까지 거리낌없이 사용할 준비가 돼 있었지. 우린 준비된 최선의 옵션으로 최고의 전략목표를 타격한겁니다. 


  철수하고 나서야 알았죠. 우리같은 처지의 유도탄 운용부대가 여럿 있었고, 그들은 대부분 우리와 같은 결정을 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2차 한국전쟁은 1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화학전으로 역사에 길이 남았고…….


  상관 없어요. 어쨌든 그들의 최초 공세는 나같은 사람들의 결정 덕분에 일시적으로 마비되었습니다. 평양 - 원산선 이남 전연지역 여러 공군기지가 화학탄 공격으로 마비되었고, 후속 침투작계를 준비하며 활주로에 대기하던 An-2와 북괴 특작, 갓 첫 소티를 소화하고 활주로에 내려앉던 북괴 전폭기들과 조종사들이 당한게 가장 큰 치명타였다고들 합디다. 


  일부 미사일들이 명령 없이 발사되었음을 간파한 아군 지휘부는 책임 소재를 따지기보단 적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통제아래 있는 포병부대와 화학대에 화학탄 투발명령을 내렸고, 아군은 일주일에 걸쳐 기적적으로 한강 방어선 구축과 서부전선 재정비에 성공했지.


  걔들도 얼마 안 있어서 이쪽에 대고 V작용제들을 존나게 뿌려댔지만, 걔들은 별 재미 못 봤어요. 화학탄은 처음 뿌리는 놈이 제일 재미 보는 무기에요. 그 다음부턴 서로 준비하고 있으니까 효과가 극히 반감되거든. 


  그 뒤 이야기는 기자양반도 알지?‘사후재가’로 일을 벌였으면 성과라도 잘 나와야 말이라도 꺼내겠는데, 제대로 수습도 못하고 본전도 못 찾게 될 판이니까 중소가 건방진 사고뭉치를 어떻게 봤겠습니까. 미국이랑 관계개선에 재미 붙이던 중공은 대놓고 늦기 전에 휴전하라고 압력 행사 했다던데. 


  쟤들 스폰서들이 모두 탐탁찮아하니 우리는 여차저차 황해도 전역과 함경도 일부를 수복했고, 미군과 국경을 맞대긴 싫은 중공의 입장탓에 거기서 2차 휴전협정. 김씨 왕조 통치력도 예전같잖고, 군대도 괴멸된 이후 비실비실하던 북괴는 결국 91년에 체제 붕괴. 이만하면 그 사단이 났던 것에 비하면 양호한 결말 아니요?


  아 그래요. 서울 시내로 화학탄두 탑재한 프로그 로켓이 떼거지로 날아들때는 나도 내 결정을 잠깐  후회했어. 그날 평양으로 날아간 유도탄은 우리가 쏜 것들이 전부였으니까. 백 퍼센트 우리땜에 보복한거잖아. 


  보도관제로 우리 유도탄이 먼저 평양에 화학탄 뿌린건 모르는 사람들이 양민학살 규탄한다고 관제  궐기대회 하는걸 보고 고개 푹 숙이고 도망쳤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덮을 수가 없게 되니까 막 청문회 열리고, 뉴스에도 내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했지. 시절이 시절이라 무죄판결 나긴 했지만, 결국 이렇게 태평양 너머로 도망쳤고…….


… 솔직히 말하지. 가끔, 내가 잘 했던건지 의문이 들어. 끝내 쏘지 않고 인력만 빠져 나왔거나 전멸당한 몇 몇 포대들, 거기서는 왜 쏘지 못했던걸까. 안쐈던게 아닐까 하는 그런…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안 알려 주더라고. 아마 이젠 민간인이니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걸겝니다. 그렇지 않겠어?


  아무튼 말이죠. 강한 힘엔 강한 책임이 따르는데, 제가 책임을 제대로 졌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