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형관


"덴노 헤이카 반자이!"


"도쯔께끼! 마에!(돌격 앞으로!)"


일본군 15사단 소속 제 11보병연대는 중국군의 좌익 방향으로 돌격을 하고 있었다.


이미 이곳을 지키던 중국군 상당수는 포격에 맞아 반신불수가 되어있거나, 도망갔거나 둘 중 하나였고 몇몇은 남아 일본군과 최후까지 백병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기본적인 체격, 전투 경험 등의 차이로 밀리고 있었다.


일본군 오장 도시오 테사루는 앞장서서 함성을 지르며 돌격을 하고 있었다. 아군의 포격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함성소리, 지나군의 대도와 아군의 총검이 번뜩이며 나는 소리 등이 울리고 있었다.


적이긴 하지만 중국군의 대도는 뭔가가 멋있었다. 큰 칼을 들고 하는 백병전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이고 무사도적인가?


돌격을 하던 그는 살아 돌아가면 소대장 중위도노(나리)께 대도에 대해 말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나마 그의 소대장은 그와 친하기도 했고 다른 장교들과 달리 병사들을 함부로 패는 놈도 아니었으니까.


이윽고, 뭔가 도이치군 느낌이 나는 군복을 입은 지나군 앞에 다다른 도시오는 그가 가진 총검을 휘둘렀다. 겁에 질린 얼굴을 하던 지나군은 그가 가진 대도를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에 칼이 박혀 쓰러졌다.


잠깐 짜릿함을 느끼던 그는 옆에서 달려드는 또 한명의 지나군을 발견하고 총검을 찔렀다. 하지만 이번의 지나군은 꽤 이런 백병전을 해봤는지 대도로 총검을 막고 바로 한 번 더 대도를 휘둘러왔다.


대도를 총검으로 막은 도시오는 그 지나군과 신나게 칼을 주고 받았다. 한 10합을 주고 받았을 때, 옆에서 날아온 총알이 그의 목을 궤뚫었다.


그는 숨구멍이 피로 막히는걸 느끼며 옆으로 나자빠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옌시산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대로라면 중군과 우익군까지 한꺼번에 포위섬멸로 무너질거다. 총통 각하께서도 정 안되겠으면 최대한 병력을 보존해 후퇴하라고 했으니, 뒤에 시간을 끌 병사들 몇명을 남기고 전 병력을 옌먼관(안문관)으로 후퇴시킨다. 뒤로 남길 병사들은... 이왕이면 기관총을 든 중앙군으로 하지."


"옙!"


그렇게 중군과 우익군을 구성하던 15군 병력과 17군 병력 일부는 뒤쪽으로 후퇴해 옌면관에서 대기하던 푸쭤이의 59군과 합류할 수 있었다.


한편, 21사단 소속 기관총병들과 보병들 약 8000명은 뒤에 남아서 분투하고 있었다. 일본군들은 중국군이 저렇게 좋은 기관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못해(사실 알았어도 반자이 돌격 했을거다) 무작정 반자이 돌격을 하다 M1926에 갈려나가 수천의 사상자를 냈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이타가키 일본군 15사단장은 일단 돌진하던 부대를 후퇴시키고, 약 하루 정도 교착양상을 보이던 전선은 마침내 이타가키가 항공지원을 요청함으로써 다시 전투에 불이 붙었다.


결국 대공무기도 남은 인원도 충분하지 않던 21사단 병사들은 폭격과 일본군 약 3만명의 포격지원을 받은 돌격에 말 그대로 200명을 남기고 인수분해되었다.


하지만 의미가 없는 죽음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 이로 인해 3만명에 달하는 두 군단의 병사들은 무사히 후퇴할 수 있었다.


물론 애써 키운 자신의 중앙군이 날아가는 걸 지켜보던 나는 머리를 싸맸지만 아예 의미없이 날아간 것도 아니니 일단 분노를 삭혔다.


이로써 약 1주일을 넘게 끌던 평형관 전투는 8월 30일 새벽에 일본군이 이 지대를 완전 점령함으로써 끝났고, 그로 인해 다퉁과 바오딩이 측면에서도 공격받을 수 있게 되었다.


중국군은 평형관 전투의 피날레를 장식한 '단성구 전투'에서만 5만명 중 15000명, 평형관 전투를 모두 합쳐서 보면 10만 명 중 2만 2천명을 잃어야 했다. 무엇보다 전군에 25대 밖에 없는 빅커스 전차 중 3대를 잃고 대전차소총과 중기관총을 장비한 정예부대인 21사단을 대부분 날려먹은것도 뼈아팠다.


하지만 일본군도 여기 동원한 6만명 중 약 9000명이라는 적지 않은 사상자를 내고 11대의 전차를 잃는 등 상당히 큰 손실을 낸 터라 이 전투 이후 전선은 한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다.



9월 2일, 난징


"하오! 하오! 이얼싼쓰!"


내가 없는 예산을 쥐어짜 키워내는 독일식 정예부대인 '66사단'에 들어갈 장병들이 군사 훈련을 받고 있었다.


"제군들! 제군들은 조국의 시민들(사실 부패사범들)이 낸 세금(벌금)으로 키워질 사단에 들어가게 될 장병들이다! 이렇게 훈련해서야 일본군을 이기겠나! 민국체조 8번동작 5회 시작! 몇회?"


"5회!"


"목소리가 너무 작다. 8회! 몇회?"


"8회!!!!"


"좋다. 마지막 구호는 생략하도록."


-삑삑삑!


"다 좋은데... 애들을 너무 빡세게 굴리는 거 아닌가? 내가 개발한 체조를 잘 쓰고 있다니 기쁘네만 이렇게 자주 써서는 오히려 병사들의 반발만 불러일으킬 뿐이야."


내가 국군의 PT체조를 그대로 배껴와 사용중인 '민국체조'는 요즘 교관들이 병사들 훈련시키는데 자주 사용되고 있었다. 문제는 몇몇 꼴통들이 이걸로 병사들을 지나치게 굴려서 오히려 아군의 전투력을 낮추는 트롤행위를 한다는 것.


보이는 족족 주의를 주고 있지만 아직도 그런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었다.


내가 만든 것 중 군대에서 유행하는 게 하나 더 있었는데, 내가 여가시간에 장난 삼아 예전 중국(중공)의 선전노래를 약간 개사해 만든 군가가 유행중이었다.


"전군! 군가 시작! 군가는~ '큰일을 하려면 국민당군 같은 군대에 입대해라!'


"국민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황하와 장강은 도도하게 흐른다~... 큰일을 하려면 국민당군 같은 군대에 가라~ 우리 군은 전투력 넘치고 열정도 넘치는 군! 황군이고 한간들이고 도망 못가게 다 때려잡는다네!"


반쯤 장난식으로 만든 건데 이렇게 유행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역시 최고지도자가 직접 만든거라 이렇게 대단한건가?


"전군! 군가 끝났으면 새로운 진법 8(여덟 팔)자 포위망 훈련에 들어간다!"


실제 중일전쟁 초중반부터 중국군이 일본군 상대로 잘 써먹은 8자 포위망도 내가 조기에 교육시키는 중이다. 이걸로 최대한 시간을 끌어봐야지.


제발 상하이 같이 화중지방까지 확전되는 일이 앞으로도 없기를...



9월 3일, 상하이 홍차오 공항


"중...중위도노, 훙차오 공항 안엔 지나군이 쫙 깔렸습니다만..."


"그냥 운전해! 명예로운 황군이 정찰을 한다는데 그깟 지나군이 어떻게 막겠는가?"


"그..그럼 하겠습니다."


일본군 중위 오오야마 이사오는 훙차오 공항의 군사시설을 정찰하기 위해 부하 병사인 일등병조 1명을 운전수로 세워서 차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정지! 귀군들은 중화민국의 군사시설에 무단으로 침입했다. 당장 차를 돌리지 않으면..."


-탕


"커억!"


"좆까라 그래! 일병! 빨리 운전해 들어가!"


"구이쯔놈들이 공항으로 쳐들어온다! 전군 발포!"


-타타타탕!


"커억!"


이렇게, 훙차오 공항에 난입을 시도하던 오오야마 이사오 중위는 차를 운전하던 일등병조와 같이 중국군에 사살되었다.


"귀국의 병사들이 그저 공항으로 들어가던 우리 장교를 무단으로 사살했소! 우리는 책임을 물어야겠소!"


"들어가는게 아니라 난입이겠지요! 누가 다른 나라 공항에 허가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침입합니까! 그리고 총은 당신네 병사가 먼저 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나는 그 자리에서 육성으로 한국 욕을 시전했다.


"씨X! 니들이 왜 지금 나와!"


1달 늦게 일어난 훙차오 공항 사건으로, 전쟁은 본격적으로 확전의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