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게 나린 밤. 깨진 가로등이 한 남자의 등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남자는 다급하게 열쇠를 구멍에 넣어 돌린다. 남자가 갈라지는 소리로 외친다.

“씨이발 왜 안 열리냐! 왜!”

식은땀 한줄기가 창백한 볼 위를 흐른다. 눈에는 두려움이 서려있다.

 

 녹슨 철문을 애원하듯이 두드리다가 무언가를 들은 듯 뒤를 돌아본다. 그는 포식자를 마주한 고라니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다리를 벌벌 떨다가 이내 주저앉는다.

“왜, 왜 나한테 지랄이야, 개, 개새끼야”

그가 악을 쓰며 화를 낸다. 한참을 성을 내다가 체념한 듯 두 눈을 감고 자세를 고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두 손을 빌듯이 모으며 작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주여, 저희의 죄를 용서하소서, 저희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어...”

 

 순간 가로등 불이 꺼졌다 다시 켜진다. 깨진 가로등이 검붉은 아스팔트만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귀를 때린다. 요사이 저 빌어먹을 소음 때문에 자려고 누울 적에도 귀에서 삐——소리가 맴돈다. 돌아오는 비번에 이명도 공무 중 재해로 인정되는지 알아봐야겠다. 올리브색 헌팅 재킷 위로 ‘형사-사법 경찰’이라고 적힌 형광조끼를 입는다. 왼쪽 팔을 넣을 즈음 옆구리 재봉선에서 뜯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옷을 두껍게 입어서 그런 것이다. 지갑에 있는 배지를 빼서 조끼 깃에 꽂고 차에서 내린다. 차가 기울어지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폴리스라인까지 걸어가니 현장에는 이미 제복 경찰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폴리스라인을 들어 밑으로 지나가자 시꺼먼 제복들 사이에서 밝은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하나가 양손에 도넛과 스타벅스를 들고 다가온다.

“안녕하십니까! 어제 첫 발령받고 오늘 부임한 형사 아웅 묘묘입니다, 샨 형사님 맞으십니까?”

싱싱한 채소처럼 생기 있는 아가씨다. 사건 현장과는 어울리지 않다. 도넛은 안 받고 아메리카노만 받으면서 묻는다.

“조끼는?”

“아직 못 받았습니다!”

긴장한 목소리로 묘묘가 대답한다.

“브리핑해봐.”

살인사건에 수습딱지 갓 뗀 경험도 없는 신입을 파트너로 붙인 탓에 신경질이 나서 저도 모르게 퉁명스레 말했버렸다.

“넵! 현장에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다량의 혈흔만 발견됐습니다. 감식반이 현재 혈액을 통해 피해자의 신원을 조사 중이고 피의 양으로 보아 현장에서 즉사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혈흔 조사관은 혈흔의 형태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 추락사의 형태와 흡사하며 피해자를 끌고 간 흔적은 없다고 합니다.”

묘묘는 숨이 찬 듯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마저 말을 한다.

“특이한 점은 피해자의 혈흔과 족적 외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뭐? 흔적이 없다고?”

 

 이런 경우는 20년 남짓한 형사 생활 동안 듣도 보도 못했다. 마침 옆에 제복 차림을 하고 수사 보고서를 작성 중인 낯익은 경사가 있어서 물어본다.

“수사관님, 사건 경위가 어떻게 됩니까?”

“방금 저 젊은 형사님이 말한 대로야. 현장에는 피해자의 피와 발자국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항 흔적도 없고, 일단 이걸 살해 현장이라 할지 뭐라 할지 일단 사람이 죽은 것은 확실한데 살점 한 조각 머리카락 한 올 없으니...”

“썅”

 

 순간, 공무 중 재해에 대해 알아보긴 글렀다는 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