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왔나? 어서 앉게."
 
젊은 병사가 미닫이 문을 밀고 들어오자 중년의 병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젊은 병사는 고민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상을 사이에 두고 중년 병사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나저나, 왜 부르셨습니까?"
젊은 병사가 물었다.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고, 네가 고민이 있어보여서, 혹시 내가 들어줄 수 있을까 해서이다. 부담갖지 말고 이야기해보거라. 친한 사이에 걱정을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으니까."
젊은 병사가 약간의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그... 얼마 전에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지."
"왜, 그 전쟁이 끝난 이후에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나눠먹은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어, 그것도 기억나지."
"그때 그 중에서 하나 남은 다리를 제가 먹어버렸는데, 제 친구가 그걸 왜 네가 먹느냐는 문제로 저에게 따졌습니다. 저는 저대로 합리화를 했고 동료는 동료대로 분노해서 말다툼하다가 결국 이렇게 관계가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 젊은 병사가 친구와 같이 여분의 토지와 하나 남은 돌다리를 분배했을 때까지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 열린 뒷풀이 잔치에서 하나 남은 닭다리를 젊은 병사가 먹어버렸는데 그걸로 싸움이 난 것이다.
 
그러나 중년의 병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땅을 분배할 때도 닭을 나눠먹을 때도 그 젊은 병사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년의 병사는 젊은 병사가 어떤 땅을 나눠가졌는지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돌다리를 분배하다가 싸움이 났구나. 마침 그게 마지막 돌다리라 그렇게 됐겠지. 게다가 그 다리가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니 말이지.'라고 오해해버렸다.
 
심각하게 상황을 잘못 이해한 채 중년의 병사가 대화를 이어갔다.
"그랬구나. 심히 안타까운 일이로다. 다리를 하나 더 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을."
"아, 아닙니다. 다리는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사과할 생각은 있느냐?"
"네, 물론입니다. 하지만 용기가 잘 나지 않아서 마음같이 잘 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사과하려는 계획이느냐?"
"그게, 제가 하나 생각해 본 것이 있긴 합니다만..."
"괜찮다. 말끝을 흐리지 말고 한 번 말해보거라."
"알겠습니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닭 한 마리를 들고 그 친구의 집에 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닭 한 마리를 다 먹어치우는 동안 저는 옆에서 군침을 흘리며 지켜만 보는 겁니다. 그러면 사과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년의 병사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잠깐. 그 다리 하나의 가치가 겨우 닭 한 마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이디어는 참신하지만은 그런 식으로 퉁치면 화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얼마 정도면..."
"200마리로도 모자랄걸."
"이.. 이.. 이백마리...!"
 
200마리! 젊은 병사가 속으로 경악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몰려들었다. 내 죄가 그 정도씩이였구나. 그 친구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 다리는 어떻게 했느냐?"
"어떻게 하다니요. 당연히 땅에 묻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중년의 병사가 다시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걸 땅에 묻어버리다니, 너 정말 제정신이냐!"
"그, 그러면 안 됐던 건가요? 그러면 다음부터는 잘게 부숴서 비료로 삼겠습니다!"
"그게 더 이상하잖느냐! 그 귀한걸 부셔서 밭에 뿌릴 생각을 하다니. 그리고, 애초에 그게 되긴 하느냐?"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중년의 병사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다리가 만들어지는 목적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게 무엇입니까?"
"다리는, 다른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라고 있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다리의 가치가 살아나는 법이다."
"그걸 밟고 지나갑니까?!"
"당연한 걸 왜 묻고 그러냐."
 
젊은 병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닭다리는 그렇게 쓰는 거였구나. 이제부터 명심해야지.
 
"아, 그리고 사과할거면 더 제대로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천에 미안하다는 문구를 크게 써놓고 다리에 매달아놓는 것이다."
"지.. 진짜 그렇게 하면 효과적입니까?"
"믿어보세. 당연히 그럴걸세."
"가,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면 어서 가보게. 사과는 빨리 할수록 좋은 법이니까."
 
 
젊은 병사와 늙은 병사가 끝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방에서 나온 젊은 병사는 곧바로 마음을 굳게 잡고 시장으로 향했다.
 
 
==에필로그==
오늘따라 얘가 머리가 좀 이상해진 것 같다. 하나 남은 닭다리를 먹은 것을 놓고 싸운 것을 사과하자고 온 것까지는 좋았다. 나도 사과할 참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다. 닭을 200마리나 가져와서 네가 다 먹을 때까지 자신은 먹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을테니 잘먹으라는 인간이 세상에 누가 또 있겠는가. 오히려 이쪽이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결국 다 먹기는 양이 너무 많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두세마리만 먹어치웠다.)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다. 얘는 내가 먹고 나온 닭뼈들 중에서 닭다리만을 골라 정성껏 이쪽 벽에서 저쪽 벽으로 가지런히 늘어놓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한다. 그것도 그냥 늘어놓는게 아니고  '하나 남은 닭다리를 내가 먹어 미안하다'라고 쓰인 천을 매달아 정성껏 늘어놓는다. 이런 인간은 지구를 넘어 우주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나중에 혹시 머리를 다치지는 않았나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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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장군이라는 용어가 이상하다고 해서 등장인물을 바꿔버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도 나름대로 수정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