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은 나에게 이러한 말을 했다.

 

 

 

"그림 10장을 그리면 천국으로 안내할게요. 대신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주세요."

 

 

 

-

 

 

 

나는 이 세상이 너무 싫었다.

 

 

 

똑같은 교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자라왔다.

 

 

 

이 세상은 고장 난 프린터로 복사한 그림 같아서, 같으면서 다른 그림들밖에 보이지 않아서 너무 싫었다.

 

 

 

나의 안식처는 그림을 그리는 일뿐이었다.

 

 

 

언젠 가의 일이었다.

 

 

 

"선배의 그림은 재미없어요."

 

"왜?"

 

"그림이, 선배가 행복한 것들을 그리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난 행복의 의미를 찾았다.

 

 

 

행복이란 아름답다 배웠다.

 

 

 

그래서, 풍경화를 그리고 인물화를 그렸다.

 

 

 

그래도...아름답다는 의미를 알 수가 없어서, 행복하다는 의미를 알 수가 없어서, 화만 났다.

 

 

 

"행복하다는 건 뭐야?"

 

"아름다운 거요."

 

"그런걸 묻는 게 아니야."

 

"저는 -를 행복하다 생각해요."

 

 

 

-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아름답다고 보는 그녀는 내게 없는 빛을 가지고 있어서, 너무 행복해 보여서 싫었다.

 

 

 

나는 행복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왜 나는 행복을 알 수 없는 거지?

 

 

 

-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졸업하기 반년을 남기고 나는 병으로 죽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있던 병이라고, 불치병이라 들었다.

 

 

 

아직 행복을 모르는데, 아직 아름다운 것을 모르는데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 걸까?

 

 

 

너무 싫었다.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이 세상이 너무 싫었다.

 

 

 

아름다운 것은 없고, 행복한 것은 없다.

 

 

 

왜 사람들은 행복한 거야? 왜 나만 행복하지 못하는 거지?

 

 

 

그런 내 앞에 사신이 찾아왔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사신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였지만 나의 눈에는 모든 게 어둡게 보였으니까, 백도 흑으로, 흑은 더 어두운 흑으로밖엔 보이지 않았으니까.

 

 

 

-

 

 

 

사신은 말했다.

 

 

 

"당신은 천국에 가고 싶으신가요?"

 

"당연하지, 이렇게 불행했는데 지옥까지 가면 어쩌란 거야."

 

"하지만 당신은 행복을 몰라요. 행복을 모른다면 천국에 가도 행복하지 않을 거에요."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당신에게 기회를 줄게요. 당신과 항상 같이 있었던 미술실에선 사람의 몸을 드릴게요. 과거에서 유령의 몸으로 행복을 찾아, 미술실에서 그림을 10장 그려주세요."

 

 

 

그리하여 나는 유령이 되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행복을 찾아, 천국에 가고 싶었으니까. 이대론 너무 불행하니까. 이제 와서 포기하긴 싫으니까.

 

 

 

"그럼 가 볼까요?"

 

"그래."

 

 

 

-

 

 

 

처음은 교실이었다.

 

 

 

아이들이 노는 소리, 연필의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나, 분필이 만들어내는 잡다한 소음을 들었다.

 

 

 

내 앞에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나의 그림을 칭찬하거나, 같이 그림을 그리거나 했다.

 

 

 

"쌀쌀맞은 남자네요."

 

"그렇게 말해도...그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

 

 

 

두 번째는, 학교 옥상의 정원이었다.

 

 

 

도시락을 먹는 나와 그녀는 지금 보기엔, 너무 좋아 보였다.

 

 

 

내 도시락을 뺏어 먹는 그녀가 약간은 얄미웠는데, 지금은 귀엽게 보였다.

 

 

 

"쩨쩨한 남자네요."

 

"나는 계속 혼자라 생각했으니까."

 

 

 

-

 

 

 

세 번째는 중-고등학교 졸업식이었다.

 

 

 

나는 친한 사람이 없어서, 그녀가 나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을 생각은 없었지만.

 

 

 

"하나, 둘!"

 

"셋."

 

 

 

찰칵.

 

 

 

"무표정한 남자네요."

 

"이때도 행복은 몰랐어."

 

 

 

-

 

 

 

네 번째는 대학의 입학식.

 

 

 

그녀와 나는 같이 앉아, 입학식을 보내고, 축하를 했다.

 

 

 

대학을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건 아니지만, 혼자 미술을 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기쁘지 않은 건가요? 대학에서 새로운 인연을 찾을 수도, 행복을 찾을 수도 있었잖아요."

 

"인연은 그녀 하나만으로 충분했어. 딱히 다른 사람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녀만으로 벅찼으니까. 행복은 찾을 수 없었으니까."

 

 

 

-

 

 

 

다섯 번째는 미술실에서.

 

 

 

같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며, 서로의 그림을 평가했다.

 

그녀는 주로 인물화를 그렸는데...

 

 

 

"나를 그렸구나. 전부."

 

"네. 그렇네요."

 

 

 

-

 

 

 

여섯 번째는 식당에서.

 

 

 

그녀는 만취상태로 말했다.

 

 

 

"저는 사실 천사라고요?"

 

"천사가 만취로 취하기도 해?"

 

"그럼요......"

 

 

 

"잠들었네."

 

"그랬죠."

 

 

 

-

 

 

 

일곱 번째는 노래방에서.

 

 

 

그녀는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나도...뭐 그냥 불렀다.

 

 

 

"잘 불렀었죠."

 

"이제 와서지만...잘 부르긴 했네."

 

 

 

-

 

 

 

여덟 번째는 병원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나와,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그녀.

 

 

 

"안 아파. 딱히."

 

"거짓말......"

 

"그럼 가."

 

 

 

딱히 걱정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심술이 심하네요."

 

"내 마음 알 거 아니야. 걱정하게 만드는 건 내 취미가 아니야."

 

 

 

-

 

 

 

아홉 번째는 수술실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건강하게 돼서 나오셔야 해요?"

 

"노력해볼게."

 

 

 

"결국 건강하게 되진 못했네."

 

"유령이 되었으니까요."

 

 

 

-

 

 

 

열 번째는...

 

 

 

"이건 현재야."

 

"그러네요."

 

 

 

나는 죽었고, 죽은 사람은 장례를 치룬다.

 

 

 

"내가 커다란 오븐 안으로 들어가는 건 볼만한 게 아닌 거 같아."

 

"저도 좋아하진 않아요."

 

 

 

-

 

 

 

"이제 그려봐요."

 

"그래......"

 

 

 

나는 본 것을 찬찬히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

 

 

 

교실 옥상 미술실......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 놓친 게 많아서, 그렇게 행복한 풍경이었는데, 전부 놓쳐버려서......

 

 

 

"너무 슬픈 거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정말 너무한 사람이네요."

 

 

 

10장을 그렸다.

 

 

 

10장 너무 아름답고, 행복해서, 내가 지금까지 그린 그림보다, 더 값져서...슬펐다.

 

 

 

"이런 행복 얼마 주고도 살 수 있는 건 아닐 거야."

 

"시간은 많아도,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은 적어요."

 

"아냐, 많아. 그저 내가 눈치채지 못해서, 떠나 보낸 거야."

 

 

 

-

 

 

 

"11장 다 그렸어."

 

"네 다 봤어요. 같이 그렸으니까요."

 

"너는 뭘 그렸어?"

 

"눈앞의 남자요."

 

 

 

또 그린 건가......

 

 

 

"그런데 1장 더 그리셨네요?"

 

"안된다고 말은 안 했잖아. 보통 더 그리는 거는 뭐라고 안 해."

 

"무얼 그리셨나요?"

 

"너."

 

 

 

나는 눈앞의 천사를 그렸다.

 

 

 

"미안하네. 탁한 남자라서."

 

"딱히 불행한 게 죄는 아니에요."

 

"아냐. 나는 행복했어, 아니 행복해."

 

"그런가요?"

 

 

 

그래 행복해 지금.

 

 

 

"그럼 이제 갈까요? 천국으로."

 

"그래."

 

 

 

몸이 조금씩 흐려졌다.

 

 

 

"......"

 

"왜요?"

 

"미안."

 

"뭐가...요?"

 

"전부."

 

"왜요?"

 

"행복했는데 몰라서."

 

"......"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사랑해."

 

"......"

 

"내 행복은 너였으니까."

 

"......정말......"

 

 

 

-

 

 

 

그 남자의 몸은 사라졌다.

 

 

 

구름이 되어, 수증기처럼 사라진 그는 이제 더는 여기에는 없었다. 하지만......

 

 

 

내 손을 잡아준 그 온기는, 유령일 텐데도 너무 따뜻해서, 너무 슬퍼서...너무 행복해서......

 

 

 

"정말 너무한 사람이네요......"

 

 

 

울어버렸다.

 

 

 

 

 

 

 

 

 

 

 

 

 

 

 

 

 

 

 

 

 

 

 

 

 

 

 

 

 

 

 

 

 

 

 

-

 

 

 

 

 

"뭘 보고 있어?"

 

"그림이요."

 

"10장?"

 

"아뇨 11장이요."

 

 

 

나는 그녀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다녀왔어."

 

"어서 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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