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이는 저 검은 지대는 고요의 바다입니다. 200여 년 전에 아폴로 11호가 착륙한 곳으로 알려진 이 고요의 바다는.."

 

나레이터는 몇 시간 동안 관광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알아먹지도 못할 설명들을 늘어놓고 있다.

고요의 바다니 거품의 바다니 그렇게 이름을 붙이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여기서 보면 다 똑같이 생긴 검은 돌 구덩이인데. 사람들은 무언가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름을 붙이려는 욕심이 있다.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타는 지하철의 역명과 화학 시간에 배우는 화학원소들이 그 결과물었는데,

만약 내가 그런 것들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면 숫자 1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나열할 것이다.

 

“이번 역은 1번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어디서 내려야 도서관으로 갈 수 있나요?”

“4번 역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자 학생 여러분. 우주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원소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1번 원소요. 선생님!”

 

“얘야 나레이터분이 말씀하시는 거 잘 듣고 있는 거니?”

 

어머니가 멍 때리고 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네. 잘 듣고 있었어요.”

“지금 잘 듣고 잘 봐둬야 한단다. 여기 오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다고. 우리 가족이 언제 달에 또 오겠니?”

“잘 알고 있어요.”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던져진 다음 무언가를 보는 것. 이것이 사람들이 흔히 여행을 가서 겪는 일이다.

사람들은 미지의 장소에 일종의 경외나 낭만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여행이라는 것이 그것들을 충족시켜 준다.

누군가는 아시아의 기암괴석을 바라보고 싶을 것이며 누군가는 유럽은 푸른 바다를 느껴보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속에 있는 그 경외나 낭만이라는 감정을 잠시 배제하고 여행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행위가 된다. 누군가가 평생 낭만을 가지고 살아온 그 기암괴석은 현지인에겐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며,

유럽의 푸른 바다도 현지인에겐 물고기나 잡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그런 곳일 테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여행은 의미가 없어진다. 물론 여행이라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그런 멀리 있는 곳에 대한 경외나 환상 덕분에 정작 가까이 있는 곳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우리 어머니가 그러하신데 어머니는 집 근처에 있는 작은 호수를 싫어하신다.

볼 게 없다고 자주 가시지도 않고 갈 때마다 그곳이 심심하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 호수로 가는 것이 최고의 여행이다.

호수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나 홀로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는 건 매 순간 설레고 흥분되니 말이다. 

 

“얘야. 안 따라오고 뭐 하니!”

 

어머니가 저만치에서 큰소리로 날 불렀다. 관광객 무리는 저 앞에서 다른 구덩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는 관광객 무리를 향해 걸어갔는데 바로 옆 투명한 벽면 뒤로 채굴꾼이 월석을 캐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있자니 더더욱 이곳이 마음에 안들었다. 

 

 

...

 

 

 

난생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건조하기 짝이 없었고 오래 씹고 있으면 화학약품 냄새까지 스멀스멀 올라왔다.

삼키는 것도 어려워서 씹을 때마다 물을 마셨다. 

 

“맛이 어떠니 얘야?”

 

어머니가 옆에서 물었다.

 

“쓰레기 같은데요. 너무 먹기 어렵고 맛도 없어요.”

“그게 아폴로 11호 대원들이 먹었던 우주식량이라고 하더라.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런 걸 먹어보겠니?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먹어봐.”

 

어머니 말이 맞았다. 이때가 아니면 절대 먹지 않을 그런 음식이었다.

어머니는 지구에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나눠줄 생각으로 아폴로 11호 우주식량을 여러 개 샀는데

후에 나레이터가 이곳 음식은 외부로 가져갈 수 없다고 말했기에 남은 식량은 전부 내가 먹었다.

하나씩 먹을 때마다 속이 더부룩해졌는데 다 먹고 나니 뱃속의 우주식량이 내 몸 어디로든 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화장실은 큰 광장에 있었는데 광장은 지구의 공항마냥 온갖 잡소리들과 케리어를 든 사람들로 빽빽했다.

지구도 아닌 달에서 온갖 나라의 사람들이 한 대 엉켜서 소리치고 있는 모습은 나름 진풍경이었다.

그건 그렇고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저 앞에 안내 로봇이 있어서 그쪽으로 갔다.

 

“저기요. 화장실은 어디에 있나요?”

“저기 보이는 통로에서 오른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고객님.”

 

변기에 앉아 있으면서 생각했다. 내 똥은 어디로 가는 걸까? 달은 온통 돌덩어리라 파묻을 곳도 없을 텐데.

아니면 우주로 쏘아 보내는 건가? 내 똥이 빠른 속도로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해보았다.

누군가가 맞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화장실을 나오는데 키가 크고 코가 정말 큰 외국인이 내가 알아 듣지도 못할 자기네 나라말로 말을 걸었다.

 

“네? 뭐라고요?”

 

외국인은 계속 자기 나라말로 말했다.

 

“죄송한데 저는 그쪽 나라말 몰라요.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요.”

 

외국인은 몇 마디 하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참 웃긴 사람이네 안 그래?”

 

뒤에서 누군가가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네. 그치?”

 

그 애가 나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린 음료수 하나씩을 사들곤 난간에 기대어 이야기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곤 어떻게 지냈는지

고등학교는 어떤지 뭐 그런 이야기들이었는데 그 애가 워낙에 신이 나서 말을 했기에 어색하진 않았다. 

“그건 그렇고 진짜 웃긴다. 졸업하곤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데 어떻게 여기서 마주치는 걸까? 지구도 아니고 달에서 말이야!”

 

그 애가 말했다.

 

“그러게. 나도 처음엔 네 목소리 듣고 설마 했는데.”

 

내가 대답했다.

 

“아. 그건 그렇고 여기 어때?”

“달 말이야?”

“그래. 나도 달엔 처음 와보는데 너무 신기해. 지구에 있을 땐 하늘에 떠 있는 것만 봤는데.”

“난 별로야.”

“왜?”

“잘 모르겠어. 딱히 이쁜 것 같지도 않고. 아마 너무 낯선 곳이라서 그런가? 별 감흥이 없어. 난 지구가 더 나은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 지구가 이쁘긴 더 이뻐.”

“지구에서 본 달이 더 이쁘기도 하고.”

 

내가 대답하자 그 애가 크게 웃었다.

 

“왜 갑자기 웃어?”

 

내가 물었다.

 

“그냥. 졸업한 지 3년이나 됐는데 네 특유의 감수성은 그대로네.”

“내 감수성?”

“그래. 네 감수성. 난 네가 첫날에 자기소개 하던 게 아직 생각나는걸.

제 취미는 집 근처 작은 호수에 가서 나온 지 200년 넘은 책을 읽으며 나온 지 200년 넘은 음악을 듣는 것입니다. 라고 했잖아.

그것뿐이야? 한밤중에 날 부른 다음 엄청나게 오래된 영화들이 적힌  쪽지를 주면서 시간 날 때 보라고 했었잖아.

나 그런 건 태어나서 처음 받아 봤다고.”

“그래서 그 영화들은 봤어?”

“몇 개는 봤어.”

“어땠는데?”

“좀 어려웠는데.. 그래도 재미있었어. 아 기억 나는 게 하나 있다!

그 목록에 두 번째로 적혀 있던 영화에 달이 확대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달 위엔 기지가 없었어!”

“그야 달에 기지를 짓기 전에 찍은 영화니까.”

“넌 그게 상상이 되니? 기지를 짓기 전의 달이라니.”

“상상하기 어렵지.”

“그리고 그때는 이렇게 달로 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아마 그렇겠지. 그땐 아폴로 11호가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데 한 달이나 걸렸다고 하니까.”

 

그때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전시실로 오라는 어머니의 문자였다.

 

“아. 어머니가 전시실로 오라네.”

 

내가 말했다.

 

“잠깐만. 조금만 더 있다가 가. 몇 년 만에 만났는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건 그렇고 너 수염 길렀네.”

 

그 애가 말했다.

 

“아. 졸업하고 나서부터 기르고 있지.”

내가 대답했다.

 

“잘 어울리는데. 머리도 좀 길러봐. 그 수염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긴 머리는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아니야! 분명히 잘 어울릴 거야. 내 말 믿고 한번 길러봐. 부탁이야.”

“네가 원한다면 한번 길러보긴 할게.”

“그건 그렇고 내 옷 어때? 나는 네 수염 멋지다고 해줬는데 너는 뭐 해줄 말 없어?”

 

그애는 꽃무늬가 있는 긴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마른 체격이라 제법 잘 어울렸다.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그게 다야?”

“진심이야. 정말 잘 어울려.”

 

그 애는 가볍게 웃으면서 저 멀리 지구를 쳐다보았다.

 

“야. 네가 얘기한 그 작은 호수 있잖아. 네 집 근처에 있다던.”

“그게 왜?”

“그 호수가 여기서 보이는 지구보다 더 아름다워?”

 

나는 지구를 바라보았다. 푸르게 반짝거리는 것이 무슨 구슬 같았다.

 

“좋은 음악이나 좋은 책이 있다면 더 아름다울 수도 있을 거야.”

“200년 된 음악이랑 책 말이야?”

 

그 애는 웃으면서 말했고 나도 웃었다.

 

“우리가 지구로 돌아가면.. 거기 나도 데려다줄 수 있어?”

 

그 애가 날 보며 물었다.

 

“네가 원한다면.”

 

내가 대답했다.

 

“책이랑 음악도 빌려줄 수 있어?”

“그것도 네가 원한다면.”

 

그 애는 웃으면서 다시 저 멀리 지구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 애의 눈을 바라보았다.

적당히 크고 적당히 아름다운 눈망울은 지구의 푸른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문자도 잊어버린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