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겁지겁 열차에 탔다

다행히 자리가 하나 남아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앉기 전에 빠르게 자리에 착석했다

 

얼마만에 앉아보는 자리던가,

위성 신도시와 도심 사이에 거주하고

도심의 사람이 많이 내리는 환승역 바로 직전 역에 직장이 있다 보니

앉아서 출퇴근하는건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 안도감도 잠시

다리가 무척 불편한 할머니가 병원 전단지를 들고 내 앞에 섰다

이게 얼마만에 앉아서 출근하는건데 왜 그 자리를 뺏으려 하십니까... 하고 속으로 한탄했다

하지만 나보다 불편한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텅 비어 있는 노약자석과, 전단지에 적힌 역이 이 노선의 종점역이라는걸 발견했다.

 

문득 화가 났다

텅 비어 있는 노약자석을 냅두고 왜 여기에 있는거지?

자신이 정말 오랜만에 앉아서 출퇴근하는게 그렇게도 꼴 보기 싫어서 신이 나에게 시련을 내린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화는 결국 행동으로 옮겨졌다

나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자는 척 하고 있으면 조금 있다 비어 있는 노약자석으로 이동하겠지... 싶어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

어라... 깜빡 잠이 든 건가...

북적이던 열차가 부쩍 한산해진게 느껴지자 나는 내릴 곳을 놓쳤나 싶어 눈을 떴다

열차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열차 밖은 지상에 끝을 모른채 펼쳐진 들판이었다

 

이 열차가 이런 곳도 경유하나 생각하면서

다음 역에서 반대편 열차를 타겠다고 생각한 찰나

'쿵!' 하고 열차가 진동했다.

당황한 나는 급히 주위를 살펴보고

다른 객차로 통하는 문을 보고 경악했다

객차가 분리되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었다

곧 이어 '쿵' 소리가 나며 반댓편 객차도 분리되고 말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태어나서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에 나는 심히 당황했으나

동력이 없으니 객차가 얼마 안 있다 멈출 거라는 생각을 하니 아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 생각했다

아니, 분명 그랬어야만 했다

 

그랬는데...

한참이 지났는데도 이 X발 빌어먹을 열차가 아직도 달리고 있다

거기다가 해의 위치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바깥 풍경도 계속 똑같았다

 

이게 X발 대체 무슨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