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문에서 교복 검사하나봐.”

 

다경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며 낮게 말했다. 그랬다. 아주 가끔, 불시에 교복검사를 하는 것이 정통고의 전통이라고들 말했다. 오늘이 그 날일 줄이야...

이나는 자신의 교복을 체크하고, 교실 게시판에 붙어 있었던 교복 규정을 다시 상기시켰다. 블라우스, 스웨터, 명찰, 리본, 치마는 무릎 위 5cm. 다행이었다. 다경이가 문제였다. 다경이는 오직 블라우스 하나에 후드티 하나를 입고 있었다. 치마는 무릎 위 15cm가량이었고, 스웨터와 리본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너 이제 큰일 났다. 잘 가~”

 

이나가 기분 나쁘게 웃으며 인사했다. 다경이는 눈을 흘겼다. 하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다경이는 참 좋은 친구야, 이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런 상황에서도 미소가 나오다니. 쾌활한 것 하나 하고는.

교문을 들어서자, 팔에 노란 완장을 찬 학생들이 양쪽에 대여섯 명씩 줄서 있었다. 교문에 발을 디디자마자 그들의 열두 개의 눈의 시선을 한 눈에 받게 되는 것이다. 혼자 교문에 들어설 때면 부담이 아주 되는, 그런 날이었다. 교복을 아주 단정하게 잘 입고 있어도, 왜인지 모를 이유에 그들의 시선이 가슴에 팍팍 꽂히는 듯한 느낌을 늘 받아 왔다.

선도부들은 일제히 이나를 쳐다보았다. 이나는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않았지만(부담스러웠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이 치마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왔다갔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이나를 보냈다. 작년에 뽑혔던 새학기 선도부장이 바로 백지연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이나는, 개학 첫날부터 교복 검사를 하는 것에 대해 별 이의가 없게 되었다. 전교 1등의 그녀라면 교복 검사를 매일같이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완벽한 백지연이 다경이를 붙잡고 벌점 목록에 이름을 적는 모습을 상상했다. 소름이 돋았다.

다경이는 역시나, 예상대로 선도부들에게 걸렸다. 그래도 백지연이 오늘 교문에 서지 않아서인지, 다들 벌점을 주지 말자는 분위기 같았다. ‘새학기니까 봐주자.’ 이거였다.

다경이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이나에게 달려갔다.

, 백지연이 있었어봐. 나 그냥 걔한테 찍히는 거였어.”

다경이가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걔가 너한테 눈 두기 전에, 교복 좀 잘 입고 다니란 말이야.”

이나는 장난스럽게 핀잔을 주었다. 역시나 다경이는 또 히히,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안녕하세요.”

이나는 헐떡대며 컴퓨터실-4 문을 드르륵 열었다. 좋은 라벤더 향기가 코를 확 찔렀다. 컴퓨터 선생님은 늘 라벤더 향수를 뿌리고 다니신다.

왔니?”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을 읽고 계셨던 모양이다. 선생님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가 오늘따라 더 날카로워 보였다. 그러나 미소는 띠고 있었다.

이리로 와줄래? 사실, 선생님이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중에 컴퓨터실 담당 학생 1명을 뽑을 예정이었거든. 그 사람이 바로 너였으면 하는 바람에, 아까 급히 전화 준 거였어.”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컴퓨터실 담당이라고?

, 감사합니다. 저야 엄청 좋은걸요.”

이나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2학년 전체 중, 아니, 전교생 중에서 유일하게 컴퓨터실을 관리할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 새삼 뿌듯했다.

다행이야. 혹시라도 네가 바쁘거나 그러면, 다른 학생을 뽑아야 할 것 같아서 걱정했거든. 우선, 여기에 네 연락처랑 이메일 좀 적고 교실로 가 줘.”

선생님은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이나는 가방을 열어 필통을 꺼냈다. 펜 하나를 꺼내, 연락처와 이메일을 적었다. 아직 찬바람에 손이 얼어서 글씨가 엉망이었다.

컴퓨터실 담당 학생의 역할 말이야,”

선생님이 종이를 받으며 말했다.

알다시피 우리 학교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컴퓨터실 1부터 4까지 다 열잖니. 또 야간자율학습 끝나고 기숙사 점호 직전까지 컴퓨터실을 사용하는 학생들도 가끔 있단다. 그러니까 한 11시 쯤에 학생들이 과제를 다 끝나면, 키로 문을 잠그는 거야. , 열쇠.”

선생님은 이나에게 열쇠 4개가 절렁거리는 열쇠 묶음을 건넸다.

오늘부터 하면 돼. 한 학기 동안 역할을 잘 수행하면 한 학기 더 할 수 있게 할 테니, 열심히 해 줘.”

그럼요, 선생님.”

열쇠 관리라. 이나는 자신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 더욱 자신감을 넘치게 했다.

컴퓨터 시간에 뵈요, 선생님.”

그래,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