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서관

 

3월은 빨랐다. 그만큼 날씨도 빠르게 변했다. 이틀 동안 갑자기 따뜻한 햇빛이 쨍 하더니, 일주일 동안 비만 멈출 줄 모르고 내렸다.

학교에서는 중간고사 준비로 모두가 바빴다. 선생님들은 진도에만 집중했고, 학생들은 공부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을 일주일에 1, 금요일 밤에만 나눠주는 시스템 아래에서 학생들은 점차 그것의 가치를 잊어갔다. 사실, 일주일에 12시간동안 휴대폰을 사용하도록 한다고 쳐도, 실제로는 휴대폰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1시간을 빼고 나면 1시간 밖에 사용할 수 없는 셈이었다.

이나와 룸메이트 성유진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이나는 수시로 성유진에게 말을 걸어왔고, 유진이도 무뚝뚝한 면은 있으나 내면의 순수함도 있기는 하다는 것을 이나는 알아냈다.

하루는 소등 후, 이나가 유진이에게 물었다.

, 여기 정통고에 어떤 전형으로 온 거야? 지필시험? 성적?”

아니.”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지능.”

지능? 지능 전형이라면, 오직 정통고에서만 주어지는 특별한 전형이었다. 그 전형은 특별한 학생들에게만 주어졌는데, 사실상 그 전형은 쓸데없기로 유명했다. ‘아이큐 150 이상컴퓨터 능력이 보통 이상이면 자동 합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전형이었다.

, 아이큐가 몇인데?”

이나가 물었다.

“167.”

또다시 거침없는 대답.

“167이라고? , , 대단하다, 진짜.”

이나가 진심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살면서 아이큐가 150이 넘는 사람과 이렇게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신기했다.

사실, 아이큐 167같은 거, 가능만 하다면 다른 필요한 애한테 주고 싶어. 어느 누구도 내 심정을 모를거야. 하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는 아이큐 같은 거, 성적 같은 거, 다 필요가 없어졌어...”

오랜만에 들어보는, 외모에 걸맞는 무기력한 목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유진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가늠이 안 갔다.

이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불을 뒤척거리며, 벽을 보고 누웠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자신이 눈을 감고 있는건지, 뜨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이러다가 잠이 들기를 소원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뭔가 걸리적거리는 것이 있는 듯, 도저히 잠을 이룰 만큼 비워지지 못했다.

 

이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40. 3시에 6교시 시작이니까, 20분 동안 할 것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컴퓨터실에 가서 이메일을 확인한 후, 도서관에 가야겠다.

이나가 애용하는 컴퓨터실 자리는 컴퓨터실-422번 자리였다. 자신의 생일이 422일이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도 있지만, 컴퓨터실-4에 유독 새로 들여온 컴퓨터가 많다는 소문이 돌았고, 특히 22번 자리가 깨끗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5층의 컴퓨터실-4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이 문만 잠겨 있지 않았다. 불을 켜고, 22번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곧바로 포털 사이트 로그인 후 이메일에 들어갔다.

 

[3개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어제 야간자율학습 때 확인한 이후, 또 메일이 왔나보다.

하나의 메일은 같은 수행평가 모둠 친구가 보낸 자료 메일이었다. , 역시. 이나는 감탄했다. 정통고가 컴퓨터의 천재들만 모이는 학교라는 말이 맞았다. 그 친구가 만든 프레젠테이션은 완벽을 넘어 신의 경지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좋았다.

또 하나의 메일은 17년차 친한 언니 윤선화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선화 언니라니! 이나는 메일을 읽었다.

 

[이나에게

이나, 새학기 들어서 학교에서 한번도 못 마주쳤네. 같은 학교 다니면서 어떻게 얼굴도 못 보는 거야? ㅋㅋㅋ 나 사실, 복학했어. 알다시피 작년에 내가 2학년일 때 큰 병 앓아서 휴학 했었잖아. 결국 복학 하기로 했어. 그래서 나 지금 2학년 6반이야.

6반에 자주 놀러와~ 네 얼굴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네.

선화언니가]

 

이나는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선화언니는 마치 천사의 마음을 지닌 것 같았다. 복학을 한다는 건, 언니가 휴학을 결정했을 때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별로 놀랄 것이 없었다. 이나는 그저, 한결같은 고은 언니의 성격에 다시금 감탄했다.

마지막 메일의 주소를 확인하자마자, 미소를 머금던 표정이 확 굳어졌다.

백지연이 보낸 것이었다.

그 애는 1학년 때부터 늘 이나를 경계해 왔다. 이나가 늘 컴퓨터 과목에서 백지연을 제치고 1등을 따놓았기 때문이었다.

백지연이 아무리 컴퓨터 과목을 열심히 파도, 결코 이나의 점수를 제치지 못했다. 그것은 분명, 백지연의 자존심을 갉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