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저나 여기가 지름길이라면서 왜 이렇게 먼거에요? "
루보가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방울을 손으로 닦아내면서 물었다. 목소리에는 짜증이 느껴졌다. 비트립 단장님은 또다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루보의 투정에 나도 동감이 갔다. 나도 지금 산을 타느라 다리가 빠져나갈 것 같이 마비되는 느낌을 참느라 신체적으로 엄청난 무리가 오는 참이었다. 코스타도 그런 것 같았다. 들고있는 장비들이 땅에 질질 끌렸고 폐는 저절로 숨을 몰아쉬었다. 이걸 보면 비트립 단장님의 신체구조는 대체 어떤가 싶다.
 
그렇게 최소한의 적들만 만난다는 단장님의 말을 증명해보인다는 듯이 늑대 7마리를 전멸시키고 두세 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건물 한 채가 보이기 시작했다.
 
금속으로 지어져 있는 큰 건물. 인적이 드문 곳에 있고 약간 녹슬고 오래되어 보여 유령이나올 것만 같은 이 건물이 우리의 두 번째 적이 될 마왕의 비서실 건물이다.
 
비트립 단장님의 명령 아래 그늘진 바위에서 잠깐 쉬었다. 단장님이 가방에서 어떤 음료수를 주셨는데 여기 오기 전에 카스트로라는 분이 지원해주신 회복음료였다. 그 분은 이런 걸 참 잘도 지원해주셨다. 회복음료만 해도 몇십 개이니 말이다. 무거워서 못 가져가겠다고 거절했지만 무게를 줄여주는 신기술을 우리들에게 선보여주셔서 할 수 없이 가져왔다. 그 신기술 덕분에 그 분은 이제 안 무겁겠다며 방어구를 고급으로 여러개 지원해주셨다. 그래서 무게가 훨씬 더 늘어나버렸다.
 
아무튼 그 회복음료 덕분에 지친 기분은 싹 사라졌다. 루보의 투정도 사라져 쌩쌩하다는 걸 표현하는 듯이 말이 많아졌다. 단장님이 그걸 보고는 샌드위치를 나눠줬다. 약간 뭉개진 것만 빼면 팔아도 좋을 정도로 맛있었다. 아, 이거 파는 거였지.
 
*
 
"출격이다!"
단장님이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이럴 때만큼은 진짜 카리스마 있다니까.
 
출격이라는 말에 나는 언제부턴가 플라즈마 소드라고 불려지고 있는 플라즈마 커터를 철문에 갖다대고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내었다. 역시 플라즈마 소드다.
 
플라즈마 소드로 힘없이 뚫려버린 철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중앙로비도 복도도 방들도 으리으리하게 장식되어 있었으나 그 어디에도 악마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사람도 악마도 없었다.
 
코스타가 함정이 아니냐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단장님도 그럴 수도 있다며 전투태세를 늦추지 말라고 경고했다.
 
단장님을 필두로 가장 안쪽에 있는 비서실장실에 들어갔으나 거기에도 그 누구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단장님이 여기는 그냥 지나가도 되겠다며 나가자고 했다. 코스타와 루보가 나가고, 나는 혹시나 해서 왠지 중요해보이는 서류가방 하나를 챙겨 비서실장실을 나왔다.
 
 
단장님을 필두로 비서실 건물을 나오던 중이었다. 내가 맨 뒤에서 따라가고 있는데 2층에 있는 3번 수행기사실에 악마가 있는게 느껴졌다. 이 건물의 유일한 악마이리라. 그래서 나는 단장님께 저기에 누가 있다고 말했다. 단장님이 마침 잘 됐다는 표정을 짓더니 침투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전투태세를 끝마치자마자 우리들은 곧바로 3번 수행기사실의 문을 열고 침투했다. 안에 있던 남자 악마 한 명이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책상 뒤로 몸을 피해 옆에 있던 방패를 거머쥐고는 벌벌 떨었다.
 
비트립 단장님이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으며 방패를 검으로 치웠다. 그러자 그 남자 악마의 눈은 절망으로 가득해졌고 다리가 풀려 주저앉더니 눈물을 터뜨렸다. 뭔가 안쓰러웠다.
 
그런데 그 남자 악마가 나를 보고는 점점 얼굴이 풀리더니 말했다.
 
"비서실장님...이세요?"
그러고는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는 말했다.
"아이고, 비서실장님. 이렇게 갑자기 들어오셔서 놀랐습니다. 저는 어제 해고되어가지고 지금 방을 치우는 중이었습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뭐냐 이건. 비트립 단장님이 놀란 표정을 짓다가 내가 들고있는 서류가방을 보고는 피식하며 웃더니 잠시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단장님이 그 악마에게도 잠시 그 방에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수행기사실의 문을 닫고 약간 멀리서 멈춰서자 내가 조용히 물었다.
"단장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단장님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네가 들고있는 그 서류가방 있잖아, 그 서류가방이 비서실장의 상징이야."
그러고는 단장님은 작전이 있다며 내 손에 있는 서류가방을 채가서 그 수행비서실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
 
"이건 국가기밀이니까 입조심하는거 잊지 말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무슨 작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장님 혼자서 수행기사실에 들어가 일을 끝마친 것 같았다. 아마도 코스타를 섭외할 때처럼 그 훌륭한 언변술로 작전을 진행했으리라. 
 
그 남자 악마와 어느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코스타가 물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 이 서류가방을 들고 가서는 내가 새로 임명된 비서실장이라고 뻥을 쳤지. 너희들은 내 수행비서라고 했고."
"그러면 거기서 뭐했어요?"
단장님의 대답에 루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 걔한테서 정보 좀 캐냈지. 걔가 마왕까지는 아니지만 꽤 중요한 인물의 수행기사라서 좀 쉬웠어. 알고보니까 이 건물이 곧 해체될 예정이더라고. 그래서 걔도 잘린거고.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단장님이 몇 초간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마왕성의 위치가 옮겨졌어.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마왕성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요?"
루보가 물었다.
"그건 모르는 거지. 이 서류가방에 있는 서류에도 마왕성 이전을 위해 직원들 대다수를 해고한다는 내용만 담겨져있거든. 비서실장은 장소를 알 것 같긴 한데 구두로 전달받은 모양이야. 이 서류가방에 그런 내용은 없거든."
"그러면 다시 비서실장실로 가면..."
내가 말했다. 단장님이 내 말을 바로 반박하며 말했다.
"아니야. 거기로 가도 소용 없을거야. 비서실장 같은 높은 애들이 그런 기밀 정보를 누가 볼 수도 있는데 써놓겠냐?"
"그러면 방법은..."
"그걸 이제부터 생각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