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을 나와 여기저기 나그네 신세로 떠나닌 지 어연 2주일 째. 드디어 식비는 바닥났고 또다시 돈을 만들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또다시 오크사냥에 나서기로 했다. 대신에 오크를 잡았던 2주 전의 그 마을 뒷산으로 가기에는 지금 너무 멀리까지 와버려서 새로운 터전으로 가기로 했다.
 
비트립 단장님이 카스트로 씨에게 지원받은 지도를 바닥에 펼쳤다. 단장님의 눈이 이리저리 굴러다녔고 입은 쉴새없이 중얼거렸다. 얼마 있지 않아 비트립 단장님은 계산을 마치고 오크들이 적지도 많지도 않은 곳을 하나 택했다. 그 모습을 보니 이런 지도가 없어서 관광지도를 썼던 초창기가 생각났다.
 
게바우데 국립건설대학원 뒷산. 웅장하게 펼쳐진 나무들로부터 뻗어져나온 한 아름 정도 되는 굵직한 뿌리들이 땅을 뒤덮었다. 비를 머금은 흙바닥이 나무뿌리와 함께 불쾌감을 증폭시켰고, 나뭇가지들은 가슴높이까지 내려와 정원사마냥 플라즈마 커터로 길을 뚫어야 했다.
 
다행히 10분 쯤 뒤에 높은 바위벽과 함께 넓은 평원이 나타났다. 들어올 때의 축축한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광경이었다. 나무뿌리도 아까보다 훨씬 적고 가늘어서 눕기에 딱 좋아보였다.
 
우리들이 무거운 짐들을 잠시 내려놓고 바위절벽에 몸을 기대며 방어구들을 정비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단원들은 모두 전투태세를 갖춰라!"
 
쉰지도 알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오크가 나타났다. 우리들은 한 손으로 방어구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검을 쥐었다. 이제 좀 쉬나 했더니만 빌어먹을.
 
"모두 돌격! 오크를 죽여라!"
 
병단 4명 모두 검을 한껏 몰아세우고 오크를 향해 돌진했다. 오크는 저번보다 적은 7마리이지만 몸집이 약간 더 컸다.
 
코스타가 오크의 심장에 검을 관통시키고는 검을 빼냈다. 오크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치더니 참혹하게 쓰러졌다. 비트립 단장님이 검으로 오크의 대가리를 직격했다. 루보도 오크의 심장에 검을 밀어넣고는 다시 빼냈다.
 
남은 오크들 중 한 명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플라즈마 커터를 뽑아 가로베기로 오른가슴부터 시작해서 왼가슴까지 관통시켰다. 다 잘리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절단된지라 오크가 크게 울부짖으며 쓰러졌다. 그새 비트립 단장님이 한 놈을 죽이고 코스타와 루보가 합동공격으로 오크 한 마리를 더 베어죽였다. 그나저나 나머지 한 놈은 어디있...
 
오크가 내 뒤에서, 그러니까 바위절벽 쪽에서 나를 덮치려고 달려들었다. 나는 순간적인 반사신경으로 플라즈마 커터로 대각선베기를 시전하며 오크의 복부를 오픈시켰다. 그런데 아뿔사, 플라즈마 커터를 놓쳐버렸다. 플라즈마 커터가 허공으로 날아가면서 바위벽에 부딪히더니 벽에 /자로 구멍을 그었다. 오크가 배를 감싸쥐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내 손에 무기가 없다. 그러나 메이사 금융도시에서 산 검은 남아있다.
 
내 손이 필사적으로 새 검을 집어들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오크가 달려들어 왼손을 휘둘렀다. 처음으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금니를 다물고 새 검을 오크의 가슴쪽으로 휘둘렀다.
 
그런데 그 순간, 옆에서 검이 부메랑처럼 빙빙 돌며 날아들더니 오크의 목에 직격타를 날렸다. 단장님이었다.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는 단장님의 얼굴에는 당황과 놀람과 걱정이 섞여있었다. 루보와 코스타의 표정도 똑같았다.
 
*
 
"으이구. 나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
비트립 단장님이 걱정하는 말투와 질책하는 말투을 섞어가며 말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잘못을 뉘우치며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고만 있을 뿐.
"그 플라즈마 커터는 저기 잘 있다. 절단기라서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 같으니까 내가 대신 가져와주마."
나는 아무런 기운도 없이 플라즈마 커터를 주우러 바위벽 앞으로 가는 비트립 단장님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루보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와서 걱정스럽게내 안부를 물었다. 코스타도 뒤이어 따라왔다. 나는 이제 괜찮다고 답해줬다.
 
플라즈마 커터를 집던 비트립 단장님의 시선이 플라즈마 커터가 벽에 부딪히면서 만들어진 구멍에 꽂혔다. 뭔가 대단한 발견을 한 표정이었다.
단장님이 말없이 플라즈마 커터의 전원을 켜더니 /자로 난 구멍을 중심으로 액자 크기의 네모난 구멍을 내었다. 처음에는 뭐하나 싶었는데, 구멍 너머를 자세히 보니 안에는 벽이 쇠로 이루어진 복도가 있었다. 단장님이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네 검이 뚫은 곳이 마왕의 비밀통로인 것 같다. 여기는 그 중간지점이고. 루티온, 루보, 코스타. 아무래도 이 비서실장 서류가방을 제대로 쓸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