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도둑 잡기

 

 

도서실에서 마시는 커피의 맛은 각별하다.

1년 전부터 커피의 마력에 빠진 사서 쌤의 블렌딩 실력은, 처음에는 그저 복잡한 유리기구들로 믹스 커피 이하의 액체를 연성해내는 연금술사에 불과했으나, 365일이라는 시간은 연금술사를 그럭저럭 화학자로 만들긴 충분했다. 이건 제대로 우려낸 에스프레소다.

 

, 바리스타 자격증 금방 따겠는데요?”

 

아니야, 아아직 부족한 게 많지.”

 

자강불식하는 자세에 겸손함 마저 더해지니 이 커피 애호가가 바리스타로 진화할 날도 머지않을 듯하다.

세상 모든 학문이 커피 블렌딩과 같으면 어찌나 좋을꼬.

 

-라고 취미의 길을 전공 삼아 전진해나가는 사서 쌤에게 부러움 반, 선망 반의 시선을 보내다가 눈앞에 놓여 있는 암담한 현실의 벽과 마주한다.

 

“···쌤은 수학 좋아했어요?”

 

좋아했으면 내가 여기서 사서하고 있겠니?”

 

“···것도 그렇네요.”

 

피타고라스에게 저주 있으라. 가우스에게도 저주 있으라. 뉴턴 너는 특히 지옥 한가운데서 고통 받을 지어다. 미분법을 발명한 그 죄 크고도 크다.

 

수학은 혹자에겐 축복이나 혹자에겐 저주. 나는 후자에 속할 것임에 틀림없다.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원래 필요악과 절대악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으나 미분은 그 중에서도 악질이다. 이건 틀림없이 사탄의 피조물이다.

 

시험이 2주 약간 안 남았고 한국사 및 영어의 공부는 아예 안 한 작금의 상황에서 가장 이성적인 결론을 도출해 보았을 때, 미분을 마스터하기 이미 글렀다. 기껏 해봐야 기본 문제 유형이나 암기하고 푸는 정도. 그러나 전체 시험범위의 절반 이상이 미분 관련이니 아예 포기할 수도 없다. 완전히 계륵이 따로 없다.

 

그렇다고 아예 포기하면 안 되지. 나도 수학은 질색이었지만 공부는 열심히 했어.”

 

성적 잘 나왔어요?”

 

대충 고등학교 때 수학은 85점은 다 넘었던 거 같은데. 100점 맞은 적도 있고.”

 

이런 기만자.” 나는 이를 갈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서 쌤은 여유롭다.

 

재능하고 성향이 일치하는 법은 드물단다, 애송이. 그리고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선생님한테 기만자가 뭐니.”

 

고등학교 때 수학 잘했으면 이거나 좀 알려줘요.”

 

"아쉽게도 난 필요 없는 건 그때그때 버리는 성격이라서.“

 

지식이 쉽게 버릴 수도 있는 거였어요?”

 

니가 아직 수련이 부족해서 그래.”

 

가르침을 주십시오, 스승님.”

 

허허 그렇다면 여기에 물 받아 오거라.”

 

사서 쌤이 빈 커피포트를 내밀었다. 스승의 분부에 따라 물 길러 가는 제자라, 꽤나 고전적인 구도라고 생각하면서 열람실을 나섰다.

 

되지도 않는 공부 붙잡고 있어봐야 시간이 아깝다. 아마 사서 쌤도 머리도 식힐 겸 해서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을 거다.

 

물론 주된 이유는 정말 물이 필요해서겠지만. 어쨌거나 좋은 게 좋은 거다, 라고 생각해서 정수기에서 물을 긷고 도서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도서실 출입문을 열고 있는데 문 옆에 있는 파란색의 도서 반납함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반납함 점검을 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