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물이 부글부글 끓었다.

책 위에서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며 포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들을 응시하던 사서 샘이 말문을 열었다.

 

내가 이 소설 시리즈 좋아하는 건 너도 알거야. 저번 달 신간 도서 목록을 보니 신청한 권수가 영 적다해서 적당히 내가 읽고 싶은 소설들도 몇 개 같이 구매했는데 거기에 이것도 있었지.”

 

“···지금 상당히 사서로서는 해선 안 될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계속 말씀해보세요.”

 

그 중에서 이 녀석이 있었단 말이지.” 사서 쌤이 책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만약 대마법사가 SF를 읽는다면 7.”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이거 제목 완전히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그거 패러디 아니에요?”

 

좀 얌전히 좀 들을래?”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 나는 말을 잘 듣는 아이다.

 

사흘 전에 신간도서가 도착한 건 너도 알거야. 오후 늦게 도착해서 신간도서 체크는 그 다음날 했고 어제서야 라벨링을 하게 됐지, 도서부원 애들이랑.”

 

-첨언하자면, 라벨링은 우리 도서실에서 쓰는 은어 비슷한 것으로 신간도서에 분류 라벨 및 도난 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을 이른다. 크게 어려운 것은 없지만 늘 있는 반납도서 정리하기에 +되는 잔업 비슷한 것이라 도서부원 중에서 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때엔 이 책이 분명히 있었어. 너희들이 간 후에 나 혼자서 도난 방지 스티커가 제대로 작동하나 테스트해 봤거든.”

 

-또 첨언하자면, 도난 방지 스티커는 이름 그대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특한 녀석이다. 세로로 길쭉하게 얇은 직사각형 모양의 스티커인데, 속표지 같은데 붙이는 것으로, 그렇게 하면 무단으로 도서가 반출될 시 도난 방지용 벨이 울리게 된다.

 

그런데 아까 벨이 울렸던가?

 

제대로 테스트해 본 거 맞아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비정상적으로 반출된 도서라면 아까 도서실 들어올 때 도난 방지 벨이 울렸어야 되는데 안 울리고 잘만 들어왔잖아요.”

 

이렇게 도난 사건의 미스터리가 종결되는가 했으나-

 

당연히 울릴 리가 없지. 여기 도난 방지 벨은 도서실 개방 시간에만 작동하게 되어있으니까 7시가 지나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져.”

 

···처음 안 사실이다.

 

? 그랬어요?”

 

이게 생각보다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다고 하더라고.

어차피 도서관이 열려있을 때나 필요하니까 닫혀 있을 땐 꺼두어도 상관이 없지.

네가 모르는 것도 당연해. 나도 저번 학기에나 알았어.

어차피 문 잠가두었을 땐 누가 들어오면 더 시끄러운 벨이 울리니까 굳이 켜둘 필요도 없잖아.”

 

왼쪽으로 꼬았던 다리를 다시 오른쪽으로 바꿔 꼬면서 사서 쌤은 말을 이었다.

 

이제 진짜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내 말이나 들어. 어쨌거나 내가 라벨링을 마친 책들을 출입구에 통과시켰을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책은 하나밖에 없었고 그 책이 뭐였는지는 분명히 기억해.

실용 러시아어 회화 관련 책이었어. 그 책 스티커는 새로 붙였고. 반대로 말하면 이 책의 도난 방지 기능은 제대로 살아있었다는 거지. 그런데 이게 쥐도 새도 모르는 새에 사라진 거야.

내가 5시쯤에 도서 반납함을 살펴봤을 때도 없었으니까 5시에서 841분 사이에 책을 갖다놓은 걸 거고.”

 

그럼 마지막으로 그 책을 본 게 언제에요?”

 

오늘 아침에 신간도서들을 책장에다가 꽂아두었을 때까지만 해도 있는 걸 확인했으니까 오늘 아침까지는 있었겠지.”

 

복잡하다.

 

결국 범인은 도서관 개방시간 동안 들어온 수많은 학생 중의 한명이라는 것인데 이러면 일반적인 방법으론 도저히 찾을 길이 없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그럼 5층 복도 CCTV 돌려보면 되지 않을까요? 5시에서 841분 사이에 누가 반납함 쪽에 왔다갔는지 확인하면 될 거 아니에요.”

 

, 그렇게 하면 되려나?”

 

마뜩찮아하는 기색.

하긴 나여도 그럴 것이다. CCTV까지 돌려서 확인하는 건 좀, 사안이 지나치게 엄중해지는듯한 기분이 드니까.

특히 도난품도 다시 찾은 현재 솔직히 범인이 누구든 간에 이쯤에서 그냥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서 쌤이나 나나 귀찮은 건 질색하는 성격이니까.

 

우리 모두 나름의 생각에 잠겨있을 때 도서실 스피커에서 익숙한 종소리가 흘러나왔다.

1면학 시간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종소리. 20분의 안식기 후에는 제 2면학 시간이 이어진다.

 

시간 다 됐네. 나머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이만 올라가 봐.”

 

1면학은 반쯤 떼 + 도서부장으로서의 어떤 책무 같은 것으로 선생님들을 설득하여 도서관 열람실에서 면학할 수 있는 특권을 얻는 나지만 제 2면학부터는 에누리 없이 자습실에서 보내야 한다.

아쉽지만 가방을 챙겼다.

 

내일 봐요, . 안녕히 계세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문명의 이기에 힘입어 이 작디작은 도난 사건이 금방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