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1월 18일, 금요일. 생-테티엔 시, 그랑드 아르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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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테티엔 발 구스펠트 행 № 2909편 열차는 선행열차의 고장으로 인해 30분 가량을 역 플랫폼에서 밍기적대고 있었다. 역 플랫폼은 구스펠트로 가려는 승객들과 역무원들로 북적거렸고, 그걸 2인실의 창문으로 바라보던 남자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하품을 내뱉었다.

 

구스펠트로의 여정은 앞으로도 5일은 걸리는 긴 여정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이런 불상사가 생기면 곤란하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회색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그는 몰려들어오는 지루함과 권태로움을 해소할 거리를 찾아 눈을 이리저리 굴려대다가, 마침 차창 안쪽에 비치된 ‘탑승객 행동 수칙’이라는 홍보 팸플릿을 찾아냈다. 밀려들어오는 따분함을 해소하고 싶어 했던 남자로서는 그 팸플릿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그 팸플릿을 집어 꼼꼼하게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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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승객 행동 수칙 - 철도청 >> 

 

◎ 열차 운행 중에 위급상황 발생 시,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내측 출입문 쪽으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 위급상황이 아닌 경우, 출입문의 수동 개폐는 원칙적으로 불가하며 출입문을 강제로 열려는 시도는 철도법과 교통안전법 모두에 저촉되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승무원 및 철도경찰대에 의해 체포, 구금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 모든 상황에서 승객 여러분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승무원과 철도경찰대의 지시에 협력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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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실례하겠습니다! 불편하지만 않으시다면 같이 객실을 써도 될까요?"

 

구깃구깃한 2인실 차표와 큼직한 갈색 가죽 여행 가방 손잡이를 꼭 쥔 소녀가 자리에 앉아 팸플릿을 읽어 내리고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그에 남자는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양해를 구한 소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상관없습니다만..."

 

남자의 허락이 떨어지자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짐을 맞은편 침대 아래에 쑤셔 넣었다.

 

때마침 밍기적대던 열차가 천천히 플랫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역사(驛舍)의 풍경이 빠르게 사라지고, 눈으로 뒤덮인 대지가 우윳빛 차창 너머로 보였다. 열차 바깥에는 눈의 돔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에게, 소녀는 심심했는지 말을 걸었다.

 

“저기, 제가 처음 구스펠트에 가는데요. 내일모래쯤이면 도착할 수 있을까요?”

 

“아뇨. 여기서 구스펠트로 간다면 한 5~6일 쯤 걸릴 걸요.”

 

“에? 그렇게나요?”

 

그는 고개를 차창에서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6일쯤 걸린다는 그의 말에 당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백발의 소녀가 보였다. 마침 심심함을 느꼈던 그는 그녀에게 왜 구스펠트에 가는지를 물어보았다.

 

"글쎄요. 특별히 하나를 꼽기는 어렵지만, 아무래도 오빠 때문일걸요."

 

"예? 오빠 때문이라니요?"

 

"오빠가 일간 뒤플로마티크(Duplomatique)에서 근무하고 있거든요."

 

그의 질문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으나 그 대답을 들은 남자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걸렸다. 뒤플로마티크. 자칭 오직 진실만을 말한다는 그 언론사는 그 역사가 100년은 훨씬 넘었다. 그러니까 뒤플로마티크는 이 땅에 아직 공화정이 들어서기 전의 절대왕정 시대부터 존재해오던 유서 깊은 언론사였다. 물론 이 대목에서 현명한 사람들은 뒤플로마티크의 그 유구한 역사가 권력에 철저히 굴종함으로서 성립된 것을 짐작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것이다.

 

그 역시 뒤플로마티크의 역겨운 굴종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던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그런 남자의 쓴웃음에 그녀는 기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소녀의 반응에 자신의 잘못을 알아챈 그는 재빠르게 표정을 수습하고 어찌저찌 변명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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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을 착각하고 습작을 투고했으니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