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다시피 원 저작자 Oneway님의 동의를 받고 쓴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솔직히 제가 소설을 잘 쓴다고 자부하진 못하겠습니다. 그것과 별개로 제 방식이 정답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의 개선안이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에 대한 허가를 받았기에 부족하게나마 설명과 함께 퇴고해 보겠습니다.


원 글은 이 링크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만, 두 창을 띄우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원문을 복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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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목 생략)


별다른 장식 하나 없는 회색빛 개인실 안에서 깔끔한 제복을 착용한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마찬가지로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은 남자의 어께에는 분명 몇 분 전에 광나게 닦았을 2급 야전 지휘관 휘장이 형광등 빛을 받아 눈이 부시게 번쩍거렸다.
잠시 서류를 살펴보던 중급 지휘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 파이프를 테두리에 포세이큰 연방의 상징인 쌍두 늑대가 양각된 철제 탁자 위 재떨이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고 여자를 바라봤다. 복제인간 특유의 무표정 사이로 경악인지 감탄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그가 예상한 것 보다 너무 어려 보였다. 2시간 전 인사처에서 급히 받은 자료에서는 분명 27살이라 쓰여 있었지만,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많게 봐야 21살처럼 보였다. 강화 수술자의 부작용인 회색톤 피부와 왼쪽 눈이 빨아들일 것만 같은 보랏빛 안광을 내뿜고 있다는 것만 빼면 군대보다는 아직 학교에 있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첫 문단부터 문장이 너무 길고, 정보가 너무 많아서 읽는 사람의 집중을 해칩니다.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방법은 묘사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뒷내용을 위한 복선 등의 목적으로 활용될 게 아니라면, 과도한 묘사는 생략해도 무방합니다. 제 스타일대로 편집하자면 이렇습니다. (후술하겠지만 복제인간인지 클론인지 둘 중 하나만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그녀는 묵묵히 자기 앞에 앉은 남자를 응시했다. 별다른 특징 없이 회색빛이 감도는 방이었다. 싸늘한 형광등 불빛 때문인지 그들이 입은 제복도 무채색으로 보였다. 서류로 여자의 시선을 막고 있던 2급 야전 지휘관은 마침내 서류를 내려놓고 여자를 마주봤다. 복제인간 특유의 무표정이었지만, 경악인지 감탄인지 모를 감정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생각보다 너무 어렸다. 인사처에서 급히 받은 서류엔 27살이라고 했는데, 눈 앞에 있는 여자는 많아야 21살에 가까웠다. 강화 시술자의 부작용인 회색빛 피부와 뭐든지 흡수할 것마냥 보랏빛을 내뿜는 왼쪽 눈만 없으면 누가 봐도 학생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체스터 신속 기동 전투단에 온 것을 환영하네. 아직 창단 4년차지만. 내가 전투단의 단장을 맞고 있는 체스터 그레고리오 막시밀리안 하급 야전 사령관일세, 혹시 싸인 필요한가?” 사령관은 이 썰렁한 분위기를 전환하려 먼저 말을 걸었다. 하지만 상급 장교는 그냥 멍하니 서 있었다. 어색한 상황을 참지 못하고 그의 뒤에 서있던 부관이 헛기침을 하며 대화의 배턴을 가로챘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전투단의 부단장을 담당하고 있는 제니퍼 캠벨 주임 준사관입니다. 갑작스럽게 저희 부대로 전입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그녀가 작은 신호를 보내자 방의 자동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명은 머리카락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밀어버린 남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똑단발을 한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구령과 함께 경례했다. 가슴의 계급장을 보니 남자는 중급 부사관 이였고 여자는 한 계급 더 낮았다.
불편한 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은 오늘의 주인공이 아직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작은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서 공통적인 불편함을 느꼈다. 복제인간인 그들 보다 더 클론 같았다. 체스터는 무언가 느낀 것이 있는지 자료를 슬쩍 흘겨봤다. 질병 관리 항목에 후천적 요인으로 인한 실어증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그것을 보곤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간담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부대 에 계실 동안 이 친구들이 장교님을 수행할겁니다. 개인실을 준비해 두었으니 부디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아돌프, 프시케 장교님을 모셔다 드려라.” 상급 장교는 말없이 경례로 답하곤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방에서 딸려 나갔다. 불청객이 사라지자 방 안에 남은 두 사람은 비로소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있었다.

등장한 캐릭터를 이해하기도 전에 상황이 너무 빨리 진행되고,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며, 주인공(?)의 이름이 이상한 곳에서 드러나는 등 좀 복잡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 경우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다 쳐내는 게 좋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게 되겠네요. 그리고 대사를 한 줄 썼다면 서술은 다음 줄에 써 주세요. 읽는 데에 약간 지장이 있습니다. (계급)은 계급명을 몰라 괄호 처리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체스터 신속 기동 전투단에 잘 왔네, 프시케 (계급). 그래봐야 아직 창단 4년차지만 말이야. 나는 단장이자 하급 야전 사령관인 체스터 그레고리오 막시밀리안일세. 명함 필요한가?"

체스터가 되도 않는 농담으로 먼저 말문을 열었지만, 프시케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부관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받았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부단장인 제니퍼 캠벨, 주임 준사관입니다. 갑작스럽게 여기로 전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놀랐죠.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캠벨이 상관과 달리 진심을 담아 말했지만, 프시케는 이번에도 반응이 없었다. 불편한 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 상황의 주인공답게 잘 부탁한다는 말이라도 해야 하건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복제인간인 그들보다 더욱 복제인간 같았다. 체스터는 상대방의 공허한 시선을 피하려고 서류로 눈길을 돌렸다가 그제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질병. 후천적 요인에 의한 실어증. 그런 거였나. 체스터는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자 더 나은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래,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 테니 얘기는 이만 하지. 자네를 위해 개인실을 준비해 뒀네. 부대에 있는 동안은 이 친구들이 자네를 도와줄 걸세. 아돌프, 프시케 (계급)을 개인실까지 호위하도록."

체스터가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리더니 머리를 민 남자가 들어왔다. 프시케는 조용히 경례를 올리고는 아돌프를 따라 개인실을 나갔다. 나갈 때도 한 마디 없는 걸 보니 보이지 않는 존재가 조종하는 인형처럼 느껴졌다. 그 '인형'이 방을 나가고 문이 닫히자, 방에 산 사람들의 기색이 감돌았다.


“맹세하건데 분명 27살은 아닐 겁니다. 대체 사령부는 무슨 생각으로 저런 어린애를 전쟁터로 내모는 건지.” 캠벨은 이게 대체 무슨 사태인지 혼란스러워 했다. 혼자서 구축함을 격파한 영웅이 온다고 해서 급하게 준비해 놨더니 어린애가 왔으니 황당함을 느낄 만도 했다. 사실 소년병은 은하 여러 국가들에서 암암리에 모집되고 있으나 최전선에 투입하는 것은 소수의 막장 국가들 빼곤 없었고 대부분 후방의 기행 부대에 배치되는게 일반적이었다. 체스터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관을 달랬다.

“그녀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 뭐 지금 같은 시대에 사정없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들겠지만, 그리고 아무리 나이가 적어도 자네보다는 많을 게 아닌가? 자네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쯤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을 걸세.”
상관이 자신의 약점을 찌르자 캠벨은 상관을 켕겨보았다. 도끼눈의 부관을 보며 불패의 지휘관은 체통에 맞지 않게 경박히 낄낄거렸다.
“실린더 출신이랑 진짜배기랑 어떻게 같습니까?”
“내 말은 나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세, 저 나이에 상급 장교 까지 오른걸 보면 실력은 확실하지 않겠나? 홍보부 놈들이 없는 말을 지어내진 않았을 테니.”
상처로 가득한 회색 손이 담뱃재를 털었다. 단단한 두 물건이 부딪히는 소리와 같이 부드러운 회색 뭉텅이가 재떨이에 수북이 쌓였다. 동시에 동작 인식기가 작동하면서 문의 잠금장치가 잠겼다. 이 기지의 설계자들에게 몰래 돈을 주고 설치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일과는 다 끝났으니 이 오빠랑 놀지 않겠나?” 지휘관은 부드러운 쿠션이 깔린 고급 의자에서 조용히 일어나 캠벨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지만 주임 준사관은 자신에게 앵겨오는 상관을 가볍게 밀쳐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좀 쉬고 싶군요. 아저씨.”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뇌에 이식된 바이오컴퓨터가 신호를 보내자 문의 잠금이 허무하게 풀렸다. 그리고 풀이 죽은 전 애인의 이마에 살짝 키스 했다. 문을 나가는 그녀의 뒤로 체스터의 눈이 풀이 죽은 강아지처럼 축 늘어졌다.

캠벨의 말투에서 성격이나 어휘가 오락가락하는 측면이 있네요. 그리고 대사의 배치가 살짝 어긋나서 감정 표현이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걸 빼면 이 단락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27살일 리가 없어요. 사령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죠? 저런 어린애를 전쟁터로 내보내다니."

캠벨이 이해하지 못할 만도 했다. 혼자서 구축함을 격파한 전쟁 영웅이 온다기에 급히 준비했는데, 저런 새끼 고양이가 들어왔으니 말이다. 소년병이야 은하의 여러 국가에서 모집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것도 대다수는 후방의 기행 부대로 보내졌고, 최전선에 투입하는 것도 소수의 막장 국가들밖에 없었다. 이런 부조리를 일상처럼 겪어온 체스터가 부관을 달랬다.

"다 사정이 있겠지. 지금 같은 시대에 사정 없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겠지만. 그리고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자네보다는 많지 않겠나? 자네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쯤 유치원에 있었을 테니까 말일세."

"감히 실린더 출신을, 진짜배기와 비교한다고요?"

약점을 찔린 캠벨이 도끼눈을 뜨고 노려봤지만 불패의 지휘관에겐 재롱잔치에 불과했다. 체스터가 낄낄대며 맞받아쳤다.

"나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뜻일세. 실력이 확실하니까 저 나이에 상급 장교까지 올랐겠지. 이미지로 먹고 사는 홍보부 놈들이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말이야. 그건 그렇고..."

체스터의 상처투성이 손이 파이프의 담뱃재를 재떨이에 털자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이 기지의 설계자들에게 뒷돈을 주고 설치해서 그런지 흔적조차 남지 않고 매끄러웠다. 체스터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캠벨에게 손을 뻗었다. 항상 어디에 서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는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탐할 수 있었다.

"오늘 일은 다 끝났으니, 이 '오빠'랑 노는 건 어떤가?"

하지만 주임 준사관이 상관을 가볍게 밀쳐내고 문을 쳐다보자, 그녀의 뇌에 이식된 바이오컴퓨터에서 보낸 신호를 받은 잠금장치가 허무하게 열렸다. 캠벨은 옛 애인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며 말했다.

"오늘은 좀 쉴게요, '아저씨'."

그녀는 외출 나간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풀이 죽은 체스터를 향해 싱긋 웃고는 방을 나갔다.


결국 자신이 새워놓은 원대한 야망이 물거품이 되자 그는 전입 심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서류를 다시 흩어보기 시작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입에서 자연스럽게 감탄이 나왔다. 상급 장교는 7번의 대규모 전역에서 살아남았다. 모두 커다란 공적을 세운 채로. 그중 몇 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여서 과장되거나 보고가 잘못 올라간 게 아닌가도 싶었다. 그러나 가장 눈에 걸리는 것은 신상 항목이었다. 이름과 나이를 빼고 전부 검열되어 있었다. 출신지, 가족, 생일 까지 이름과 나이를 제외한 모든 항목에 검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보안을 위해서인가 그래도 말이 안 되는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마치 구름처럼 흩어졌다. 보안 때문일 가능성은 적었다. 대대적으로 홍보할 정도로 떠오르는 영웅이긴 하나 겨우 상급 장교 따위에게 이런 과도할 정도의 조치를 할 필요는 없었다.
‘대체 정체가 뭐야?’ 무언가 뱀의 입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순간 보라색 안광이 그의 눈앞에 스쳐지나갔다. 본능적인 혐오감이 그의 피부를 타고 기어 올라왔다. 순간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폭력의 흔적이 가득한 회색 손바닥이 다른 팔을 쓸어내렸다. 그는 갑작스레 깜짝 놀라서 손을 뗐다. 어느새 팔에는 옷 위로 느껴질 정도로 닭살이 가득 돋아나 있었다.
음... 의도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까지 서술한 체스터의 성격과 달리 프시케에 대한 반응은 좀 이질적이네요. 근엄한 캐릭터치고 너무 약해졌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그런 캐릭터라고 해도, 초반부터 이렇게 묘사하면 나중에 등장하는 대목도 모조리 영향을 받는 만큼 독이 됩니다. 그러니 캐릭터별 반전은 가급적 뒤로 미뤄주세요. 여기서는 제가 해석한 대로 캐릭터를 유지해 보겠습니다.

체스터는 원대한 계획이 무너지자 툴툴거리고는 다시 의자에 앉아 '인형'의 전입 절차에 몰두했다. 서류를 넘길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밖에 없었다. 프시케는 7번의 대규모 전역에서 매번 큰 공적을 세우고 살아남았다. 몇 가지는 그로서도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었기에, 홍보부가 수작을 부렸거나 오류가 난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것보다 가장 눈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신상정보였다. 이름과 나이를 빼면 출신지부터 가족과 생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검열을 뜻하는 검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체스터는 보안을 위해서라고 짐작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떨쳐냈다. 아무리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전쟁 영웅이라고는 하지만, 한낱 상급 장교인데 이렇게까지 감쌀 이유가 없었다. 체스터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창가로 몸을 돌렸다.

'대체 뭐지, 이 녀석은?'

순간 그의 머릿속에 서류에 가려졌던 보라색 눈동자가 떠올랐다. 말도 감정도 없는 행동거지와 합치니 그야말로 '인형' 그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본능적으로 혐오감이 들었지만, 백전노장으로서 당황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다른 감정이 넘쳐흘렀다. 문득 그는 파이프 담배를 든 상처투성이 손이 떨리고 있는 걸 알아챘다. 그 감정의 정체를 눈치채자, 그는 킬킬 웃으며 파이프를 물었다. 하루하루 똑같고 엿같은 전쟁터에서, 새로운 재밋거리를 발견한 것이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기대되는군. 너무나 기대돼.'


안내 받은 개인실은 나름대로 괜찮은 곳이었다. 많이 낡간 하나 작은 침대와 책상, 작지만 세탁기 까지 딸린 주방이 있었고, 화장실도 내부에 따로 있었다. 사회였다면 싸구려 원룸보다 못하다며 세입자가 불만을 달고 살았겠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야전에선 이정도면 5성 호텔이었다.
두 부사관은 내부 구조와 시설물들을 설명해 준 뒤 어색하게 경례를 붙이고 방을 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가 돼서야 그녀는 조심스레 짐을 풀었다. 짐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었다. 보급품으로 나온 옷들과 생활 용품들이 전부였다. 그 흔한 가족사진이나 화장품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간단한 짐 정리를 마치곤 팬티와 칙칙한 국방색 나시로 갈아입은 그녀는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햄과 분말계란, 연유, 건조 육포, 동결 채소, 건빵 같은 보존 식품들만 가득했다. 이 방에서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소소한 실망거리였다. 다행히 수납장 안에서 미각에 자극적인 즐거움을 줄만하 소스가 담긴 통들을 찾을 수 있었다.
재료를 찾았으니 이제 가공할 시간이었다. 능숙한 솜씨로 계란 가루에 조미료 범벅의 육수를 섞어 찜을 만들고 통조림 수프와 배양육 튀김을 해동했다.

과묵하고 냉정한 캐릭터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일부러 대사나 감정 묘사를 넣지 않은 건 알겠는데, 그런 것치곤 장황하게 느껴지네요. 문장의 순서나 호응도 살짝 어색해서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고요. 일단 지금까지의 내용과 연결되게 바꿔봤습니다.

재미없는 곳일수록 소문은 더 빨리 퍼지는 법. 숙소까지 이동하는 동안 '인형'에 대한 소문은 어느새 말단 병사들까지 퍼진 모양이었다. 아돌프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말을 걸지도 대답하지도 않으니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개인실의 내부 구조와 시설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는 동안 프시케는 내부를 둘러봤다. 전반적으로 오피스텔과 비슷했다. 바깥이었다면 싸구려 원룸보다 못하다며 말이 많았겠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야전에서 이 정도면 5성급 호텔이나 다름없었다. 프시케가 끝끝내 아무 말도 않자, 아돌프는 경례를 올리고는 얼른 방을 나갔다. 보나마나 동료들과 즐거운 뒷담화를 할 게 분명했다.

프시케는 아돌프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고 나서야 짐을 풀기 시작했다. 짐이라고 해봐야 지급된 복장과 생활용품이 전부였다. 그녀에게 가족사진이나 화장품은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간단하게 팬티와 칙칙한 국방색 나시로 갈아입고 냉장고를 열었다. 보존 식품들만 가득했지만 프시케는 괘념치 않았다. 배만 채우면 그만이었으니까.


요리 아닌 요리가 거의 완성되었을 무렵 누군가가 건들지도 않았는데도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자기 혼자 요란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밀 없다는 듯 완성된 음식을 하얀색 접시에 담아 탁자로 가지고 갔다. 발을 옮길 때마다. 바닥과 서랍 위에 서 있는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밀려 바닥으로 쓰러졌다.
접시를 탁자에 내려놓았을 때쯤 광기와 공포는 절정에 달했다.불빛이 눈이 멀 것 같이 점멸했으며 가방에서 아직 꺼내지 않은 옷들이 폭발하듯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자 마침내 그녀는 항복의 표시로 포크를 내려놓고 양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러자 아무 일 없었단 듯 모든 것들이 멈추었다. 허공에 뜬 옷가지와 부서진 접시들이 시간을 되돌리듯 다시 짜마춰지고 가방 안으로 접혀들어갔다. 그녀의 입에서 입김이 나왔다. 방 안에 한기가 감돌았다. 공기마저 굳어버렸다. 그 직후 알 수 없는 힘은 그녀가 앉은 의자를 침대 앞으로 밀었다. 그녀는 순응하기로 했다. 오랜 경험에 의거해 저항은 무의미히단 것을 깨닳았기 때문이다.
침대에 널브러진 두꺼운 솜이불이 오븐 안의 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 아래로 끈적하고 진득하고 붉은 진액에 흘러나와 침대 아래로 쏟아졌다. 방 안은 혈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밀리터리나 SF물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판타지스런 요소가 등장해서 좀 당황했네요. 제 기억에 의하면 애초에 장르가 뭔지도 밝혀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주인공(?)인 프시케의 능력(?)이나 배경에 대해 설명이 되어서 좀 낫네요.

요리같지 않은 요리가 완성된 순간, 갑자기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깜빡거렸다. 프시케가 묵묵히 완성된 요리를 식탁으로 옮기자, 찬장이며 책상에 있는 물건들이 혼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가방에서 아직 꺼내지 않은 옷들이 폭발하듯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보이지 않는 힘이 무시하지 말라는 듯 자신을 과시하고 있었다. 결국 프시케는 항복하듯 포크를 내려놓고 양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러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든 괴기현상이 멈췄다. 어지럽게 늘어졌던 물건들과 옷가지는 시간을 되돌리듯 순식간에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그 대신 방에는 한기가 감돌았다. 그녀의 입에서 입김이 나오고 공기도 얼어붙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의자에 앉은 채 침대 앞으로 끌려갔다. 저항은 무의미하단 것 정도는 오랜 경험으로 이미 깨닫고 있었다. 침대에 널브러졌던 두꺼운 솜이불이 오븐 안의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그 아래로 붉은 진액이 흘러나와서는 침대 아래로 쏟아졌다. 방 안에는 어느새 혈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나는, 배가, 고프다.” 앞쪽이 살짝 들린 이불 안에서 가죽이 벗겨지고 피로 젖은 앙상한 팔 같은 것이 튀어나와 그녀의 목을 부러트릴 기세로 잡아 체 침대에 쓰러트렸다.
“나는, 배가, 고프다.” 이불 안의 흉물은 거칠고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또박 또박 귀에 박에 넣었다. 뜨겁고 기분 나쁜 숨결이 목을 휘감았다.
“시간, 이, 되었, 다, 계약, 을, 이행, 하라.” 어차피 그녀는 저항할 생각도 거부할 생각도 없었다. 육체 따위는 얼마든 줄 수 있었다. 영혼이 뜯겨 나가도 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 감당할 수 있는 손해였다. 이 저주받은 축복은 자신이 원해서 자처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녀는 유혹하듯 웃으며 붉게 물들은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이빨과 손톱으로 난 상처로 뒤덮인 흉한 몸이 전등 빛 아래 요염하고 기괴하게 달싹였다.
“너의, 육신, 너의, 영,혼 모두 나, 의 것, 이다, 바쳐라, 몸, 부림 처라, 비로, 소 우리, 는 구원, 받으리라,” 증오와 악에 받친 3개의 불빛이 광기에 젖어 희번덕였다. 그녀는 마치 사랑하는 애인을 껴안을 준비를 하듯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두꺼운 어둠이 그녀의 몸을 집어 삼켰다.

본격적으로 프시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밝혀지는군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조차 이름이 언급이 안 되는 건 이상하지만요. 그리고 이제 와서 지적하지만 모순되거나 중복되는 표현들이 제법 있네요.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는'과 '또박또박'이 충돌한다든가, '자신이 원해서 자처'라며 동어반복이 일어난다든가, '바쳐라'와 '몸부림쳐라'가 충돌한다든가... 그것(?)의 대사는 좀 더 단순하고 묵직하게 바꿔봤습니다.

"나. 배. 고프다."

앞쪽이 살짝 들린 이불 안에서 가죽이 벗겨고 앙상한 피투성이 팔 같은 게 튀어나와 프시케의 몸을 낚아채고는 침대에 내던졌다. 그녀의 목 따위 부러지건 말건 상관없는 듯했다. 그것이 프시케의 귀에 대고 겨우 알아들을 만하게 속삭였다.

"나. 배. 고프다. 시간. 됐다. 약속. 지켜라."

뜨겁고 기분 나쁜 숨결이 목을 휘감았지만 어차피 그녀는 저항할 생각도 거부할 생각도 없었다. 육체 따위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 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 영혼까지 찢겨나가더라도 감당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 저주받은 축복을 원했던 건 자신이었으니까. 묵묵히 모든 걸 지켜보는 전등 빛 아래서 이빨과 손톱에 의한 상처가 가득한 형체의 그림자가 요염하고 기괴하게 들썩였다. 순간 전등이 꺼지더니 방 안에는 증오와 광기가 충만한 빨간 눈동자 3개만 남았다.

"네. 몸. 네. 생각. 모두. 내. 거다. 바쳐라. 시키는. 대로. 움직여라. 그래야. 구원. 받는다."

프시케는 유혹하듯 웃고는 붉게 물들은 티셔츠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껴안듯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두꺼운 어둠이 그녀의 몸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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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7번 글(새벽 5시 반에 작성)을 쓰자마자 퇴고를 시작했더니 금세 2시간이나 지났네요. 저격 같긴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퇴고해 봤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 글쓰기가 정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독자로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정성을 들여서 쓴 의견인 만큼, 어떻게든 해당 작가님은 물론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p.s. 이게 공백 포함해서 1만 1천자나 된다니. 평소 내 글의 2배나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