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자 목적없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벗어나고자 발버둥 쳐도 사라지지않는 악몽을 잠시라도 잊으려면 무어라도 해야만했다. 

술을 퍼마시던, 책을 읽던, 내가 해방군에 입대하기전 즐겨했던 게임을 붙잡고 즐기던, 아니면 머리속이 새하얘질때까지 숨차게 달리던간에 말이다

가장 약빨이 잘듣는건 술이었지만 얼마전 생긴 위궤양때문에 더이상 술은 입에댈수 없게 되었다. 

결국 술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는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술을 대신하여 끔찍한 악몽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방법을 찾고자 애쓰고 있었고 이러다가 찾아낸게 무작정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바깥구경으로 극복하는거였다.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무작정 거리를 배회하던중 뒤에서 갑자기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난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고 구급차와 마주하자 머릿속이 터질것처럼 어지롭기 시작하더니 속이 매스꺼워지면서 헛구역질이 터져나왔다.

갑작스럽게 또다시 옛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군복무 13개월 파키스탄 주둔 7개월

차스다에서 페샤와르로 재배치되고 2달동안 잠시도 편하게 쉬어본적이 없었다.

페샤와르는 연방직할부족지역과 카이베르파크툰크주의 주도 역할을 하는 도시인데다 아프간과 40km밖에 떨어지지않은 곳이었다.

동서남북으로 아프간과 소련, 중국, 파키스탄으로 연결된 이 도시는 옛날부터 물류와 상업이 발전했던 도시인데다 최근엔 파키스탄 정부가 중국 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통해 산업단지를 유치하여 중국기업들이 대거진출해 있었다. 

파키스탄 내전만 아니었다면 더많은 중국 자본과  기업들을 유치했을테고 이지역의 경제도 더욱 발전했을테지, 

경제적 가치를 제외하더라도 지리적으로도 결코 탈레반에게 넘겨주어선 안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연방직할부족지역과 카이베르파크툰크주의 중앙에 위치한데다 이들 지역 구석구석 통하는 도로가 놓여있는 이곳은 피를 온몸에 공급해주는 심장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탈레반의 중심세력인 파키스탄 내 파슈토인들은 역사적으로 페샤와르가 아프간왕국의 영토였다는 점 때문에 페샤와르를 굉장히 중요시여겼다. 

아프간내전에서 마수드에게 패배해 파키스탄으로 밀려난 탈레반은 파키스탄 북서부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선 파키스탄 내 파슈토인들의 민심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우리들과 탈레반은 이지역을 두고 내기억으로 우리대대만 2달 사이 10명의 전사자가 나올정도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렇게 2달이 흐르자 놈들의 공격과 테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더니 1주일동안 공격을 멈추었다. 

당시 우리로서는 놈들의 의도를 알수없었지만 그럼에도 우리 분대 내에선 낙관적인 반응이 많이 터져나왔다.

곧 전쟁이 끝날거라며 휴가생각하며 즐거워하던 류열병부터

전쟁이 끝날리는 없지만 일단 한숨돌리고 쉴 기회가 생겼다며 기뻐하던 장열병(이병,일병),

분대장이었던 첸하사님만 놈들이 재공격을 준비하고 있을거라며 걱정하고있었는데

결과적으론 첸하사님 말씀이 옳았다.

마지막 공격으로 부터 1주일이 지나자마자 잠러드에서 놈들의 공격이 시작됐기때문이다.

 

잠러드 전투

현지시각으로 아침 6시반쯤 이제 막 기상하여 연병장에 집결하고 일과를 시작하려던 우리 대대는 갑작스레 실전상황이 터지면서 아침식사조차 건너뛰고 전투배치에 임해야했다. 

상황인즉 순찰임무를 부여받은 보병 소대가 그랑 트렁크 도로를 통해 잠러드 주택단지안으로 들어가던 도중 주택단지에 매복중이던 탈레반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잠러드는 페샤와르 대학을 기준으로 서쪽으로 6km 떨어진곳에 있는 곳이었는데 페샤와르에서 연방부족직할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잠러드가 필요했다.

더구나 잠러드는 페샤와르에서 굉장히 가까운 곳인 만큼 이곳이 탈레반에게 장악당하면 페샤와르 방어에 악영향을 줄것이 분명했다. 

결국 오전 7시 우리 대대는 잠러드에서 공격받는 보병소대를 구조하고 잠러드를 탈환하고자 출동준비를 마쳤다.

잠러드 그랑 트렁크 도로를 통해 잠러드 입구로 들어가자 끔직한 광경이 펼쳐졌다.

우리가 구조해야할 보병 소대는 총원 33명 군용차량 6대였는데 입구에서 보이는건 차량 2대와 6명의 병사뿐이었다. 

6명의 병사들은 우리를 보자 살았다는듯 안도감을 느꼈는지 손을 흔들며 우리를 자신들 방향으로 유도하였다.

우리가 그들이 있는곳으로 다가가 그들의 차량 하나를 살펴보니 조수석과 운전석은 피로 얼룩져있었고 뒷좌석엔 머리에 화전통(RPG)으로 공격받았는지 뇌수가 흘러나오는 시신이 있었다.

나머지 20여명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행방불명이었고 지금도 그들의 시신조차 회수하지 못해 실종처리 되었다.

그들의 비참한 모습에 슬픔과 증오가 교차하며 혼란스러웠지만 그 당시로선 빨리 혼란을 수습하고 놈들에게 복수하는게 최우선이었다.

비록 부질없게 되었지만 우린 실종된 병사들이 포로로 붙잡혀있기라도 바랬고 그들이 포로로 붙잡혀있다면 빨리 구하고싶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

우리가 모습을 드러낸 이상 시간이 촉박했다. 

놈들이 우리를 발견한 이상 놈들에게 방어를 준비할 시간을 줄수없었다.

우리 대대는 셋으로 나뉘어 내가 속해있던 1중대는 잠러드 입구에서 놈들을 향해 진지를 구축하고 놈들을 유인하며 놈들이 공격해오면 공세로 부터 방어를, 나머지는 우리가 미끼가 되는동안 다른 길을 통해 시내로 진입하여 공격하기로 되어있었다.

우리가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3분이 지나자 갑자기 여기저기 소란스러워지면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백명에 달하는 탈레반놈들이 건물에서 뛰쳐나와 우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난 여태까지 그렇게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달려오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정말이지.... 어릴때 보았던 개미굴에서 쏟아져나오는 개미떼나 벌집을 건드릴때 쏟아져 나오는 벌떼 처럼 놈들은 쏟아져 나왔다.

다른점이 있다면 개미는 전혀 위협이 되지않고 벌떼도 쏘이지않게 연기나 방충망을 잘 준비한다면 죽거나 다칠일은 드물지만 놈들은 하나씩 총을 들고 우리에게 갈겨댄다는 것 뿐이었다.

우린 놈들의 공격으로 부터 살아남기 위해 장갑차나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움직이는게 보이면 닥치는대로 총을 쏘아댔다.

그러자 현장에서 우릴 지휘하던 펑중대장님은 민간인과 탈레반은 구분하라고 소리치기 시작했고 중대장님의 말을 듣고나서야 난 수백명의 인파가 전부 탈레반은 아니란걸 깨달았다.

놈들 사이에 총격을 피하고자 다른건물로 도망치는 민간인들도 있었고

그중에 여자와 아이들, 가족을 지키고자 가족들을 대피시키는 가장들도 있었다.

그중 일부는 우리에게 쏘지말아달라는듯 애원하는 눈빛으로 손을 흔들며 뛰어가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니 내가 차스다에서 죽여버린 일가족이 떠올랐다.

하마터면 난 차스다에서 저지른 실수를 또한번 저지를 뻔했다.

괴로운 마음에 난 총을 치우고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탈레반은 교활했다. 

우리의 심리를 역이용하여 자신의 가족을 안전한곳으로 안내하자마자 갑자기 뒤에 차고있던 소총을 우리에게 겨누며 쏘는놈들도 있었다.

그 꼬라지를 보고나서야 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놈들을 향해 응사했다.

사실 이정도면 그나마 자신의 가족만큼은 보호하고자 노력한셈이다.

정말 쓰레기같은 놈은 자신의 가족들을 방패삼아 총을 쏘거나 또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수류탄등 무기를 쥐어 자신과 함께 싸우도록 유도하는 놈들도 있다.

사실 놀랄일도 아니었다. 폐사와르에서 머무는 2달동안 흔하게 봐온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몇번을 봐도 부녀자들이 우릴 향해 총을 쏘거나 가족들이나 부녀자들을 방패삼아 우리와 싸우는건 익숙해지지 않는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지하드는 뭘 위한 지하드이기에 자신의 가족들까지 사지로 내모는걸까? 난 지금도 해답을 찾지못했다.

 

전쟁법

강대국의 군대라면 국제사회로부터 질타받지 않기위해 제네바조약이나 전쟁법등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있다.

민간인을 보호한다부터 의사나 군의관은 적이나 아군을 구별말고 진료하고 살려주어야 한다거나, 의사임을 알아볼수있는 상징등으로 자신이 의사임을 알린다면 쏘지말아야한다는등 얼핏보면 간단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지키기어려운 상황들이 많았다. 

왜냐면 전쟁법이던 제네바조약이던 적들은 신경쓰지 않기때문이다.

우리가 치열한 전투에 몰두하여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던도중 우리 진지 정면으로 구급차가 사이렌 소리를 키면서 굉장히 빠른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중대에 배치된지 1달정도된 류열병은 태연하게 구급차가 오고있으니 주의하며 사격해야겠다고 첸하사님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류열병의 안일한 판단은 우리를 위기로 몰아넣을수도 있었는데

구급차로 위장한 자폭테러 차량일수도 있기때문이었다.

놈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숨기기 위해서라면 우리의 약점을 얼마든지 이용하고자 들었다. 약점이 뭐냐고? 당연히 전쟁법이다.

놈들은 뻔뻔하게도 전쟁법에서 지정한 공격금지대상으로 위장해 우리를 향해 공격하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우린 극도로 예민해질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와 장열병은 우리쪽으로 달려오는 구급차를 향해 경고사격을 날렸지만

신경쓰지않고 계속 달려왔고 결국 우리는 구급차를 향해 발포하면서 강제로 구급차를 멈춰서게 만들었다.

구급차가 멈추고 30초쯤 지나가 뒷문이 열리더니 6명의 무장탈레반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올바른 판단을 내렸고 원칙대로 조치했지만 마음 한편이 쓰라렸다.

이런일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우린 민간인들을 신뢰할수없게 된다.

언제 히잡이나 부르카를 뒤집어쓴 저 여인이 우리에게 대전차 수류탄을 던질지 알수없어 겁먹게 된다.

우리를 지켜보는 꼬마가 사실은 자폭용 폭탄을 매달고 달려들기위해 간보는게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아기를 안고 발코니에서 우릴 지켜보는 중년남자가 놈들의 지휘관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의심된다고 그들을 향해 총을 발포할수없다.

민간인 학살이 되버리니까, 우리가 나쁜놈이 되버리니까,

그들이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색을 드러내기전까진 우린 그들을 공격할수없었다.

물론 그들이 본색을 드러낼 순간이 되면 우리목숨을 지키기엔 너무 늦었다.

반격할 기회조차 주지않고 우리에게 달려들기 위해 철저히 자신들을 숨기기 때문이다.

아무튼 구급차에서 뛰쳐나오는 탈레반놈들을 지켜본 류열병은 장열병이 정신차리라고 갈구기 전까지 망연자실하며 구급차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그는 적들이 저렇게까지 전쟁법을 어기며 우리들을 속인다는걸 몰랐기 때문이었을거다. 

 

상황끝

그렇게 우리는 오후1시까지 방어하다보니 놈들의 공격이 무뎌지기 시작하자 2,3중대와 함께 잠러드안으로 진입할것을 지시받았다. 

오후3시까지 잠러드안으로 기어들어가면서 2,3중대가 마저 처리하지못한 잔존세력들을 소탕하고 임무를 끝마쳤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우린 오후5시까지 잠러드에서 경계순찰을 돌다가 복귀하여 휴식을 명받았다.

이렇게 또 죽을고비를 넘기고 하루를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니 안도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살아남은건 분명 기쁜일이며 감사해야 할일이지만오늘 살아남았다고 내일도 살아있으리란 보장이 없었으니까,

매점으로 가니 장열병이 평소엔 피우지도 않던 담배를 사고 있었다.

난 장열병에게 다가가 넌스레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담배인데 왠일이냐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장열병이 입을 열었다.

"루오상병님 대체 저흰 뭘 공격하면 안되고 뭘 공격해야 하는겁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교전수칙이나 제네바조약은 대체 왜 있는겁니까?

류열병이 어리버리타고 있긴했지만 사실 저도 류열병처럼 저희가 배운 교전수칙이 무엇때문에 있는건지 오늘처럼, 아니 지금까지 빈번하게 어겨왔는데 어차피 지키지못할거면 왜 교전수칙이란걸 만들었는지, 전쟁법이란걸 제정하고 제네바 조약을 맺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열병의 말은 여러모로 촌철살인이었다. 

나 역시도 지키지못할 교전수칙이나 전쟁법이 왜있는건지 명확하게 답할수 없었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때문에 수렁이나 다름없는 파키스탄에서 지키지못할 제약들 때문에 사서 고생을 해야하는지 알수없었다.

하지만 이런생각도 들었다. 

교전수칙을 무시하고 꼴리는대로 행동한다고 나아지는것도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