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언제 쓴 건지 모르는 엄청 옛날 단편소설입니다. 무편집(엄밀히 말하면 최소 편집)으로 올립니다.

제 생각엔 이거 올린 카페는 망해서 문 닫았을 것 같네요. 적어도 2010년 이전에 쓴 소설입니다. 백업 하드에서 우연히 발견해 올립니다.

(실은 이거 외에도 수많은 단편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도 잘 쓴 것 위주로 올리겠습니다)

 

그나저나 글자수 제한이 너무 빡빡한데요? 단편 하나 올리는데 무려 네 개로 쪼개서 올리는 경우는 처음 당해봅니다.

 

하늘나라행 편지 (1/4)

 

그건 놀토가 끼어있던 주의 금요일 아침이었다. 녀석은 그날 아침 담임선생님과 함께 교실에 들어왔다.

 

“인사해라. 오늘 전학오게 된 한강호라고 한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갸름한 얼굴, 창백한 피부색의 강호는 천천히 교실을 둘러보았다. 비록 키가 작고 마른 몸매였지만 그는 두 다리로 단단하게 땅을 디딘 채 꼿꼿이 서서 날카로운 눈매를 빛내고 있었다. 왠지 싸움 깨나 할 것 같은 인상이랄까? 하지만 그 눈매는 날카로울지언정 위협적이진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반 친구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한강호라는 인물이 내뿜는 카리스마에 압도되어가고 있었다.

문득, 녀석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때 녀석은 놀란 눈치였다. 날 바라보는 녀석의 눈동자가 커져 있었다. 그리고 아까전까지만 해도 단단하게 디디고 있던 두 다리에서 조금 힘이 풀려 있는 게 보였다. 오직 나만이 느꼈을 만큼 작은 변화였지만 어쩐지 내게는 강호의 그 변화가 너무도 뚜렷하게 보였다.

 

“강호야. 인사해야지.”

 

담임선생님이 성호가 아무 말도 없자 그에게 몸을 기울이고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제야 강호는 정신을 차린 듯, 다시 자세를 꼿꼿이 하고 기운차게 소리쳤다.

 

“반갑다. 내 이름은 한강호다.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황당한 멘트에 몇몇 친구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건 반장선거할 때에나 쓸 법한 멘트라고! 강호는 웃음을 터뜨린 친구들을 흘끗 보고는 서둘러 그의 말을 정정했다.

 

“아, 그러니까, 잘 부탁한다.”

 

강호는 어색하게 웃고는 선생님이 가리키는 자리에 가 앉았다. 녀석은 가방도 없이 빈손이었다.

 

이후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강호는 책상에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아있었다. 녀석의 자리는 바로 내 오른쪽 대각선 뒷자리였는데 어쩐지 녀석은 자꾸만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쉬는시간에는 몇몇 활달한 녀석들이 강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말을 붙일 기회를 좀처럼 찾지 못했다. 재잘대는 녀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물어볼 정도로 나는 외향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점심시간, 녀석은 농구하자고 꼬드기는 애들을 제치고 갑자기 내게로 왔다. 녀석은 내게 묻지도 않고 내 옆자리에 턱 앉더니 다짜고짜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게 아닌가! 나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아, 호민. 이호민.”

“그렇구나…….”

 

내 이름을 듣고 강호는 조금 실망한 것 같았다. 녀석은 지그시 눈을 내리깔고 아주 잠깐 슬픈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만나고 싶던 어떤 사람과 닮아서 다가왔는데 그 사람이 아닌 걸 알았을 때의 그런 표정이었다.

도로 일어나 가려고 하는 강호를 이번에는 내 쪽에서 붙잡았다. 나는 강호의 팔을 잡고 도로 끌어내려 자리에 앉혔다. 그런데 그때 나는 조금 놀랐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바로 중심을 잃고 내게 끌려왔어야 하는데 강호는 마치 거목이라도 되는양 도리어 나를 자기 쪽으로 끌고가버렸다. 강호는 내가 잡아당기는 것을 눈치채고 스스로 자리에 앉긴 했지만 그 짧은 순간 나는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는 경험을 했다.

 

“저기, 강호야?”

“응?”

“혹시 내가 누굴 닮았니?”

 

그 말에 이번에는 강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강호는 쓸데없이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내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뭐야~ 얼굴에 다 티가 나는데.”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강호에게 나는 피식 웃어보였다. 강호는 멋적게 머리를 긁적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닮았어. 쌍둥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그리고 강호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그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보였다. 사진에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강호와 그 뒤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날 닮은 사람 하나가 있었다. 정말 나라고 해도 믿을 만큼 사진 속 주인공은 나하고 똑같이 생겨 있었다.

 

“진짜 똑같다. 친구니?”

“아… 친구… 였지.”

 

그렇게 대답하는 강호는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그에게 말했다.

 

“싸웠냐?”

“아니.”

“그럼, 어디 먼 데로 갔냐?”

“…….”

 

그 말에 강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강호의 어깨를 툭 쳤다.

 

“뭐야. 그렇게 보고싶으면 방학때라도 찾아가면 되잖아.”

“방학때 찾아가기엔 너무 멀리 있는걸?”

“아, 외국으로 갔나? 그럼 편지라도 보내.”

“거기로는 편지 못 써.”

 

그렇게 말하는 강호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강호에게 말했다.

 

“도대체 거기가 어딘데?”

“하늘나라.”

 

강호의 대답에 나는 꼿꼿이 얼어붙고 말았다. 난 실수했다는 생각에 얼른 자세를 고쳐잡고 사진을 강호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강호는 그런 내 행동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녀석은 내게서 시선을 떼고 창밖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그의 어깨가 처져보였다.

 

“아, 나한테 너무 부담스러운 선물 하나 주고 떠났지. 나는 녀석한테 하나도 해준 게 없는데…….”

 

강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 알았어. , 우리 저녁때 다시 얘기하자.”

 

 

 

다음편: https://arca.live/b/writingnovel/249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