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행 편지 (2/4)

 

1편: https://arca.live/b/writingnovel/249464

3편: https://arca.live/b/writingnovel/249467

 

국기계양대의 그림자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저 멀리 담장에 걸쳐져 있었다. 오늘따라 오렌지빛 석양이 짙게 드리워지고 뭉게구름 몇 조각이 그 빛을 받아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내 친구 치덕과 함께 교실에 남아 강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여앉았다. 셋이서 아무도 없는 교실에 있자니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치덕은 내 하나밖에 없는 단짝 친구로, 이 학교에 입학하면서 맨 처음 사귄 친구였다. 꽤나 외향적인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성적은 전교 1등을 거의 놓쳐본 적이 없는,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 부러운 천재였는데 어쩌다가 나하고 절친한 친구 사이가 돼 있었다.

 

“녀석하고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어. 그녀석은 팔을 다쳐서 내가 있던 병원에 오게 됐는데, 녀석하고 나는 계단에서 처음 마주쳤지. 벌써 삼 년전 이야기가 됐지만, 아직도 그때의 만남은 생생해. 내가 계단을 내려가는데 현기증이 나서 아무 사람 팔이나 붙잡고 늘어졌는데, 하필이면 녀석의 다친 쪽 팔을 잡고 늘어졌던 거야. 잠시 후 어지럼증이 가라앉으니까 녀석이 날 들여다보고 있더라. 그녀석이 나한테 맨 처음 한 말이 뭔지 알아?”

“’덕분에 병원비 굳었네’ 라고 했냐?”

 

치덕이 싱글싱글 웃으며 강호의 말에 대답했다. 강호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치덕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어떻게 알았어?”

“글쎄~ 어떻게 알았을까?”

 

치덕은 실눈을 뜨고 강호를 째려보았다. 나는 영문을 모를 수밖에. 강호는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이야기했다.

 

“내가 그 녀석 팔을 접골시켜버렸단 말야. 녀석은 병원비 벌었다면서 나한테 밥을 사겠다고 했어. 난 병원밥만 먹을 수 있다고 대답했고. 그러니까 그녀석, 병실까지 따라오더라. ‘그거 맛있어?’ 하면서 내 밥까지 뺏어먹고. 엉뚱한 애였어. 처음 만난 사이인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친해질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다음 날 그녀석은 점심 도시락을 싸 갖고 왔단 말이지?”

“너 얘 알아?”

 

나는 거의 자리에서 일어나다시피 하며 치덕에게 소리쳤다.

 

“설마 너…….”

 

강호도 놀란 눈치였다. 치덕은 헤헤 웃으며 자기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헤~ 근데 말야,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아쉽게도 난 이미 그 책 읽었거든?”

 

치덕이 가방에서 꺼낸 책에는 ‘하늘나라행 편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근데 그걸 본 강호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왠지 뻥친 걸 들켰다는 표정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그 표정을 미처 감지하지 못한 치덕은 의기양양해가지고 책의 첫머리를 펼쳤다.

 

“이것 보라고. 내용이 아주 똑~ 같애.”

“뭐야? 그럼 지금 너 우리한테 책 내용을 읽어준거야?”

 

나는 치덕의 눈치를 흘끔 보고 강호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강호는 아까의 그 묘한 표정 그대로 치덕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치덕은 여전히 강호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거… 작가가 누구냐?”

“흥, 잘 들어. 작가는 바로…….”

 

자신있게 척 하고 책 앞날개를 펼친 치덕이 갑자기 ‘흑’ 하고 놀라더니 몸이 빳빳하게 굳어 버렸다. 그리고 그는 조금 전 강호가 지었던 그 묘한 표정이 되어 강호를 마주 쳐다보았다.

 

“미, 미안해.”

 

나는 치덕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앞날개를 살펴봤다. 거기엔 강호 자신의 사진이 실려 있었고, 그 바로 옆에 ‘내게 새 삶을 선물한 소중한 친구, 민호에게.’ 라고 쓰여 있었다. 자신의 투병 경험과 친구의 일기장을 참고하여 만들었다는 이 책은 강호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는 일종의 자서전이었다.

 

“이, 이런…….”

“…….”

 

이 책은 아직까지도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는 책이다. 나온 지는 반년 정도 됐나? 강호는 우리에게서 책을 받아들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치덕아. 내 이야기 읽어줘서 고마워. 그럼, 나 이야기 계속해도 될까?”

“으응.”

 

치덕은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강호는 책을 여기저기 들춰보며 옛 향수에 젖는 듯했다.

 

“민호, 호민, 헷, 설마 너까지 무술 매니아는 아니겠지?”

 

‘무술이 아니고 서바이벌.’ 이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다시 들어갔다.

 

해는 이미 서쪽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지만 우리 셋은 강호의 이야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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