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행 편지 (3/4)

 

1편: https://arca.live/b/writingnovel/249464

2편: https://arca.live/b/writingnovel/249466

4편(마지막): https://arca.live/b/writingnovel/249468

 

“’생일 축하해’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녀석은 떠났어. 하지만 난 녀석의 생일날 과연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녀석은 유명해지고 싶어했어. 그래서 난 녀석의 이야기를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자고 생각한거야. 그것이 그에게 줄 수 있는 내 최고의 선물이 되겠지.”

“근데 너 지금은 심장 괜찮은거야?”

 

갑자기 치덕이 강호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럼. 아아~ 주 튼튼하지. 민호가 자기 몸 관리에 얼마나 열심이었는데.”

 

농담조로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표정은 오히려 애처로워 보였다. 무슨 소리인가 궁금해하고 있는 내게 치덕이 대신 설명해 주었다.

 

“쟤는 원래 심장병 때문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어. 강호는 민호의 심장을 이식받고 살아난거야.”

“뭐라고라고라!!”

 

꼭 내 심장을 저녀석이 달고 있는 것 같잖아! 기분이 엄청 묘해졌다. 무심결에 내 가슴에 손을 올려놓는 나……. 그걸 본 강호가 웃었다.

 

“괜찮아. 심장은 이거 하나면 충분해. 달라고 안 할게.”

“달래도 안 줘!”

 

실수했나? 난 그 말을 뱉자마자 뜨끔해서 강호의 눈치를 살폈지만 강호는 괜찮은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너한테 줘야 할지도 모르지. 민호를 닮은 너한테…….”

“아, 아니 그냥 너 갖고 있어.”

 

 

 

 

강호는 날 때부터 심장이 안 좋았다. 심근 위축증이라는 병명을 가진 그는 혈압이 너무 낮아 조금만 운동을 해도 금세 지치고 현기증을 일으켰다. 나이가 들수록 몸은 커져가는데 몸 전체로 피를 보낼 능력이 점점 떨어져 의사는 그가 고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는 나이인 17세 즈음에 결국 몸이 더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전에 건강한 사람의 심장을 이식받으면 살 수 있지만, 간이나 신장도 아니고 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인공 심장을 사용하면 어떻게 버틸 수 있긴 했지만 그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할 처지도 되지 않았다. 그는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독서에만 탐닉했다. 유명한 작가의 시와 소설은 거의 다 읽었고, 자신도 문예 잡지에 몇 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작가로서 일찍 등단하긴 했지만 그의 운명의 시계는 17세가 되는 날 끝나는 것이었다. 죽기 전까지 자서전을 한 편 써보기로 결심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내가 민호를 만났을 때는 이미 1년치의 일기가 쌓여 있었지. 너희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겠지만 어차피 난 시한부 인생이었기 때문에 내 일기를 기꺼이 그에게 보여줬어. 아마 그녀석, 내 일기를 본 뒤부터 자기도 일기를 썼을거야.”

“내 일기를 호민이가 보면 끔찍할거야.”

 

치덕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라? 너 일기 써?”

“당연하지! … 가 아닌가? 어쨌든.”

 

치덕은 볼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라도 써 봐. 하루를 정말 알차게 보낼 수 있을거야. 특히 살 날이 얼마 없었던 나에게는 1초의 시간이 소중했었어. 너희들은 자기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지? 나는 지금 민호 몫의 삶을 살고 있어서 매일매일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

 

강호는 그렇게 말하고 우리들의 눈치를 한 번 살폈다. 분위기가 너무 무겁게 흐르는 것같이 느껴지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뭐 어쨌든 그녀석 내가 일기 보여준다니까 처음에 기겁을 하더라. 내가 괜찮다면서 보여줬지. 혹시 내가 너무 일찍 죽으면 대신 책으로 출판해달라고 말야. 그녀석, 다음날 눈이 퉁퉁 부어가지고 오더라. 밤새 수십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대. 울었다고 말은 안했지만 지금 내 원고 중 일부에는 그녀석 눈물자국이 아직도 남아있어. 정말 소중한 싸인이지? 그치? 어라? 이 책에도?”

“앗! 그, 그건 그냥 비가 오는 날 읽은거라서…….”

 

갑자기 치덕이 손사래를 치며 강호에게서 책을 빼앗으려고 했다. 강호는 얼른 몸을 뒤로 빼고는 싱글거리며 치덕에게 말했다.

 

“큰 걸로 딱 한 방울?”

 

그 말에 치덕은 울상이 되었다. 강호는 싱글거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뒤로 그녀석은 매일같이 내 병실에 찾아왔어. 그러던 어느날 심장 강화에 좋다면서 나한테 태극권을 연마하라고 하지 뭐야. 두 발로 버티고 서기도 힘든데 태극권이라니……. 하지만 악착스럽게 가르쳐주더라.”

 

민호는 강호에게 태극권을 가르쳐주면서 꼭 열 일곱 살 생일을 함께 맞자고 말했다. 그리고 열 일곱살이 되는 해에는 특별한 선물을 해 줄 거라고, 그러니까 그때까지 죽지 말라고 언제나 강호에게 당부를 했다.

 

“그리고 이 사진……. 병원 밖에서 둘이서 찍은 몇 안되는 사진 중 하나야.”

 

가을이 무르익던 어느날, 민호는 강호를 데리고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는 이미 붉고 노란 단풍이 들어 있었고, 길가에는 낙엽들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 공원길을 함께 산책하며 둘은 함께 노래를 불렀다. 강호가 직접 작사하고 작곡한 노래를…….”

 

[나의 환상 속에서

나는 내일을 살고 있었습니다.

결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내일의 세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

하늘 위로 지나가는 구름

그 모든 것을

눈물 속에 감격하며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보고 있었습니다.

 

나의 환상 속에서

나는 손을 뻗고 있었습니다.

결코 만질 수 없을 것 같았던

내일의 친구를 만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크고 따뜻한 손을

그의 밝게 웃는 얼굴을

그 모든 것을

눈물 속에 감격하며

만지고 있었습니다.

 

나의 환상 속에서

나는 바람의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결에

내 몸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바람은 나를 싣고

높이 높이 올라가

온 세상을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내일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 노래는 부를 때마다 목이 메여.”

 

노래를 마친 강호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나 역시 목이 메여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느낌, 처음이었다. 뭔가 목 안쪽에 탁 걸린 듯한 이 느낌…….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이게 이런 노래였구나. 난 시로써 읽었을 뿐인데.”

 

치덕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은 민호와 나뿐이었어. 이제 두 명 더 늘었네. 너무나 소중한 노래여서 민호를 진정으로 느끼고 그를 위해 눈물 흘려줄 수 있는 사람과만 공유하고 싶었어. 그래 치덕 너같이 말야.”

 

그리고 그 둘은 공원에서 처음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이다.

 

 

다음편: https://arca.live/b/writingnovel/249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