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행 편지 (4/4)

 

1편: https://arca.live/b/writingnovel/249464

3편: https://arca.live/b/writingnovel/249467

 

“다음에는 캠코더로 찍자고 했었는데…….”

 

강호의 볼을 따라 굵은 눈물줄기가 흘렀다. 그가 울고 있는 이유를 아는 치덕은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고 있었다. 나도 불길한 예감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사진을 찍은 날 밤, 병원에 불이 났어. 난 자고 있었기 때문에 불이 난 사실은 몰랐지. 깨어나 보니까 다른 병원에 와 있더군. 곁에는 내 부모님과 민호의 부모님이 함께 있었어. 모두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더군.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지. 우리 엄마가 병원에 불이 났었다고 말해 줬어. 난 한 달 동안이나 의식 불명 상태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다고……. 흐흑, 그 사진을 찍고 나서 난 한 달이나 그렇게 잠자고 있었던 거야. 그 동안 세상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큰 변화가 있었는데……. 난 태평스럽게 자고 있었던 거야. 민호의 부모님이 사진관에서 현상된 우리 둘의 사진과 비디오 카세트를 건네줬어. 민호의 유언장이래. 난 처음에 무슨 소리냐고 소리쳤지.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어. 그냥 비디오를 보라는 말 한마디만 하고는 모두 방에서 나가 버렸지.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록 난 비디오를 보지 못했어. 바깥 풍경은 분명 내가 보았던 어제와는 완전히 달랐고, TV뉴스에서 말하는 시간도 분명 한 달이나 지나 있었지. 밤이 되고, 어제와는 너무나도 다른 달이 떠오르니까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 내 손안에 쥐어져 있는 이 비디오에 과연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가슴 복판의 수술 자국이 몹시 거슬렸는데……. 그리고 언제나 내 몸에 달려 있던 심전도계가 없다는 사실도 몹시 거슬렸는데……. 난 떨리는 마음으로 비디오를 봤지.”

 

민호는 강호를 구하기 위해 홀로 불타는 병원 안으로 뛰어들었다. 열기와 유독 가스에 숨이 막혀왔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병실까지 달려와 혼수상태에 빠진 강호를 안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병원의 큰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불기둥이 솟아 무방비 상태의 민호를 그대로 덮친 것이다. 이것은 소방수들이 얘기해 준 것을 강호가 전해 들은 내용이다. 등 전체에 2도 화상을 입고 폐가 심하게 손상된 민호는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가망은 없었다. 그는 구급차 안에서도 강호를 꼭 안은 채로 강호 먼저 챙기라고 바락바락 악을 써 댔다고 했다. 이것은 당시 구급차 간호원들의 진술이다. 병원에 도착해서 혼수 상태의 강호를 인도한 뒤에 그는 드디어 힘이 다해 쓰러지고 말았다.

 

두 사람의 가족들이 달려오고, 민호는 화상의 고통 속에서도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예감한 그는 의사에게 말했다. 강호를 살릴 수 있겠냐고…….

 

“나를 살릴 수 있겠냐고. 자기 심장이 있으면 나를 살릴 수 있겠냐고……. 그러면서 장기이식 적합성 판정 결과표를 의사에게 들이댔대. 그걸 본 의사는 할 수 있다고 말했지. 그때 민호는 환하게 웃었대. 바보같은 자식. 자기를 죽여달라고 말해놓고 웃다니…….”

 

민호는 그의 부모님에게 캠코더를 가져와달라고 했다. 언젠가 함께 공원에 나가 찍자고 했었던 그 캠코더를……. 그리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그는 마취 주사에 잠들어가면서 강호에게 유언을 남겼다.

 

[안녕 강호야. 이 비디오를 볼 때면 난 네 곁에 없을거야. 아주 먼 길을 떠나게 됐거든. 미안해. 열 일곱살 생일을 함께 하자고 했는데, 그 약속 지키지 못하게 됐어. 참, 며칠 있으면 네 생일이지? 생일날까지 내가 기다릴 순 없을 것 같다. 좀 미리 선물을 줘도 괜찮겠지? 무슨 선물이냐고? 후후. 내 심장. 니가 쓰기에는 충분히 튼튼할거야. 실은, 나 너 몰래 너하고 나하고 장기이식 적합성 검사를 했었어. 딱 맞는대. 괜히 말했다가 니가 화낼까봐 말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떠나는 길에 너한테 선물 하나 줄 수 있게 돼서. 잘 있어 강호야. 그리고, 생일 축하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녀석은 눈을 감았어. 그리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난 녀석의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어. 녀석이 일곱 명의 생명을 구하고 한줌 재로 변해 사라져 갈 때도, 나는 곤히 자고 있었던거야. 크흑!”

 

더 이상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된 강호는 이제는 닦을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나도 계속 나오려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우리 모두가 울고 있었으니까. 치덕은 이제 아예 내 어깨에 기대 소리내서 울고 있었다.

 

민호는 강호에게 심장을 선물했다. 그리고 두 명의 다른 환자에게는 각각 한 개씩의 신장을, 그리고 또 다른 세 명에게는 간을, 마지막 한 명에게는 눈을 선물했다. 내일을 볼 희망이 없었던 그 일곱 명에게 내일을 보여주고 그 자신은 그가 당연히 누려야 할 내일을 포기했다.

 

“비디오를 다 본 후, 나는 며칠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어. 그저 멍하니 침대에 누워만 있었지. 꼭 죽은 사람 같이. 보다 못한 민호의 아버지가 민호의 일기장을 가져왔어. 나에게 일기장을 건네주면서, 민호가 내 이런 모습을 보면 편히 잠들 수 있겠냐고 말했어. 그 한마디에 눈물이 퍽 쏟아지더라. 며칠 동안 쌓였던 슬픔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 같았어. 아주 오랫동안 울었는데……. 울고 나니까 후련해지더라. 그리고, 나는 민호의 일기를 읽고 읽고 또 읽었어. 완전히 외워 버릴 때까지. 민호가 내 일기를 읽었던 날과 마찬가지로 말야.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과, 내가 그토록 바라고 있었던 내일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민호가 내게 선물한, 자신의 내일을 내가 대신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야. 나는 그의 몫까지 살겠다고 맹세하고, 그의 소원 중 한 가지를 이루어주자고 결심했지. 유명해지는 것 말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 뿐.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이 책을 썼어. 되도록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해줄 수 있도록 말야. 그리고… 지금 울고 있는 치덕이를 보니까 난 성공한 거구나.”

 

“치, 치덕아.”

 

나는 내 어깨에 여전히 기대 있는 치덕을 불렀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데도 어찌나 힘이 드는지 숨이 다 헐떡거렸다.

 

“응?”

“이젠 내가 울래.”

 

그리고 난 치덕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마음껏 눈물을 쏟아냈다. 꼭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귓가에서는 아까 강호가 불러줬던 노래가 계속 맴돌고 있었고, 가슴 속에서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와 목을 강하게 조여왔다. 울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이야기 하나만으로 날 이렇게 울릴 줄이야.

 

 

 

 

“호민아.”

 

문득 날 부르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호가 있었다.

 

“하늘나라행 우편번호… 가르쳐 줘서 고마워.”

 

그 민호라는 녀석, 지금 하늘나라에서 날 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웃고 있을까?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친구를 구해내고, 자신은 치유할 수 없는 화상의 고통속에서 죽어가면서 마지막 유언으로 자신의 심장을 친구에게 선물할 생각을 했던 민호. 만약 나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 전에 그 뜨거운 불길 속으로 뛰어들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못 했을 것 같다. 또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지금까지 남들에게 받기만 했지 결코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기적인 나에 비하면 그 민호라는 아이는 도대체 얼마나 잘난 녀석이냔 말이다.

 

그날 밤,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일기를 썼다.

 

[6월 14일 토요일 새벽. 날씨 맑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별이 밝은 때문일까? 창문을 열어보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문득 뒤에서 인기척을 느껴 뒤돌아보았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 민호가 들어온 것인가 하고 기쁜 마음에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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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소설은 장편으로 기획했던 '위즈빌의 아이들' 세계관 기반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데, 정작 위즈빌의 아이들은 설정충돌 및 손발이 오글거리는 묘사와 연출로 인해 깔끔하게 말아먹고 이 에피소드와 프로게이머 에피소드 두 개만 살아남아 있습니다. 프로게이머 에피소드의 경우 장편에 맞춰 놓은 서술이라 좀 더 많은 편집이 필요합니다. 건질 만한 에피소드가 있으면 좀 더 건져보겠습니다.

 

문장부호 표준 개정 전의 글이라 말줄임표가 온점 일곱 개로 돼 있는데 이거 보기 불편하신 분 있을 거라 봅니다. 원래 워드프로세서 설정에는 저걸 자동으로 말줄임표로 바꿔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만 텍스트로 강제로 뽑으면 저렇게 되어 버립니다. 온점 세 개도 있고 일곱 개도 있고 중구난방인데 그냥 뭐 그러려니 하세요.

 

그나저나 위즈빌의 아이들 본편 문서가 손상된 문서 경고가 뜹니다. 아마 내용 일부가 소실된 듯합니다. 제발 많이 짤려나가지 않았으면 하네요. 아무리 손발퇴갤 글이라도 날라가면 아쉬운데 제가 얼마나 쓰다 말았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제 생각에 이 글은 아마 2000년과 2002년 사이에 쓴 것 같습니다. 또는 2005년과 2008년 사이거나요. 적어도 2010년 이후 글은 아닌데 2010년 이후에는 백업 디스크를 바꿨거든요. 이건 옛날 백업하드에서 발견한 글입니다. 산 지 20년이 다 돼가는 하드가 아직도 전원 연결하면 돌아간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라벨도 삭아서 스티커가 떨어져서 제조사도 모르는(삼성 아니면 맥스터) 하드인데.

 

어쨌든 잘 쓴 것 같으면 추천, 못 쓴 것 같으면 비추 눌러주세요. 둘 다 안하시면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