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이 있다. 


어느순간부터 나도모르게 알게 되었다.


하늘은 푸르다. 


그렇지만 나의 푸름은 다른이들에게는 붉음이다. 


바다를 보면 청량한 기분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는 피바다나 다름없는 광경이지만.


그렇지만 어색하지 않다. 나에게는 그 모든게 푸름이었고 아름다움이었으니까. '원래'색깔따위는 한번도 본적없다.


붉은 장미를 바라본다. 당신이 말한다. 아름답다고. 


푸른 장미를 바라본다. 나도 말한다. 아름답다고.


그렇지만 나에게 이것은 붉은것이자 푸른것이다. 파란색으로 쓰여진 빨강이라는 글씨만큼 애매한것.


내 친구에게는 병이 있다. 어느순간부터 그냥 알게되었다고 한다.


그 친구에게는 이 세상이 황페한 화성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우리는 마치 대머리 외계인처럼 보인다고. 그렇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에게 인간이란 촉수가 붙어있는게 당연한 것이었다.


친구가 나를 바라본다.


내가 친구를 바라본다.


우린 무엇을 바라보고있는걸까. 서로 다른것을 바라보고 있을것이다. 전혀 다른것을 느끼고 있을것이다. 그렇지만 말한다.


""너를 보고있었어""


목소리가 겹쳐진다. 조금도 다르지 않은 대답. 


언어가 형태를 이뤄 귓가에 맴돌고 그것이 허공을 교차해 서로를 향해간다.


동생에게도 병이 있다. 그 아이에게는 온 세상이 천국처럼 보인다고 한다. 모두가 행복하게 웃고있는 낙원. 매일매일이 즐겁고 놀거리가 가득한 세상.


어긋났다.


아슬아슬하게 서로 맞닿았던 서로의 세계가 어긋나버렸다. 그 순간 그 아이와 나는 완전히 단절된다.


그 아이의 세상을 나는 옅볼 수 없었다. 늘 타인과 소통의 이정표가 되어주던 언어마저 깨져나간다.


슬프다


기뻐


아프다


재미있어


너무나도 쉽게 깨져버젼 세상의 틈새는 이윽고 매울수 없을만큼 벌어져 이윽고 우리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대화를 하려해도 혼잣말을 하듯이 맴돌 뿐이었다.


우린 무엇도 공유하지 못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평범한 이들. 


서로 같은세계를 살고있다고 '믿는 사람들'


같은걸 보고 같은걸 먹고 같은걸 느낀다...


그렇지만 알수있었다. 그들 사이에도 틈이 있었다.


 억지로 끼워맞추고 깎아내면서 겨우 들어맞은 서로의 세계는 너무나도 손쉽게 갈라져버릴 수 있었다.


모두가 서로 달랐다. 어느하나 같지 않았다.


빛한점 없는 우주를 떠다니듯히 공허했다. 이정표조차 없는 허공에 내던져졌다.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내 세상은 끝없이 암흑으로 가득할 뿐이었다.


통속의 뇌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모두 허상이고 나는 그저 전기신호의 명령대로 생각할뿐이 뇌라는것. 


분명 어딘가에서 봤는데...


결론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였나?


음...그래. 난 분명 이 어둠속에 존재한다. 그런데...


나 이외에는?


하나둘 허상인지 실체인지 모를 것들이 지워져간다. 나의 존재만을 남기고 모든것이 미지로 둘러싸여 잠겨버린다. 


외로웠다... 홀로 내던졌다는 것을 슬퍼하며 시간을 보냈다.


...


...


꽃의 향기가 났다. 짙은 개다래나무 향기가 내 하나뿐인 세상에 들어왔다. 오랜시간 단절되었던 내 세상에 누군가가 들어와주었다.


이번에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약간의 어긋남만 생겨도 깨져버릴 것이다.


하루 이틀 


다시 일주일



그리고 세달이, 넉달과 일년이.


그리고 어느순간, 둘의 세계의 경계가 사라져있었다. 


...


여전히 나는 혼자였다. 그녀또한 결국 사라져버렸다. 내 세상에 꽃향기만을 남긴채로 떠나버렸다. 그래도... 나는 이제 그녀가 없이는 살수 없었다.


그녀의 손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소짓던 얼굴이, 찡그리던 표정 그 모든것이.


그것을 한참을 곱씹는다. 그리고 알게된다.


그녀는 이미 내 반쪽이라는걸.


'나'라는 존재는 그녀로 채워졌다. 뗄레야 땔 수 없을 정도로, 어느새 곁에서 내 손을 잡은채 미소짓는 그녀가 보인다.


또다른 나. 내 '영혼'의 반쪽.


우리의 세상은 이제 고독하지 않다.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의 반쪽또한 확실히 이곳에 존재한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