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세계에서 이상 현상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거짓말 같지만, 구체적인 한 편의 수기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현실 같은 꿈이었습니다. 꼭 예를 들어야한다면 VR로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게임과는 다르게 모든 감각이 생생했습니다. 마치 정말로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자유로움, 그리고 꿈에서 본 사람들 모두 정말로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현실감.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는 현재가 꿈속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치 장자가 꾼 호접몽처럼 말이죠. 저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고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처음에 사람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저 잘 짜인 흥미로운 소설 한 편이라고 느꼈을 뿐. 그런데, 처음 올라온 글과 비슷한 내용의 글이 다음날 게시판에 올라왔고, 이어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부류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에 번져나가는 잉크처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신이 꾸었던 ‘꿈’에 관한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글쓴이들 모두 직접 본 것처럼, 내용이 구체적이고 세밀했었다. 모두 같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자세한 부분에 대한 묘사는 서로 달랐다. 마치 거대한 퍼즐의 조각을 제각기 떼어 글 속에 옮겨놓은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다른 이들의 글을 대조해서 읽어보면 서로 아귀가 맞아 떨어졌고, 다른 사람이 놓친 부분을 보충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인터넷의 속성이 그러하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글을 믿지 않았다. 누군가 조직적으로 글을 올린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모든 글을 한 사람이 작성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듯‘꿈’에 대한 수기는 전염병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글을 접한 사람이 늘면 늘수록 같은 경험을 했다는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국회의원 중에서도 그와 같은 경험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도 같은 경험을 했다는 주장을 하였다. 신빙성을 얻을 만한 정보들이 생겨나자 발 빠르게 학계에서는 이 현상을‘꿈 공유현상’이라는 명칭을 붙였고, 이어 언론사들도 유행처럼 매일같이 이 사회적 현상을 보도하였다. 사람들은 처음엔 호기심을 보였지만, 이내 시간이 지나자 하나의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겼다.

 

「꿈을 공유하는 것이 뭐가 신기하다고? 그냥 함께 게임하고 같은 영화 보듯 똑같은 꿈을 꾸는 것뿐이잖아?」

 

  철 지난 유행처럼, 꿈 공유에 대한 이야기는 금방 시들해진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유행이 조금씩 바뀌어 돌고 돌 듯, 꿈 공유 현상도 변종이 생긴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세포가 분열해서 제 몸을 불리는 것과 같았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꿈을 공유해도 같이 만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람마다 꿈의 크기가 다른지라 같은 꿈을 공유해도 서로 다른 장소에 있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올라오는 수기의 내용들을 찾아보니 다른 체험자와 만나는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였어요. 처음에는 꿈의 크기가 작아진 것으로 가정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같은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거예요.」

 

  숫자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5명에서 10명으로. 10명에서 100명으로. 군데군데 흩어져 있던 물방울들이 한데 엉겨 고이는 것처럼, 각기 다른 꿈들은 점점 뭉쳐 거대해져갔다.

 

  우리 가족들도 언제부터인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처음엔 얼떨떨해했지만 나중엔 적응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히 즐기고 있었다. 예전보다 더 화목한 모습들이었다. 딸은 꿈속에서 낮에 못 다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막내가 만든 상상속의 동물을 타고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멀찍이 웃으며 그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 나는 가족들과 꿈을 공유하기는커녕 요 며칠새 개꿈조차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초등학교 중학년이 된 딸이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 아빠. 조금씩 꿈을 같이 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잖아? 얼마 안 있어서 아빠랑 우리 모두 같은 꿈을 꿀 수 있을거야. 나중에 꼭 막내가 만든 유니콘 타고 노는거다? 꼭 그러자며 나는 딸과 손가락을 걸었다.

 

  물먹는 스펀지처럼 점점 커지던 꿈은 서로와 서로 달라붙어 마침내 한 국가를 형성할 정도로 커지더니, 갑자기 모든 꿈을 다 흡수해버리곤 그대로 하나의 덩어리로 굳어버렸다고 했다. 모든 꿈이 하나로 연결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놀랐지만, 그와 동시에 뭉쳐진 사람들의 상상력이 더 어마어마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유토피아에서부터 열역학에 의해 존재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무한동력까지…. 현실과 다르게 제약이 없는 자유로움과 상상하는 것 모든지 이루어지는, 정말 꿈같은 세계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상상력을 중요하다곤 말하지만, 정작 실용적이고 무난한 상상력을 중요시 여겼던 사회였기에. 많은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은 꿈 속 세계를 환영했다. 물론 이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불면증 때문에 잠도 자지 못하고 겨우 잠들어도 꿈도 별로 꾸지 못하는데 이건 너무하잖아! 나도 매일 야근 때문에 잠도 별로 못 자는데, 먹고 자고 아무 도움 안되는 백수들만 행복하겠네. 긴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불만은 터져 나왔다. 꿈을 꾸면 뭐하냐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왜 나는 날아다니는 것조차 할 수 없는거냐고!

 

  세계는 이제 크게 둘로 나뉘게 되었다. 현실세계와 꿈속 세계 둘로. 사람들이 모이면 집단이 생기듯 꿈속에서도 사회가 만들어졌고, 질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형형색색의 물감도 모두 섞이면 어지럽듯, 다양한 이들의 상상력을 보호해주기 위함이었다. 꿈속 세계 사람들의 무분별한 상상력의 사용은 금지되었으며, 공익을 위한 생각들을 펼치는 것을 제1철칙으로 정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하루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고 싶어 했다. 억눌린 현실보다는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고, 현실보다 훨씬 인정받을 수 있는 꿈속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현실과 다르게 꿈속에서는 상상력이 곧 힘이었고 권력이었다. 거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꿈속을 다스렸고, 만들어갔다. 빈약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그럼에도 꿈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했다.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자유로운 세상을 즐길 수 있었으니깐. 심지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사실은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김 과장님, 어제 남서쪽 마을 가보셨어요? 이번에 누군가 거대한 세계수 만들어 놓은 거 보셨죠? 완전 대박이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세밀하게 설계했을까?”

  “어…? 아, 응.”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입에 물었다. 통화 연결이 실패했다는 문구가 떠 있는 스마트폰 전원을 꺼버린다. 아마도 온 가족이 낮잠을 자는 모양이었다. 사실, 내 기대와는 달리 꿈 공유 현상이 발생한 이후로부터 나는 지금까지 꿈을 단 한 번도 꿀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창밖에서 여명이 스며들고 있었을 뿐. 꿈 비슷한 것을 보기는커녕 피로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 날들이 많아졌다. 안타까워하던 가족들도 지금은 그러려니 했다. 아침에 온 가족이 다 같이 식사를 할 때에도, 가족들 모두 꿈 이야기 밖에 하질 않았다. 꿈속에서는 허리 통증도 없고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어 좋더구나. 하는 장인어른의 말씀이 어쩐지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언론이 전해주는 소식에 꿈속에 대한 이야기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죄다 부정적 어조가 붙은 기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언론사들은 이제 현실세계의 존립을 위하는 기득권을 향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꿈속 세계에서는 모든 정보가 손을 거치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퍼져나갔기에 더 이상 언론사는 필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또한 상상력으로 구축해낸 시스템이었다고 했다. 나는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어울리지 않게 한산한 서울 시내가 아래로 보였다. 어쩐지, 나는 내가 서 있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어찌 보면 이제 사람의 정신은 24시간 온전히 깨어있는 셈이었다. 사람들은 삶이 더 늘어난 기분이 든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의 순수 수면 시간은 평균적으로 계산해보면 26년 가까이나 되었으니깐. 다르게 생각해보면 26년이란 시간을 더 깨어 있고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늘어난 시간만큼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더 열중할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아이들 모습도 놀라운데, 하루마다 영어실력이 유창해지는 딸을 보며 더 놀라워했다. 아빠는 그것도 몰라? 말하는 딸아이가 어쩐지 낯설었다. 꿈속 세계는 정말 대단했다고 했다. 생각했던 그대로를 온전히 창조해 낼 수 있으니! 악기를 배우지 않아도 생각한 음계를 그대로 뽑아낼 수 있었고, 구상한 소설의 내용이 생각한 그대로 바로 완성되었다고 했다. 언제 배웠는지도 모를 기타를 딸아이가 치며 내게 말해주었다.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어서 좋아. 정말, 상상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꿈 속 세계로 인해 현실엔 색다른 아이디어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수학난제도, 발명의 완성을 가로막던 한 줄의 아이디어도 모두 봇물 터지듯 솟아나기 시작했다. 많은 예술가들과, 발명가들, 창조가가 절망했고 좌절했다. 자신들의 노력과 시간들이 한순간에 단 몇 초 만에 부정당하는 순간이었다. 다시금 노력을 하고, 자신을 쥐어짠다고 해도 그 엄청난 상상력이 없었다면 단숨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꿈으로 옮겨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선택한 이들도 많았다.

  꿈속 세계는 인류의 발전과 문화에 큰 영향 가져왔고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꿈 세계를 시기하는 사람들과 우려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꿈 세계가 가져다준 이익이 물론 있지만, 모든 사람이 꿈 세계에서 살아가기를 원해,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었다. 이제 현실세계에서의 식사는 필수 영양소를 보충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지니지 않았다. 더 이상 가족들은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다. 음악을 듣지도 않았고, 딸아이의 인형을 쓰다듬지도 않았다. 모든 외부감각은 상상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수면시간은 점점 늘어났고, 현실 세계에서의 능률은 점점 떨어졌다. 정말 심한 곳은 아예 일할 사람이 없어서 그 지역경제가 폭삭 무너지기도 하였다고 했다. 세상의 균형은 기울다 못해 한쪽으로 치우쳐져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고, 보다 못한 정부가 사람들의 수면을 제한하며 꿈 속 세계를 규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규제에 찬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며 항의했다.

  나는 식탁에서 홀로 아침식사를 하며 시위현장에 나간 가족들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봤다. 아무것도 모르고 피켓을 들고 서있는 막내아들이 보였다.

 

「이제는 상상하는 것마저, 꿈꾸는 것조차 막으려고 하는 겁니까? 그저 힘든 삶에서 단비 같은 꿈을 꾸는 것뿐인데? 」

 

  극심한 반발이 심해지자 정부는 내용을 철회했다.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세계에서의 기득권자들은 꿈속세계에선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신분이 반전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나라의 장관이 꿈속에서는 상상력이 빈곤한 사람으로, 동냥하던 노숙자가 꿈속에서는 부족한 게 없는 부유한 사람으로 바뀌는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꿈속에서 자본은 아무런 힘도, 통용도 되지 않았다. 오직 순수한 상상력만이 거래되었고 힘을 얻었다. 현실에서 모든 것을 얻은 사람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다른 이상향을 바랬겠는가?

  얼마 전 송부장이 황대리의 뺨을 때린 뒤 황대리가 사표를 냈다는 소문이 사내에 돌았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송부장도 사표를 냈다고 했다. 다들 꿈 때문이라고들 했다.

 

  몇 차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꿈속으로 향해, 꿈 세계를 이용하거나 제지하려고 하였지만. 빈번히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꿈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24시간 꿈에서까지의 연장근무는 죽어도 막겠다는 사람들의 의지였다. 꿈속 세계는 온전한 꿈을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었고, 현실세계는 현실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것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점차 꿈속을 살아가는 자와 꿈속을 살아가지 않는 자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꿈속에서 밖에 힘을 쓸 수 없는 졸렬한 족속들이라고 비난했고, 꿈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상도 생각도 없는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비방했다. 그러다 나중엔 각자 자신이 사는 세계가 진짜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저쪽 현실세계는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뿐인 가짜다! 꿈을 꾸는 것은 현실세계의 무능을 인정하는 자들의 망상이다!

 

  세계는 이제 정말로 둘로 나뉜 듯 했다. 꿈속을 살아가는 자와 현실을 살아가는 자 둘로. 시간이 지날수록 꿈속 세계와 현실세계의 교류는 끊기다 시피 했으며, 중립을 지키며 현실과 꿈속을 오가는 사람들이 간간히 양 세계의 소식을 전해주곤 하였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문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현실에서도 가난했지만, 제2의 삶이라 여겼던 꿈속에서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의 극단적인 비관이었다. 정말로 꿈도 희망도 없었던 사람들의 말로였다.

  꿈속이 점점 번성할수록 회사 내에서도 직원이 점점 줄어들었다. 회사에서도 위기를 느꼈는지 주지도 않던 상여금을 꼬박꼬박 챙겨주고, 승진한지 몇 주 되지도 않아 또 다시 승진을 시켜주었다. 국가에서 상여금을 장려하며 회사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아마 퇴사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스마트폰 알림 울리는 빈도가 모래시계 모래 떨어지듯 조금씩 사라져갔다. 아내가 꼬박꼬박 보내주던 아이들 사진도 보기 힘들어졌고, 아내와 아이들 목소리도 들은 지 꽤 오래되었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도, 집에서 회사로 출근할 때도 가족들은 죽은 듯 잠만 잤다. 나는 가족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은 같이 잘 수 있었어도, 꿈은 같이 꿀 수 없었다. 어떤 공허가 가슴에 파고들었다.

 

 

*

  위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현실세계 사람들도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대다수의 가게가 무인으로 바뀌었고, 대중교통도 자동 시스템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구축해둔 무인 시스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현실에서 활동하는 인구가 줄자, 남아 있는 사람을 붙잡기 위한 맞춤형 복지가 늘어나기도 하였다. 오히려 전보다 사람들의 인권을 챙기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부작용은 꿈속 세계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상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간의 양극화가 극심해진 것이다. 상상력이란 것은 자본과는 다르게 나누어줄 수가 없던 것이기에,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세계가 되었음에도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양 집단 간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퀭한 표정으로 지하철에서 그 소식을 보곤 비웃었다. 인간의 욕심은 얼마나 끝이 없던가? 자유로운 세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계급을 나누고 서로를 비교하다니. 끝없는 상상력을 더 갈망하고 축적하고 싶어 스스로의 세계를 망가트리는 모습이. 어쩐지 나는 우스웠다.

  나는 오늘 업무를 다 끝내고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 퇴근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나는 고개를 틀며 기지개를 펴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책상을 바라봤다. 현실 세계를 선택한 사람들도 숙면을 취해야 하긴 했으니. 보통 현실세계 사람들은 자러간다는 말을 놀러갔다 온다는 표현으로 비유하곤 했다. 꿈속에서는 거주할 공간이 없으니,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구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현실세계의 이방인이라는 것을 꿈속에서 들키게 되면 배척받는다고 했다. 지역도 인종도 아닌 하다못해 꿈꾸는 것 마저 차별이라니. 멍하니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는데 정적을 깨고 복도에서 사람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 과장… 아니, 김 부장님! 소식 들으셨어요? 꿈속에서 사람이 죽었대요!”

 

 

  꿈속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꿈 공유현상이 일어난 이후 제일 크게 다루어졌다. 신문기사 1면, 뉴스 보도 전문을 모두 메울 정도로 그만큼 파장이 큰 사건이었다.

 

「꿈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듣도 보지도 못했어. 상상하는 대로 모든지 할 수 있으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 한명 죽이는 건 일도 아니겠지? 이거, 미친 거 아니야?」

 

  언론사에서 정보를 취합해 제대로 된 보도를 내보내기도 전에, 사람들 사이에선 유언비어는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꿈속 사람들이 떠돌아다니는 현실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다닌다며…. 무방비하게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마를 현실사람들이 방관하기만 한데…….

 

거기다 무분별한 사람들의 언행으로 사건은 점점 심각해져 갔다.

 

━어차피 꿈속 사람들 우리 무시하기만 하는데 잘 죽은 거 아님? 현실세계에서 아무런 도움 안 되는 거 그냥 죽는 게 더 나을듯ㅋㅋㅋ

┗꿈도 없어서 현실에 수긍하고 찌질이 주제에 입 함부로 놀리네.

┗꿈속 사람들은 꿈만 꿔서 현실하고 꿈하고 분간을 못하냐?

 

  양쪽 세계의 사람들은 차별을 넘어, 걷잡을 수 없이 서로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혐오는 증오로 번져갔고 증오는 곧 범죄를 낳았다. 갓 태어난 신생아가 온 힘을 다해 울부짖듯, 세상은 비명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언론사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전달했다. 속보입니다, 방금 광화문 광장에서 현장에서 시위를 하던 사람들을 차량으로 치는 테러가… 이어 다시 속보입니다. 잠을 자고 있던 일가족이 연쇄 살인마한테 참변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또 다시 속보입니다. 경찰서에서 보호를 받고 있던 꿈 속세계 수면자들이 일시에 집단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집으로 들어오니, 장롱도 서랍도 모두 다 텅텅 비어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놀라 집안을 휘젓고 다니다 아내가 남겨놓은 쪽지를 본다.

 

[여보 미안, 요즘 세상 흉흉한데 그냥 집에 있기 그렇더라. 연락해도 아마 못 받을 테니깐 연락하지 마. 그리고 밥 잘 챙겨먹고.]

 

  언제나 마지막에 덧붙이던 아내의 사랑한다가 없었다. 나는 전화기를 꺼내 아내에게 통화를 걸려다가 그만둔다. 가슴에서 울컥 무언가 치민다. 손가락 걸고 같이 꿈꾸자 약속했던 딸아이는 이제 더 이상 없다. 눈물이 자꾸만 고인다. 가족들 얼굴이 희미해져 가는 건 왜일까.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막내아들의 그림 공책이 펼쳐져 있다. 거기에 나는 없다.

 

 

*

  과자에 강소주만 들이키던 나는 옆에 놓인 딸아이의 인형처럼 시르죽은 채 텔레비전만 바라본다. 뉴스는 똑같은 내용을 도돌이표 치듯 반복하고 있었다. 꿈속과 꿈밖의 살인. 테러. 정치. 혐오. 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때마다 나는 소주잔을 들이킨다. 사람들은 온전한 시간의 원을 그리는데, 나는 홀로 비스듬히 잘라놓은 파이 같았다. 돈도, 시간도, 가족도 누군가 야금야금 갉아먹어 팩맨처럼 텅 빈 입을 가진 사나이. 비뚜름하게 비친 내 모습이 텔레비전 위로 보인다. 그래, 아이들도 아내도 현실보다는 꿈속 세계에서 사는 게 더 낫겠지. 피로에 찌들지 않아도 되고,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는 세계가 더 낫겠지. 꿈. 꿈…

그런데, 내 꿈이 뭐였었지.

  …다음 속보로 제약회사의 기자회견장을 연결하겠습니다.

「여러분, 드디어 해냈습니다. 여러분의 자유를 위한 신약이 나왔습니다.」

나는 멍하니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제약회사의 사장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영원히 잠들 수 있는 수면제와 영원히 깨어있을 수 있는 각성제였다.

「이제 더 이상 두 세계를 번갈아 다니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불안에 떨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세계로 영원히 이주하세요!」

 

  다음날, 전국 각지의 약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약을 받아든 사람들은 일말에 고민도 없이 입에 약을 털어 넣기 시작했다. 다들 자신이 믿는 각자의 세계로 떠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꿈을 꾸는 사람들은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수면제를 먹는 순간 숨이 멎으면서, 영원히 꿈 속 세계로 떠나게 되었다. 더 이상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악몽 속에서 살해 당할까봐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됐고, 잠을 자지 않아도 돼 일의 능률도 늘었다. 다시 경계는 단단히 굳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서로의 세계를 차츰 잊어가기 시작했다. 두 세계는 서로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영원히 잠들 수 있는 알약과 영원히 깨어있을 수 있는 각성제를 들고 물끄러미 서울 시내를 바라보았다. 다시 세계는 둘로 나뉘었다. 하나의 세계와 또 다른 하나의 세계로. 창조와 융화가 조합되었던 세계는 더 이상 없다. 사람들은 더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 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내가 속해 있을 수 있는 경계는 어디에 있는 걸까. 아내의 마지막 통화가 귓가에 귀벌레처럼 파고든다.

 

  ‘…있지 여보, 기억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꿈을 포기했던 날 기억나? …그래 성범씨 사고. 그 사고 때문에 당신이 꿈을 포기했었잖아. 별일 아니라는 듯 당신은 말했지만, 나는 정말 그때의 당신이 안타까웠거든. …그런데 있지 여보. 옛날의 당신이 여기에 있어. 여기 있는 당신이 더 희망 있고 행복해 보이는 그때의 당신 같아. 누가 진짜 당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상관없는 것 같다. 끊을게.’

 

  나는 서울 아래를 바라보며 알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나는 저 멀리 경계선 너머를 생각하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정말 내가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꿈 없는 내가 정말 가족들과 같이 있을 자격이 있을까? 가족들이 나를 반겨줄까? 혹시 만약 안 된다면…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 나는 정말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