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검 테스트용 생체 안드로이드로 태어난 내게 주어진 명령문은 하나뿐이었다.


「마검을 뽑으려는 자를 모두 죽여라」


단순한 명령이다.

대마왕 앙골모아가 쓰던 마검을 지켜라는 명령.

나는 그 명령을 받들어 베고, 또 베어냈다.


처음에는 멋모르는 인간 모험가였다.

남자도 베어냈고,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어리건 늙었건 종족을 불문하고 죽였다.

명령에 VIP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던 날, 처음 받은 칼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새로운 검을 구하기 위해 나는 약탈을 수행했다. 튼튼해 보이는 칼을 가진 낭인을 습격한 것이다.

처음 만난 모험가보다 칼 솜씨가 뛰어났지만, 고전 끝에 칼을 챙길 수 있었다.


한 달 뒤에 그 칼에는 금이 갔다.

다시 나는 약탈을 수행했고, 이전보다 더 수월하게 무기를 노획할 수 있었다.

이전 상대와 체격이 비슷한 이를 노렸는데, 어째 차이가 심했다.


처음으로 의문이 생겼다. '왜 다른가?'하는 질문이었다.

의문을 해소하고 싶었으나, 명령은 지켜져야만 했다.

나는 지극히 의도적으로 무기를 든 상대가 지나가기만 하면 싸움을 걸었다.


처음에는 엘프, 그 다음에는 웨어울프, 그리고 인간, 때로는 마족, 한 번은 마왕.

생체 기계일 뿐인 내가 해석하기에는 다 같은 유기물인데, 움직임은 전부 다 달랐다.

엘프 왕족의 비검이⎯

마랑의 긍지가⎯

100년의 전통을 가진 무슨무슨 검술이

사 살려주세요

만마를 지배하는 이 몸의 검기가


처음으로 연산 과정에 방해가 생겼고, 아주 가끔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생체 기계인 몸체는 금세 상처 부위를 재생시켰고, 조금 시간이 덜 걸리거나 더 걸릴 뿐 결국 죽이는 쪽은 그대로였으니까.


「마검 근처를 지나는 자를 모두 죽여라」


논리 회로에는 오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계에서 여신의 시체가 갈갈이 찢겨 피의 비를 내리던 날.

봇짐을 진 한 명의 인간 남성이 근처를 걷고 있었다.

십자가를 새긴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무기를 든 건 아니었다.


어려운 상대가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일전에 쓰러뜨렸던 모든 이들이 남긴 무구들을 양 손에 쥐고서 그의 앞으로 도약했다.


"무슨 일인가?"


붉은 비가 내리는 탓에 시야를 분간하기도 어려울 텐데, 그 남자에게서 당혹감을 검출해낼 수는 없었다.

이제까지 죽인 이들은 의아함이라도 드러냈었다만, 의문점이 추가되었다.


"악마? 아니군. 인간은 더더욱 아니고, 어째서 그대는 내 앞을 가로막는가?"


남자의 목덜미로 검이 쇄도했다.

명령에 따라, 나는 그 남자를 베려 했다.

그럴 터였다.


───툭.

허공에서 나타난 한 자루의 검에 쇄도한 검격이 힘을 잃는다.


───툭.


재연산 도중, 충격파로 인해 떠오른 내 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재생까지 하는 건가. 다행이로군."


그 남자의 손에는 마검이 들려 있었다. 내가 지키는 것과는 다른 마검이.

그리고 그 남자가 방금 펼친 것은 이기어검(以氣馭劍)같았다.

여지껏 만난 상대 중에 가장 난적이라, 나는 잠시 연산했다.


[마왕 파이몬의 마검, 트라구디아]


앙골모아의 마검보다 명백히 격이 떨어지는 마검.

그렇다면 내가 방금 상처입은 것은 우연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하위 권능밖에 지니지 않은 약해빠진 마검의 성능 따위로 날 눕힌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자세를 잡아 앞으로 전진했다.

양손의 검에 세 가지 투로를 품어 사면(四面)을 베어든다.


"사람 죽이는 것에 특화된 검이라니."


묘한 탄식이 감지되었으며, 남자가 눈을 부릅뜬 것은 한순간이었다.


솨아아.


내 손에 있을 터였을 두 자루의 검이 허공을 비행했다.

중검은 파훼당했고, 쾌검은 막혔으며, 환검은 의미를 잃었다.

연산에 오류가 발생했다. 오차가 허용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쿵.


지면이 진동한다. 아니다. 내 평형 기관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검의 권능이 내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리가 없으므로, 이것은 오로지 남자의 기량이다.

분명 성능은 자신이 우위에 있을 터인데,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었다.


이제껏 쓰러뜨렸던 이들의 정보를 로드했다.

그들과 눈앞의 남자가 다른 것은 단 하나, 형과 식이었다.


남자의 마검이 내 동력로를 노렸다. 직격을 허용한다면 기능 정지라는 결론이다.

무사할 확률, 단 0.003%.


그렇다면?


「마검 근처를 지나는 자를 모두 죽여라」


명령문이 효력을 잃는다.

나는 과부하에 가까울 정도로 연산을 반복했다.


몇몇 체계가 경고를 보내왔지만, 남자의 검이 닿기 전에 생존 루트를 찾아야만 했다.

시야 한구석이 붉다 못해 검게 물들고, 재생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었지만, 연산은 계속되었다.


안드로이드에게 명령문이란 생사를 정의하는 문장이기에.


「마검을 뽑으려는 자를 모두 죽여라」

「마검을 뽑으려는 자를 모두 죽여라」

「마검을 뽑으려는 자를 모두 죽여라」

「마검을 뽑으려는 자를 모두 죽여라」

「마검 근처를 지나는 자를 모두 죽여라」

「마검 근처를 지나는 자를 모두 죽여라」

「마검 근처를 지나는 자를 모두 죽여라」

「마검 근처를 지나는 자를 모두 죽여라」

「눈 앞의 모든 생명체를 도륙하라」


빼앗았던 모든 무기를 허공에 날려보냈다.

어깻죽지에서 수십의 팔을 생성하여 경로를 조정한다.


"재주를 부리는군."


남자의 말에 할당할 수 있는 메모리는 없었다.

부하가 심한 기술이지만, 해야만 했기에.

남자의 방해로 인한 부상 따위 무시했다.


검, 창, 도, 모닝스타, 도끼, 글레이브, 월도, 차크람, 플레일, 메이스, 할버드, 편곤, 낫.

수백을 헤아리는 냉병기가 하늘을 메워 하나의 점으로 조준되었다.


[포화의 대상을 설정.]


음성이 출력되었다.

살상지대(Kill Box)가 형성되었다는 의미였다.


점의 공격은 소용없었다.

선의 공격도 매한가지다.

면의 공격조차 통하지 않았다.

따라서, 3차원 공간으로 둘러싸는 것이 내가 출력한 결론이었다.


"마법! 마법사라니!"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리운 것을 본다는 듯한 감정이 감지되었다.


"하나, 흉내내었을 뿐이잖느냐."


흙먼지가 자욱히 일어나고, 금속음만이 메아리친다.

동시에, 자신의 흉부에 톤 단위의 충격파가 느껴졌다.

남자가 나를 후려친 것이다.


───쾅!


어째서.

논리 회로에 비상이 걸렸다.

어째서 죽이지 못 했는가.


[왜.]

"어쩌면 예수님께서 날 이리로 인도하신 걸지도 모르지."


남자의 입에서 이해되지 않는 언어가 흘러나왔다.


[예수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 보내신 하느님. 십자가에 못박혀 인간의 죄악을 짊어지신 분이시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명령은 수행되어야만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네가 지키던 마검은 내가 가져가마. 더 이상 네가 사람을 죽이게 둘 수는 없으니까."


앙골모아의 마검이 남자의 손에 들리어 사라진다.

이름 없는 한 안드로이드에게 내려진 명령이 끝나고 있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남자는 큰 소리로 웃었다.


"말해 무엇하겠느냐. 베드로라고 하면 알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