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 박혀있던 빨갛고 기다란 이쑤시개 같던 그것

그 검을 애초에 줍지 말았어야 했는데...


곧 막내 출산인거 알지? 엄마도 지금 누워계시고 너가 언니니까 @#^@#$%#^

언니니까. 언니니까. 언니니까... 

피곤해 보이는 여성은 휴대폰을 거칠게 내려놓고 지긋지긋한 단어를 되내까렸다.


하루 중 유일하게 여유로운 시간이 아빠의 잔소리로 빈틈없이 메워졌다.

잔소리는 좀 있다가 도 지긋지긋하게 들을 텐데... 밴치 옆에 누워있는 고양이를  쓰다듬고 일어서려는 순간, 이애는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침인가? 


알 수 없는 호기심에 그것을 쑥 뽑았을 때, 그녀는 짜릿하게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세상의 물건이 아닌듯한 감촉도 있었지만, 그 순간 귀에 들린 속삭이는 소리. 남자와 여자, 아이와 노인의 목소리들이 불쾌하게 조합된 음성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바쳐라


뭐라고? 화들짝 놀라 주변을 돌아봤지만 총총거리며 공원 저 너머로 달려가는 고양이의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이애씨!"

또 시작이다. 미친년


"이거 화분 하고 바닥 선하고 35도 각도로 맞추라고 했죠? 지금 너 나이 많다고 나 무시하는 거야!"

한방병원의 장점은 다른 병원보다 여유롭고 단점은 그 시간을 정신 나간 상급자와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턱을 괴고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린다. 끈적이는 벽을 타고 작고 살이 많이 찐듯한 풍뎅이가 보란 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 년 어디 길가다가 자빠졌으면...'


손으로 굴리던 빨간 침으로 이애는 벌레를 푹 하고 찔러서 죽였다.  



이애씨?

네, 선생님 뭐 할 거라도...?

아니 그건 아니고 오늘 김실장 출근 못할 것 같아서... 카운터 하고 한방치료 같이 해야 할 것 같은데? 침은 내가 할 테니까 부황만 ㅂ...

왜 못 나오신데요?

아, 길에서 넘어졌나 봐. 그럼 고생하고~


말이 씨가 될 줄이야...

콧노래를 부르며 이애는 서랍을 열었다. 어제 벌레를 죽였던 침은 없고 볼펜 크기의 빨간색 막대가 투투 툭 굴러왔다.

막대라기에는 양쪽이 날카롭고, 어제 봤던 것보다 밝은 자주석같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것이 예삿물건이 아님을 직감하며 그것을 꽉 쥐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어제 들었던 목소리! 역시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공원 벤치에서 침을 뽑자 들은 목소리...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바쳐라...

그녀는 의자 옆에 말라있는 벌레 쪼가리를 내려다보았다.

상응하는 대가... 바쳐라...


그 후 점심시간마다 그녀 옆에 있던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고, 그녀의 가방은 바뀌었다.



무사히 낳아서 다행이네...


제왕절갠데 뭐. 언니 근데 좋은 일 있어? 로또라도 당첨됐어? 그 가방은 뭐야


응? 뭐 그냥 그렇지, 이거 가짜야.


'넌 항상 내가 가진 것을 뺏으려 하는구나'


그녀는 루이뷔통 안을 슬쩍 내려보았다. 

처음에는 침같이 얇던 그것은 더욱 굵고 커져 어느새 단검과 같은 형태가 돼있었다. 


엄마도 사랑이 낳는 거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금방 깨어나실 거야. 


배의 실밥 자국을 어루만지던 여성이 냉랭한 어조로 대꾸한다. 

언니가 고3때 안 싸웠었더라면... 

살벌한 눈빛에 그녀는 말을 마저 하지 못했다.


엄마랑 내가 왜 싸웠는지는 너가 잘 알텐데? 


설마 아직도 피해의식 갖고 있는 거야? 언니면...


뭐? 피해의식? 

두 명 다 흥분해 순간적으로 단검의 새빨간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찔러!


그녀는 그 목소리에 더 이상 놀라지 않는 자신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나간다. 


사랑이  안 보고 갈 꺼야?


제부씨 이제 오잖아. 나중에 집에서 보자


그녀는 산부인과에서 나와 다른 병원으로 들어갔다.

혼수상태거나 중환자들이 모여있는 집중치료실, 이애는 항상 불 꺼져있는 영안실 같은 그곳이 소름 끼치게 싫었다.


'물론 엄마도 ...'


엄마는 불운한 가정의 장녀였다. 하지만 그 책임감은  다른 시대와 상황에서 이애가 똑같이 짊어지긴 너무 무거웠다.

그녀는 사랑해란 말보다  언니로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더 받았다. 

동생 지원으로 취업을 종용하던 엄마에게 그녀는 처음으로 대들었다.

그것이 마지막 대화였다.


날 낳아주고... 왜 이렇게 만든 거야... 


빨간색 빛이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단검은 어느새 중세 기사나 쓸 법한 장검이 되었다.

검은 빨간색보다 보라색과 자줏빛의 어둡고 깊은 기운을 내뿜었다. 그 기운은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과 같았다. 

그녀는 새로 장만한 집 장식장 안에 고이 처넣어두었다.


집 안은 점점 채워지고 검은 점점 커졌다. 이제 검은 장식장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걸로 뭘 얻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인생을 뺏겼다. 


잃은 건 뺏은 사람에게 돌려받아야겠지?


잘지내?

어? 남편하고 사랑이 데리고와서 집들이 한번하라고

음... 그래 그렇지. 엄마도 분명  좋아하셧을거야. 그럼 그때 보자. 끊어.



흙에 박혀있던 빨갛고 기다란 이쑤시개 같던 그것

그 검을 애초에 줍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녀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달빛만이 그녀를 커튼 사이로 몰래 바라보았다.

세 사람이 그녀 발치에서 눈을 감고 누워있다. 

이애는 무릎을 꿇고 각자의 얼굴을 매만졌다.


이제 만족해? 이제 만족하냐고 이 새끼야!

칼을 두 손으로 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이애의 깍지 낀 두손이 올라갔다가... 가슴 정중앙에서 멈췄다.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목소리와 함께 창 밖으로 날아가는 검을 보며 그녀는 동생 옆에 나란히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