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한 햇빛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내 눈가를 스친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피고 일어나는데 몸도 개운하고 집도 고요하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평온한 기분이다.

“이런 날은 괜히 불안한데..”

불안한 마음에 핸드폰을 확인해보면 액정엔 8시 27분이라는 글자가 박혀있다.

“아, 학교!”

부랴부랴 욕실에 들어가 씻고 교복으로 갈아입다 문득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게 떠올랐다.

토요일에 늦잠을 자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오늘 하루쯤은 부지런해도 좋겠지.

입으려던 교복은 침대 위에 대충 던져놓고, 주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브런치를 즐기기 위해 빵 봉투를 연다.

우유처럼 새하얀 빵은 보기만 해도 푹신해 기분이 좋아진다.

식빵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나머지는 토스트기에 넣는다.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그 옆의 프라이팬에 올리니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익어간다.

“흐음~”

참기름을 두른 계란 후라이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와 토스트의 향긋한 냄새가 어우러지니 이게 행복이다.

토스트 사이에 반숙 계란을 넣어 베어 물으니 크으 정철 부럽지 않다.

아아, 조물주가 야단스럽기도 야단스럽구나.

이 맛의 하모니가 나를 신령님께로 데려가는구나.

 

행복하게 토스트를 즐기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쎄-한 기분이 든다.

잊어먹은 것이 없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때 즈음에 논술 일정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키고 홍대 홈페이지를 ‘딸깍’하고 클릭하면 화면에 뜨는 시험 날짜는 분명히 오늘은 아니다.

“하...”

허탈한 마음이 든다.

논술이 저번 주였다니..

수능 한 달 전이라고 재종도 그만두고 기출문제만 풀다가 날짜 개념을 상실해 버린거다.

이번 생이 처음이라지만 수험 생활은 2년째인데.. 한강 수온만이 궁금할 따름이다.

 

 

 

멍청하게 쇼파에 앉아 티비만 주구장창 보다 벌써 저녁이 다 되었다.

친구에게 전활 걸어 한강에서 술이나 한 잔 하자했다.

오늘은 소주다.

오늘같은 날은 치맥보다는 소주에 매운닭발이나 먹어야지.

가방을 뒤적거려 만원짜리 하나, 5천원짜리 2개, 교통카드를 꺼내 집을 나선다.

버스에 올라타니 “삑. 잔액이 부족합니다.”

에라이 젠장.

이럴거면 천원짜리를 챙기는건데..

버스 기사의 눈초리와 뒷사람들의 궁시렁대는 소리에 뒤돌아서 내리려하면

한 사람이 말한다.

“성인 둘이요”

“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니 그 사람은 날 이상하게 쳐다본다.

설마... 그 사람 옆의 여자도 날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와 팔짱을 낀 채로.

젠장 빌어먹을. 오늘따라 되는게 하나 없네.

버정 앞 편의점에서 껌 한통 계산하고 거스름돈을 받으니 ‘아, 그냥 카드를 충전할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일에 새로운 눈물을 흘리지 마라.’는 띵언을 떠올리며 그냥 잊고 넘기기로 했다.

 

 

 

“야 벌써 몇시냐ㅋㅋ 30분 늦었다 새끼야. 소주는 미리 샀으니까 안주는 니가 계산해라.”

친구의 타박에 그냥 웃으며 닭발을 주문한다,

“이모, 무뼈닭발 주세요.”

“아니 닭발을 무슨 무뼈로 먹어;; 무뼈닭발이 닭발이냐?”

날 무시하는 건 참아도 무뼈닭발을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없다!

갑자기 끓어오르는 분노에 친구의 옷깃을 정리해주고 말았다.

난 화나면 상대의 옷깃을 정리한다.

정리된 옷깃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입시가 뭐가 중요하고, 닭발 취향은 뭐가 중요한가.

어차피 흘러가는 인생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거지 뭐.

 

 

 

결국 뼈 있는 닭발과 소주를 먹고 나와 친구는 한강에 들어간다.

친구는 종합이 광탈할 것 같다고 한다.

결국 종합도 논술도 우리에게 맞지 않나보다.

푸른 빛 물과 시원한 바람이 우릴 맞이한다.

"마지막으로 소원 있냐?"

물이 턱까지 차오르니 그냥 친구의 마지막 소원이 궁금해졌다.

"나는 뭐..."

친구 녀석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탈조선이 답이다."

 

 

 

물은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