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반대말을 살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 자살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이거나 자살을 나약한 사람들이나 생각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자살의 반대말은 고통이며 분노, 증오, 피로, 절망, 좌절입니다.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이러한 고통 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을 잊을 수 없습니다. 두 분 다 타고난 우울증 유전자를 지닌 분들이셨기에 툭하면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두 분이 따로 울 때도 있었고 같이 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여튼 하루 종일 슬픈 얼굴을 하셨고 몸에 힘은 없었습니다. 결국 두 분은 내가 19살이 되던 해 어느 안개가 자욱한 숲속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했습니다. 나를 홀로 남겨둔 채요. . 어머니 아버지. 그러실 거면 왜 저를 낳으시고 기르셨나요? 그대들 덕분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삶의 가장 큰 축복이며 죽음이 두 번째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건 어쩌면 감사해야 될지도 모르는 일이겠네요.

 

나 역시 타고난 우울증 환자들의 자식인지라 언제나 죽음을 생각합니다. 내가 7살이었을 땐가 나를 못살게 구는 학교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툭하면 나에게 욕을 하고 쓰레기를 던졌는데 하루는 평소보다 심하게 내 목을 조르더군요. 나는 숨이 막혀 파닥파닥 거렸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끝나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그 어린 나는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고통을 즐겼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시퍼래지는 내 얼굴을 본 아이들은 놀랐는지 내 목에서 손을 놓았고 내 삶을 되돌려주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아이들이 그때 내 목을 놓아버린 것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내가 처음 자발적으로 죽으려 한 것은 15살 때였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나 스스로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날은 유난히 그림이 술술 그려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며칠 만에 정말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 하나를 완성했는데 그 여인은 내가 좋아하던 선생님이었습니다. 나는 덜덜 떨면서 내가 그린 그림을 선생님께 드렸고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시면서 내 그림을 받아주셨습니다. . 나는 아직도 그 미소를 잊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미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미소. 세상 모든 분노를 잠재우는 그 미소 말이에요. 다시 말하지만 나는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땐 그 여인이 내 삶의 빛이자 생명, , , 공기 자연의 모든 것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선생님은 내 그림을 받고 얼마 뒤 결혼을 하셔서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었고 그 소식을 듣게 된 나는 하루 종일 엎드려 울었습니다. 내 삶은 오직 선생님뿐이었는데 이제 볼 수 없다니! 선생님이 없는 인생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그때 내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악마가 분노와 슬픔을 맛보곤 잠에서 깨어나 나를 죽음으로 유혹하기 시작했고 난 굵은 밧줄을 사 동그란 매듭을 지어 그 사이로 내 얼굴을 집어넣고 땅에서 발을 뗐습니다. 7살 때 친구들이 내 목을 졸랐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 몰려왔습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 느낌을 잊지 않을 것에 감탄을 해보려 했지만 점점 머릿속이 어두워지기 시작해 해보진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기죠.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피식거리곤 합니다. 아 참. 그래서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적지 않았군요. 내가 정신을 막 잃었을 때 즈음 밧줄이 끊어졌고 전 살았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섯 번인가 여섯 번쯤 죽으려 했었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손목 깊숙이 면도날을 찔러 넣어보았지만 피는 뿜어지지 않았고 수면제 한 통을 다 털어 넣은 적도 있었지만 다음날 일어났습니다. 어디선가 떨어져도 어떻게든 살게 되었습니다. 제 머리통이 박살 난 적은 없었습니다. 저번엔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숲속 나무에 목을 매달아 보았지만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내 죽음을 방해하고 경찰에 날 넘겼습니다. 내가 날 죽이는 것도 범죄라니. 모두들 세상 참 어렵게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몇 달 동안이나 지루한 얘기를 늘어놓는 의사들과 얘기해야 했습니다. 의사들은 나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 했지만 다행히 그쪽 담당자 중 한 명이 내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그림 몇 점을 주는 대가로 정신병원행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뇌물인 셈이죠. 며칠 뒤 나는 내 그림이 꽤나 비싼 가격에 어느 부자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담당자가 내 그림을 팔아버린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담당자는 내 그림을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네요.

 

내 그림이 팔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얼마 뒤 낯선 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내 그림이 꽤 비싸게 팔릴 것이라고 말했고 그림을 자신에게 파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액수가 상당했기에 나는 내가 가진 그림 전부를 팔겠다고 했습니다. 그중에는 며칠 전에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그린 아름다운 선생님의 그림도 있었지만, 그냥 팔아버렸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여튼 갑자기 큰돈이 생긴 나는 좀 쉬고 싶었습니다. 푸른 숲속에서 새소리도 좀 들어 보고 싶었고 별빛으로 가득한 밤하늘도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웃기죠? 몇 달 전에 목을 맨 사람이 이제 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나는 가끔 내가 조울증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곤 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이름도 생소한 어느 시골에서 몇 달 동안 살게 되었습니다. 내 그림을 좋아하는 부자가 나에게 자기 시골집을 빌려준 덕분에요. 그 대신 부자는 그곳의 풍경을 내 방식대로 그려서 자신에게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내가 정말 화가가 될 것일까요?

 

부자의 운전사가 날 그곳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운전사는 태생이 과묵한 분이신지 운전하는 내내 한마디도 안 하셨고 그 덕에 나는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들을 조용히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잠깐 졸았는데 눈을 떠보니 이쁘장한 흰색 건물이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나는 운전사에게 물었습니다. “이곳인가요?” 운전사는 대답했습니다. “. 이곳입니다.”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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