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간 국어지옥에는, 집요해 보이는 검사와, 상대적으로 피로해 보이는 판사가 앉아 있었다.

 

"피고인 임지훈과 차사들은 각자 자리에 앉으시오." 

 

두려움 반, 의아함 반으로 자리에 앉았다. 매우 떨렸다. 

차사들 쪽을 보니, 차사들 역시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

명록 씨가 나에게 작은 소리로 물어봤다.

 

"너 국어 공부 많이 했냐?"

"그래도 국어는 괜찮게 하던 편이라서요..."

국어에서 2등급까지 맞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자만하고 있었다.

"어째 예감이 영 좋지 않은데... 일단 믿는다."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재판 시간이 되었다.

 

"검사 지다빈 씨는 피고인의 등급을 판별할 문제 출제를 시작해 주십시오."

 

문제 출제? 아차, 엄연히 수능이었지...

 

"네, 먼저 화법 부문입니다."

 

그녀가 리모컨을 만지자, 판사 뒤에 있는 스크린에서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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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내용>

오늘은 조선의 궁중 음식 중 수라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발표는 수라상의 상차림, 왕의 식사 횟수와 식사 장면,

그리고 수라상의 음식을 포함한 조선의 궁중 음식이 지닌 의의 순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우선 ‘수라’는요, 고려 때 몽골의 영향으로 생긴 말로 왕에게 올리는 밥을 높여 이르던 말입니다.

지금 보시는 화면이 수라상의 사진인데요, 세 개의 상과 화로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을 가리키며) 왼쪽에 보이는 큰 상인 대원반에는 흰밥과 탕, 반찬들이,

오른쪽에 보이는 소원반에는 팥밥과 탕, 접시가 놓여 있습니다.

왕이 고를 수 있게 밥과 탕을 두 가지씩 준비한 겁니다.

소원반 옆에 놓인 화로는 전골 요리에 썼다고 해요.

'조선 왕조 궁중 음식'이라는 책에 따르면 왕은 이러한 수라상을 아침과 저녁에 받았다고 합니다.

왕이 하루에 식사를 두 번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두 번째 화면을 볼게요.

이것은 수라상 외에 왕이 받은 초조반상, 낮것상, 야참의 사진입니다.

초조반상과 낮것상은 주로 죽으로, 야참은 면, 식혜 등으로 간단히 차린 걸 볼 수 있죠.

야참을 식사로 본다면 왕은 하루에 몇 번이나 식사를 했을까요?

(청중의 대답을 듣고) 예, 다섯 번이죠.

아침, 저녁의 수라상까지 합해 왕은 하루에 다섯 번 식사를 한 셈입니다.

다음 화면에서 보실 것은 왕의 식사 장면을 재현한 동영상입니다.

(동영상을 보여 준 후) 어떤 상궁은 왕보다 먼저 음식을 먹어 보아 독의 유무를 확인하고,

다른 상궁은 왕에게 생선을 발라 드리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이렇게 왕은 상궁들의 시중을 받으며 식사를 했어요.

수라상의 음식을 포함한 조선의 궁중 음식은 우리 전통 음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는 궁중과 민간의 교류를 통해 조선의 궁중 음식이 민간의 음식뿐만 아니라

민간의 뛰어난 조리 기술까지 받아들여 우리 음식 전반을 아울렀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의의가 인정되어 조선의 궁중 음식은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었어요.

수라상에 대해 제가 참고한 기록은 대한 제국 시기 상궁들의 구술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수라상에 대해 이해가되셨기를 바라며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보기>는 발표를 들은 후 청중이 보인 반응이다.

발표를 고려하여 청중의 반응을 분석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 기>

청자 1 : 궁중 음식을 민간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민간과 교류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좋았어.

그런데 수라상에 세 개의 상이 있다고 하면서도 설명은 두 개만 해서 아쉬웠어.

 

청자 2 : 왕의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확인하는 상궁을 기미 상궁으로 알고 있는데,

동영상의 상궁 중 한 명이 기미 상궁이겠군.

 

그리고 발표자가 참고한 기록이 대한 제국 시기 상궁들의 구술을 토대로 했다면,

오늘 들은 수라상에 대한 내용은 조선 시대 전반에 걸친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청자 3 : 궁중 음식이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단지 음식만이 아니라 조리법을 비롯한 음식 문화 전반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겠군.

그리고 고추와 같은 재료는 조선 후기에 유입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에 따라 수라상의 음식들에 변화가 있었겠군.

 

① 청자 1은 이전에 몰랐던 사실을 발표를 통해 알게 된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군.

② 청자 2는 발표 내용의 일부를 언급하며 이와 관련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있군.

③ 청자 3은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발표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내용을 추론하고 있군.

④ 청자 1과 청자 3 모두 발표 내용에 누락된 내용이 있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군.

⑤ 청자 2와 청자 3 모두 발표 내용과 관련된 자신의 배경 지식을 활용하고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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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이 문제의 답을 알고 있다.

 

"4번입니다."

"왜 4번이라 생각하시나요?"

"청자 3은 발표 내용에 누락된 내용이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정답입니다."

 

다행히도 화법과 작문 문제들은 어렵지 않게 풀어 갈 수 있었고,

아직까지 틀린 문제는 없었다.

 

"이번에는 문법 유형입니다."  

벌써 문법이라니?

1학년 때부터 문법에는 쥐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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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의 음운 변동을 분석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 기>

㉠ 흙일 → [흥닐]

㉡ 닳는 → [달른]

㉢ 발야구 → [발랴구]

 

① ㉠~㉢은 각각 2회 이상의 음운 변동이 일어났다.

② ㉠~㉢에 공통적으로 일어난 음운 변동은 첨가이다.

③ 음운 변동의 결과 음운의 개수에 변화가 없는 것은 ㉠이다.

④ ㉡과 ㉢에서 일어난 음운 변동의 횟수는 같다.

⑤ ㉢에서 첨가된 음운은 ㉠에서 첨가된 음운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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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ㄱ은 '흙일'이 일에 ㄴ이 첨가되어서 흙닐이고 흙은 흑으로 변하면 흑닐이고 비음화로 흥닐이니 3회이고,

ㄴ은 '닳는'이 음절의 끝소리 규칙으로 달는인데 유음화로 달른이니 2회

ㄷ은 발야구의 야에 ㄴ 첨가에 유음화되어 발랴구로 2회.

일단 1번은 맞다.

2번, ㄴ에 첨가가 없다. 

3번, 흙일 - ㅎ ㅡ ㄹ ㄱ ㅇ ㅣㄹ 7개, 흥닐 - ㅎ ㅡ ㅇ ㄴ ㅣㄹ 6개.

4번은 맞다.

5번은 둘 다 ㄴ이라 맞다.

2,3번 중에서 정답이 있을 텐데...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3번입니다."

 

말하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검사는 드디어 건수 하나 잡았다는 표정이었고, 차사들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틀렸습니다. 바로 다음 문제 드리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걸 틀려어어... 딱 봐도 답은..."

"쉿, 답 알려 주면 안 되는 거 명록 씨도 아시잖아요."

 

명록 씨는 한창 푸념하고 있었고, 분희 씨가 그를 말리고 있었다.

내 멘탈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 문제들도 문법이었고, 내가 답을 말할 때마다 차사들의 표정은 어두워져 갔다.

지옥같은 문법 시간은 한 문제를 맞추고 나서 겨우 끝났지만, 문제는 비문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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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통신 시스템은 송신기, 채널, 수신기로 구성되며,

전송할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부호화 과정을 거쳐 전송한다.

영상, 문자 등인 데이터는 기호 집합에 있는 기호들의 조합이다.

예를 들어 기호 집합 {a, b, c, d, e, f}에서 기호들을 조합한 add, cab, beef 등이 데이터이다.

정보량은 어떤 기호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얻는 정보의 크기이다.

어떤 기호 집합에서 특정 기호의 발생 확률이 높으면 그 기호의 정보량은 적고,

발생 확률이 낮으면 그 기호의 정보량은 많다.

기호 집합의 평균 정보량*을 기호 집합의 엔트로피라고 하는데

모든 기호들이 동일한 발생 확률을 가질 때 그 기호 집합의 엔트로피는 최댓값을 갖는다.

송신기에서는 소스 부호화, 채널 부호화, 선 부호화를 거쳐 기호를 부호로 변환한다.

소스 부호화는 데이터를 압축하기 위해 기호를 0과 1로 이루어진 부호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어떤 기호가 110과 같은 부호로 변환되었을 때 0 또는 1을 비트라고 하며 이 부호의 비트 수는 3이다.

이때 기호 집합의 엔트로피는 기호 집합에 있는 기호를 부호로 표현하는 데 필요한 평균 비트 수의 최솟값이다.

전송된 부호를 수신기에서 원래의 기호로 복원하려면 부호들의 평균 비트 수가 기호 집합의 엔트로피보다 크거나 같아야 한다.

기호 집합을 엔트로피에 최대한 가까운 평균 비트 수를 갖는 부호들로 변환하는 것을 엔트로피 부호화라 한다.

그중 하나인 ‘허프만 부호화’에서는 발생 확률이 높은 기호에는 비트 수가 적은 부호를,

발생 확률이 낮은 기호에는 비트 수가 많은 부호를 할당한다.

채널 부호화는 오류를 검출하고 정정하기 위하여 부호에 잉여 정보를 추가하는 과정이다.

송신기에서 부호를 전송하면 채널의 잡음으로 인해 오류가 발생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잉여 정보를 덧붙여 전송한다.

채널 부호화 중 하나인 ‘삼중 반복 부호화’는 0과 1을 각각 000과 111로 부호화한다.

이때 수신기에서는 수신한 부호에 0이 과반수인 경우에는 0으로 판단하고, 1이 과반수인 경우에는 1로 판단한다.

즉 수신기에서 수신된부호가 000, 001, 010, 100 중 하나라면 0으로 판단하고,  그 이외에는 1로 판단한다.

이렇게 하면 000을 전송했을 때 하나의 비트에서 오류가 생겨 001을 수신해도 0으로 판단하므로 오류는 정정된다.

채널 부호화를 하기 전 부호의 비트 수를, 채널 부호화를 한 후 부호의 비트 수로 나눈 것을 부호율이라 한다.

삼중 반복 부호화의 부호율은 약 0.33이다.

채널 부호화를 거친 부호들을 채널을 통해 전송하려면 부호 들을 전기 신호로 변환해야 한다.

0 또는 1에 해당하는 전기 신호의 전압을 결정하는 과정이 선 부호화이다.

전압의 결정방법은 선 부호화 방식에 따라 다르다.

선 부호화 중 하나인 ‘차동 부호화’는 부호의 비트가 0이면 전압을 유지하고 1이면 전압을 변화시킨다.

차동 부호화를 시작할 때는 기준 신호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차동 부호화 직전의 기준 신호가 양(+)의 전압이라면

부호 0110은 ‘양, 음, 양, 양’의 전압을 갖는 전기 신호로 변환된다.

수신기에서는 송신기와 동일한 기준 신호를 사용하여,

전압의 변화가 있으면 1로 판단하고 변화가 없으면 0으로 판단한다.

 

* 평균 정보량 : 각 기호의 발생 확률과 정보량을 서로 곱하여 모두 더한 것.

 

윗글의 ‘부호화’에 대한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① 선 부호화에서는 수신기에서 부호를 전기 신호로 변환한다.

② 허프만 부호화에서는 정보량이 많은 기호에 상대적으로 비트 수가 적은 부호를 할당한다.

③ 채널 부호화를 거친 부호들은 채널로 전송하기 전에 잉여 정보를 제거한 후 선 부호화한다.

④ 채널 부호화 과정에서 부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잉여 정보를 추가하면 부호율은 1보다 커진다.

⑤ 삼중 반복 부호화를 이용하여 0을 부호화한 경우, 수신된 부호에서 두 개의 비트에 오류가 있으면 오류는 정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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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머리가 터지려 한다.

애초에 난 문과였다. 과학에는 중학교 시절부터 젬병이었다.

몇 번 문제를 다시 보아도, 도저히 뭔가가 생각나지 않는다.

찍는 것 밖에는 답이 없나...

어쩔 수 없다. 난 망했어.

 

"답은 5번입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정답입니다."

 

응?

잠깐, 정답이라고?

찍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

.

.

.

 

기쁨도 잠시였다. 

그 뒤에 나온 문학, 비문학 문제들에서 오락가락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내가 원했던 성적보다 낮은 점수를 받을 게 뻔했다. 

 

"이제, 최종 등급을 구형하겠습니다. 피고인이 틀린 문제들의 점수를 합산하면 18점입니다.

아시다시피 국어 과목에서 82점은 최상위 등급을 주기에는 무리인 숫자이며,

특히 문법 유형과 비문학 유형에서의 부진은 확실한 감점 요소입니다.

따라서, 저는 피고인 임지훈에게 국어 4등급 판결을 구형합니다."

 

4등급이라고..?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간 채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차사는 변론을 해 보시오."

이렇게 된 이상 차사들이 변호해 주는 방법뿐이다.

그들이 상의한 끝에, 마킹도령이 일어나서 말했다.

 

"네, 피고인 임지훈은 이번에 평소 국어 성적보다 부진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선 재판에서 많은 학생들 역시 이번 비문학 유형 문제의 난이도를 버거워 했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 참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피고인 임지훈은 화법 및 작문 유형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점 역시 가산 요소로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가 보기에 4등급은 부당한 성적이라 생각됩니다. 이상입니다."

 
"지금부터 판결을 내리겠소."

 

조마조마했다. 4등급을 받으면 이후의 모든 것이 꼬여 버리는 것이었다.

 

"피고인 임지훈은, 등급 책정 문제에서 2등급 수준에 들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의 성적은 그를 4등급 범주에 넣어서 판단하기도 이른 것 역시 사실이다.

따라서 피고인 임지훈에게 3등급 판결을 내리겠다. 이상 재판을 마치도록 한다."

 

다행이었다. 그나마 3등급 안에 들 수 있었다.

차사들 역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재판장을 빠져나오며, 명록 씨는 짖궃게 중얼거렸다.

"닌 정말 우리 같은 사람들 만나서 운 좋은 거야.

내가 판사였다면 넌 100퍼센트 4등급 판결 맞고 구석탱이에서 울고 있을거라 내가 장담한다."

"예예, 그러시겠죠."

"진작에 좀 열심히 했어야지."

 

서로 실랑이를 벌이며 우리는 다시 차로 들어갔다.

 

차를 타고 수학지옥으로 가는 중, 차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마킹도령씨는 왜 이름이 마킹도령이시죠?"

"야, 딱 보면 모르냐? 가명이잖아, 가명. 본명은 저ㅇ..."

"그만, 거기까지. 대장은 신원이 알려질 수 있어서 본명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역시 알아서는 안 될 게 있는 건가...

 

"곧 있으면 수학지옥이에요."

 

수학, 정말 그 자체로 지옥이었다.

문과인 것을 감안해도 수학에는 재능이 없었다.

 

"너 수학 공부는 했냐? 아까처럼 공부 했다고 해서 우리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솔직히 얘기하라고."

"....저 사실 수포자에요...."

 

"뭐?"

"에엑?"

"....일이 곤란하게 되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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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2018학년도 수능